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숫제 조폭들의 협박 수준이다. "끝내 자리를 고집한다면 나로서도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낱낱이 공개할 수밖에 없다." 한 나라의 문화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이 17일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지난 한 주 우리 사회는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된 공기업과 정부 산하기관장들의 자진사퇴 여부를 둘러싼 공방으로 시끄러웠다. '나가라' '못나간다'. 마치 저잣거리의 자리 뺏기 다툼 같은 볼썽사나운 모습이 대한민국 정부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다. 새로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자신들과 '코드'가 맞지 않는 기관장들에게 막무가내로 "나가라"고 윽박질렀다. 당하는 사람들은 "임기가 남아있는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가느냐"며 버텼다. 그러자 정권 측에서는 기관장들의 업무실적뿐 아니라 개인 비리까지 조사해서 '내몰겠다'는 방침까지 일부 언론에 흘렸다. 일부 언론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런 초법적 공세에 가세했다. 정권 측이 제공한 것인지, 스스로 작성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축출 대상 기관장 리스트, 이른바 '살생부'를 공공연히 유포시키면서 기관장들을 압박했다. 급기야 이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조폭 두목의 입에서나 나올 법한 '험한' 말들을 쏟아놓기에 이르렀다. 도대체 이 나라에 '법'이 존재하는가? 이명박 정부는 '법'을 수호할 생각이 있는가? 단지 '이전 정권이 임명한 기관장'이라는 게 사퇴의 이유가 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김장수 전국방장관,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장관은 왜 불러들이는가? 2006년 기관장 임기 보장 '공공기관법'에 한나라당 의원 대부분 찬성 지금 이명박 정부가 내몰려고 하는 정부 산하기관장들은 2006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에 의해 임기가 보장돼 있다. 이 법은 28조 1항에 '기관장의 임기는 3년으로 하고, 이사와 감사의 임기는 2년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25조 5항에는 '공기업의 장은 업무를 게을리하거나 경영실적이 나쁜 사례를 제외하고는 임기 중 해임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돼있다. 업무 수행과정에서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기관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 이 법의 취지이다. 기존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과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을 통합해서 만든 이 법은 공기업과 정부 산하기관 임원 임명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제정됐다. 임기 보장 외에도, 기관장과 임원의 추천·심의 과정에 특정인의 전횡이 통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 특징이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당시 이 법 제정에 대부분 찬성했다. 2006년 12월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나라당 소속 주호영 의원이 국회 운영위원장 직무대리 자격으로 법안 심사보고와 제안설명을 했고, 이어진 표결에서 한나라당 재석의원 83명 중 76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한 한나라당 의원은 단 2명뿐이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김형오 의원은 지난 1월13일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정부 산하기관과 공기업 임원들의 임기는 존중해주는 것이 상식이라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과 함께 모두 사퇴하는 제도' 총선공약으로 내걸라! 무엇이 '상식'을 뒤집은 것일까. 막상 권좌에 올라보니 마음이 달라졌나? 공천작업이 본격 국면에 돌입하니 낙천자들을 배려해줄 '자리'가 그렇게도 절실했나? 차라리 그렇다고 고백하는 것이 솔직한 자세다. "새 정부와 가치관과 철학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일을 하느냐"라는 그렇듯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문제의 본질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래도 '철학, 가치관' 운운하는 명분을 고수하고 싶다면 방법은 딱 하나가 있다. '앞으로 공공기관장 임기를 보장하지 않겠다'라는 것을 총선공약으로 내걸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 18대 국회에서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밟아 '임기보장' 조항이 없어진다면, 물론 이명박 정권이 임명한 기관장들도 5년 후에는 모두 남은 임기와 상관 없이 대통령과 함께 물러나야 한다. 그렇게 제도화하는 것이 '순리'이고, '상식'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월 25일 온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한 취임선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법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공공기관 임원들의 임면에 관한 절차는 엄연히 현행 법에 규정돼있다. '법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버젓이 살아있는 법을 무시하고 인사문제를 저잣거리 싸움판 식으로 몰아간다면 나라의 품위가 망가지고 국민이 불안해진다. 너희가 '법치주의'를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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