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새 정부 장관 후보자들의 부도덕성만큼이나 곳곳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이야기가 바로 한미 연합연습인 '키 리졸브'(Key Resolve)와 독수리훈련(Foal Eagle)이다. 지난 2월 24일 경기도 포천 로드리게스 사격장에서 이번 대규모 군사훈련에 동원될 스트라이커 부대가 실사격 훈련을 이미 했고 3월 1일에는 한미해병대의 실사격 훈련이 있었으며 3월 8일에는 한미해병대의 최종훈련이 실시될 예정이다.
로드리게스는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영평리에 위치한 미8군 종합사격장이다. 경기 북부에는 로드리게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다그마노스 등 미군 전용 훈련장만 3개이고 무건리 한미 공동훈련장을 합하면 세간에 알려진 것만 해도 벌써 4곳으로 그 면적만 1200만평에 달한다. 이들 미군훈련장은 3·8선 이북, 곧 군사분계선 바로 코 밑에 있다.
매번 실사격 훈련이 강행되는 미군훈련장을 코밑에 두고 북이 위협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더욱이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남북화해는 어림도 없는 얘기다. 따라서 경기 북부의 미군훈련장을 없애는 것은 남북화해 평화실현을 위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들 훈련장의 폐쇄는커녕 오히려 훈련장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방부가 확장을 계획하고 있는 곳은 경기도 파주 오현리에 위치한 무건리 훈련장이다. 기존의 550만평 훈련장 부지를 1100만평(가로 18Km, 폭 5Km)규모의 종합 훈련장으로 확장하겠다는 것으로 이미 2008년 예산으로 960억원을 책정했다. 국방부는 1996년부터 이 마을을 훈련장 확장예정지로 묶어놓고 건축에 대한 각종 인허가를 규제해 집 내부 수리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오현리 주민들은 국방부라고 하면 이제 질색을 한다. 평택 대추리·도두리에 이어 경기도 파주 오현리 주민들에게서도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국방부의 나라를 지키기 위한 사업 방식(?)을 한번 살펴보자. 첫 번째, 떼쓰기-둘러대기-얼버무리기 처음에 국방부는 기존의 550만평 훈련장이 부족하니 주민들은 빨리 나가라고 했다. 주민들은 일주일에 몇 번 연습도 안하면서 부족하기는 뭐가 부족하냐고 반박했다. 그러자 이번엔 훈련도중에 실탄이 날아다니고 그러면 주민들이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에 주민들은 또 한마디 한다. “훈련에서 쏘아대는 총탄은 훈련장 안에 있는 군인 아파트는 용케 쏙쏙 피해 다니고 민가와 주민들만 쫓아다니냐?”
그러나 이번에는 좀 그럴듯(?)하게 둘러댄다. “가상적들에 비해 우리는 수적으로 열세의 여단을 보유하고 있고 여단급 기계화 부대가 훈련할 수 있는 훈련장이 없다.” 주민들은 기가 막힐 노릇이다. 가상의 적을 만들어놓고서 정작 보호 해야 할 대상인 국민들(동네주민들)을 내쫓기 위해 생떼를 쓰는 국방부. 그들이 항상 입에 달고 다니는 “국익”과 “국가 안보”를 위해 가장 첫 번째로 하는 일이다. 두 번째, 주민들 설득하기 “공인된 기관의 감정평가 후 보상은 물론 2010년 12월까지 택지조성 완료, 이주단지 조성은 2008년에 특별회계 편성으로 조기 완공을 목표로 하겠습니다. 오현리 주민들이 이주 후에 다시 농사를 지으려면 약 104만평의 넓은 땅이 필요한데, 우리 군이 필요한 땅을 제외하고는 대토할 땅이 없네요. 이주한 다음에 텃밭 정도는 어떻게 해 보겠습니다만….” - 무건리 훈련장 관리 부대 육군 1군단 관계자의 말 “내가 국방부라 그러면 아주 질려버렸어. 이번 설날에는 이놈들이 어떤 짓을 했는줄 알아? 노인분들 사는 집만 쏙쏙 골라서 라면 한박스랑 음료수 실어나르고…. 허허 참” - 오현리 주민 주병준 국방부가 주민들의 조속한 이주를 돕기위해 2008년에 신청한다던 특별 회계는 아예 책정되어 있지 않다. 알맹이는 없는 그럴듯한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으면서 뒷구멍으로는 만만한 사람들에게 물량공세를 펴는 것. 그것이 두 번째 단계이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던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에게 위로의 선물이라며 멸치를 보내온 한명숙 전 총리가 갑자기 생각난다 세 번째, 나름대로의 '사전대비책' 마련하기 대추리의 대추초등학교. 