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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일 찾아간 낙산사 원통보전에는 화재로 소실될 숭례문에 깃듯 국혼을 추모하기 위한 추모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3월 1일 찾아간 낙산사 원통보전에는 화재로 소실될 숭례문에 깃듯 국혼을 추모하기 위한 추모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 임윤수

언론에서 취급하는 뉴스의 중요도가 원래 시간에 종속되는 것이려니 하고 인정을 해도 메인뉴스에서 점차 보기 힘들어지는 소식이 있다. 바로 숭례문 화재가 발생한 지 20여 일 만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중요하게 취급되는 소식으로는 하루 한두 건을 찾기가 어려울 만큼 뜸해졌다. 이번에 역시 그냥 뉴스거리로만 취급되다 흘러가버리는 하나의 사건으로만 취급되는 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에 서운함이 곁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뜸해지는 숭례문 화재 소식

 

국보나 보물급의 문화재가 화재로 전소되는 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유일한 것도 아니지만 잔인할 만큼 안타깝고 분노하는 마음으로 생생하게 봐야만 했던 그 현장. 숯덩이가 되고 기와파편이 되어 속수무책으로 뭉그러지던 숭례문 화재현장은 모든 이의 가슴에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되어 밀물처럼 밀려들었고, 활화산처럼 일어났었다.

 

밀물처럼 밀려온 관심을 가두는 둑, 활화산처럼 솟구친 문화재에 대한 사랑이 식거나 꺼지지 않도록 불쏘시지 역할을 해줄 거라고 기대했건만…. 이번에 역시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잿불처럼 사그라지고, 썰물처럼 빠져나가 흐지부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과 안타까움이 있다.

 

  뎅뎅 울리던 범종소리는 방문객들이 울리는 회향의 종소리였다.
뎅뎅 울리던 범종소리는 방문객들이 울리는 회향의 종소리였다. ⓒ 임윤수

모든 이들이 공분하고 안타깝게 바라봐야 했던 게 숭례문 화재였지만 아직도 화재에 대한 상흔을 고스란히 가슴에 안고 있을 낙산사 주지인 정념스님이 바라보는 숭례문 화재 사건에 대한 감회는 남달랐을 거다.

 

천재지변에 가까운 불가항력이었지만 양양지역에서 발생한 지난 2005년 산불에 낙산사가 전소되는 것을 살점을 태우듯 바라봐야 했던 상흔의 주인공, 그렇게 전소된 낙산사를 불심의 결정체로 복원시키는데 혼신의 1000여 일을 보내고 있는 정념스님을 찾아가 숭례문 화재에 대한 스님의 견해를 들었다.

 

범종소리 들리고, 노란 복수초 피어난 낙산사

 

89주년을 맞는 3·1절 아침에 들어서는 낙산사 경내에는 범종 소리가 퍼지고 있었다. 낙산사가 복원되는데 십시일반으로 보태준 마음, 기꺼운 마음으로 보시해준 기와 한 장 값으로 만들어진 범종이기에, 방문객들이 새로 제작된 범종을 직접 타종할 수 있도록 개방을 해 방문객들이 울리는 회향의 범종 소리였다.

 

 멀리 보이는 설악산은 아직 눈으로 덮여있었건만 낙산상는 노란 복수초가 피어있었다.
멀리 보이는 설악산은 아직 눈으로 덮여있었건만 낙산상는 노란 복수초가 피어있었다. ⓒ 임윤수

뎅뎅 울리는 범종 소리는 오봉산 자락을 울리고,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지는 낙산사에는 샛노란 복수초가 만발해 있었다. 멀리 보이는 설악산은 아직 흰 눈에 뒤덮여 있는 한겨울이건만 원통보전에서 해수관음상으로 가는 오솔길, 활처럼 구부정하게 굽어 있어 곡선미를 가진 작은 길 아래쪽에는 복수초들이 노란 이파리를 활짝 펼치고 있었다.

 

머리가 땅에 닿도록 몸을 낮추어 복수초와 견주어 바라보는 해수관음상에는 관음의 미소가 돌았고, 콧등에 흙이 묻도록 납작 엎드려 바라보는 복수초 아래 보타전에서는 기도를 올리는 염불 소리가 풍경소리처럼 들렸다.

