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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때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선후보의 정무특보를 지냈던 김헌태씨가 '지난 대선때 문국현 현상'에 대한 의미와 한계를 짚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왔습니다. 이 글은 오늘(14일) 오후 3시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리는 사람과 국가 포럼 세미나에서 발표될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결과는 참혹했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화 세력, 또는 개혁세력, 또는 진보세력 이른바 비한나라당 세력은 사실 상 완패했다. 투표에 참여한 국민의 3분의 2가 보수후보를 지지한 현실은, 이런 저런 핑계를 만들어 스스로 위로할만한 여지가 없는 결과이다.

 

지금은 총선정국이다. 당연히 공천 얘기가 정치권을 가득 채운다. 총선의 의미가 가볍지 않은 만큼 모든 사람의 관심은 당면한 큰 싸움에 몰린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더욱 더 암울한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예견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총선 패배 그 이후의 현실이 지금보다 더 가혹할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지난 수년간 민주화 세력이 스스로 만들어왔던 바로 그 패배가 진행 중인 상황이며, 총선 이후에도 더 아픈 현실 속에서 계속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아직 바닥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지금 개혁진보 진영은 '어떻게든 잘하면 여당의 개헌선 확보를 저지할 수 있을까?', '우리 당은 다섯 석 아니 한 석이라도 당선자를 내놓을 수 있을까?'와 같은 생존에 대한 막연한 의지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사실 개혁진보 진영의 패배는 짧게는 대선 수개월 전, 길게는 이미 총선 직후부터 많은 사람에 의해 예견되어온 것으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끝이 없어 보이는 양극화 심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 보수세력의 총결집, 지역연대의 해체, 특정 지역에 대한 과도한 집착, 정체성의 혼란, 리더십의 부족 그리고 진보정당 내부의 복잡한 파벌주의 등 한 가지라도 가볍다 말하기 어려운 수많은 징후들이 일찍부터 나타났다. 

 

그러나 정작 개혁진보 진영 내부에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마나 내놓았던 대운하나 BBK에 대한 맹공 등과 같은 대응책, 그리고 '대통합'이라는 화두를 내걸고 당을 합쳤다 깼다 하는 모습들은 별 소용이 없었거나,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데 일조했다는 것을 결과적으로 확인했을 뿐이다.

 

그래도 개혁진보 진영은 나름대로의 희망의 끊은 놓지 않았는데 지나놓고 보면 원인에 대한 철저한 성찰과 대책은 없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근본적 문제에 대한 접근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민주당과의 통합과 같은 곁가지를 붙들고 있었거나, 단일화와 같은 기술적 접근에 모든 기대를 거는 모습, 그리고 이명박 후보의 개인 비리를 염두에 둔 한방주의에 매몰되어 혼자 웃고 혼자 아쉬워했을 뿐이다.

 

민주화 가치의 사회적 효용의 상실, 그리고 양극화의 심화에 따른 민생불안, 비정규직 문제를 중심으로 한 고용불안 등에 대한 지적은 끊임없이 계속되었지만, 개혁진보 진영 내부에서는 어떤 해법도 비전도 제시되지 못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내부의 고질적, 구조적 문제를 풀 수 있는 계기도 동력도 없었기 때문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대중적 층위에서는 '익숙해지기에는 너무 고달픈 현실', '쌓일 만큼 쌓인 상태에서의 정치에 대한 불만', '뭔가 바뀌었으면 하는 막연한 바람' 그리고 '현 집권세력에 대해 더 이상 기대할만한 것은 없다는 실망감' 속에서 분노가 쌓여갔고,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가 내세운 '성장 중심주의'에 대한 기대감으로 여론은 쏠려 들어갔다.

 

사실 민주화 세력, 또는 개혁진보 진영은 최악의 여건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새로운 방향제시를 할 수 있는 내용 자체가 고갈된 상황이었다. 또한 새로운 상상력을 대중들에게 불어넣어 그들을 흥분시키지도 못했다. 지난 10년 간 외쳐온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논리나, 비타협적 원조진보 논리는 더 이상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내용을 만들 능력도, 내용을 도출해 낼 구조도 한계에 다다른 말라버린 샘과 같은 모습이 바로 개혁진보 진영의 모습이었다.

