메뉴 건너뛰기

close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후보자가 2월 27일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미국 주도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를 적극 시사하고 나서, 닻을 올린 이명박 정부의 PSI 정식 참여 문제가 또 다시 논란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유 후보자는 PSI에 정식 참여하는 문제와 관련해 "비확산 체제는 하나의 국제규범이니 더 적극적인 참여방안이 있는지 검토하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는 노무현 정부 외교부 차관으로 재직했던 2006년 10월에 "한반도 주변에서는 절대 PSI 활동을 할 수 없다"며 정식 참여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과는 상당히 달라진 태도이다.

 

참고로 노무현 정부는 PSI의 8개 항 중 역내·외 훈련의 참관단 파견, 브리핑 청취 등 옵서버 자격으로 가능한 5개 항에만 참여했고, ▲정식참여 ▲역내 차단훈련시 물적 지원 ▲역외 차단훈련시 물적 지원 등 3개 항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남북관계의 파장과 우발적 군사충돌에 대한 우려 때문에 정식 참여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PSI 참여가 국제규범?

 

유명환 후보자가 PSI 정식 참여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내세운 근거는 국제규범이다. 그러나 국제규범이 PSI 참여를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국제사회의 여러 전문가들은 PSI가 국제해양법에 저촉되는 것으로, 국제규범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국제해양법은 공해상에서의 통항의 자유, 국제해협, 배타적 경제수역, 영해 및 군도수역에서의 무해통항권을 보장하고 있다. 다만, 해적, 노예무역, 마약 등 불법 활동에 대해서는 해당 국가가 검색 등 관여할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해양법에는 대량살상무기(WMD)의 통과를 금지하는 어떠한 내용도 없는 상태이다. 오히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PSI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나라들은 바다와 하늘을 통해 WMD를 운반하는 것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방향으로 국제법을 개정하자는 일부 요구를 일축해왔다. 자국의 안보전략에 차질을 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 나라는 플루토늄 등 핵물질을 공해와 배타적 경제수역을 통과하는 것은 국제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수출 선박을 검색·나포할 수 있는 국제규범으로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를 제시한다. 그러나 북한은 MTCR 회원국이 아니어서, 이 역시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PSI는 국제법적 근거가 없는 미국 예외주의와 일방주의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핵무기를 비롯한 WMD의 수송은 국제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이고, 북한 등 일부 국가들은 PSI라는 새로운 잣대를 통해 국제법적 권리를 박탈하려는 것은 국제규범이 아니라 전형적인 '힘의 외교'이다.

 

더구나 PSI의 주창자인 부시 행정부는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 탈퇴,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포기,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 거부, 생물무기금지협약(BWC) 검증 체제 강화 거부 등에서 알 수 있듯이 WMD와 관련된 국제규범을 무력화하는 데 앞장 서 왔다.

 

2006년 10월 9일, 북한의 핵실험 직후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1718호 결의안에서도 회원국의 PSI 참가를 의무화한 조항은 없다. 미국과 일본은 북한을 출입하는 선박과 항공기에 대한 검색 조항을 넣기를 원했으나,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PSI 정식 참여 여부와 실용외교는 양립할 수 없다

 

이처럼, PSI에는 국제규범보다는 미국의 일방주의와 예외주의가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 국제규범의 적용과 관련해,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식의 접근법은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보편적 가치'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더구나 한국은 남북해운합의서에 따라 남측 영해로 운항하는 북한 선박에 대해 승선, 검색할 수 있다. 굳이 PSI에 정식 참여하지 않더라도, 그 효과를 낼 수 있는 근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북한은 남한의 PSI 참여가 정전협정의 위반이자 군사적 적대행위라고 간주하고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PSI에 정식 참여를 선택할 경우, 남북관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북한 사이의 긴장은 고조될 것이고, 북한 강경파의 입지 강화를 가져와 6자회담 프로세스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코리아 리스크'가 또 다시 높아져 이명박 정부가 최대 과제로 삼고 있는 '경제살리기'에도 치명타를 가하게 될 것이다. PSI 정식 참여와 실용외교가 양립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적 선택'을 기대해본다.


태그:#PSI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