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욕망이라는 알을 수없이 부화시키는 기계
1980년대였던가. TV를 가리켜 '바보상자'라고 부르면서 애써 상조하지 않으려던 때가 있었다. TV를 오랫동안 시청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치의식이 마비될 수도 있다는 경계심 때문이다. 거기에 덧붙여 '3S'가 들먹여지기도 했다. '3S'란 'sports, screen, sex'를 가리키는 말이다. 독재정권이 국민의 정치의식이나 비판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해 일부러 '3S'를 유포하고 조장한다는 의혹이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하곤 했다.
1988년에 나온 신경림 시인의 시집 <가난한 사랑노래>에 실려 있는 '가난한 북한 어린이'라는 제목의 시는 TV 드라마와 현실을 혼동한 채 자신이 처한 처지마저 망각한 한 어린이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시 속 주인공은 "엄마는 돈 벌러 서울 가서 이태째 소식 없고 /아빠도 엄마 찾아 집 나간지 여러 달포"인 결손가정에서 사는 세 아이는 "다시 밥 대신 라면으로 저녁을 끓"여 먹고 겨우 연명해야 하는 처지다. 두 동생이 만화에 빠져 넋을 잃고 있는 건 그렇다 치자. 열두 살 난 언니는 "전화도/텔레비젼도 없는 북한 어린이들이 불쌍하다"라고 일기에 적는다. 북한 어린이보다 자신이 훨씬 불쌍한 처지라는 걸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는 시절이 아주 크게 변해 버렸다. 이제 TV는 더 이상 멀리 해야 할 '바보상자'가 아니다. 꿈이 꽃 피는 상자다.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사람들은 이제 TV로 꿈을 꾸고, TV에 의지해서 삶을 살아가는 데 아주 익숙하다. 아이들에게 "네 장래 꿈이나 희망이 뭐냐?"라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탤런트나 가수라고 대답하는 형편이다. "대통령이나 장군이 되겠다"라는 당찬 대답을 하던 옛날 아이들과는 너무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아이들은 왜 하나같이 탤런트나 가수를 꿈꾸는가. 돈과 명예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 아이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학 사회학과 3학년인 딸은 제법 정치의식이 성숙한 편이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말짱 도루묵"이다. 리모컨을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으면서 TV와 끈끈한 애정 관계를 과시한다. 모 방송 일일 연속극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종사촌을 보면서 은근히 부러워하는 눈치를 감추지 못한다. 성숙한 정치의식과 TV를 대하는 태도는 별개인가.
내게 TV와 딸 간의 적나라한 애정행각이 가장 곤혹스러운 때는 토요일 저녁 시간이다. 딸 아이는 그 시간에 모 방송국의 <무한도전>이란 프로를 즐겨본다. 문제는 방영 시간이 거의 저녁 식사 시간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쳐다봐도 시끄럽기만하지 도통 재미가 없는 프로를 보면서 식사를 해야만 한다. 몇 번 지적했지만, 오히려 반발심만 키울 뿐이다.
특히 그 프로에 나오는 노홍철이란 젊은이는 어찌나 수선스럽던지 보는 사람조차 정신이 하나도 없다. 순식간에 정신이 혼미해져 거의 아노미 상태에 이른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밥을 후다닥 먹고 나서 내 방으로 사라지는 것 외엔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러나 인간이란 얼마나 불가사의한 존재인가. TV로만 만나는 사람도 자꾸 보게 되면 정이 드는가 보다. 어찌나 산만한지 정신 쏙 빼놓게 하는 통에 그토록 싫어하던 노홍철이건만 자주 보니 점점 괜찮아 보이기 시작한다.
얼마 전, 노홍철이 정신분열증세가 있는 한 남자에게 피습을 당했을 땐 마치 내 아들이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길길이 뛰면서 딸 아이 못지않게 흥분하기까지 했다. 아, 코드가 맞기만 하면 세상이란 얼마나 평화로운가.
좋아, 가는 거야. 이참에 노홍철의 미니홈피까지 줄달음쳐 가서 그의 이력을 들여다 보기로 하는 거야.
1979년생. 2남 중 막내. 신구초등학교, 신사중학교, 현대고등학교 졸업. 현재 홍익대 기계정보공학과 4학년 재학 중. 2005년에는 <노홍철의 뻔뻔한 서울>이라는 책까지 출판한 바 있으며, 부업으로 인터넷 패션의류쇼핑몰까지 운영하고 있는 그는 "내 인생은 늘 축제 축제!"라는 모토로 살고 있다.
알게 되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 너그러워지기 마련이다. 이제 나는 노홍철이 시청자들에게서 웃음을 유도하고자 여러 번에 걸쳐 말을 반복하는 것을 이해하기로 한다. 그럴 때마다 시야를 어지럽히는 "곱하기×3"이나 "곱하기×4"라는 자막까지도. 어디 그뿐인가. 난 이제 때로는 노홍철에게 'once more!'를 주문하고 싶을 지경이다.
전기철 시인이 쓴 '노홍철, 경찰서에 가다'라는 시는 노홍철의 말투를 닮은 문제 청소년을 소재로 해서 쓴 시다. 1945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난 전 시인은 1988년 시 전문지 <심상>에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는 <나비의 침묵> <풍경의 위독> <아인슈타인의 달팽이> 등이 있다. 시 '노홍철, 경찰서에 가다' 는 2006년에 낸 <아인슈타인의 달팽이>라는 시집 속에 실려 있는 시다.