 

지난 대선 '문국현'이라는 돌발적 아이콘의 생장은 바로 이러한 '민주화 세력'들의 상상력의 고갈 지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문국현발 메시지를 요약하면 '사람중심 진짜경제', '사람이 희망이다', '비정규직 철폐', '신자유주의 반대', '학습과 일자리 복지', '건설부패 및 재벌비리 척결', '투명한 시장주의' 등을 들 수 있다.

 

문국현 패러다임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체로 사민주의에 가까워지기보다는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고, 개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가운데에서도 궁극적으로는 공동체의 성장을 지향하는 미국식 '자유주의'에 가까운 성격을 보인다. 방향만으로는 좌향성을 띄지 않으나, 사회경제적 주류담론이나 기득세력과는 비타협적적 특성이 강해 급진성을 띄는 만큼 급진적 자유주의로 부를 수 있거나, '고용' 문제 등에 대한 접근은 계량적 사민주의 즉 제3의 길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진보적 자유주의'의 틀로 부를 만하다.

 

 

한국 정치구조 내부에서 문국현식 접근은 틈새시장과도 같았다. 특히 개발독재라던지, 성장 중심주의와 같은 보수담론을 지지하지 않는 개혁진보 지향적 대중들에게는 특히 그랬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그 동안 기존 우리 사회의 왜곡된 경제구조나 기득권 구조에 대한 근본적 해법은 없이, 자본의 세계와 논리 즉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면서 불공정한 토대 위에 무한경쟁을 벌이도록 함으로서 '승자독식'의 흐름을 방치했다. 이런 상황에서 빈곤계층과 차상위계층에 대한 지원을 통한 선순환 구조나 복지는 말 그대로 '밑빠진 독'이 될 것은 뻔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지난 대선에서의 '문국현 프로젝트'는 기존의 정치권과는 차별성을 가지는 새로운 선택지를 내놓는 작업이었다. '진보적 자유주의'라고 불릴 수 있는 이 노선은 문국현 후보 스스로 완주하여 최종적으로 '5.8%'라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결과치를 내놓으면서 승패를 떠나 향후 한국 정치에서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일정 수준 확인했다고 본다.

 

결국 지난 대선에서의 ‘문국현’ 현상의 의미는 상상력이 고갈된 개혁진보 진영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하나의 실험과 노력이었으며, 결과적으로는 대중적으로도 일정 수준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문국현의 한계-소통과 신뢰의 부족, 그리고 정체성 혼란

 

문국현 프로젝트가 '내용적 대안 찾기'라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한다 해도 그 현실적 한계는 뚜렷했다. 무엇보다도 모든 문제의 시작이 ‘급조’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그리고 '급조'가 불러온 문제점은 지난해 8월 23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밝힌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속도'만의 문제가 아닌, 거의 전방위적으로 문제를 드러냈는데 소통의 부재는 당연히 '신뢰의 부재'를 가져왔다.

 

사실 초기에 우려했던 메시지의 전달 속도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나름대로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킨 점 등을 고려하면 짧은 시간 내에 물리적 한계를 일정 수준 극복했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하다. 

 

다만 보다 본질적으로 '특정 정치인이 오랜 동안 선택의 과정을 통해 대중과 호흡하고 누적된 교류를 기반으로 가치를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 법칙은 여전히 유효했다. 문국현 후보는 그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웠으며,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한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지적은 지난 대선에서 '문국현' 후보의 주요한 한계를 지적한 것임을 부정하기 힘들다. 이 점에 대한 문제의식을 좀 더 심각하게 고려하지 못한 점은 분명한 오류였음을 자인할 수밖에 없다.

