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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불기소 처분됐다.

 

조준웅 특검팀은 13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열고 "e삼성 등 4개 인터넷 회사를 설립하고 지분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의 개입은 있었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를 비롯한 e삼성 주식매입 사건의 피의자들이 배임 행위를 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특히 이 사건은 오는 26일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따라서 이 사건에 대한 특검팀의 결론이 곧 향후 삼성과 관계된 모든 의혹의 수사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주목받아왔다. 특검팀의 불기소 방침이 발표된 직후 참여연대·경제개혁연대 등은 잇따라 논평을 내고 우려를 표명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특검팀은 "동기상 미심쩍은 부분이 있을지라도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며 수사 결과에 대해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만큼 특검팀이 이날 내놓은 A4용지 8쪽 분량의 수사결과 보고서는 상세하다. 그러나 미심쩍은 부분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의혹 1] e-삼성 지분 인수한 계열사, '정상적인 의사결정' 거쳤다?

 

특검팀은 "9개 계열사들이 정상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주식의 가치평가를 적정하게 하고, 적정가격에 이 주식을 사들였다면 피의자들이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이 거친 내부 결재나 이사회 결의 등을 '정상적인 의사결정'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예를 들어 e-삼성 지분의 75%인 240만주를 208억원에 사들인 제일기획을 살펴보자. 2000년 당시 제일기획이 한 해 동안 낸 영업순이익은 417억원. 제일기획은 그 해 순이익의 절반 이상을 사용해 e-삼성 지분을 사들였다.

 

당시 제일기획이 주식을 매입할 당시 코스닥 지수는 50~70을 맴돌고 있었다. 어느 정도 기업가치가 검증된 코스닥 등록업체들도 1년 전에 비해 주가가 약 1/4 수준으로 저평가되어 있는 상황에서 설립된 지 1년밖에 안 된 인터넷기업을 한 해 순이익의 절반을 퍼부어 매입한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한 기업이 '정상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결정한 선택이라고 믿기 힘든 이유 중 하나다.

 

이와 관련해 특검팀은 "구조본 홍보팀이 2001년 3월 27일 이재용의 지분을 계열회사에서 인수한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한지 불과 4일 만에 보도자료 내용대로 9개 계열사들이 이재용·이학수·김인주의 주식을 일사불란하게 매수했다"며 주식 처분 과정에서의 구조본 개입 가능성을 인정하기는 했다.

 

그러나 구조본의 개입을 인정하면서도 그 지시를 받은 9개 계열사들이 정상적인 판단을 했다는 모순적인 해답을 내놓은 것이다.

 

[의혹 2] 당시 적자 있다고 해서 전망 없는 것은 아니다?

 

특검팀은 또 "배임행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e-삼성 등 4개 회사의 지분을 인수한 9개 계열사에게 손해가 발생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밝혔다. 삼성그룹 9개 계열사들은 e-삼성 등 4개 회사의 지분을 시장가보다 높은 가격에 매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싸게 사들였다는 것이다.

 

특검팀은 "9개 계열사들이 e-삼성 등의 주식가격을 외부 회계법인에 의뢰해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순자산가치 평가법에 따라 주식가치를 평가하면서 동법상 최대주주할증(경영권 프리미엄)도 하지 않는 등 가장 보수적인 주식가치 평가방법을 사용했다"며 "참여연대 등 고발인들의 '미래가치를 반영하지 않고 높은 가격에 매수해 주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e-삼성, e-삼성 인터내셔널은 설립 초기의 적자를 극복하고 각각 2002년, 2004년부터 흑자를 실현하고 있다"며 "이 전무의 손실을 메워주기 위해 계열사들이 인터넷 기업들을 인수했다는 고발인들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그러나 9개 계열사들이 e-삼성 등의 지분을 매입한 시기는 2001년으로 당시 시큐아이닷컴을 제외한 e-삼성, e-삼성 인터내셔널, 가치네트는 상당한 적자상태였다. 당시 메릴린치 증권은 삼성SDI 보고서를 통해 "e-삼성 인터내셔널과 같은 벤처 회사는 현재 순자산가치에서 30~40% 팔리고 있다"며 삼성 계열사들이 e-삼성 주식가치 산정방법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었다.

 

참여연대의 고발장에 따르면 이 회사들의 지분을 인수한 제일기획, 삼성SDS 등 계열사들의 지분 취득원가와 2004년말 공시된 장부가액 또는 순자산가액을 비교해보면 계열사들은 불과 3년 만에 380억원 이상의 손실을 기록했다.

