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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그의 왕팬이었다. 기사를 읽고 '친구 신청'을 한 것도 그가 처음이었다.

시민기자 박봄이. '나름' 인기 연재인 <세렝게티 옥탑에 서식하는 봄날 꼬냥이의 리얼다큐멘터리(이하 세렝게티 옥탑방)>의 주인공이다.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은 건 매우 '4차원'적인 표현력.

"닭을 치시오!(닥치시오)" 같은 말재간은 물론, 벽에 붙은 나방을 보고 "조류나방님이 벽에서 참선하신다며 기겁, 바닥에서 울부짖는 커튼씨를 끌어올려쓰고 옥탑방 구조와 동선을 머리에서 그려가며 집에서 탈출했다"는 표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녀는 '고수'가 분명했다.

그 세렝게티 옥탑방의 고수 박봄이를 찾아 길을 나섰다. 앗, 그런데…. 매일 시트콤 같은 상황이 벌어졌던 그 세렝게티 옥탑방은 이제 사라지고 없단다. 일주일 전에 개봉동의 빌라로 이사한 것. 옥탑방에서 석양을 등지고 머리를 흩날리는 고수와의 상봉을 기대했던 나, 결국 한발 늦었다.

어쩔 수 없이 작전 변경. 2월 26일 개봉동 빌라로 터덜터덜 찾아갔다.

시트콤 같은 <세렝게티 옥탑방>, "30% 오버 끼 들어갔어요"

함께 사는 강아지와 놀고 있는 박봄이 기자. 최근 세렝게티 옥탑방을 떠나 개봉동 빌라로 이사했다.
 함께 사는 강아지와 놀고 있는 박봄이 기자. 최근 세렝게티 옥탑방을 떠나 개봉동 빌라로 이사했다.
ⓒ 김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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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고 동글동글한 얼굴에 큰 눈, 자그마한 체구, 거기에 치맛바람(?). 박봄이 기자의 외양은 생각보다 얌전했다. 앗, 이 분이 그 '봄날 꼬냥이' 맞으신가?

"빠른 성격은 아니에요. 창가에서 따스한 햇빛 받고 늘어져 낮잠 자는 게 연상돼서 봄날 꼬냥이라고 지었죠."

그런데 요즘은 그 봄날 꼬냥이가 어떻게 사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2006년에 시작한 연재가 갈수록 봄날 고양이마냥 늘어지더니 결국 작년 11월을 끝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도 '시즌2'라는 거창한 타이틀로 첫 기사만 올려놓고.

"사실 옥탑방은 그동안 많이 우려먹어서 더 쓸 게 없어요. 여기로 이사하면서 난리쳤던 게 있는데 마지막으로 그걸 몇번 쓰려고요."

아니, 시즌2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소재 고갈'로 막을 내리겠단다. 그럼 이제 <세렝게티 '1층집'에 서식하는 봄날 꼬냥이의 리얼다큐멘터리>를 쓰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매달리고 싶던 나.

특유의 발랄함으로 사랑을 받았지만 박봄이 기자가 광신도들까지 거느리게 된 건 바로 <세렝게티 옥탑방>이었다. <세렝게티 옥탑방>은 까칠하면서 소심한 '봄날 꼬냥이'를 중심으로 깐깐한 주인 할아버지 '배추도사', 여자 앞에선 한없이 약한 '조폭이웃',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산삼총각' 등등이 엮어낸 한 편의 시트콤이었다.

"없는 일은 쓴 적은 없어요. 그렇지만 재미를 위해 첨가 요소를 넣었죠. 그게 없으면 일기지, 나 혼자 봐야죠. 솔직하게 쓰는 것도 좋지만 대중을 위한 글은 반드시 재미가 들어가야죠. 현실과 과장의 비율은, 음…. 7대 3 정도?"

