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군인 출신인 관리소장은 하루에 2~3번씩 우리를 집합시켰다. 3년을 하니까 줄도 잘 맞췄다(웃음). 남성 관리직원들의 일을 우리에게 시켰고, 효율성을 인정받은 관리소장을 학교도 좋아했다. 우리는 심한 노동으로 살 수가 없는데 관리소장이 정년을 채우겠다 싶어 노조를 결성했다. 그런 사람은 '조직의 쓴맛'을 봐야 한다" (한원순 덕성여대 분회장)
"화장실만큼은 정말 할 말 많다.…옆 계산대의 50살 먹은 언니가 말없이 화장실을 갔다가 정규직 직원에게 들켰다. 25살짜리 정직원이 '왜 화장실 갈 때 이야기하지 않고 가느냐'고 손님들 앞에서 창피를 줬다. 그 언니를 생각하니까 울컥 하는데…." (이인숙 뉴코아 노동조합)"11년 다닌 정규직 여성이 출산휴가를 쓰겠다고 하자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그 뒤 계약직 여직원과 재계약할 때는 40~50대는 (계약 기간을) 1년, 아가씨는 6개월, 결혼한 새댁은 3개월로 두는 등 회사의 부당한 처사를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최은미 기륭전자 조합원) 웃다가 잠시 울컥하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어 콧방귀를 꼈다. 여성 청소부들의 노조 결성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을 때 아껴뒀던 박수가 터져 나왔다.
'3·8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 투쟁기획단'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와룡동 병원노동자 희망터 교육장에서 연 이야기마당에서다.
유쾌·상쾌·통쾌한 '비정규직녀'들의 수다이 행사는 100회째를 맞은 여성의 날을 맞아 각 사업장에서 노조 활동을 하고 있거나 혹은 해고되어 회사와 싸우고 있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서 그들의 삶과 투쟁에 대한 진솔한 속내를 들어보고자 마련된 자리다.
고용 환경과 임금 등에서 차별받는 비정규직 가운데 70%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만큼 사회적 차별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지만, 이들의 결론은 되레 '유쾌·상쾌·통쾌하게 지르고 살자'는 것. 부당하게 해고됐다면 회사에 책임을 묻고, "잘못은 '잘못됐다'"고 말하고 살자는 뜻이다.
비정규직 여성들은 "아줌마들이 뭘 할 수 있겠느냐", "빨갱이짓 말라"는 등 주변의 비웃음과 괄시에도 당당하게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예비 비정규직 노동자들인 아이들을 위해서 오늘의 투쟁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이야기마당은 ▲비정규직 여성으로서의 삶 ▲투쟁 이후 겪은 변화 ▲비정규직 여성으로서 바라는 점 등을 주제로 3시간 동안 진행됐다.
[삶] "선생님, 천원어치만 드세요"참석자들은 비정규직 혹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로서 겪은 현장에서의 서러움을 토로했다. 특히 생존의 기본인 식사와 화장실 문제 등에 분통을 터뜨렸다. 대화 중 일부를 그대로 싣는다.
정금자(58) 전국공공서비스노조 의료연대 서울지역지부 간병인분회장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 24시간 일하고 토요일 오후 집에 잠깐 다녀온다. 일당은 5만원, 병원밥을 사먹으면 하루에 만원이 나가서 집에 가져갈 돈이 없다. 돈을 아끼려고 (일주일치) 주먹밥을 집에서 만들어 온다. 냉동실에 얼렸다가 전자렌지에 하나씩 녹여 김치와 함께 먹는다.
어제는 병원에 제기된 민원을 해결하느라 진땀을 뺐다. 병원에 환자 보호자들이 밥을 먹는 '배선실'이 있는데, 간병인이 거기서 밥을 먹으면서 환자 보호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고 민원이 들어간 것이다. 모든 병원 시설은 환자 우선이란다. 병원에 민원을 넣어서 간병인들을 앉지도 서지도 못하게 만들어야겠나. 너무 비참하다."
