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새 학기를 맞은 대학생들이 캠퍼스를 활보하고 다닌다. 잔디밭에서 자장면을 시켜먹고 캠퍼스에 비치는 따스한 햇살을 만끽할 법하지만 그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등록금을 낸 이후에도 들어가야 하는 돈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학생회비 납부, 모꼬지(엠티) 참여회비 등등. 그 중 제일 부담이 심한 것은 바로 교재비다.
최근 서울 A 대학 국문과에 복학한 김수만(가명. 25 남)씨는 이번 학기 수강할 과목 책값으로 14만원을 썼다. 전공서적의 경우 한 권당 보통 만원, 많게는 3만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학기 중에 사야 할 부교재를 계산하면 20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A대학의 경우 문과 기준으로 1년에 약 40만원, 영어 원서를 주교재로 사용하는 이과의 경우 연간 교재비 부담은 더욱 높아진다. 상대적으로 학점이수를 적게 받는 4학년을 계산에서 제외해도 3년간 백 만원이 넘는 돈이 교재비로 들어가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싼 교재비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입학금과 등록금 납부에 교재비까지 부담해야 하는 새내기들의 불만이 많았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정미연(가명. 20 여)씨는 "책값이 너무 비싸다. 새내기들은 캠퍼스 사정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전부 사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오르는 책값이 무서운 자취생들
학생들의 불만에도 아랑곳없이 책값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한국출판협회가 1월 발표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지난 2년간 도서 정가는 평균 2.8% 증가했다.
책값의 상승 추세는 현재의 고유가 기조와 인플레이션이 지속 국면을 타게 될 경우 더욱 가속될 전망이다.
여기에 출판사들이 전공관련 서적들을 개정판으로 출시하면서 가격을 높게 책정하고 있다.
이러한 책값 상승 현상은 물가 급등으로 인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지방 출신 대학생들에게 더욱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양대 3학년에 재학중인 구선희(가명. 22 여)씨는 "한 달에 방값을 뺀 생활비가 30만원 정도로 한정되어 있는데 갑자기 그만한 돈을 구하려면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야 한다. 부모님에게 죄송스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등록금과 책값이 동반 상승하는 상황에 아랑곳없이 사립 학교측은 여전히 사업확장을 목적으로 하는 적립금을 쌓는 데 치중하고 있다. 참여연대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대학재정운영과 등록금 실태’ 보고서를 통해 수도권 소재 69개 대학의 전체 적립기금 중 84.5%가 건축기금(43.2%)과 사용 목적이 불문명한 기타기금(41.3%) 등으로 써 왔다고 분석했다. 반면, 학생들을 위한 연구, 복지기금 확충에는 인색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립대들은 매년 등록금을 인상한 반면, 학점 이수에 필요한 교재비를 보조해주지 않았다. 재단의 재정을 전적으로 등록금에 의존하면서 정작 교재비를 지원해주는 등의 복지확충은 시행되지 않은 셈이다.
해당 학교의 학생들은 해마다 오르는 등록금을 지불하고 다시 교내 서점에서 수십만 원 상당의 교재를 구입하고 있었다.
책값 아끼기 위한 몸부림들이와 같은 상황에서 학생들은 교재비를 아끼기 위해 여러 수단을 동원한다.
헌책방에서 중고 서적을 구입하거나 평소 안면이 있는 선배에게 책을 빌려다 쓰거나 복사나 제본을 하는 경우가 많다.
출판사의 재고 여건에 따라 공동구매를 할 때도 있다. 특히 제본의 경우 깔끔한 상태의 복사된 책을 원가의 반값으로 구입할 수 있어서 많은 학생들이 찾고 있었다.
하지만 제본은 명백한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책값을 아끼기 위해 많은 학생들이 제본을 찾고 있었다. 저작권협회와 문화관광부가 합동으로 단속에 나서고 있었지만 무단복제는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신학기에 제본으로 수입을 내는 인쇄소, 책값을 아끼려는 학생들, 그리고 이를 단속하는 저작권 협회와 정부가 서로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A대학 앞 모 인쇄소 관계자는 “협회에서 수시로 단속이 들어온다. 영업 방침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수요가 있기 때문에 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