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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간이역에
머무르고 있는
완행열차의 출발 시각이
임박해오고 있다.

출발 시각을 앞에 두고
언제부턴가
화차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 간이역에 머물렀던
열차들은
한결같이 어제의 구름이 되고 말았다.
......

<간이역 / 황금찬 >

흐린날 더욱 쓸쓸해 보이는 동촌역
▲ 동촌역 흐린날 더욱 쓸쓸해 보이는 동촌역
ⓒ 서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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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월역
 반야월역
ⓒ 서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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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4일 오후 4시 5분 반야월역에서 출발하는 화물열차를 끝으로 (구)대구선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신문에서 그 ‘부고’를 접하고 뒤늦은 문상을 하러 집을 나섰다. 날씨는 흐렸다.

집에서 동촌역까지 걸린 시간은 50분! 고속열차로 대전까지 가는 시간이다. 서울은 이미 하루면 다녀올 수 있는 곳이 된 고속의 시대, 이제 쓸모없어진 대구시의 두 간이역 동촌역과 반야월역. 두 역은 독특하게 주택단지를 끼고 있다. 그래서인지 더 쓸쓸해 보였다.

먼저 지하철 동촌역을 내리면 멀리 동촌역이 보인다. 인적은 드물었다. 관리하는 사람도 없었다. ㅅ자 모양의 지붕은 빛바랜 녹색을 띠고 있었다. 그렇게 역은 무표정하게, 아니 조금은 굳은 표정으로 비쳤다. 아마 잠포록한 날씨 탓인 것 같다.

쓸쓸한 벤치
 쓸쓸한 벤치
ⓒ 서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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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주변 낡은 집이 늘어서 있었다. 폐선은 쓰레기로 지저분했고, 철로 사이의 침목의 갈라진 틈 사이로 마른 잡초가 바람에 흔들렸다. 이내 내린 비는 숨어 있던 냄새를 불러냈다. 쇠 비린내와 시큼한 흙냄새 그리고 그 켜켜이 녹 냄새의 시릿함이 묻어 있다. 그렇게 역은 냄새로도 코밑까지 성큼 다가왔다.

이제 기차가 다니지 않는 레일 옆 잡초
 이제 기차가 다니지 않는 레일 옆 잡초
ⓒ 서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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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에서 놀고있던 동네아이
 철길에서 놀고있던 동네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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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촌역과 반여월역은 1917년 11월 1일 보통역으로 시작해, 38년 7월 1일 현재의 목조근대양식을 갖추게 되었다. 동대구역과 영천을 잇는 대구선에 위치해 있다. 70~80년대 이 역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칠성시장에 채소를 팔러 가고, 대구역 인근 번개시장에 다녔다. 하양, 영천, 경주, 포항 등으로 또는 대구로 통근이나 통학의 통로이기도 했다.

동대구역 기점으로 매일 67대 기차가 다니기도 하다가, 2005년 11월1일 여객업무가 중지되어 사실상 역으로서의 기능은 끝났다. 그 후 하루 4회 화물차가 운행되어 오다, 지난 해 말 신 대구선 완전개통으로 완전 폐선 되었다.

철거 된 침목
 철거 된 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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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후 고철이 되다.
 철거 후 고철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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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 대구선이 생길 때 두 역은 도심 외곽이었다. 7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대구선 주변 남북으로 양분된 주거 밀집 지역으로 변했다. 그 뒤로 건널목의 위험과 철도주변 공해, 소음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있었다.

그래서 93년 대통령 공약사업으로 대구선 이설이 제안되었고, 97년 8월에 공사를 착공해 2005년 11월 신 대구선이 개통되었다. 그 과정에서 진 부채를 갚기 위해 역 주면의 땅을 매각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고층아파트, 상업용 빌딩 등과 같은 상업용지로 개발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전거 도로나 녹지 공간, 공원으로 활용하자는 의견 또한 나오고 있다.

레일이 철거된 철(?)로
 레일이 철거된 철(?)로
ⓒ 서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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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철로
 막힌 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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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역은 등록문화재란 이름으로 박물 되어 있다. 지금 동촌과 반야월이라는 똑같은 이름으로 지하철역이 근처에 있다. 사람들은 이제 지하철이나 버스 아니면 자가용을 주요 교통수단으로 이용한다.

동촌역의 낡은 처마
 동촌역의 낡은 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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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부가 사용했던 신발이 역 한 켠에 버려져 있다.
 인부가 사용했던 신발이 역 한 켠에 버려져 있다.
ⓒ 서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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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숭배의 시대 두 역은 도시 속 섬처럼 웅크리고 있다. 빠르고 편리해졌지만 더 쫓기는 생활을 하는 현대인에게 간이역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배움이 아니라 속도중독의 해독이다. 그리고 나아가 느림에 대한 옹호다.

과정 경로를 일일이 거치면 도달할 수 없는 과속의 시대를 속도의 파시즘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촌역과 반야월역 두 간이역은 홀로된 늙은이의 적막한 표정으로 철로 변에 서 있다. 녹슨 철로의 붉은 녹빛은 단풍과 같이 두 역이 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문이 판자로 막음질 되어 있다.
 창문이 판자로 막음질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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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월역의 플랫폼
 반야월역의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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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제 3월이나 4월부터 철로 철거 작업이 시작될 것이라 한다. 그전에 찾아가 철길을 따라 걸어보기를 권한다. 등록문화재이긴 하지만 언제 사라지거나 옮겨질 동촌역과 반야월역도 한번 둘러보았으면 한다.



태그:#간이역, #반야월역, #동촌역, #대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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