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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서 야외의 법회를 여는 야단법석(野壇法席)을 할 때 걸어놓는 불화. 높이가 2m가 넘는 대형 탱화이며 금으로 그렸다.
▲ 괘불 절에서 야외의 법회를 여는 야단법석(野壇法席)을 할 때 걸어놓는 불화. 높이가 2m가 넘는 대형 탱화이며 금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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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그림인 탱화 전문화가 비천상(飛天像) 임숙남 선생은 덩치가 작다. 50대 후반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늘선녀 그림'이라는 의미인 그의 호처럼 참 피부가 곱다. 전시회를 여는 광화문의 불일미술관에서 반갑게 만난 선생에게 젊게 보이는 외모를 들어 일단 아부를 떨었다.

"탱화를 그리면 잡념이 없어져서 그런가요? 참 고우시네요."
"잡념이 없기는, 얼마나 죽을 맛인데. 이 그림 그리려면 그 고생 아무도 몰라요. 그리는 사람 외에는."

오묘한 그림 세계에 빠져드는 사람으로서의 그야말로 격조 높은 대답을 기대했지만, 날아오는 대답은 투박했다. 그 속에 거추장스러운 겉치레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시장에 걸린 단아하고 정갈한 그림들 앞에서 굳이 탱화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궁금해졌다.

"얼마 안됐어요. 십여 년밖에."
"전엔 일반화가셨나요?"
"그림 그릴 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화려한 탱화 그림에 둘러싸여 어떨떨했던 속이 갑자기 휑하니 뚫리는 느낌이었다. 그림 그릴 줄 모르는 사람? 하지만 눈앞에 걸려있는 탱화들은 도저히 그 말을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 적어도 탱화라는 것은 '깊은 산의 정적 속에서 오랜 수도 끝에 무언가 깨달음의 경지를 밑천으로 그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도회적이면서도 잠재적으로 무식한 발상이 치밀어 올랐다.

삼베 천에 그렸지만 붓 터치가 깔끔하고 우아하다.
▲ 기룡관음도 삼베 천에 그렸지만 붓 터치가 깔끔하고 우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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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런 그림을 그리려면 오랜 수련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고도의 정신세계에서…."
"정신세계는 무슨. 어떤 큰 절에서 탱화 가르쳐 준다고 하기에 한 몇 년 배웠어요. 그러고 나서 그리는 거예요."

선생의 말은 역시 투박했다. 그래도 온전한 불심으로 마음 속 때를 걷어버리고 나서 쏟는 땀의 정열 같은, 나름 진흙 속에 피어난 연꽃처럼 좀 불교적인 오묘한 작업관을 기대하며 물었다.

"그래도 이 정도 그림을 그리려면 탱화에 담을 수 있는 나름의 종교관이 뚜렷해야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불교의 잔잔한 정수를 나름대로 그림에 담는 방식 같은…."
"불교에 대해 뭘 알아야 담던가 말던가 하지. 난 그런 거 안 따져요. 요전번엔 딸 아이 나가는 교회에 같이 가서 신나게 찬송가 부르고 왔더니 속이 다 후련하데. 나 편한대로 생각하고 그러는 거예요. 자꾸 골치 아플 필요 뭐 있어요?"

포기했다. '이런 걸 겸손이라고 해야 하나', 한참 생각해야 할 정도로 그 순수한 웃음 앞에서 더 이상 무얼 들을 수 있으랴. 이곳까지 찾아오느라 고생했다며 선뜻 저녁이나 먹자는 그의 모습에는 그냥 고향 누님 같은 푸근함만 서려있을 뿐이었다.

호랑이가 귀여운 모습으로 민화에 가깝다.
▲ 산신도 호랑이가 귀여운 모습으로 민화에 가깝다.
ⓒ 우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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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선생의 승용차는 중형차였다. 그의 야리야리한 체격으로 그 큰 차를 움직일 수나 있을까 걱정 되었지만, 운전솜씨 또한 노련했다. 다행히 인사동 번듯한 식당의 푸짐한 저녁식탁 앞에서 기대하지도 못했던 약간의 이야기를 얻어들을 수 있었다.

