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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친정은 5남 7녀, 모두 12남매입니다. 12명의 자식과 29명의 친손자, 외손주를 둔 올해 연세가 88살인 친정엄마는 지난 2월 21일, 올해 26살된 친손주를 다시 못 올 먼 곳으로 떠나 보내셨습니다.

 

4년 전인 2004년 초, 골육종이라는 진단을 받고 조카는 왼쪽 어깨뼈를 인공뼈로 교체하는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러고도 몇 번의 항암치료를 받던 조카는 2년 전에 나름대로 완치되었다는 생각에 잠시 접어 두었던 고시를 준비하는 법대생이었습니다.

 

그 조카가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다시 병이 재발되었다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지만, 온 몸으로 암세포가 전이되어 2월 21일 끝내 가족들의 곁을 떠나 버린 것입니다.

 

우리 가족들은 연로하신 엄마께서 손주의 사망소식을 알게 되면 심한 충격을 받을까봐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꿈자리가 안 좋다며 손주의 소식을 물어오는 엄마께 아무런 일도 없다고 조카의 사망 사실을 숨겼습니다.

 

26살 나이에 세상 떠난 조카

 

그렇지만 2월 23일, 벽제 승화원에서 조카가 한줌의 재로 남는 그 순간, 셋째언니를 통해서 엄마께 조카의 사망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가족들이 조카를 이 세상에서 떠나보내고 있는데, 그 사실을 모르는 엄마는 새벽마다 정화수 떠놓고 손주의 건강회복을 위한 긴 기도를 올릴 거라는 생각에, 이제는 엄마도 손주를 떠나 보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내내 걱정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던 손주가 세상을 떠났다는 언니의 눈물어린 목소리에, 엄마는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그려…승엽이가 그렇게 되고 말았구나…암은 낫는 사람이 별로 없다더라'하고 담담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조카를 떠나보내고 가족들은 49일 동안, 매주 수요일 저녁이면 7번에 걸쳐서 천도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어제는 3번째로 천도제를 지냈는데, 지난 주 수요일 아침, 2번째 천도제를 앞두고 엄마께서 손주의 천도제에 참석하고자 멀리 전북 산서에서 서울로 올라오셨습니다.

 

30년 가까이 신경통으로 고생하신 까닭에, 지금은 지팡이 없이는 단 몇 걸음을 걷지도 못하는 엄마는 몇 번이나 택시와 버스, 그리고 기차를 갈아타면서 홀로 서울에 오신 것이었습니다.

 

소식을 알지 못하여 손주의 장례식에 오지 못한 엄마는 늦게나마 손주의 천도제라도 참석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엄마의 그 마음을 알기에 불편한 몸으로 먼 길을 찾아 오시는 엄마를 자식들은 차마 말리지 못했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손자 천도제에 참석하시고...

 

2번째 천도제를 지내던 그날 저녁, 엄마가 혼자말로 되뇌인 말때문에 천도제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눈물바다를 이루고 말았다고 합니다.

 

올해 88세의 할머니가 26살의 젊은 손주의 영정 사진 앞에 절을 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려 기어이 갔냐? 그동안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더냐? 이제 어서 건강한 몸으로 다시 오너라."

 

엄마는 조카의 2번째 천도제를 마친 다음날부터 셋째언니의 도움을 받아 평소 궁금해 했던 자식들을 바쁘게 찾아다니셨습니다. 저와 동생이 함께 일을 하는 마포에 있는 영어학원에도 다녀 가셨고, 저녁 9시가 넘어야 퇴근을 하는 저의 집은 언니와 들러서 외손주만 만나보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동생네 집에 들러서 시간을 보내시다, 셋째언니 집에서 하룻밤을 주무시고 다음날인 금요일 오전에 당신 집으로 되돌아 가셨습니다.

 

손주의 천도제에 참석하고자 몇 년만에 올라 온 서울, 그렇게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학원으로 찾아 온 연로하신 엄마께 마냥 바쁘다는 핑계로 따뜻한 진지 한번 지어드리지 못한 채 떠나 보낸 저의 마음 한 편이 오랫동안 시리기만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며칠 후, 동생은 노란 봉투 하나를 건네 주었습니다. 엄마께서 저에게 전하라고 했다는 그 봉투에는 '한명라 신년 복돈'이라고 삐뚤 삐뚤 연필로 쓰여 있었고, 만원짜리 4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엄마의 그 깊은 마음, 감히 흉내낼 수도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아마 엄마는 나이 40의 중반을 훌쩍 뛰어 넘은 딸과 사위에게 각각 2만원씩 나눠 가지라는 의미로 그 돈을 남기셨을 것입니다.

 

그 돈을 건네 받으면서 또 제 마음은 울컥 눈물이 솟구치는 듯했습니다. 엄마께서 또 언제 우리집에 다녀 가실 수 있을지…. 그렇게 힘들게 찾아 오신 엄마를 바쁘다는 이유로 내 집에서  맞아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며칠 동안 저의 마음 한 곳이 아프기만 했습니다.

 

26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손주의 천도제에 참석하러 온 짧은 일정 동안, 평소 궁금해 했던 이곳 저곳을 다녀가며 자식들 사는 모습을 당신 마음에 담아가느라  많이 바쁘셨을 엄마. 그 와중에도  딸과 사위에게 복돈까지 남기신 엄마의 사랑을 저는 감히 흉내낼 수 도, 다 헤아리지도 못할 듯합니다.

 

당신 자식에게 복을 준다는 마음으로 매년 건네 주는 친정엄마의 신년 복돈, 내년에도, 그리고 그 다음해에도 오래도록 계속 받고 싶은 것은 저의 지나친 욕심일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블러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친정엄마, #복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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