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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 이야기가 아닌 서른두살 독립을 갈망하는 그 여자의 이야기 <연애얘기 아님>
연애 이야기가 아닌 서른두살 독립을 갈망하는 그 여자의 이야기 <연애얘기 아님> ⓒ 극단 놀땅

 

대학로가 다시금 사랑에 빠졌다. 연애와 멜로 이야기로 가득한, 핑크빛으로 물든 대학로. 그곳에 <연애얘기 아님> 연극이 돌아와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사실 부부 몇 년차에 접어들면 연애 이야기가 참 시시하다.

 

그도 그럴 것이 신혼부부 때는 둘만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연애의 연장선에서 분위기를 잡아볼 수도 있지만, 아이를 낳고 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 모두 자신의 자아는 서서히 잊고 아빠와 엄마, 남편과 아내로 자리한다.

 

이러한 부부생활의 변화가 <연애얘기 아님>과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는 이상하게도 남녀의 연애에 있어서도 비슷한 부부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다만, 헤어짐이 부부보다 연인관계가 좀 수월하다면 수월한 점이 다르다.

 

연애 이야기 아닐까, 맞을까?

 

그래서일까. 연극은 부부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에게도 가슴에 와 닿는 부분들이 많다. 그만큼 극본이 탄탄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제목이 심상치 않다. <연애얘기 아님>이라고 떡하니 걸어놓고 남녀 주인공의 사랑과 이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연극이 과연 멜로일까 아닐까 궁금하다. 연극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녀의 사랑과 이별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는 사랑과 자아 사이에서 방황하는 주인공 선희의 모습이 등장한다. 즉, 이 연극은 사랑과 이별에 아파하는 연인들의 모습보다 자아를 찾는 여행이 중점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연인관계에서 왠 자아찾기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헌데, 앞서 언급했지만 부부관계에서처럼 자아를 잃어버리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부부도 한때 열렬하게 사랑했고, 둘만의 공간에서 있고 싶은 바람 하나로 결혼이란 것을 감행했다.

 

 독립하고 싶은데 자꾸 그에게 기대는 자신이 싫어 이별을 통보하는 주인공 선희
독립하고 싶은데 자꾸 그에게 기대는 자신이 싫어 이별을 통보하는 주인공 선희 ⓒ 극단 놀땅
 

신혼 초에 깨소금 나는 생활도 연애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달콤함을 선사해주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 둘의 관계는 변한다. 남녀가 아닌 부부로, 아빠와 엄마로 돌변하면서 아빠는 가장의 책임을 엄마는 육아의 책임을 지고 그것을 수행하는데 둘만의 시간을 가질 여력이 없다.

 

연인도 마찬가지이다. 사랑하는 상대를 만나 그에게 고백하기까지, 혹은 사랑의 감정을 나누기 까지 설레고 두려운 시간을 갖는다. 아니 두려움조차 모든 게 핑크빛이다. 그렇게 호감이 급상승하면서 둘이 사랑의 감정을 나누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진짜 세상의 모든 것은 아름답다.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린다. 그렇게 서서히 기념일마다 의미를 부여해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시들해질 쯤 그래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많은 감정을 기대고 있음을 느낀다.

 

그 시기에 문득 내 이름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 반문하게 될 때가 있다. 즉 자아를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주인공 선희도 그렇다. 선희는 자꾸만 기대는 자신을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란 것이다. 그리고 이별을 통보한다. “나 너랑 헤어질거야. 정말이야”라고 말하지만 이내 연인의 손을 놓지 못한다.

 

그렇다면 여자들의 80%가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떠본다는 그 법칙일까? 그것은 아니다. 분명 선희는 자신의 자아를 잃어버리고 그것이 두려워지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상대와 진자 이별을 하게 될 때 홀로 감당해 낼 수 있는 시점에서 끝을 내고 싶은 것이다.

 

도대체 왜 이별하자는 건데!!

 

그렇다 해도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관객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주인공 선희와 석영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주인공 선희는 보험 회사 개발팀 대리로 무능력하지는 않지만 가끔 후배에게 무시를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크게 별다른 문제는 없다.