"젊었을 때, 남편 사업 망하고는 어떡하든 아이들하고 먹고살아보려고 비디오 가게를 했었어요. 그러면서 동네아이들도 조금 가르치고. 거기다가 우리 아이들 뒤치다꺼리 하랴, 잠 잘 시간도 거의 없고 정말 힘들었지. 근데 조금 시간이 나던 날 우연히 구경 갔던 절에서 탱화 그릴 사람 모집을 한다는 거야. 앞 뒤 안 가리고 응했는데,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겠어."

"그토록 시간이 없었다면서 어떻게 그림 배울 시간을 내셨어요?"
"별 수 있나? 시간을 만드는 수밖에. 어쨌든 당장 더 어려워진 건 사실이었지. 그렇게 몇 년 죽어라 그림 공부했어요. 그런데 신통하게 남편 사업이 좀 되데? 그래서 그림에만 열중할 수 있게 됐지요. 작년엔 독일에서 전시회도 했어요."

"부처님이 복을 주신 건가요?"
"에이, 그럴 리가. 더구나 난 복 받으려고 그리는 거 아니에요.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거지. 사실 난 불교도 잘 몰라요."

마치 앙코르왓의 회당벽을 보는듯한 착각에 빠질정도다.
▲ 팔금강도 마치 앙코르왓의 회당벽을 보는듯한 착각에 빠질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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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작년 불교여성미술 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작품이다
▲ 신중탱화 이 작품은 작년 불교여성미술 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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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조금 길어진다 싶더니 역시 돌아오는 말은 한결 같았다. 그의 겸손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내친김에 그렇게 그려진 그림들이 전시회를 통해 어디로 흘러가게 되는지도 물었다. 그리고 금가루로 그린다는 큼직한 탱화의 값이 궁금해졌다.

"그렇잖아도 엊그제 어떤 사람이 괘불을 팔라고 하더라구. 그래서 내가 물었지. '얼마 주실 건데요?' 그랬더니 달라는 대로 준다나. '이 그림 사시려면 천만 원도 더 내셔야 하는데도 사고 싶어요?' 그랬더니 괜찮다는 거예요. 그래서 '죄송하지만 이 그림들은 파는 게 아니에요'라면서 돌려보냈지. 난 내 그림 안 팔아요."

"그럼 저 그림들 다 어떻게 되는 건데요? 그림 가르쳐준 절에 다 헌납하나요?"
"그런 부자 절에 뭐 하러 그림을 줘요? 그런 큰 절은 탱화가 필요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돈이 있는데. 내 그림들은 어디 작고 가난한 절에서 달라고 하면 주고 그래요."

"공짜로요?"
"그럼 공짜로 주지, 가난한 절에 돈이 있겠어요?"
"하나 그리는데 몇 개월씩 걸린다는 저런 탱화를 공짜로 그냥 준다구요?"

"그릴 때 고생했지만, 그만큼 즐거웠으니 난 벌써 값을 받은 거나 다름없거든요. 더구나 그림 주인은 어차피 따로 있는 거예요. 귀하게 봐 주는 사람들이 주인이거든. 이 전시회도 다른 화가분들하고 같이 여러 군데에서 상 받은 거 그냥 걸어놓아 본 거예요. 좋아하는 분들 있으면 보라고. 이젠 걷어야지."

모를 일이었다. 갈수록 이해되지 않는 말들에 난 다시 포기했다. 탱화작가 임남숙 선생과 헤어진 아직도 그저 몽롱할 뿐이다. 그림을 배우던 절의 스님이 지어주었다는 선생의 호처럼, 요즘 세상에 따로 볼 수 없는 선녀를 난데없이 꿈속에서 만난 듯했다.

가운데가 비천상 임숙남 선생이다. 맨 왼쪽이 기자.
▲ 전시회장을 찾은 지인들과 함께 가운데가 비천상 임숙남 선생이다. 맨 왼쪽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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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탱화작가 임숙남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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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장편소설 (족장 세르멕, 상, 하 전 두권, 새움출판사)의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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