 

차마 내려다볼 수만은 없어 복수초와 키를 맞추느라 납작 엎드려 땅에 맞닿은 두 눈으로는 복수초가 보였지만, 코에 더듬는 땅에서는 봄 소식이 들렸다. 복수초가 피어오르는 그곳 역시 몇 년 전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었고, 작년 여름엔 푸른빛이 감도는 풀밭이었다는 것을 알기에 윤회하는 자연과 무상한 세월이 느껴졌다.

 

 복수초 아래로 보이는 보타전에서는 기도소리가 들렸다.
복수초 아래로 보이는 보타전에서는 기도소리가 들렸다. ⓒ 임윤수

낙산사 경내에는 소방차가 준비되어 있었고, 어디를 가도 10초 이내로 가져올 수 있게끔 방화수와 모래, 그리고 소화기까지 가지런하게 놓여 있으니 지난번과 같은 불가항력의 화재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초기에 진화할 수 있는 만발의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이다.

 

낙산사 곳곳에서는 봄이 솟아오르고, 법당이란 법당은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기도하는 사람들을 헤집고 들어간 원통보전에는 숭례문에 깃든 국혼을 49일간 추모할 추모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또 주지스님의 집전으로 진행되고 있는 보타전 기도 법회에서도 숭례문의 전소를 추모하는 참회의 기도가 진행되고 있었다.

 

보타전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겨울바람을 막아주기 위해 쳐 놓은 비닐하우스와 보타락 2층에 자리를 잡았고, 비닐하우스에 조차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그냥 시멘트 바닥에 앉아 동참 기도를 하고 있었다. 

 

때늦은 새해 인사와 화재 예방을 위한 스님의 대비

 

 복원된 원통보전에도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복원된 원통보전에도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 임윤수

새해 인사도 드리고, 숭례문 화재에 대해 정념스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가 궁금해 진즉에 찾아뵈려고 했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설을 지내며 시작한 기도, 숭례문 전소에 따른 참회기도를 철야로 직접 집전하며 무리를 한 탓에 며칠간 휴식이 필요할 만큼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여 시간을 미루다 보니 20여 일 만에 약속이 되어 뵐 수 있었다.   

 

보타전에서 하던 기도를 마친 스님과 종무소에서 마주 앉았다. 곳곳에 놓여있는 방화수와 모래에 대해 여쭈자 화재 초기진압에 대한 스님의 견해는 남달랐다. 이런저런 소화기도 좋고 시설도 좋지만 막상 화재가 발생하는 상황을 재연해 보니 남자들조차 당황해 제대로 소화기를 작동시키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고 가장 원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남녀노소 막론하고 누구나 초기에 불을 진화를 쉽게 할 수 있는 모래와 물을 비치한 것이라고 하였다.

 

 낙산사 곳곳에는 10초 이내로 가져올 수 거리에 물과 모래, 소화기가 준비되어있었다.
낙산사 곳곳에는 10초 이내로 가져올 수 거리에 물과 모래, 소화기가 준비되어있었다. ⓒ 임윤수

전문가나 관계자랍시고 이러쿵저러쿵하며 내놓는 어떤 대안이나 예방책보다 경험하고 고뇌한 산물이기에 초기에 불을 진화할 수 있는 응급준비물로는 최적의 준비라는 판단에 고개를 끄떡였다.

 

복원된 원통보전 주변에는 수막을 설치하는 등 시설의 보완이나 방재대책도 추진하고 있지만 물가에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에게 던져줄 밧줄을 준비해 놓듯 그런 눈높이, 그런 현실감으로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역사를 교훈으로 살릴 수 있는 지혜가 필요

 

 보타전에서도 기도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보타전에서도 기도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 임윤수

숭례문 전소에 따른 스님의 감회는 분노에 가까운 안타까움이었지만 수행자로서는 진지하고도 조심스러웠다.

 

가을에 추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대개의 농부들은 봄에 때맞춰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 김을 매주며 가꾸지만 자연의 흐름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농부는 때를 놓치기 일쑤니 가을에 되어서야 겨울을 걱정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한다고 하였다.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모자라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에게 곡식을 나눠 주지 않는 세상의 인심만을 탓하거나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기 일쑤니 이야말로 안타까운 일이며 어리석은 사람이는 말로 일말의 속내를 드려내셨다.

 

문화재가 무한한 가치를 갖는 것은 예술성이나 시대적 문화적인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것은 그 문화재가 밑그림처럼 가진 역사, 어떤 것으로도 대신 할 수 없는 시간과 함께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기에 국보 1호인 숭례문조차도 숭례문이 가지고 있는 600여 년의 시간과 역사에 부여된 의미를 무시해 버리면 한낱 고건축물에 불과하지만, 역사성에 부여된 의미와 시간에 대한 가치를 인정한다면 가치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랗고 귀중한 것이기에 안타깝고, 안타깝다 하였다.