이슬(가명·31) 전국공공서비스노조 서울경인지역 공공서비스지부 보육분회 소속 "저희는 그래도 시작은 앉아서 할 수 있어서 형편이 나은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낮 12시에 점심을 먹기 시작한다. 인력이 없어서 아이들을 먼저 먹이고 따로 먹을 여유가 없다.…어린이집 교사들의 하루 식비는 천원, 한달에 2만5천원이다. 현금으로 받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다 같이 먹는다. 가끔 식사나 간식에 좋아하는 음식이 나와서 더 먹고 싶으면 원장이 말한다. '선생님, 하루 식비 천원이야'라고. 화가 나지만 표현할 수 없다."
이인숙(44) 뉴코아 노동조합 소속 "화장실만큼은 정말 할 말 많다.…옆 계산대의 50살 먹은 언니가 말없이 화장실을 갔다가 정규직 직원에게 들켰다. 25살짜리 정직원이 '왜 화장실 갈 때 이야기하지 않고 가느냐'고 손님들 앞에서 창피를 줬다. 그 언니를 생각하니까 울컥하는데…. 화장실은 가고 싶은데 사람이 많아서 어쩔 수 없었다. 화장실은 정말 할 말이 많다."
[투쟁 그 이후] 우여곡절 투쟁기..."며느리, 너 빨갱이짓 하냐?"이인숙씨는 결혼 이후 얻은 첫 직장에서 부당한 계약해지를 당했고 매장 앞 1인시위, 다른 사업장에서의 연대투쟁 등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뉴코아 강남점에서 1년 근무한 사회 초년생인 그는 "'지르고' 사니까 속이 너무 편하다"고 말했다.
"결혼하고 시할머니까지 대식구가 함께 살았다. 집안에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여자들이 조용히 해야 했다. 그런 생활을 하다가 직장을 다녔고 1년 근무하다가 노조 활동을 시작했다. '지른다'고 표현하는데 그 동안 너무 죽어서 살았다. 회사를 향해서 '왜 계약해지 시켰느냐'고 하니까 속이 너무 편해졌다. 마음이 너무 편하고 응어리가 없다."사측의 이해할 수 없는 처우에 비정규직 여성들은 노조 결성으로 맞섰다. 이들은 차가운 거리에서의 장기 투쟁 등 노조 활동으로 인해 피로를 느낄 법 하지만 되레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한원순(52) 전국공공서비스노조 서울경인지역 공공서비스지부 덕성여대분회장은 노조 결성을 통해 과잉 노동을 주문했던 관리소장을 끌어내렸다. 그는 "노조 활동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면서도 "하지만 싸움은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년 10월 24일 창립총회를 했고, 38명 청소부 직원 중 30명이 가입했다. 관리소장이 있었는데, 관리실 남성 직원들이 하는 캠퍼스 건물 외부 청소까지 아주머니들을 시켰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큰 돈 안 들이고 수적으로 많은 아주머니들을 쓰니까 학교는 좋아했고 관리실 직원들은 우리가 청소를 해주니까 너무 편하게 생활했다. 관리소장의 주가는 올라갔고, 청소 용역업체가 바뀌어도 관리소장은 눌러앉았다. 우리는 심한 노동으로 살 수가 없는데 관리소장은 정년(60세)까지 가겠다 싶었다. 직업군인 출신인 관리소장은 집합을 엄청 좋아했고 3년을 하다보니 줄도 잘 맞췄다(웃음). 안 되겠다 싶어서 노조를 결정했다. 관리소장이 심하다는 보고가 학교측에 전달됐음에도 뒷짐을 지고 있었다. 우리를 지킬 수 있는 건 우리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한 명씩 비밀리에 접촉했다. 결국 회사(용역업체)가 이것을 알고 난리가 났다. 퇴근하는 직원들을 강당으로 집결시켜서 노조를 결성했다. 학교와 여러 차례 협상했지만 관리소장을 내보내지 못했다. 결국 총학생회와 연대해 '미화원이 호소한다'는 유인물을 교내에 배포했고 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학생들의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3일만에 관리소장이 나갔다."최은미(25) 민주노총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또한 사측의 부당한 처우를 참지 못하고 노조 활동을 시작했다. 최씨가 속한 기륭전자 노조는 3년째 회사를 향해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여자들의 경우 가사와 직장을 병행하다보니 회사가 배려를 해줘야 하는데 휴가는커녕 조퇴도 쓰지 못했다. 