그렇다면 등장인물들은 글에서 어느 정도나 달라졌을까. 야박해도 나름 인간미 있게 나왔던 주인 할아버지 '배추도사'는 실제론 얄짤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박봄이 기자도 마찬가지다. 까칠하고 할 말은 다할 것처럼 그려졌지만 실제론 낯을 많이 가리고 야무진 성격이 못돼 잘 따지지도 못한다.

어쨌든 머리가 지끈지끈한 기사들이 대부분인 <오마이뉴스>에서 그의 글은 한편으로는 신선했고, 또 한편으로는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안 그래도 머리 아픈 세상인데, 저까지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세렝게티는 일회용이에요. 한 번 읽고 하루가 즐거우면 땡! 그거면 된 거죠. 오래 가진 않지만 그 순간만큼은 행복하잖아요."

독자들만큼이나 박봄이 기자도 행복했다. '화염지옥' 같았던 옥탑방 여름나기를 올렸더니 '에어컨을 보내주겠다'는 쪽지가 날아오기도 했다. 물론 뻔뻔하게 에어컨 받을 주소를 불러줄 수는 없어 '괜찮다'고 했는데, 어쨌든 기분은 정말 좋았단다. 또 얼굴까지 다 보일 정도로 붙어있던 옆 고등학교에서 한 떼의 남학생들이 "세렝게티~" "옥탑누나~"라며 소동을 벌인 적도 있었다. 지극히 시트콤적인 상황이다.

깜박이는 워드 커서가 무서운 봄날 꼬냥이

시트콤 같은 인물들로 큰 사랑을 받았던 <세렝게티 옥탑방>. 이 사진은 여자 앞에선 한없이 약했던 조폭이웃에 대한 이미지다. 박봄이 기자가 직접 작업했다.
 시트콤 같은 인물들로 큰 사랑을 받았던 <세렝게티 옥탑방>. 이 사진은 여자 앞에선 한없이 약했던 조폭이웃에 대한 이미지다. 박봄이 기자가 직접 작업했다.
ⓒ 박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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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박봄이 기자가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게 된 건 일종의 '사고'였다. 2005년 3월 첫 기사를 쓸 때만 해도 <오마이뉴스> 메인면 한번 쳐다보지 않았단다. 그냥 아무나 글을 쓸 수 있다기에 밀어놓고 본 거였다.

봄날 동물원에 대한 기사를 나름대로 사진에 말풍선도 넣고 발랄하게 썼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기사들을 보니 '내가 집을 잘못 찾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박봄이 기자 말대로 '투쟁조'의 글만 가득한 이 곳에 계속 글을 쓰는 이유는 뭘까.

"기사를 쓰는 건 저한테 운동 같은 거예요. 감을 잃지 않기 위한 그런 거?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면 즉각적으로 리플이 달리니까, 감각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죠. 내가 아니다 싶은 글은 독자들도 얄짤 없어요. 딱 티가 나거든요."

한 때 봄날 꼬냥이는 게임계의 '고수'였다. 20대 초반 무렵 피시방에서 살다시피 하다가 한 게임 팬 사이트에 재미삼아 칼럼을 올렸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 한 때는 회원 3000명이 넘는 팬 카페까지 거느렸다.

그 인연으로 리니지를 운영하는 '엔씨소프트'에 들어가게 됐다. 하지만 2년 후 "미쳤다"는 소리 들으면서 회사를 그만뒀다.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2005년 그는 프리랜서 작가가 됐다.

"물론 생활고가 제일 힘들죠. 근데 돈은 어떻게든 해결이 돼요. 제일 힘든 건 내가 과연 재능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워드가 무서워요. 워드 열어놓고 하얀 백지 위에 깜박이는 커서를 보고 있으면…. 정말 무서워요."

의외였다. 그도 자신의 재능을 고민한다는 게…. 하지만 그는 일에 관해선 프로였다. 글 청탁을 받으면 보통 마감일보다 더 빨리 준다. "10원이라도 받으면 프로", 이게 그의 신조다.