 

 원통보전에 마련된 추모단에도 추모객들의 참배가 끊이지 않았다.
원통보전에 마련된 추모단에도 추모객들의 참배가 끊이지 않았다. ⓒ 임윤수

숭례문 전소는 단순하게 하나의 건축물이 전소된 게 아니라 600년 세월에 함축된 역사, 백의민족으로 상징되었던 한민족의 혼(魂), 숭례문을 짓기 위해 자리를 잡고 방향까지 고뇌하였던 어느 선사의 마음, 석축으로 소용된 돌들을 다듬느라 손톱이 으깨지도록 망치질을 하던 석수장이의 땀, 질끈 동여맨 두건 사이로 뚝뚝 땀방울이 흐르도록 톱질을 하고 대패질을 하던 목수장이의 고단함은 물론 한 치 어긋남 없이 처마 끝을 맞추어 내던 대목의 고뇌, 숭례문으로 상징되던 국혼까지 불태운 안타까움이라고 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부지불식간일지라도 너나 할 것 없이 어떤 값나가는 보석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귀중한 자산, 국보 1호로 간직하고 있던 보물이 그토록 후안무치하게 관리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분노케 하는 참극이라고 하였다. 

 

현장 정리를 서두르고, 빠른 복원을 약속하는 것 또한 비겁하고 부끄러운 일이니, 무엇 때문에 우리의 국보 1호가 그토록 허망하게 전소되어야 했나를 국민 모두가 진지하게 돌아보고 반성할 기회를 갖기 위해서라도 100일 동안 참회하는 기회를 갖는 게 필요하다고 하였다. 

 

 또 하나의 풍경이 된 낙산사 모습, 공짜 국수를 먹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또 하나의 풍경이 된 낙산사 모습, 공짜 국수를 먹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 임윤수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거나 참회하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다부지게 각오하지 않으면 숭례문 화재 역시 어떤 지혜나 교훈을 주기는커녕 흘러가는 사건일 뿐이니 관계자는 물론 그런 관계자를 일찌감치 일깨우지 못한 국민들까지도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정말 진지하게 뒤돌아보고 다짐하는 참회의 기간을 갖는다면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어리석음은 피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교훈은 될 것이라고 하였다. 

 

'행동으로 책임을 보여주는 지도자 모습 아쉬워'

 

 책임을 언급할 때의 정념스님은 호랑이처럼 분명했지만, 참회와 지혜를 말씀 하실 때는 너무나 진지한 모습이었다.
책임을 언급할 때의 정념스님은 호랑이처럼 분명했지만, 참회와 지혜를 말씀 하실 때는 너무나 진지한 모습이었다. ⓒ 임윤수

수행자의 덕목인 자비를 목숨처럼 실천하고 계시는 스님이어서 그런지 숭례문 전소에 따른 책임이나 사후조치 또한 실천적 방안을 기대하셨던 모양이다.

 

말로만 책임지는 지도자, 책임전가에 급급한 관료의 모습보다는 대한민국 보물 1호를 관리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부여받은 지도자로서 그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행동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당대는 물론 후세에도 그의 지도력이 살아날 수 있었겠지만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책임 통감, 입으로만 하는 책임 통감은 허언에 불과한 책임회피니 마음이 불편하다고 하였다.

 

득표를 하는 데는 성공해 출세했는지는 모르지만 천박한 역사의식, 빈곤한 문화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참회하며 실천으로 그 책임을 통감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줄 거라 기대했었는데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음이 안타깝다 하였다.

 

시간상으로는 숭례문 화재 역시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다시는 그런 참혹한 일이 생기지 않을 만큼의 진지한 참회와 인식의 전환, 철옹성과도 같은 각오를 다질 수 있다면 기회가 되길 기도할 뿐이라고 하였다.

 

겨울을 대비해 봄에 씨앗을 뿌리는 보편적인 농부들처럼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사랑도 준비하는 지혜, 보살피고 책임지는 실천이 지속적이길 갈망해 본다. 노란 복수초 꽃잎에서 들려오던 범종 소리는 스님의 목소리에서도 울렸으니 오봉산 자락이 안타까움이다.


#숭례문#낙산사#국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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