그러다가 11년 된 정규직 여성이 출산휴가를 쓰겠다고 하면서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그 뒤 계약직 여직원과 재계약할 때는 40~50대는 (계약 기간을) 1년, 아가씨는 6개월, 결혼한 새댁은 3개월로 두는 등 회사의 부당한 처사를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여성의 노동에 대해 부수적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기륭전자는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들의 장기 투쟁에 대해 '남편들이 돈을 버니까'라고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대부분 남편이 없거나 있어도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형편이다. 남편이 안정적으로 벌어오면 미쳤다고 기륭전자에서 일하겠나(웃음). 투쟁하면서 정말 힘들지만 억울해서 이까지 왔다."[좌절과 희망] "역사가 우리를 기억해줄까"하지만 노조에 대한 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이들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됐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장 과정에서도 차별받았던 이들이 직장에서도 희생을 강요받았다. 특히 가족의 냉대는 더욱 큰 좌절이었다. 다음은 이인숙 뉴코아 조합원의 말이다.
"대식구가 함께 살다가 재건축 때문에 나와서 따로 살았다. 하지만 시댁과 바로 옆집에 살게 됐다. 처음 1인시위를 나간다는 말을 시어머니께 하자 '대신 싸워주겠다'며 강력한 연대 동지가 됐다. 남편은 그냥 하나보다 했고, 큰 아들은 '엄마는 돈도 안 주는 일을 왜 하느냐'고 싫어했다. 하지만 시아버지의 말씀은 충격적이었다. '며느리가 빨갱이짓을 하는 것이냐'는 거다. 그러자 시어머니도 '이제 그만 하라'고 했다. 우호적이었던 둘째 아들도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가족들에게 자꾸만 숨기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그래도 비정규직 여성들은 "투쟁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며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낮추지 않을 계획이다. 이들은 조직을 확장시켜 대정부 투쟁으로 이어갈 생각이다.
한원순 덕성여대분회장"시작은 작았지만 하다 보니까 일이 굉장히 많다. 교내뿐만 아니라 외부 회의에 참석하면서 느낀 점은 몇 명 안 되는 사업장에서 싸우면서 나의 문제로 둘 것이 아니라 분위기를 확산시켜서 정부를 상대로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일'이 아니라 우리 자녀들의 일이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니 가족들에게 이해하라고 하고 그냥 계속 해나가면 될 것 같다."
최은미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당연히 투쟁에서의 승리를 원한다. 900일 넘겼지만 마음이 많이 흔들린다. 고민하면서도 다독이면서 투쟁에 나간다. 나아가 한국 여성의 문제가 노동뿐만 아니다. 여성은 슈퍼우먼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데 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 역사가 '2000년대 여성들이 이렇게 싸웠다'고 기록해주지 않겠나.(웃음)"
정금자 간병인분회장 "조직의 목적은 뚜렷하다. 열악한 환경의 간병인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투쟁하는 모습을 봐도 엄마들같이 용감하고 대담하게 싸우는 사람들이 없다. 사회가 많이 개혁됐다고 하지만 이를 후퇴시키는 이명박 정권을 만들지 않았다. 아직 할 일이 많다."
무거운 주제에 비해 이야기 도중 곳곳에서 튀어나온 웃음소리는 내년 여성의 날에도 계속될 수 있을까. 답답한 현실에서도 '지르고 보자'는 이들의 뚝심을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