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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독립을 외치던 3월 1일입니다. 국민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조국만세를 부르짖은 지 약 90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도 우리는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희생한 순국선열들을 기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는 일본 식민지 지배하의 아픈 기억들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식민지 시절 쓰라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우리뿐만이 아닙니다. 선진국들이 중심이 되어 아시아, 아프리카를 점령하기 시작했던 때, 프랑스가 지배하던 누벨칼리도니의 사람들도 온갖 수모를 겪었습니다. 누벨칼리도니는 현재까지도 프랑스의 해외영토에 속합니다.

그래서 3.1절을 맞이한 오늘, 책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직접 1980년대 누벨칼리도니로 날아가 보았습니다. 여기 제 옆에는 당신이 직접 겪으신 이야기를 들려주실 '고세네'씨께서 앉아계십니다. 그럼 지금부터 이 분과의 가상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누벨칼리도니의 식인종 인간'을 만나다

 파리의 식인종.
파리의 식인종. ⓒ 이지수
- 안녕하세요, 고세네씨. 자기소개를 해주시겠어요?
"저는 누벨칼리도니의 이앙겐에 사는 한 노인입니다. 누벨칼리도니는 오세아니아에 있는 남태평양의 작은 군도이고요. 한국도 누벨칼리도니처럼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니 마음이 아프군요. 저는 1931년에 부족의 다른 원주민들과 함께 파리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저희는 매우 수치스러운 일을 경험했습니다."

- 오늘 누벨칼리도니에 처음 오는데요, 여기저기에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더군요. 총 든 사람들도 여럿 봤고요. 혹시나 총에 쏘일까봐 잔뜩 겁을 냈는데, 요즘 왜 이런 건가요?
"누벨칼리도니 사람들은 예전의 당신들처럼 독립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이곳에서는 원주민들과 프랑스인들과의 무력충돌이 자주 일어나고 있지요. 하지만 그들은 아무에게나 함부로 쏘지 않습니다. 그러니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도 걱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 그렇군요. 그렇다면 고세네씨는 파리에서 어떤 경험을 하셨나요?     
"약 50년이나 지난 일인데도,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게 나는군요. 저희 부족 사람들은 파리의 식민지 박람회에 전시되었습니다. 그들은 저희에게 오세아니아의 문화를 소개하는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말했지만, 그곳에 간 저희들은 야생 동물 취급을 당했습니다. 남자들은 카누를 만들고, 여자들은 필루필루 춤을 추었습니다. '누벨칼리도니의 식인종 인간들' 팻말 뒤에서 괴상한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프랑스인들은 제 정혼자였던 미노에와 몇몇 사람들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저와 제 친구였던 바디무앵은 미노에를 찾으러 가게 됐습니다."

- 프랑스인들은 그들을 왜 독일로 보낸 거죠?
"식민지 박람회에 있던 악어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모조리 죽어버리자, 식민지 박람회의 고등판무관은 독일 서커스단의 악어들과 우리 부족의 사람들을 맞교환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서커스단의 악어와 별 다를 바가 없었던 겁니다."

-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식민지 박람회를 탈출한 용기가 정말 멋있네요. 그런데 그곳에서 두 분이 사라진 것을 보고는 가만 있지 않았을 텐데, 별 일은 없었나요? 
"경찰에게 붙잡힐 뻔했던 수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다행이었던 건 둘 다 프랑스어를 조금 할 줄 안다는 거였죠. 덕분에 저희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지나가던 사람에게 열차 타는 곳을 물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부 역에서 쫓길 때는 청소부였던 아프리카인이 도와주었습니다. 총살당할 뻔했을 때는 용감한 프랑스인 한 명이 저를 구해주었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쯤 이 세상에 없을 겁니다."

원주민이 바라 본 1930년대의 프랑스 파리의 모습은?

- 그렇군요. 처음 가보는 파리 도심에 적응은 잘 하셨나요?
"바디무앵은 지하세계에 대한 믿음 때문에 지하철 타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저희는 걸어서 동부 역으로 갈 수밖에 없었죠. 지하철을 탔다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떠나는 열차를 놓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저는 고국의 숲에서 했던 것처럼 식민지박람회의 전나무에 올라가 주변을 살피기도 했습니다. 도심 사람들이 저를 보았다면 수상쩍게 생각했을 겁니다."