 

반면 이 전무는 e-삼성 등 인터넷 기업들에 모두 381억원을 투자했지만 지분 처분을 통해 약 402억원의 매각대금을 받아 약 22억원의 차익을 얻었다. 결국 '자신의 회사에 손실을 입히고, 제3자 혹은 자신에게 이득을 안겨준다'는 일반적인 배임혐의의 정의를 생각했을 때 명백히 배임에 해당된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특검팀은 이에 대해 "가치를 확정할 수 없는 비상장주식을 인수한 기업들의 손실액을 산정할 수 없고 e-삼성 등은 적자에서 흑자로 가는 변곡점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며 당시 계열사들의 인수가 경영적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e-삼성 수사결론, 특검 스스로 자신의 존재 의의 부정한 꼴"

 

e-삼성 주식매입 사건의 고발인인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도 동일한 의혹을 제기했다.

 

경제개혁연대의 김상조 한성대 교수와 김영희 변호사, 그리고 박원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이날 오후 1시 30분 특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검의 이번 수사결과 발표는 40일 남짓 이후에 발표될 수사대상 전체에 관한 수사결과를 예고하고 있다"며 "우려를 넘어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선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구조본의 개입을 인정하고도, 각 계열사들이 이 전무의 지분을 그들 방식의 절차대로 인수했기 때문에 혐의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재벌 총수의 불법 부당행위에 대해 특검조차도 일반 검찰수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배임혐의는 실체적 검증과 절차적 검증 두 가지 검증과정을 모두 통과해야만 무혐의 처분을 할 수 있는데, 특검은 이 같은 방법을 모두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교수의 말이다.

 

"특검은 비상장 주식가치에서 실체적 검증을 포기했다. 실질 손실액을 계산하지 않고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사회 개최와 관련해서도 스스로 모순되는 이야기를 했다. 구조본이 개입했다면서 각 계열사 이사회가 정당한 절차를 거쳤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한국 기업의 경영 현실에서 구조본이 개입하면 사실상 개별 기업의 '이사회 절차'는 무의미하다. 결국 특검은 실체적 검증과 절차적 검증 모두 심각한 오류를 저질렀다."

 

특히 김 교수는 비상장 주식의 가치를 산정할 수 없다고 한 특검의 결론에 대해 "비상장 주식 가치 평가방법을 확정하기 위해 다른 회계법인이나 전문가들로부터 도움을 얻기는커녕 '기존 판례에 없기 때문에 나도 같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밝힌 것은 특검 스스로 존재 의의를 부정한 것"이라고 성토했다.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처장은 "김용철 변호사가 'e-삼성 지분을 계열사가 인수한 것은 손실을 메우기 위한 조직적 판단이었다'고 범죄 동기를 증언했음에도 수사 과정과 결과에서 이것이 배제된 것은 유감"이라며 "앞으로 특검이 남겨둔 사건에도 이 같은 점이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또 "특검이 공소시효를 앞두고 항고 기회를 주기 위해 미리 불기소 여부를 밝혔다는데 공소시효는 검찰의 기소 이후에만 정지되는 것이지 고발인들이 항고한다고 해서 정지되는 것이 아니다"며 "이 같은 사실을 모를 리 없는 특검이 터무니없는 논리를 펴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비판했다.

 

명백한 인식 차... 에버랜드·서울통신기술·삼성SDS 수사결과도?

 

 

그러나 조준웅 특별검사는 "9개 계열사의 이사회에 흠결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전제하고 수사했지만 구조본이 어떻게 나머지 계열사들의 이사회에 관여했는지 객관적 증거가 없다"며 "어떤 자료를 가지고 판단할 때는 자기 논리에 적용할 수 있다"며 참여연대 등 고발인들의 주장에 오류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또 "단지 이재용이 이 회사들의 대주주일 뿐이지 이 회사들은 다 삼성의 계열사인데 단독으로 운영하는 것이 곤란해 계열사들이 나눠서 하게 된 것"이라며 "제일기획이 삼성물산의 지분을 인수했을 때도 배임행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볼 때 비록 특검팀이 e-삼성 사건과 나머지 에버랜드·서울통신기술·삼성SDS 사건은 별개의 성격이라고 설명했지만 나머지 사건들에 대해서도 '절차적 법리성' 등 객관적 증거 중심의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한편, 특검팀은 이날 오후 2시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학수 부회장을 소환했다. 소환이유는 삼성그룹과 관련된 의혹 전반을 수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일각에서는 'e-삼성 사건' 수사결과의 물타기 용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소환조사에 앞서 기자들에게 별 다른 말 없이 8층 조사실로 직행했다.

 

이 부회장의 갑작스런 소환 소식에 일부 기자들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특검팀이 이번 불기소 처분에 대한 비판여론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특검팀은 지난 2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특검의 수사 의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한 다음날 이재용 전무를 소환해 비판여론을 '물타기'하려는 것 아니냐는 구설수에 휩싸인 바 있다.


태그:#삼성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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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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