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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의도는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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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희

“여긴 배를 타고 들어와야 하니까 어렵지! 그래도 1월 초반까지는 자원봉사자들이 꽤 왔는데 지금은 거의 없어 그냥 여기 노인네들끼리 하는 거지 뭐….”

 

기름 유출 84일째를 맞는 28일 현재 충남 태안. 육상교통수산으로 이동이 가능한 지역의 해변은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현재 대부분의 해안가들이 육안상으론 황금빛 모래를 자랑하며 사고 이전 모습을 되찾은 듯한 모습이다.

 

산더미 기름범벅된 자갈들이 해변가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습
산더미기름범벅된 자갈들이 해변가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습 ⓒ 정대희

허나 인근 섬 주민들은 아직도 기름과의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인도'로는 태안군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가의도. 오늘도 주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자갈을 닦으러 해안가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언제부턴가 자원봉사자의 발길이 끊어진 가의도는 이젠 대부분 지역주민들만이 방제작업에 동원되고 있다.

 

자갈을 닦던 고정진(55·남)씨는 “그래도 사고 초기를 지나고는 방송도 타고 신문지상에 기사도 많이 나면서 자원봉사자들이 그래도 많이 왔는데 이젠 찾아오는 사람이 없네”하며 “반짝하고 말았던 거지, 뭐…”하고 말꼬리를 흐리신다.

 

가의도에서 방제작업을 할 수 있는 곳은 몇 군데 되지 않다. 하지만 가의도 해변은 자갈로 이뤄져 자갈틈 사이에 기름이 스며들었으며, 두꺼운 기름자갈층을 형성했다. 때문에 다른 곳에 비해 긴 방제기간과 많은 방제인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닦자! 닦어! 1차로 삶은 자갈을 헌옷과 천 등을 이용하여 기름을 닦아내고 있는 주민들
닦자! 닦어!1차로 삶은 자갈을 헌옷과 천 등을 이용하여 기름을 닦아내고 있는 주민들 ⓒ 정대희

현재는 방제회사에서 동원된 굴착기로 만조 때에도 바닷물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오염된 자갈들을 옮겨 자갈표면에 딱딱히 굳어버린 기름을 제거하는 작업(자갈을 삶아 닦아내는 일)을 하고 있다. 쉽게 말해 자갈을 삶아 1차적으로 기름을 제거하고, 이후 주민들이 2차로 헌옷 및 천 등을 이용하여 세척해 깨끗한 돌로 탄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갈을 삶은 양은 많더라도 닦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다 보니 복구작업이 더딜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손남숙(87·여) 할머니는 “이거 봐, 여기 산더미처럼 쌓인 자갈들이 다 기름 범벅된 거여, 이걸 언제 다할지 기약이 없네”하며 “매일 같이 이 짓을 하다 보니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데가 없어, 속도 안 좋고, 헛구역질도 나오고, 또 밥맛까지 없으니 이거 원 살 수가 있나…”하고 답답한 심정을 토했다.

 

의료지원이 미약한 점도 섬 주민들은 불만이다. 손 할머니와 같이 대부분의 주민들이 감기몸살과 근육통, 두통, 매스꺼움 등을 호소하고 있지만 의약품이 전달되고 있지는 않다.

 

장은의(87·여) 할머니는 “파스나 감기약을 받은 것이 언제인지 생각이 나질 않아”라며 어깨를 두드린다. 그러면서 “여기서 하루 종일 작업하고 집에 가면 밥맛도 없고 잠도 안 오고  그려, 그래도 어떻게 해 나와서 일해야지 나중에 조상들 뵐 면목은 있어야지 않겠어?”하고는 또다시 헌옷으로 자갈을 닦는다.

 

그래도 본 기자가 가의도를 찾은 이날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서 약 10여 명이 가의도와 자매결연을 맺기 위해 현장을 방문하여 결연식을 갖고, 이후 주민들과 함께 방제작업을 하였다. 또한 명지대학교 로봇동아리 소속 8명의 학생들이 외진 곳에서 묵묵히 기름제거를 하고 있었다.

 

맛나네! 매일같이 라면을 주식으로 먹었다던 주민들이 한국환경정책연구원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먹고 있는 모습
맛나네!매일같이 라면을 주식으로 먹었다던 주민들이 한국환경정책연구원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먹고 있는 모습 ⓒ 정대희
나란히... 명지대 로봇동아리 소속 학생들이 자갈에 묻은 기름을 닦고 있는 모습
나란히...명지대 로봇동아리 소속 학생들이 자갈에 묻은 기름을 닦고 있는 모습 ⓒ 정대희

정회성 연구원장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이렇게 매일같이 방제작업을 하고 있다니 참 안쓰럽기 그지없다”고 안타까움 심정을 토했다. 이어 “오늘 하루 이렇게 기름제거 작업을 하고 가기만 향후 본 연구원과 관련기관들이 함께 실질적으로 피해주민들을 도울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인혁(25·남) 명지대 학생은 “일전에 가의도를 찾아와 방제작업을 하고 간 친구가 있어 선・후배들과 M・T겸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왔다”며 “방송에선 방제작업이 거의 끝난듯 나오던데 섬지역은 아직도 사고 초반 그대로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피해현장을 찾은 소감을 밝혔다.

 

삶은자갈 삶은자갈을 포크레인을 이용하여 걷어올리고 있는 모습
삶은자갈삶은자갈을 포크레인을 이용하여 걷어올리고 있는 모습 ⓒ 정대희

한편, IOPC 펀드로부터 방제비용이 지급되지 않아 가의도를 비롯한 몇몇 방제회사들이 철수를 생각하고 이를 실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방제회사 소속 이종인(57·남)씨는 “여기 실정과 주민들을 보면 철수는 생각도 하지 못할 일이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방제비용이 지급되지 않으니 계속 문제가 되고 있는 듯하다”며 “앞으로도 3~4개월 정도는 더 (방제)작업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날의 흔적 태안군 가의도가 아직 유류 유출 사고 초반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가운데 기름범벅된 굴
그날의 흔적태안군 가의도가 아직 유류 유출 사고 초반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가운데 기름범벅된 굴 ⓒ 정대희

#기름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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