- 누벨칼리도니와 프랑스 도심의 모습이 너무 다르니 이해할 수 있겠는데요.
"그런가요, 하지만 저는 요즘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누벨칼리도니는 '천국에서 가장 가까운 섬'이라고 하죠. 하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건물을 짓고, 도로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높은 건축물과 도로로 구성된 현대적인 도심을 찬양하면서도 자연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을 무시하죠.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저는 1930년대 파리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역 구내의 사람들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고, 기관차에서는 김이 씩씩 뿜어져 나왔죠. 하지만 저는 그 모습이 전혀 부럽지 않았습니다. 그곳은 마치 여왕벌을 향해 수천마리의 벌이 모여들고 있는 벌통 같아 오히려 두려웠습니다. 저는 제가 살고 있는 이 고향땅이 그곳보다 훨씬 좋습니다."

제국주의에 빠진 프랑스와 인류애를 갈망하는 사람들

- 고세네씨 이야기에서는 그 당시 파리의 모습이 아주 잘 드러나 있던데요.
"제가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그대로 옮긴 것뿐입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사회자의 이야기와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프랑스인들, 지하철에서 저희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은 많은 것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제국주의를 정당화시키는 프랑스와 그에 물든 프랑스인들의 모습은 지금 보면 이해가 잘 가지 않으시겠죠.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 그런데 고세네씨 이야기에는 독립을 희망하는 표현이 보이지 않는군요.
"제가 그렇다고 해서 독립하기를 원치 않은 것은 아닙니다. 저는 식민지 시절의 산 증인입니다. 독자 분들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국주의로 인해 고통을 받았는지, 얼마나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했는지 그 진상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든, 그렇지 않든, 사람들이 동물 취급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수치스런 일입니다. 문명이 크게 발달했다는 지금도 많은 국가에서 성별, 종교, 인종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 저도 그 사실에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고세네씨, 친구였던 바디무앵씨와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부족의 아이들이 프랑스에 대해 물어보면 '참 아름답고 경이로운 나라였다'고 하실 거라고요.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해하기 힘드시겠죠. 그곳에서 큰 고생을 하고도, 차별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그렇게 이야기한다니 답답한 독자 분들도 계실 거고요. 하지만 저는 아이들의 동심을 깨고 싶지 않습니다."

- 프랑스를 경이로운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이 진정 동심일까요? 사실을 왜곡하는 것 아닙니까?
"침착하세요. 조금 흥분하신 것 같군요. 저는 아무리 그 나라가 저희에게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그 나라에 대한 적개심을 아이들에게 심어줄 생각이 없습니다. 어느 나라든 좋은 점이 있고, 모든 것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프랑스에는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죽을 뻔했을 때 저를 구해주었던 프랑스인처럼, 그곳에서 식민지 박람회의 처참한 광경에 치를 떨던 프랑스인들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 고세네씨, 그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마음이 훈훈해지는군요.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께 한 마디 해주시겠습니까?
"이 책은 분량이 꽤 가벼운 편입니다. 하지만 실제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러분께 큰 충격을 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읽고 제국주의에 고취됐던 선진국에 대한 악감정만 키우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독자 분들이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셨으면 합니다. 제 이야기에는 역사적 상황뿐만 아니라 미노에에 대한 사랑, 바디무앵과의 우정, 국가를 불문한 인류애와 같은 여러 감정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고세네씨,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파리의 식인종'의 주인공 고세네씨와의 인터뷰였습니다. 독립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에는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 많습니다.

식민지 시절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했던 행동은 분명히 잘못 되었고, 반성 받아야 마땅합니다. 프랑스인인 디디에 데냉크스도 자신의 국가가 잘못한 일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이 책을 썼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디디에 데냉크스가 그의 소설에서 보여준 인류애는 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요?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우리는 모두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파리의 식인종

디디에 데냉크스 지음, 김병욱 옮김, 도마뱀출판사(2007)


#파리의 식인종#디디에 데냉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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