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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올해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공교육과 가정교육만으로 일구어낸 일입니다. 대학에 입학했다 하여 '성공이다 실패다'를 가늠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는 하나의 주체로 살아가야 하지만 세상에서는 '성적'만을 요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나만의 자녀 교육법'을 몇 차례에 나눠 싣도록 하겠습니다.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님과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난번엔 '책읽기'와 사교육 없는 '영어교육'에 대해 고민했고, 오늘은 '공교육'에 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 기자 주

 

 

3월은 입학의 계절이고, 신학기 초의 계절이기도 하다. 입학생은 공교육으로의 첫출발인 시간이고, 학년이 올라가는 재학생에겐 새로운 다짐의 시간인 것이다. 더불어 아이들에겐 바뀐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긴장의 시간이고, 학부모들에겐 담임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탐색의 시간이기도 하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1996년 3월 초. 초등학생이 되는 아이를 위해 책가방과 실내화 그리고 연필, 지우개, 공책 등을 준비했다. 그와 함께 아무리 뛰어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 새 신발도 사주고, 쓰러지고 넘어진다 해도 떨어지지 않을 옷도 한 벌 장만했다. 아이가 입학하는 날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새로 산 옷이 추워 보인다 싶을 정도로 찬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입학식과 함께 시작된 학원의 끈질긴 유혹

 

아이의 공교육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입학식 날 교문 앞에는 인근에 있던 학원 관계자들이 다 모였다. 그들은 분주하게 오가며 학부모들에게 홍보물을 나눠 주었다. 학원으로서도 입학 시즌은 한 해 농사의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내게도 몇 장의 홍보물이 쥐어졌다. 받아든 홍보물을 읽어 보는데 학원 관계자가 다가왔다.

 

"아이가 입학했죠?"

"예 그런데요."

"축하드립니다. 아버님. 근데 아이가 학원은 다니나요?"

"아직…."

"그러시면 잠시 제 말씀을 들어 보시겠습니까?"

 

학원 관계자는 잠시면 된다며 내 팔을 잡더니 학원 차량이 있는 곳으로 끌었다. 차량엔 벌써 몇 명의 학부모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학부모들에게 대부분의 아이들은 입학 전에 선행학습을 통해 1학년 과정을 뗐다며 은근히 겁을 주었다. 학원 관계자의 설명을 듣던 몇몇 학부모는 즉석에서 학원 등록을 하기도 했다. 나는 잠시 생각해 보겠노라 하고는 장터로 변한 교문 앞을 떠났다.

 

공교육의 현장인 학교 앞이 사교육 시장에 의해 점령 당하는 입학식 풍경은 공교육이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도 교문을 나서면서 학원 관계자들에게 붙잡혔던지 집에 오자마자 "아빠, ○○학원에서 놀러 오라고 하던데요?" 했다.

 

"그래? 가고 싶니?"

"아뇨. 그 학원엔 친구들도 없어요."

 

아이의 가방을 열어보니 몇 장의 학원 홍보물이 넣어져 있었다. 나는 아이의 가방에 들어 있던 학원 홍보물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다들 비슷한 내용이었지만 학부모의 마음을 자극하는 문구만큼은 잊히지 않는다.

 

'이제 학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아이의 미래 ○○학원에서 책임집니다!'

'순간의 선택에 아이의 미래가 걸려 있습니다!'

 

아이의 미래를 학원에 걸어야 한다는 내용 들이다. 홍보물을 읽고 있는데, 입학한 아이가 있는 집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학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 내용은 자신들의 학원에 아이를 보내면 이런저런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통화를 거부할 명분이 없기에 나는 그들의 말을 다 들어주었다.

 

"아버님, 요즘 학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없어요."

"그런가요?"

"그럼요, 학교 교육만으로는 아이가 좋은 성적은커녕 수업을 따라가지도 못하거든요."

 

전화로 이런 내용들이 오고 갔다. 전화를 끊은 그 후로도 그런 전화는 몇 번 더 받았다. 공교육과 사교육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해본 적이 없는 터라 갑작스런 학원 공세로 적지 않은 고민이 생겼다. 학원 측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다 해도,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도 학원에 보내야만 할 것 같았다. 다른 아이들은 학원에서 꽃날개를 달고 훨훨 날고 있는데, 우리 아이만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는 불안감도 엄습했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이 깊어졌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야 할 것인가. 이대로 버틸 것인가. 남들이 다 하는 일을 아이에게만 하지 않게 하는 것은 부모의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렇게 아이를 방치하다간 나중에 '학원 한 번 보내주지 않아 이 모양이 되었다'라는 원망을 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학교 선택한 아이, 친구들이 학원가는 시간에 열심히 놀아

 

주변의 상황을 알아보니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 학부모가 없었다. 아이 친구들도 다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학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아이가 "친구들도 다 학원가요, 나도 학원 보내줘요" 라며 조르지는 않았다. 문제는 '학원을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고민에 빠져있는 나였다.

 

그렇게 1학년 1학기도 중반에 접어들었다. 시간이 흐르자 학원 측에서도 더 이상 전화를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에게 은근히 물었다.

 

"학교 생활 할만 하니?"

"예, 재미있어요."

"공부는?"

"할만 해요."

"혹시 해서 말인데, 산수나 국어 과목 같은 거 학원 다니는 아이들과 차이는 느껴지니?"

"글쎄요? 아직은 별로 없는데요."

