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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 있을 운동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를 초대한 도지사와 면담을 끝내고 나니 시간은 두 시를 지나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봉고 사업장 책임자인 베네딕트와 그 일행을 불러내어 점심을 먹기 위해 볼가탕가 읍내로 나왔다. 한 가족이 절구를 찧는 넉넉한 벽화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넉넉한 사람들 시내 어디선가 마주한 벽화
▲ 넉넉한 사람들 시내 어디선가 마주한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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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구 찧는 풍경 평화로운 마을
▲ 절구 찧는 풍경 평화로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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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을 찾고 입구로 가려는데 누더기 옷을 입은 한 사람이 다가와 적선을 부탁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조금 후에 보자는 말을 하고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가나 부족어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취’어로 된 노래가 흥겹게 흘러나오는 노천식당이었고 천정은 돗자리로 차양을 하였다. 쌀과 방쿠 그리고 기니아 파울을 주문하고 우리는 각 나라의 ‘거지’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나에 온 이후로 아크라 수도에서부터 지금까지 거지를 별로 만나지 못했다. 어린 소년들의 경우에도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시원한 물을 비닐에 포장하여 파는 한이 있더라도 구걸하는 모습을 그다지 많이 보지 못했다. 이전에 다녔던 몇몇 외국의 시내 모습과는 크게 비교되었다. 힘겨운 노동을 할지언정 '비럭질'은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건강한 정신이 너무나 훌륭한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내심 그간의 나의 이야기들이 좀 더 개발된 나라의 국민이 갖는 여유로움이나 낭만적인 생각으로 비추어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주문을 하고 베네딕트 일행과 다니엘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며 내 염려가 기우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 것은 다행이었다.

그들은 세계 최대의 아이스크림 제조회사의 두 회장인 베스킨과 라빈스 형제가 어떤 질환으로 고생을 했으며, 왜 어브 라빈스의 아들 존 로빈스가 아이스크림과 육가공 음식에 반대하는 채식운동가가 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의 고민이 늘 배부른 자의 위선이 아니기를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았다. 조금 앞서간 나라가 먼저 겪은 시행착오까지 따라하는 ‘또 다른 착오’를 저지를 필요는 전혀 없다. 착오의 희생자는 가난한 이들과 약자들이 될 것임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방쿠 소검(수수 종류)과 카사바 등을 쪄서 만든 방쿠. 한 움큼 떼어낸 뒤.
▲ 방쿠 소검(수수 종류)과 카사바 등을 쪄서 만든 방쿠. 한 움큼 떼어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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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니아 파울 수프 국물은 짭잘하지만, 방쿠를 적셔서 먹다보면 금방 동이 난다.
▲ 기니아 파울 수프 국물은 짭잘하지만, 방쿠를 적셔서 먹다보면 금방 동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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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 식사 찰기 없는 밥 한 접시, 기니아 파울, 그리고 손 씻을 물 한 그릇.
▲ 한 끼 식사 찰기 없는 밥 한 접시, 기니아 파울, 그리고 손 씻을 물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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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로는 찰기 없는 쌀과 기니아 파울 수프, 그리고 생선 수프와 방쿠가 나왔다. 먼저 오른 손을 접시 물에 깨끗이 씻은 후 방쿠를 한주먹 떼어내서는 수프에 푹 적시면서 주물럭거린다. 그러는 사이 수프는 방쿠에 스며드는데, 이렇게 스프가 잘 밴 방쿠를 먹다 보면 한 그릇 가득하던 수프가 바닥을 보이며 금세 동이 난다.

기니아 파울을 맛있게 먹고 있는 나를 보며 작은 체구에 먹는 양이 많아 보였는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무안해진 나는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답을 했다.

“저도 사실 얼마 전까지 3년 동안 채식을 했었어요.”
“정말입니까? 그래서 살이 찌지 않았나 봅니다!”

