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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휴가를 나오면 궁궐과 사찰 등 전형적인 관광 명소를 찾아다녔어요. 복귀해서는 준비해 간 자료들을 분석하며 다음 휴가 답사계획을 세웠죠. 그렇게 시작한 답사의 관심이 지금은 근현대사와 서울로 좁혀졌고요. 어렸을 때 옆 동네에 놀러가려고 산 넘어 반나절을 걷곤 했는데 강과 산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지 힘든 줄 몰랐어요."

 

군대 휴가는 대개 '자유'를 마음껏 즐기느라 일분 일초가 아쉽기 마련이다. 그런데 힘들게 답사를 다녔다니 보통 사람이라면 '미쳤다'고 혀를 찰 일이다. 준수한 외모에 선한 인상을 풍기는 이 청년, 왠지 범상치 않다.

 

지난 1월 말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이하 <서울을 거닐며…>)를 펴낸 권기봉(30)씨. 그는 대학교 학보사 기자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거친 뒤 현재는 SBS 기자로 일하고 있다.

 

교과서가 가르쳐 주지 않는 역사 현장, 서울

 

내가 "맨발의 기봉이?"라고 우스개를 건네자, 그는 "학창 시절 '넌 왜 궁금한 게 그렇게 많냐'고 선생님께 꾸지람까지 들었다"며 "호기심이 왕성해 별명이 '호기봉'이었다"고 넉살로 받아넘겼다. 스스로 "신발은 신고 다니는 기봉이"라 부르며 웃는 그를 만난 건 지난 26일 저녁 9시 서울 홍익대 앞 한 호프집에서였다.

 

충청북도 월악산국립공원에서 산골소년으로 자란 그는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에 입학하며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그에게 서울은 '원더랜드(이상한 나라)' 그 자체였다니, '호기봉'의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이 제대로 주인을 만난 셈이다.

 

"초등학교 4학년 소풍 때 처음 와 본 서울은 63빌딩과 국회의사당 등 거대한 건물이 있는 곳인 줄로만 알았어요. 그러다 대학생이 돼 경험해 보니 서울은 교과서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 역사를 만날 수 있는 현장이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역사에 대한 오해와 편견, 그리고 지적(知的) 게으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10여 년간 서울을 답사했어요."

 

그는 세종로 한복판을 접수한 이순신 장군 동상부터 역사 속으로 사라진 청계고가와 단성사, 반쪽 역사만을 간직한 서대문 형무소, 군사독재 시절 날림공사의 원조였던 와우아파트 등 서울 곳곳에 얽힌 역사를 냉철한 시각으로 바라봤다. 예를 들면 '박정희'와 '삼일(3.1절)'을 연결시킨 부분이 대표적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관동군 장교로 일했던 박정희의 '일본 따라하기'는 고가도로 건설에만 그치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은 각종 대형 시설물마다 '민족'이나 '항일'과 관련한 이름을 곧잘 갖다 붙였다. 층수까지 31층으로 맞춘 '삼일빌딩'을 비롯해 '삼일아파트'와 1984년 말 이름이 청계고가로 바뀐 '삼일고가'까지. 이름만 민족으로 덧칠한 게 아니었다. 1967년 '광복'절에 기공식을 가졌던 '삼일'고가가 왕복 4차선으로 최종 완공된 날도 1971년 '광복'절이었다. (33~34쪽)"

 

세종로에 대해 "가히 우리나라의 중심이다"며 "'과거권력'을 상징하는 경복궁이 세종로가 시작되는 곳에 있고, '현재권력'을 상징하는 청와대와 정부종합청사가 지척"이라고 평하면서 이순신 동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날카롭기는 마찬가지다.