 

소통과 신뢰의 문제는 대중과의 관계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캠프 내부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더욱 더 큰 문제가 되었으며, 아예 서로가 말하는 것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거나, 캠프와 조직 간 소통이 끊겨버리고 적대하는 것은 물론, 근본적으로 후보와 핵심참모 간에도 두텁고 자연스러운 인간관계에 기반한 '신뢰'는 결국 형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소통과 신뢰'라는 측면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된 것은 아마도 기존의 정치세력 구체적으로는 '개혁진보' 세력과의 관계설정 문제이다. 다만 이 문제는 기능적이거나 현상적인 것이 아닌 좀 더 본질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즉 '독자성'의 문제를 말한다. 문국현 후보 개인은 일정 수준 개혁진보적 정체성과 역사성을 가진 이들과 교류를 해왔다 해도, 그것은 인간관계였을 뿐 '정치적 귀속의식'이나 '동질성'과 같은 차원은 아니었다. 이 문제는 문국현 스스로 정치를 시작하면서 자신을 기존 정치구도에서 어느 곳에 '위치지움' 하느냐의 문제인데 이는 대선 내내 관심의 대상이었던 '단일화'에 대한 대응과도 직결된다.

 

'문국현'의 위치 설정 문제는 사실 대통합신당, 또는 민노당이라는 기존 정치세력과의 관계라 볼 수도 있지만, 내용적으로도 복잡한 측면이 있다. 즉, 비타협적 급진성과는 별개로, 원래의 정치적 노선 자체가 대선 이후에도 밝혔던 '깨끗한 자본주의'라는 구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치학적 시각에서 보면 보수 프레임 내부에 둘 수 있는 지점을 가진다는 것이다.

 

실제 문국현 프레임의 핵심 내용인 투명한 시장경제와 건설비리 철폐 등은 좌우의 정향을 가지는 문제가 아닌 '합리성'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남북 문제 나아가 외교문제 등을 한국의 진보담론의 주요한 축 중 하나인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접근하기보다는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 역시 문국현 패러다임이 진보라기보다는 자유주의적 보수 프레임에 더 가깝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따라서 문국현 후보 스스로 기존의 민주화 세력 또는 개혁진보 세력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것을 부정한 측면이 컸다. 대선 기간 내에 '제3의 미래 세력'이라고 자리매김 하는 것은 이러한 스스로의 정체성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또한 결과적으로 민주화 운동의 경험적 주체들과도 교류 이상의 정치적 동질성을 느끼고 있다고 보기 어려웠으며 이러한 신뢰의 부족은 단일화 논의에 대한 경직성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자신의 독자적 정체성에 대한 지나친 확신은 두 가지 측면에서 큰 문제를 갖게 된다. 즉, 내용적으로 자유주의 프레임도 보수라고 할 수 있으나 한국 정치 구조에서는 한나라당이 가지는 노선적 특성을 볼 때 반특권적 개혁성을 가지므로 자신의 위치를 개혁진보 진영에 두는 것은 당연하다는 점이다. 총체적 맥락에서의 한국 정치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부족하면 현실 정치에서 '적'과 '동지'를 구분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초기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이미 '개혁진보'의 위치에서부터 출발시켰다는 점이다. 핵심적 참모나 동지집단의 구성이 이들 개혁진보 진영의 인사들로 구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히스토리가 결여된 즉 정치적 뿌리가 없다는 약점을 80년 대 민주화 운동의 주체들 또는 일부 온건적 노동계 인사들과 이미지를 접목시킴으로서 보완했다. 그것이 비록 참모들이 기획한 선거전략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채택한 순간 자신의 정체성은 이미 자리매김 된 것이며, 이후 그러한 자신의 위치 설정은 지지층의 특성 등을 감안할 때 부인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는 이후에도 현실 정치 상황과 역사적 맥락 속에서 개혁진보 진영의 정체성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아무리 실패한 정치세력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부담되었다 해도 큰 정치적 맥락에서 자신의 위치가 비보수, 비한나라당 진영에 속한만큼 한계를 극복하는 세력이라고 주장하면서 기존 개혁진보 진영과의 연대에 대해서는 유연한 입장을 가졌어야 했다. 기존의 어떤 정치세력과도 관계없는 독창적 제3세력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 정치에서는 유권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무모한 실험정치가 되며 이는 출마 초기 심상정 의원이 지적한 개인 문국현 즉 '착한 CEO'론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한국의 개혁진보 진영이 과거에 안주한 채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고갈된 상황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비록 개혁진보 진영이 대중적 지지를 받아낼 수 있는 미래비전 제시에 실패했다고 해서, 그들이 가진 '민주화의 공'이나, 그동안의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했던 노력'까지 부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진보적 자유주의'로 요약될 수 있는 자신의 컨텐츠를 기존의 개혁진보 진영의 새로운 내용으로 접목시키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대시키는 것은 당연히 선택할 수 있는 전략적 방향이다. 