주민들 손으로 세워낸 만큼 목숨 걸고 지켜내려 했기 때문에 국방부는 대추 초등학교를 접수하는데 부담을 많이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국민들에게 욕도 많이 얻어먹었다. 경기도 파주에도 주민들의 피땀이 어린 그런 학교가 있다. 1994년 2월에 폐교된 오현리의 직천 초등학교는 현재 도자기 체험 학습장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국방부가 일단은 멋지게(?) 교육청을 통해서 임대계약 만료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나름 사전에 대비한다고 그런 것인데 이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부터 오현리 주민들은 오히려 매일 학교에서 모임을 가지고 대책위 사무실도 아예 학교 뒤편 관사로 이사해버렸다. 또 한가지 사례를 더 들어보자. 2006년, 평택 사태가 점점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자 국방부는 주민들을 괴롭히기 위해 군경으로 무장호위한 굴착기를 모셔다가 농토를 파헤치고 농수로에 콘크리트를 부은 것도 모자라 종국에는 양수기에 구멍을 뚫고 농수로를 아예 끊어버렸다. 이 때문에 전국에 있는 농민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전국 각지의 비난을 온몸으로 받았던 그 아픈 기억이 너무나 선명해서일까. 작년 12월, 왕복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형성되어 있는 오현리 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논두렁을 무참히 파헤쳐 놓았다. 땅을 파헤쳐 생긴 둔덕들이 군데군데 아주 자리를 잡고 있다. 오현리 주민들은 너무 기가 막혀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 파헤친 땅은 국방부가 물불 안 가리고 이미 매수에 성공한 땅이기는 하다. 그러나 땅을 자식같이 생각하는 농민들이 그 땅을 바라보는 마음이 어떠할지를 생각한다면 국방부 나름대로 사전대비책이었는데 결국 실패작이 된듯하여 안쓰럽기까지 하다.
무건리 훈련장(트윈 브릿지)은 어유지리(크라우스), 다락대(세인트 바바라) 및 오가리(그리크밸리)와 더불어 1997년 10월부터 미측의 요청(주둔군 지위협정-SOFA- 한미합동위원회 시설 및 구역 분과위원회 건의안, 과제번호 3089)에 의해 연간 13주(91일)가 미군에게 제공되는 한미공동훈련장이다. 연간 전체 훈련장 이용은 180여 일로 13주면 실제 절반가량을 미군들이 쓰는 셈이다. 또한 이곳은 2004년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의해 한미공동사용을 위해 미군에게 새로 제공되는 한국군 훈련장 37곳 중 하나로 포함되어 훈련장 확장사업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군전용 훈련장을 만들자니 돈이 많이 들고 눈치가 보이니 한미공동 훈련장으로 합의하는 것이다. 한국군 훈련장의 ‘공동사용’이라는 명분은 미군이 원하면 훈련장 내의 시설과 구역을 언제나 내어주어야 할 뿐 아니라 훈련장과 미국이 보유하는 모든 훈련시설과 구역의 주변에 대해서까지 한국군이 관리하게 되어있다. 거꾸로 말하면, 주한미군의 훈련장 공동사용의 의도는 단독사용에 대한 관리 책임에서 벗어나 각종 비용과 민원, 환경오염 치유책임 등을 우리 정부에 떠넘기려는 것이다. “국익”과 “국가안보”라는 껍데기 속에 감춰진 “미국 이익 보장하기”사업. 눈덩이처럼 끊임없이 불어나는 국방부의 거짓말 속에 국민들의 신뢰는 이미 땅바닥을 향해 가고 있지는 않은지…. 동계올림픽 종목에 “컬링”이라는 경기가 있다. 1인 4조가 한팀이 되어, 팀원 중 한 사람이 아이스 링크 위에 동그랗게 생긴 돌을 살짝 밀면 나머지 팀원들이 열심히 얼음판을 닦아서 돌이 결승지점까지 미끄러져 갈 수 있도록 하는 게임이다. 미국이 납시는 길을 알아서 반들반들하게 닦고 기어주는 대한민국 국방부가 이 게임에 한팀으로 나간다면 아마 우승은 따놓은 당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컬링 게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한미동맹'팀이 도착한 목적지는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비난과 고립이 기다릴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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