 

다만, 오빠가 손대는 사업이 망해 늘 구원 요청을 선희에게 한다는 점을 빼고는 남자친구 석영도 한결같이 선희만 바라보고, 선희의 든든한 후원자를 자청한다. 그렇다면 더욱이 남자친구 석영과 헤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석영은 착하고 따뜻한 감성을 지녔다. 늘 선희에게 응원하고 독려하며, 그에게 과일을 씻어주고 매일 아침 잠을 깨워주며 노래까지 선사한다. 모든 여성들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일편단심에다가 나름의 능력도 갖췄다.

 

그런데도 선희는 문자로 이별을 통보한다. 이를 보는 대게 여성들의 반응은 “복에 겨워 지 복을 차고 있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별을 통보하면서 그녀가 겪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 어렴풋이 선희가 석영을 밀어내는 이유를 알게 될지도 모른다.

 

 가끔 여성도 독립을 원하는데, 그러한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 <연애얘기 아님>
가끔 여성도 독립을 원하는데, 그러한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 <연애얘기 아님> ⓒ 극단 놀땅

 

사실 연인관계를 오래 지속하다보면 홀로서기가 쉽지 않다. 그 점이 이해가 안 된다면 전업주부 생활을 한 10년 하다가 남편의 외도로 인해 이혼하게 된다고 가정하자. 분명 홀로서기에 두렵고 지치고 힘이 들어 풀썩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선희도 문자로 이별을 통보하고 너에게 자꾸 기대는 자신이 싫다고 말하면서도 꿈에서는 늘 석영에게 위로받는 모습은 홀로서기가 얼만큼 힘이 드는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홀로서기를 안 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인격과 독립욕구를 지닌 존재이다. 남자가 여자보다 조금 더 강하다고는 할 수 있지만 여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연애를 해도 서로간의 독립체로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가령 부부가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하는 욕구와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즉, 석영이란 남자가 너무 잘해서 선희가 부담스러운 것이다. 자꾸 기대고 싶지 않은데 과일을 씻어주고 전화로 노래를 불러주는 한결같은 모습이 선희에겐 자신의 자아를 갉아먹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느낌을 받게 되면 당연히 인간 누구라면 ‘스톱’을 외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연극은 이들의 헤어짐 이후 선희가 홀로서기를 하면서 겪는 과정을 담아내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여성들의 심리를 세련된 연출로 잘 포착해 낸다. 마치 서른 두 살 여자의 일기장을 살펴보는 듯 여성들이 일과 사랑에 고민하고, 자아를 잃어버려 그것을 되찾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세세하게 담겨 있다.

 

즉 선희는 경제적 독립이기보다는 정서적으로 독립을 갈망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도 모르는 이 남자가 늘 한곁같은 모습으로 정성을 쏟으니 독립과 종속에서 갈등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선희가 이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령 선희가 석영에게 오라고 이야기 해놓고 진짜 온 석영에 화가 난다든지,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면서 실컷 두들겨 팬다든지 하는 모습은 독립과 연애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잘 묘사해냈고,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정서적 독립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연애얘기 아님>은 진짜 연애 이야기가 아닌, 여성들의 정서적 독립과 홀로서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히려 서른 두 살에 자아를 잃어버려 두려움에 떤 한 여성이 진정 자신의 길을 걷고자 예행연습을 하는 성장연극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싶다.

 

물론 이 연극이 달콤하지는 않지만 연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사랑 방식을 되돌아보게 하고, 부부에게는 자아를 잃어버린 둘만의 시간을 회복하고 각자의 공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케 하는 연극이다.

 

덧붙이는 글 | 우리의 연극 발전을 위해 대학로 여행을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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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기간 2008.2.14~ 4월 13일 
공연시간 평일 8시 l 주말 및 공휴일 3시, 6시 (월 쉼) 
공연장소 대학로 소극장 축제 (4호선 혜화역 3번 출구)  
티켓가격 일반 20,000원 / 청소년 15,000원  
문 의 02-741-3934 (공연기획사)  
예 매 처  인터파크 
홈페이지 www.galaplanner.co.kr 
제 작 극단 놀땅, (주)축제를만드는사람들 


#연극 #연애얘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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