 

"이승만 정권 때에는 이순신 동상 자리에 이승만 본인의 동상을 세웠다…4·19혁명 때 시민들에 의해 철거된 이후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세종로라는 이름에 걸 맞는 세종대왕 동상이었다…그러나 반공이 국시였던…박정희는…1968년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보완해주리란 기대를 떠안은 이순신 동상이 한국의 대표도로 세종로를 '접수'했다. (17~19쪽)"

 
그의 답사 이야기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2001년 9월부터 2005년 3월까지 '권기봉의 <문화유산답사>'라는 제목으로 총 80여편에 걸쳐 선보였다. 그리고 그는 2002년 올해의 뉴스게릴라(연재 부문)에 선정됐다.
 

"발언권 센 사람은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되겠더군요"

 

<서울을 거닐며…>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결코 지루하지는 않다. 대부분 익숙한 소재들이기도 하지만, 책의 지은이 소개처럼 '적성과 딱 맞아떨어지는 기자 일'을 하는 그가 풀어내는 글 솜씨 또한 맛깔스럽기 때문이다. 그에게 기자는 천직이었을까.

 

"친구들이 교수, 의사, 변호사 등 장래 희망을 말할 때, 전 '행복하고 재미나게 사는 것'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과학고와 대학에서 이과 학문을 전공하다보니 관심사가 너무 좁게 느껴져서 재미가 없더라고요. 여러 관심사를 충족하기 위해 학보사를 갔고, 좋아했던 여행과 답사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쓰게 된 거죠. SBS도 그 연장선상이지, 기자가 천직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스스로 "억세게 운이 좋았다"고 겸손해 했지만, 그는 '행복과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그 어렵다는 기자 시험을 첫 번째 시도 만에 '덜컥' 통과해 버렸다. 그의 첫 시험 이야기 역시 '호기봉'다웠다.

 

"문제가 '3불정책'과 'TV는 (     )다'를 논하는 것이었어요. 1시간 동안 썼는데 제 의견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남은 30분 동안 새로 썼어요. '3불정책'은 유럽 여행 중 만났던, 음악을 전공하는 독일 여학생의 시각을 빌려서 논했죠. 그리고 'TV는 (캠핑카)'로 규정했는데, 모든 게 갖춰진 캠핑카는 야영장 안에서 오히려 사람들과 소통을 단절 시킨다는 거였어요."

 

직업 기자가 된 뒤 그는 회사 대표, 비정규직 노동자, 정책 결정권자, 청계천 노점상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두루 만나면서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었다. 이 '호기심 충족'에 대해 그는 "거창한 소명의식은 아니고, 기자로서 큰 재미를 느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을 취재해 보니 발언권이 센 분들은 굳이 내가 만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힘없는 약자들의 발언이 정말 필요하다고 깨달은 거죠. 그래서 방송사에 입사한 뒤에 노숙자, 비정규직, 쪽방촌, 비닐하우스 등에 대한 기획을 많이 제안해 취재를 했어요. 아, 그렇다고 온정주의적 시각으로 본 건 결코 아니에요."

 

'호기봉'씨와의 대화는 쉴 새 없이 계속됐다. 그는 지닌 호기심만큼이나 이야기 소재도 무궁무진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묻지 않아도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잘도 풀어냈다. 자신은 아니라고 했지만, '글'이든 '말'이든 천생 기자였다. 이쯤에서 슬쩍 "멋진 책을 출판하며 서른을 맞이했다"고 운을 띄자, 그는 웃음기를 거두고 정색을 했다.

 

"신문 기사와 방송 리포트처럼 책도 사람들과 소통하는 매개체지 목적은 아니에요. 하지만 뿌듯함보다는 아쉬움이 많아요. 기자 일을 하다 보니 원고를 검토할 시간이 부족했거든요. 또 미처 책에 담아 내지 못한 내용들도 있고요."