 

아이의 말에 나는 다행이다 싶어 큰 숨을 몰아 쉬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심 '그러면 그렇지. 1학년짜리들에게 선행학습이 무슨 소용 있겠어'라고 나 자신을 위로했다. 문제는 아이가 2학년에 올라갈 때였다. 학기 초가 되자 학원들의 공세는 다시 시작되었다. 1학년을 보낸 아이의 성적은 그래도 우수한 편에 속했다. 그 정보가 학원 측에 흘러갔는지, 학원은 아이가 성적을 유지하려면 학원을 다녀야 한다고 접근해왔다.

 

주변의 학부모들도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 것에 대해 의아해했다. 무슨 배짱으로 아이를 방치하느냐는 것이었다.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의 손을 끌고 근처의 학원으로 갔다. 학원에 가니 복도도 없는 작은 공간에 아이들이 모여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성적이 중요하지만 답답한 공간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넓고 좋은 학교를 두고 무슨 고생들이람'이라고 중얼거려졌다. 잠시 후 나온 상담교사는 나와 아이를 반기며 자랑스럽게 학원을 소개했다.

 

"아이가 학원에 오게되면 어떤 공부를 하게 되나요?"

"학교에서 하는 수업 진도를 일주일 먼저 시킵니다."

"무슨 말씀인지요?"

"학교 수업보다 일주일 먼저 선행학습을 시켜 아이들이 성적을 올려주는 겁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다른 선행학습 말고 다른 교육은 없나요?"

"성적 올리는 게 최고지 다른 교육이 있을 리 있겠습니까."

 

하, 그러했다. 나는 학원에서 실시하는 '선행학습'이라는 것이 그런 것인 줄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학원측은 '성적'에 악센트를 주었지만 나는 학원에 가면 학교 교육은 물론이고 아이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공부를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학원이 학교의 수업 진도를 일주일 먼저 시켜주는데 불과한 곳이라면 굳이 학원 다닐 이유가 있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학원을 나오면서 아이에게 물었다

 

"일주일 먼저 가르친다는데, 그래도 학원 다니고 싶니?"

"아뇨, 학교에서 다 배우는 걸요."

"아빠가 생각해도 그렇구나. 바보도 아닌데 두 번씩 배울 것까지 있겠니."

 

그날 나는 아이에게 학원과 학교 둘 중 한 곳을 선택하라고 했다. 아이는 학교를 선택했고, 나는 아이의 뜻을 지지했다. 아이와 학원과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나는 아이에게 학원을 가지 않는 대신 학교 수업 시간만큼은 장난치지 말고 충실하라고 당부했다. 아이는 아비의 당부를 잘 따라 주었으며 그 이후 학원 근처엔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홀로 서기엔 성공한 아이, 사교육으로는 어림도 없어

 

만약 당시 아이가 학원을 선택했다면 모르긴 해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은 분명했다. 나는 그때부터 학교 교육을 철저하게 믿기로 했다. 세상 사람들은 공교육이 무너졌다며 사교육 시장으로 아이들을 내몰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학부모들이 공교육을 믿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 것일 뿐, 학부모가 아이를 믿고 학교를 믿을 때 공교육은 무너져 내릴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나는 공교육을 철저하게 믿었고, 아이의 선생님들을 믿었다. 선생님도 자신을 믿고 따르는 학생에겐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 싶지 않겠는가.

 

아이의 말로도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선행학습을 해서 그런지 수업 시간에 떠들거나 장난을 치고 조는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그것은 이미 한 차례의 앞선 교육으로 인해 아이 스스로 교육에 대한 긴장감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학교 교육에 충실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교육이라는 측면에서본다면 학원보다 학교 교육이 더 필요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의 학부모들은 성적만을 요구한 채 아이들이 각종 영양소를 공급 받아야 하는 공교육 현장을 무력화시킨다. 그런 학부모들은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든 상관없이 "공교육은 물 건너갔다. 우리는 '선생님'보다 '성적 제조기'가 더 필요하다" 라고 말한다.

 

학부모들이 공교육을 무시하니 선생님들도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 문제집 던져주고 풀어보라는 말로 수업을 끝내는 선생님이 생긴다. 어떤 교실은 수면실과 다르지 않단다. 학교 교실이 잠자리로 제공되는 게 작금의 교육 현실이다. 이런 일을 누가 조장하는가. 학부모들이다. 그러면서 학교 보내야봐 시간이 아깝다 라고 말한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학원 가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부모들과는 정반대의 생각이다. 공교육을 믿는 사람과 사교육을 믿는 사람의 차이점이다. 아이들이 학원으로 가는 시간 우리 아이는 책을 보거나 놀거나, 자신만의 시간을 즐겼다. 성적만을 요구했다면 빚을 내어서라도 학원을 찾아다녔을 것이나, 나는 아이가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랐기에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

 

아이가 대학에 입학한 지 열흘이 넘었다. 아이에게 물었다.

 

"대학 생활 어떻게 할 거냐?"

"열심히 놀고 열심히 공부해야죠."

"다른 것은 알아서 할 테고, 영어는?"

"영어 수업이 세 과목이나 있어 꾸준히 해야 해요."

 

아이의 답이었다. 아이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잘 안다. 아이는 학원에 다니지 않은 대신 혼자 공부하는 법을 익혔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학원을 다녀야 한다는 요즘 대학생들. 어릴 때부터 줄곧 학원을 다니다 보니 혼자서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 생긴 현상들이다. 그러나 세상은 홀로 견뎌 나가야 할 일이 더 많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를 학원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홀로 설 수 있는 법은 일러 주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한 세월은 초등학교 입학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고작 6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6년의 세월은 아이에게 성장 비타민을 충분히 흡수한 시기라고 본다. 아이의 미래가 밝을 수 밖에 없는 이유 아니던가.


태그:#사교육, #공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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