한강에서 막 자살하려다가, 뭐, 거시기, 생각이 났걸랑요. 이러면 안 되겠다, 되겠단가, 가출요, 세 번, 네 번, 한 번 한 번, 집이 있는가, 아버지요, 불쌍하죠, 가끔, 전화 와요, 상관 없어요, 돈 못 내서 끊겼어요, 그러니까, 쓰러져 잔 게 열 번도 넘어요, 술에 취하기도 하고, 갈 데도 없고, 집요, 없어요, 아무 데나 자요, 나이요, 열다섯 정도로 해놓으세요, 정확히 몰라요, 그딴 것 중요하지 않잖아요, 학교 갈 것도 아닌데, 존경요, 이건희요, 돈 많잖아요, 졸라 좋겠다, 장동건도 좋아해요, 작년에 칠십억을 벌었대요, 뭐, 일어나서 오락실 가고, 오락실에서 자기도 하지 참, 우리 동네, 랄랄라 오락실요, 후쳐요, 라면요, 컵라면 맛 디게 없어요, 물 졸라 씨어요, 리니지 투, 만점 나와요, 졸라 재미없어요, 시간 보내는 거죠, 깔치요, 널렸어요, 밤에 나가봐요, 오천원만 주면 재워줘요, 씹새들, 껌요, 심심하니까요, 여기 디게 따뜻하네요, 엄마, 엄마요, 몰라요, 생각도 안 나요, 다른 얘기해요, 자살 안 해요, 왜 죽어요, 그냥 한강 가요, 졸라 시원해요, 춥긴 해도 속이 시원 해요, 대학생 누나가 도와줬는데, 정말 대학생인가, 몰라요, 그 누나 이름요, 몰라요, 그냥 재워줘요, 이제 안 와요, 몰라요, 안 죽어요, 학교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요, 말할 것도 없어요, 영어선생이 좋았는데, 다 그렇죠 뭐, 저 안 죽어요, 추운데 고기밥 되기 싫어요, 이렇게 죽으면 친구들이 웃어요, 멍청하잖아요, 아빠, 어디 있는지 몰라요, 안 올 거예요, 우리 같은 사람은 죽고 싶어도 못 죽는댔어요 아빠가, 그냥 살면 되요, 봄 되면 친구들이랑 디스코테크에서 일할 거예요, 나이, 그깟 것 속이면 되요, 장사 한두 번 해보나요, 아, 졸려!
- 전기철 시 '노홍철, 경찰서에 가다' 전문
노홍철의 말투를 그대로 흉내 내느라 그런지 시가 약간 장황하고 길다. 시의 내용은 제목이 이미 암시한 대로 노홍철이 경찰서에 가서 진술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고 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시라. 진술하는 사람은 TV에 나오는 연예인 노홍철이 아니다. 노홍철의 말투를 닮긴 했지만, 길에서 아무렇게나 노숙하다가 경찰서로 끌려온 것으로 보이는 청소년이다.
고독과 방황, 그릇된 욕망이 빚어낸 삶의 풍경
그렇다면, 시인은 왜 마치 연예인 노홍철이 경찰서에 간 것처럼 제목을 붙인 걸까. 그리고반복하면서 중언부언하는 그의 말투까지 빌어온 것일까. 시인은 노홍철이란 인간을 한 개인으로 본 것이 아니다. 요즘 아이들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자 사회적 현상으로 간주한 것이다. 이쯤에서 시속 화자(話者)의 삶의 방식을 한 번 차분하게 정리해 보기로 하자.
시 속 화자는 열다섯 살 정도 되는 청소년이다. 툭하면 가출하고 나서 술을 마시고 취해서 노숙을 일삼는다. 오락실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 리니지 게임을 하다가 오천 원을 주고 그냥 거기서 자기도 한다. 그가 존경하는 사람은 이건희와 장동건이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딱 한 번 한강에서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여대생 누나가 구해줬다. 이젠 자살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친구들이 "멍청하다"고 비웃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품은 유일한 희망이라곤 봄이 되면 친구들이랑 디스코테크에서 일하는 것이다.
시인은 노홍철을 닮은 청소년을 등장시켜 요즘 아이들의 삶의 양식을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에게 관심을 환기시킴과 동시에 고발하려는 것이다. 내심으로는 청소년들이 갖은 상처에 대한 관심과 치유를 기대하면서.
시집 <아인슈타인의 달팽이> 속에는 모두 64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시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타락상과 그로말미암아 혼란스럽기만한 도시풍경을 냉소적인 관찰자의 시각으로 그려내는 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시 속 화자의 아빠가 했다는 "우리 같은 사람은 죽고 싶어도 못 죽는댔어요"라는 말이 시를 읽어 내려가는 내 가슴에 커다란 울림을 준다. 왜 이들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가. 그것은 가슴에 맺힌 한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苦)와 한(恨)에 대한 풀이 없이는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죽음이란 것도 강렬한 삶의 희망과 애착을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택할 수 있는 수단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죽음에조차 무기력한 인간인 것이다.
"출발선에서부터 불평등한 사회를 개혁하고자 정치를 시작했다"라는 어느 여성 정치인의 말이 떠오른다. 그 말은 그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이런 아이들을 버려두고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까. 어떻게 높낮이 없는 세상과 평등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