 

역사를 좋아하는 영감님? 절대 아닙니다

 

나는 그보다 8살이 많다. 세대 차이도 느껴질 법도 한데 자정이 넘도록 그를 만나면서 동년배와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오히려 '영감님' 같다고나 할까. 아마도 서울 토박이인 나조차 무관심하게 지나쳤던 서울의 역사를 묵직한 시각으로 짚어냈기 때문이리라. 그는 '영감님'이라는 말에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이야기하고 싶은 소재가 '역사'였던 거지 무거운 것은 싫어해요. 시민기자 시절 들었던, '내겐 부시 방한보다 어머니가 상경하는 것이 더 큰 뉴스다'라는 말처럼 제 관심사를 확장시키고자 제가 좋아하는 답사와 여행을 했던 거예요. 기자가 현장을 봐야 하는 것처럼 실증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는 책에서 유독 '지적 게으름'을 강조했다. "역사적 사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미심쩍은 것이 있어도 직접 찾아보지 않는 '지적 게으름'" 때문에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얘기"가 돼 버렸다는 비판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왕성한 지적 호기심과 20대의 온 열정을 바친 결과물인 <서울을 거닐며…>는 "교과서에는 없는 서울 역사"를 구체적인 건물들과 함께 쉽게 들려준다.

 

대화가 마무리될 새벽 2시 무렵, 다음 여행 계획을 '또' 세우고 있다는 그는 '기자'와 '여행가'를 이렇게 구분하며 말을 맺었다.

 

"사고의 끝과 넓이가 좁아지고 작아지느냐, 넓어지고 커지느냐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방송기자는 10문장 안에 모든 걸 담아야 해요. 그러다 보니 적어지는 문장만큼 사고의 깊이도 낮아지는 건 아닌가 걱정이 돼요. 그래서 가능한 여행도 많이 하고, 긴 호흡의 글을 블로그에 올리려 노력해요."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이 책은 서울의 역사를 '일상·문화·의미·장소' 등 4가지 재발견으로 구성해 모두 26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저자의 20대 열정이 온전히 담긴 결과물이다.

 

'불도저' 김현옥 서울시장이 세웠던 청계고가를 역시 '불도저' 이명박 서울시장이 부순 데 대해, 저자는 "막개발에 이어 막복원된 도시를 떠안고 살아야 할 후손들의 부담은 누가 고민하고 있나"며 "1960~1970년대 한반도를 휩쓴 개발 지상주의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청계고가는 사라지고 없지만 그것이 남긴 화두는 여전하다"고 쓰고 있다.

 

'한국영화의 효시'라 일컬어지는 춘사 나운규의 <아리랑>이 가장 먼저 상영된 곳인 '단성사'도 저자의 시선을 비켜가진 못했다.

 

저자는 "'한국영화의 메카'이자 '독점 개봉관'의 지위를 누린 단성사는 한국영화사를 설명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는데 "복합상영관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지 단성사 역시 예의 2층 목조 건물이 아니라, 10개 상영관을 갖춘 현대식 복합상영관으로 거듭나 있었다"며 못내 아쉬운 감정을 드러냈다.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에 이른 저자는 많은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1908년 세워져 숱한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된 이후 80년이나 유지된 서대문 형무소가 "기록하고 있는 시간은 1945년 해방 때까지, 즉 전체 역사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며 "미군정을 거처 1987년 폐쇄될 때까지인 나머지 절반의 역사는 어디로 간 것일까?"라고 묻는다. "내키든 내키지 않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남아야 한다"면서.

 

'누운 소'의 모양을 닮은 '와우산' 자락, 입주한 뒤 채 한 달도 안돼 이름대로 무너져 내렸던 '와우아파트'의 이야기에서는 군부독재의 어이없는 날림공사에 기가 막히기도 한다.

 

"독재자의 기호에 맞추기 위해 무리한 위치에 자재도 제대로 넣지 않고 시공된 것이나, 그 과정에서 자해된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 도시빈민의 실질적인 주거 안정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 점, 재개발 등쌀에 밀려 다시 쫓겨날 수밖에 없는 처지 등. 사실 ‘와우식’ 시민아파트 건설 사업은 전형적인 전시행정, 졸속행정에 다름 아니었다.(241쪽)"

덧붙이는 글 |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권기봉 지음, 알마 출판, 312쪽, 값 16,500원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권기봉 지음, 알마(2008)


태그:#권기봉,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알마, #이명박,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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