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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살짝 스치고 지나간 자리, 바람 한 점 없는 따스하고 해맑은 봄날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영상과 영하를 오르내리는 바람에 꿈쩍도 않던 땅 밑 손님들이 이제야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합니다. 어젯밤엔 개구리들이 봄밤을 자근자근 씹어내며 생명의 신비를 여는 설렘으로 한 잠도 못 잤습니다.

 

개구리 소리가 들리다 그치고 그치다 또 들리곤 합니다. 여름 개구리 소리는 와글와글 시끌벅적하여 풍물장이 서는 시골장터 같지만, 봄날의 듣는 소리는 조신하게 앞가슴을 풀어헤칩니다. 땅 속을 조금씩 흔들며 봄바람을 일으켜 세웁니다. 그만큼 봄날의 개구리 소리는 가녀린 숨소릴 조금씩 토해냅니다.

 

옛날 할아버지들은 '개구리가 맹자를 읽기 시작한다'했습니다. 그래서일까. 오늘 한낮 개구리 소리에서 두런두런 글 읽는 소릴 듣습니다. 또 어린시절 코를 흘리며 어머니 앞에 무릎 꿇고 한글을 처음 배울 때 목소리가 환청 되어 귓가를 맴돕니다. 그런가하면 아기가 젖을 달라 칭얼대는 소리 같기도 합니다.              

                                                                                                            

감자 눈을 따다 카메라를 들고 일어나려니 일하다 말고 어딜 도망가느냐는 옆지기의 눈총이 따갑습니다. 봄을 일으켜 세우는 소릴 듣고 앉아 있자니 엉덩이가 들썩거려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 소리는 내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떨림이며 놀라움이고 환희입니다.

 

요새는 시골에서도 개구리 소리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 소리는 분명 개구리 소리입니다. 산 밑 뜰 밖 샘터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우물 속엔 개구리 알들이 가득합니다. 해맑은 봄볕 아래 반들거리는 개구리 알들은 만지면 금세 터질 것만 같습니다.

 

개구리들이 놀랄까 조심스레 두 손에 담아봅니다. 미끈미끈 호로록 이내 흘러내립니다. 마치 젤처럼 엉켜있는 점액질 속은 검은 깨알 같기도 하고 잘 익은 포도 알, 구슬 풍선을 닮았습니다.

 

 

도롱뇽도 개구리 알 옆에다 동그랗게 알을 낳아놓았습니다. 알들이 샘물 속에 똬리를 틀고 조금씩 움직거리는 모습이 참 신비스럽습니다. 놀라운 광경에 목울대가 저절로 들먹거립니다. '와, 세상에! 고맙다' 소리가 자꾸만 튀어나옵니다.

 

무엇이 고맙단 말인가, 따사로운 봄날에 자연이 주는 이보다 더 귀한 선물은 없겠기 때문입니다.

 

도롱뇽은 제근, 꼬리치레, 네반가락, 고리 등 환경부 지정 특정 생물로 청정 환경 가늠자라 그만큼 귀한손님입니다.                 

 

도롱뇽 어미는 어디에 있을까, 두리번거렸으나 보이질 않습니다. 야행성이니 보일 리가 없습니다.

 

그 때입니다. 알 밑에서 꼼지락거리는 낌새가 보입니다. 모래 속을 톡톡 헤집는 순간 도롱뇽 어미가 화들짝 튀어나옵니다. 다리가 네 개, 틀림없는 물 속 도마뱀처럼 생겼습니다. 암컷 도롱뇽은 짝짓기가 끝나면 수컷이 언제냐 싶게 아랑곳없이 알들을 지키며 혼자 살아갑니다.

 

개구리와 도롱뇽 알을 구경하느라 많은 시간을 샘터에서 보냈습니다. 감자 눈을 따다 소식이 없으니 이 사람이 미쳤나 하겠습니다. 일상이 늘 보잘 것 없는 시골 생활이지만, 봄을 열고 일어나는 우물 안 풍경과 작은 생명들의 꼼지락거림이 신기하기 그지없습니다.

 

봄이 오는 소리가 예서제서 감지되지만 개구리 소리는 봄을 일으켜 세우는 마지막 합창입니다. 개구리가 한 번 입을 벙긋거릴 때마다 작은 생명들이 움직거리고 세상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개구리 성화에 못 이겨 달래, 냉이, 꽃다지는 물론, 급기야는 개나리 진달래 버들강아지도 눈을 뜨고 다투어 피어납니다.

 

따사로운 봄볕 아래 샘물이 퐁퐁 솟아오르고, 점점이 들려오는 속삭임에 봄이 축복처럼 성큼성큼 다가서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 농촌공사 전원생활, 네오넷코리아 북집, 정보화마을 인빌뉴스에도 함께합니다.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이야기를 클릭하면 고향과 시골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태그:#개구리알, #도롱뇽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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