 

다만, 이러한 관점이 지난 대선 상황에서 반드시 물리적 단일화를 해야 하는 당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준비되지 않은 정치세력과, 한계를 노정시킨 정치세력 간의 단일화라는 것이 대선승패에 영향을 미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합쳐서 30%도 채 안되는 지지도를 가진 두 후보가 '정책대연합'을 할만한 시간적 기회를 놓쳐버렸다면 끝까지 '새로운 가치'를 내걸고 완주하는 것도 올바른 선택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부연하자면 지난 대선에서 출마 직후부터 내부적으로 고원 등과 기획했던 '정책대연합' 또는 '가치대연합'을 이루지 못한 것은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차피 대선 흐름의 큰 줄기상 단일화 자체가 결과를 바꿨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또한 아무나 한 명이 나가자는 가위바위보 식의 물리적 단일화에 대한 미련도 없다.

 

그러나 9월 말부터 공개적 토론을 통해 신자유주의, 비정규직, 재벌 및 건설부패 문제 등과 같은 사회경제적 핵심 이슈를 두고 논쟁하고 이를 근거로 '국민과의 약속'이라는 이름의 거대 강령 하에 가치 단일화를 만들어 냈다면 패배했다 하더라도 보수와 개혁진보 진영 간에 명확한 사회적 '전선'을 그려낼 수 있었고 향후 한국 정치의 논쟁 축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문국현의 가치가 독창적이고 창조적이라 할지라도 우리 사회의 역사적, 정치사적 맥락에서 동떨어져 존재한다면 어차피 현실 정치에서의 성공 가능성은 희박하다.  특히 적어도 대선 이후 총선을 앞두고는 '문국현'과 '창조한국당'은 제 3지대에서의 새로운 정치세력이든, 기존 정치세력과의 연대든 고립된 위치에서 벗어나야 했다. 현실 정치에서 개인 '문국현'과 그 팬클럽의 한계는 명확할 뿐더러, 존재하는 다른 정치적 가치를 인정하고 정치적으로 제휴하지 않게 되면 그것은 그야말로 사당이거나, 시민운동이나 사회운동의 수준을 벗어날 수가 없다. 물론 사회운동이 때로는 그 시점에서는 좌절되지만, 시간이 흘러 새로운 싹을 틔우는데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다만 그것은 현실 정치가 아니다. 

 

 

개혁진보 진영의 새로운 노선과 세력의 재건

 

총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어차피 개혁진보 진영은 일단 생존을 목표로 선거를 치룰 수밖에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진행되는 패배를 되돌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 물론 선거까지 아직 얼마간의 시간이 남았으니 상황이 호전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실용정부에 대한 상대적으로 낮은 지지도, 그리고 인수위의 무리한 정책발표 등도 호재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다수 의석과 대중적으로 경쟁력 있는 인물군을 일정 수준 보유한 통합민주당의 경우, 제1야당의 위치에서 선거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한다면 적어도 20~30석 정도를 더 확보할 수 있는 가변성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현 상황으로는 희망을 가질 만큼 좋아 보이지 않는다. 만일 개혁진보진영 아니 야당의 의석을 모두 합해 재적 3분의 1 즉 100석을 못 만든다면, 독자적 본회의 소집도 안 될 테니 본회의를 열기 위해 장외투쟁을 해야 하거나 무소속 의원들을 일일이 설득해야 하는 눈물겨운 시간이 시작된다. 그것은 긴긴 패배의 본격적 시작을 의미한다.