프로답게(?) 악플에 대처하는 자세도 남다르다. 게임계에 있을 때 워낙 악플에 면역이 돼 사이버공간에서 욕 먹는 거엔 별 다른 느낌이 없단다. 다만 '이 사람들 도대체 왜 이럴까, 얼굴 마주하면 아무 말 못할 거면서…. 밥은 드셨쎄요?' 이런 생각이 든단다. 당연히 '귀여운 척 하지 마라' '구질구질하게 옥탑방 사는 게 자랑이냐'는 댓글은 아무 것도 아니다.

"저는 글을 '칼'로 쓰고 싶지 않아요. '너는 쓰레기야, 네 말은 틀렸어' 그렇게 사람 죽이는 글, 상처 입히는 글은 쓰기 싫어요. 그래서 진중권씨 글을 굉장히 싫어하죠. 그런 글을 보면 싸우고 싶은 의욕도 없어져요. 그냥 '아저씨 말이 맞으세요~' 하고 말죠."

정선 아리랑에 맞춰 108배를... 그대는 4차원 소녀

<세렝게티의 옥탑방에 서식하는 봄날 꼬냥이의 리얼다큐멘터리>의 무대가 됐던 박봄이씨의 전 옥탑방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 옥탑방의 바깥 풍경들. <세렝게티의 옥탑방에 서식하는 봄날 꼬냥이의 리얼다큐멘터리>의 무대가 됐던 박봄이씨의 전 옥탑방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 박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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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을 싫어하는 박봄이 기자의 성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사춘기 시절 전학을 많이 다닌 탓에 텃세를 많이 겪었다. 그 나이에도 가만히 있으면 '밥'밖에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본때를 보여주자고 벼르다가 결국 사고를 쳤다. 시험 날 아이들이 화장실로 오라고 하기에 갔더니, 머리를 툭툭 치며 돈을 빌려달란다. 안 그래도 불만이 많았는데 뭔가 울컥해서 결국 손을 대고 말았다. 괴롭히는 아이들이 아니라 복도 유리창 6장을, 그것도 맨 손으로 모두 깨버렸다.

그 때 손에 난 상처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그 상처들을 보며 그가 깨닫는 건 관계의 소중함이다. 박봄이 기자에게 <오마이뉴스>가 준 가장 큰 선물은 사람들이다. 나영준·한성희·최육상 시민기자는 큰언니·삼촌 같은 사람이다. 아껴주고 챙겨주는 인생의 선배 같은…. 이번에 옮긴 집도 나영준 기자가 사는 곳 바로 옆이다. 물론 나영준 기자가 집을 알아봐 줬다.

올해 박봄이 기자는 서른이 됐다. <세렝게티 옥탑방> 시작한 때가 스물여덟. 그 때만 해도 시민기자 중에서 어린 축에 들었다. 나이 먹는 게 싫지는 않지만 이젠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단다. 그동안 너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다보니 몸이 많이 망가졌다. 한번 앉으면 4~5일은 꼬박 글만 써댔기 때문이다.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작년에 백내장에 걸렸어요. 그 전엔 결핵이었고요. 그동안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게 최고라 생각했는데, 몸이 망가지니까 사람들한테 짐이 되더라고요. 이젠 제대로 살아야죠."

요즘 박봄이 기자는 매일 108배를 한다. 벽이든 창문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한단다. 배경 음악은  바로 '정선 아리랑'. 왜 하필 정선 아리랑이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걸작이다.

"그렇다고 록을 틀어놓고 할 순 없잖아요?"

역시, 그녀답다. 세렝게티 옥탑방은 사라졌지만 고수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조만간 그 고수는 필살기로 무장하고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 <세렝게티 옥탑방> 연재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 인터뷰를 하고 며칠 뒤, 박봄이 기자의 '세렝게티 시즌2' 두번째, 세번째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이로써 오마이뉴스에 다시 '봄이' 왔다는... ^^



태그:#뉴스게릴라, #박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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