“하하. 살이 안 찐 것은 체질이지요. 채식을 너무 무계획적으로 해서 몸이 너무 약해져서 다시 육식을 하게 되었어요. 여태껏 채식을 했다면 오늘 이런 특이한 음식도 못 먹을 뻔했네요.”
“네. 하하. 존 로빈스가 가나에서 길러지는 소들과 기니아 파울을 보면 육식예찬론자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가 건강을 위해서만 채식을 했었다면 말입니다.”

다니엘이 재치 있는 농담으로 내 대답을 멋있게 받아넘겼다. 쿵짝 쿵짝 ‘뽕작’ 리듬을 닮은 가나 전통 노래에 나도 모르게 점심을 먹는 동안 어깨를 좌우로 흔들며 박자를 타고 있었다. 나는 왜 이 빠른 리듬 위에서도 슬픔이 느껴지는 것일까?

오후 한낮의 여유로운 식사를 끝내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용히 계산을 끝내고 식당 문을 나서고 있는데 베네딕트가 자꾸 눈치 없이, 우리 계산서에 한 명이 잘못 추가되었다며 종업원과 실랑이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살짝 윙크를 보내며 방금 전에 우리에게 말을 건 누더기 옷의 그 분을 가리켰다. 식당을 빠져나오길 한참이 지나자 베네딕트가 궁금증을 못 참았는지 말을 걸어왔다.

“이게 한국의 풍습인가요?”
“글쎄요.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제가 존경하는 많은 어르신들은 늘 말씀하셔요. 하늘을 혼자서 가질 수 없듯이 밥은 나누는 거라고요.”

“와우~!  기가 막힌 표현이군요! 어떤 사람이 그런 멋진 말을 했죠?”
“음… 그건… 예수!”

밥가를 노래한 시인의 이름을 말하려던 것이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을 하고 말았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성경책에서 그런 표현은 못 봤어요! 미스터 차 이제 보니 참 재미있는 사람이군요!”

사실 웃자고 던진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내게 이름 없는 모습으로 몸소 희생적인 나눔의 삶을 보여주셨던 분들이 나의 눈에는 이 땅을 다시 찾은 ‘예수님’으로 보였으니까.

“한국에도 구걸을 하는 사람이 없지 않아요. 걸식자들을 도와줘야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거지보다는 껌을 팔거나, 지하철역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한 줌 어치의 산나물을 파는 할머니들에게 마음이 더 가죠. 그런 분들에게선 돈을 더 주고서라도 꼭 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동냥이 아니라, 당당한 경제활동이잖아요. 저는 적선을 하는 게 아니죠. 아세요? 아크라 시내에서 비닐에 담긴 물을 얼마나 많이 사먹었는지? 제가 가나를 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지 알겠죠? 도로 한복판을 점령하다시피한 노점 인파를 보고 전 오히려 가나의 희망과 가능성을 보게 되었어요!”

풍성한 노점 그러나 토마토와 양파가 대부분
▲ 풍성한 노점 그러나 토마토와 양파가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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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수박 수박에는 줄이 없다.
▲ 그리고 수박 수박에는 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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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사 면담과 운동회 사전 준비를 다 마치니, 이번 후원자 투어 사전 준비는 이것으로 모두 끝이 났다. 타말레 공항 근처에서 하룻밤을 묵고 내일 아침 비행기 편으로 다시 수도 아크라 시내로 돌아가야 한다. 아직 조금 더 남아 있는 저녁 시간을 보내기 위해 우리는 부르키나 파소 국경으로 갔다.

차를 타고 가는 도중 도로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과일노점에서 과일을 사기 위해서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멀리서 보기엔 무언가 노점 진열대에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이 무척 다양한 과일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온통 양파와 토마토, 그리고 수박뿐이었다. 우리는 토마토와 수박을 사고서, 바람도 쐴 겸해서 사진을 찍으며 물건을 파는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갑자기 보초를 서던 경찰이 우리에게로 다가오며 뭔가를 달라고 했다. 목이 마른가보다고 생각하며 나는 들고 있던 물병과  토마토 몇 개를 꺼내서 건네주려 하였다.

“노! 노! 원 세디. 원 세디!”