 

개혁진보 진영의 내부는 긴 호흡으로 총선 이후 새로운 전열 정비를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새로운 세력과 노선을 준비하는 데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대한 대안과 처방을 제시할 수 있는 유의미한 내용과 규모를 가진 정치세력이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패배의 근본적 원인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러한 원인에 대한 근본적 처방을 내놓지 못한다면 패배의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총선 이후의 개혁진보 진영은 대중들에게 이제 본질적 차원에서의 해법을 내놓아야 하며, 그에 대한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

 

이명박 시대는 지금의 한국 대중들과 상당한 규모의 충돌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한국 사회는 적어도 내적으로 경쟁을 극대화 할만한 사회 통합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불안과 불만이 팽창해 있는 현 상황에서 새로운 정부 역시 칼날 위에 서있다는 것이다. 경쟁이 꽃피고 시장이 제대로 작동되어 경제가 좋아지기 전에 먼저 중산층과 서민의 부담이 커진다면 그것을 참아낼 상황으로 보기 어렵다. 게다가 제대로 된 시장주의도 아닌, 부유층과 특권층의 기득권이 강화되는 흐름으로 나타난다면 계층 간 갈등과 같은 통합성의 위기가 최고조에 달할 가능성이 있다. 참여정부가 그랬듯이 이미 날카롭게 부딪히고 있는 각 사회적 주체와 계층 간의 이해관계가 단기간에 조정되기란 쉽지 않다.

 

또 '이해'를 중심으로 뭉쳐있는 보수진영의 계약관계 역시 위태로워 보인다. 보수진영 내부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만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물가를 올리면 서민들이 고함을 지르고, 물가를 잡고 있자니 기업이 불만을 토해내는 식의 상황을 말한다. 우리 사회가 외환위기 이후 극도의 전 사회적 양극화 상황에 놓여있다는 점은 정치학적으로 보수정부의 운신의 폭이 좁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런 점에서 전반적 환경이 개혁진보 진영에 불리하다고만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진보 진영 내부 또는 각 세력이 과연 패배를 종료시킬만한 내적 동력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호남 의석 비율이 3분의 2를 차지할 통합민주당, 그리고 다섯 석을 얻기도 벅차 보이는 민노당과 진보신당, 그리고 의석을 낼 지도 불투명한 창조한국당이 총선 이후 어떤 형태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는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모습만을 볼 때는 물리적 지지기반인 호남에 안주하거나, 운동권 수준의 고립적 정통성을 주장하거나 또 나 홀로 독창성을 주장하는 모습이 더 쉽게 그려진다.

 

개혁진보 진영의 각 주체들은 지난 대선과 이번 총선의 승리는 고사하고, 규모를 유지한 채 적정한 패배를 하는 것조차 실패했다. 대선 전에 차별성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변화했어야 하는 기회는 이미 놓쳤다. 이제 인위적으로 물리적으로 강제적으로 구조조정 되는 상황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오히려 지금부터는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통합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할 시기로 진입하고 있다.

 

민주화시대는 예전에 갔다. 호남만으로도 안되고, 충청도가 돌아올 것 같지도 않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 시대도 아니다. 살림들도 조촐해 진다. 무엇을 해야 할까?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실수와 위기만을 받아먹고 생존하는 것은 궁색하다. 개혁진보 진영은 새로운 정체성과 가치를 만들고, 이러한 원칙 아래 신뢰할 수 있는 규모의 새로운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가치는 진보적 자유주의 일 수도 있고, 사민주의일수도 있다. 또 동거의 형태일 수도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새로운 가치에 대한 모색을 하는 과정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제 그 마지막은 통합을 목표로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반면, 독자생존을 위해 진지를 구축하고 멀고도 먼 혁명의 그 날을 꿈꾸는 것이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문국현 대표와 창조한국당은 진보의 재구성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라고 본다.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한국 정치의 큰 맥락을 이해하고 호흡하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가치가 힘의 원천이기는 하나, 힘없는 가치 역시 무의미하다. 개혁진보 진영의 새로운 세력이 구축될 때, 내용적 우월성을 확보하고 선택받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물이 말랐다. 총선 이후 살아남은 얼마 남지 않은 자들은 새로운 개혁진보 세력을 출범시킬 마중물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


태그:#대선, #문국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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