물 한 잔 달라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자세히 듣고 보니 경찰은 가나 화폐 1 세디(한화 약 1천원)를 달라는 것이었다. 일행은 그동안 숙소 등지에서 내가 쉴 새 없이 팁을 나누어주는 것을 보았는지 머뭇거리는 나를 향해 ‘그냥 딱 1세디만 주세요’라고 신호를 보냈다.

나는 아주 잠깐 고민을 한 후 결국 돈을 주지 않기로 했다. 오해가 없기를 바라며 나는 다시 물과 토마토 세 개를 꺼내어 그에게 건네었지만 경찰은 1세디를 몇 번 더 주문하다 포기한 채 초소로 돌아갔다.

베네딕트 일행이 내가 왜 경찰에게 돈을 주지 않았는지 이해를 하였을지는 모르겠지만, 단 돈 천원으로 가나의 자존심을 짓이기고 싶지 않았다. 그런 자존심조차 거추장스러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경계용 장총을 어깨에 둘러맨 경찰이 시원한 냉수와 상큼한 과일을 마다하고 1세디를 구걸할 만큼 가나의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있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내가 내민 물통으로 목을 축이고 토마토를 한 입에 시원하게 베어 물었다면 내 마음이 조금은 덜 씁쓸했을 텐데.

악어 연못 입구 악어 연못 입구. 보이는 것이 시설의 전부이다.
▲ 악어 연못 입구 악어 연못 입구. 보이는 것이 시설의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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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얼마 안 가면 국경이에요. 도로는 부르키나파소와 이어져 있죠. 여기 바로 옆에 악어 연못이 있어요. 잠깐 악어 좀 보고 가실래요?”

끝내 경찰의 애걸을 외면하고 도로에 들어선 지 삼십여 분이 지났다. 나는 악어연못 관광지라고 해서 우리나라와 같은 잘 정리된 관광지만 생각하며 악어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 관광객을 떠올렸다.

악어 연못 입구에는 짚으로 지붕을 이은 작은 움막에 손과 발이 약간 불편한 안내원과 그의 동료직원들 둘이 그늘 밑에서 쉬고 있었고 우리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부리나케 우리에게로 달려왔다.

입장료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쓰인다는 안내판을 보고 넉넉히 입장료를 내자 안내원들은 퍼포먼스를 해준다며 생닭 몇 마리를 잡으려 했다. 기겁을 한 우리는 안내원들을 만류하고 그냥 악어만 잠깐 보고 가겠다고 했다.

조금 걸어서 도착한 악어 연못은 관광지라고 하기엔 너무도 무색했다. 건기라 더욱 그런지 물은 가물어 마른 바닥이 훤히 보이는 곳이 많았고 소똥이 널브러져 있었다. 원래부터 이곳에 살았다는 악어는 이 지역에서 길한 동물로 알려져 있어서 죽이지 않는다 했다.

이 작고 위험한 연못은 빨래를 하는 여인들과 물고기를 잡으려는 아이들, 그리고 목을 축이는 소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안내원은 뭍으로 나온 악어를 만져보라며 자꾸 내키지 않는 악어와의 스킨십을 주문했다. 서로 싸우다 주둥이가 뜯겨진 흉측한 악어가 주위를 서성대고 있었다. 주민들이 보호하고 있었지만 야생이 그대로 남아 있는 녀석들이었다. 그 좁은 연못에 수 백 마리의 악어가 살고 있었다.

악어 꼬리를 잡은 다니엘 뭔가 산만한 악어 연못. 연못 주위에서 여인들은 빨래를 하고, 아이들은 낚시를 한다. 야생이 그대로 살아있는 악어라 방심은 금물이다.
▲ 악어 꼬리를 잡은 다니엘 뭔가 산만한 악어 연못. 연못 주위에서 여인들은 빨래를 하고, 아이들은 낚시를 한다. 야생이 그대로 살아있는 악어라 방심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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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보기에도 심하게 더러워진 이 물로 빨래를 하고, 아이들은 그날의 넉넉한 저녁밥상을 위해서 위험천만한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메마른 연못 바닥과 보호색을 띤 채 먹잇감을 노리는 악어, 그리고 연못 주위로 보이는 아슬아슬한 곡예비행 같은 주민들의 생활상에 마음이 불편해진 나는 서둘러 연못을 떠나고만 싶었다. 하지만 가이드는 관심에도 없는 연못의 유래를 십 분이 넘게 지루하게도 설명하고 있다.

가이드의 지루한 설명이 끝나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아까부터 바로 앞에서 두멍에 물을 긷는 마부가 자꾸 마음에 쓰였는데 마침내 결국 노새는 두멍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연못가에 철퍽 쓰러지고 말았다. 유난히 작고 왜소한 체구의 마부는 쉼 없이 물을 두멍에 채워 넣느라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긴장 나를 다시 긴장시킨 그 장면, 그리고 그 얼굴.
▲ 긴장 나를 다시 긴장시킨 그 장면, 그리고 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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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표정조차 지을 여력이 없는 마부는 쓰러진 노새에 다가가 채찍을 내리쳤다. 노새의 얼굴은 무표정만이 서려 있다. 한두 번 겪은 가난의 쓰라림이 아니었음이 노새의 얼굴이 말해주고 있었다.

클레멘트와 골드프레드가 다가가 마부에게 우선 두멍에서 물을 먼저 덜어낼 것을 종용했다. 그리고 노새가 일어나는 것을 도왔다. 간신히 일어선 노새를 보며 클레멘트는 마부에게 다시는 이렇게 작은 노새에게 지나치게 많은 짐을 지우지 말라며 충고했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클레멘트와 골드프레드가 그리고 내가 저 마부의 삶을 함께 하지 못하는 이상, 마부의 폐부에서 느끼는 그 힘겨운 가난 앞에서 이들의 충고는, 나의 안타까움은 어떠한 소용도 없는 것이었다.

나는 한없이 부끄러웠다. 개발과 발전, 느림과 상처, 방목과 경계, 오래된 과거와 이상, 초원과 먼지의 아득함, 나무와 구름의 대화, 벅찬 바위언덕의 평화, 바오밥 나무의 산들거림.

마부의 삶 앞에 이제껏 나의 사변과 관념은 무기력한 수사놀음에 불과했다. 낭만이 아니라고, 배부른 여유로움이 아니라고, 부를 누려본 자의 가증스런 이율배반이 아니라고 스스로 다짐했던 나의 고민들마저 삶 앞에, 가난한 자 앞에는 무기력하고 비겁한 생존의 더부살이일 뿐이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문득 바라본 그 초월과 체념의 경계가 무너진 얼굴을 더 이상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 어떤 꾸짖음보다 나를 혹독하게 두드리던 그 심한 매질, 그건 숨 막힐 듯 처절한 그의 얼굴이었다. 나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가나의 북쪽 끝 저 넘어서부터는 부르키나 파소
▲ 가나의 북쪽 끝 저 넘어서부터는 부르키나 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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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키나파소 국경을 바라보았다. 이제 나는 서아프리카, 가나 한 끝에서 또 다른 끝에 와있는 것이다.

아프리카 아프리카, 빨간선 안이 가나
▲ 아프리카 아프리카, 빨간선 안이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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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나의 가나 여정(화살표)
▲ 가나 나의 가나 여정(화살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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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보다 더 많은 유전적 다양성을 보유한 사람들. 가진 게 없어서 여유롭지 않고, 정작 그 산하에 가진 게 너무나 많아서 가난하게 되어버린 인류사의 비극의 땅 아프리카.

그 아프리카를 위해 이제 첫 발을 내디뎠을 뿐. 까마득하더라도 오늘 바른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다면 언젠가 아프리카에 찬란한 평화의 날이, 숨찬 웃음의 날이 오리란 믿음을 가진 채 오늘도 지는 해를 바라보며 저녁을 맞이했다.

숙소 입구에서 오늘도 어둠이 잦아든다. 차분히 여정을 돌아본다.
▲ 숙소 입구에서 오늘도 어둠이 잦아든다. 차분히 여정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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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 긴장을 놓지 말자. 내가 마주하고 싶은 것은 아프리카의 청량한 하늘과 바람이 아니었다.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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