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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산수유 보러 갈까?”

 

“학교에 가야 하는데요?”

“예식장에 가야 해요.”

“친구와 약속이 있어요.”

아이들 셋 모두가 이유가 있었다. 짝사랑의 서러움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품안의 자식이라고 하였던가? 이제는 모두 다 컸으니, 이해해야 하는 줄은 안다. 그렇지만 서운한 마음을 주체하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중학교 3학년인 막내마저 단호하게 거절하게 되니, 더욱 더 그렇다. 처연해지는 감정을 주체하기 어렵다.

 

노란 유혹
노란유혹 ⓒ 정기상

“나밖에 없지요?”

 

집사람의 말이다. 마주 보고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이들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어느 사이에 아이들에게 재미없는 존재가 되고 만 것이다. 아직도 생각만큼은 푸르기만 한데, 아이들이 그 것은 인정해주지 않으니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란 말인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은 냉엄하다.

 

집을 나서니, 햇살이 화사하다. 황사가 있을 것이란 예보와는 달리 맑은 하늘이 그렇게 높을 수가 없었다. 우울한 마음이 싹 가신다. 감정이란 참으로 종잡을 수가 없다. 금방 가라앉아 있던 마음이 언제 그러했는지 모를 정도로 밝아진다. 투명한 봄 햇살 따라 기분이 상승되니,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상쾌한 기분으로 달리게 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틱낫한 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앉아 있을 때 앉아 있다는 것을 알고, 걸을 때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먹을 때에는 먹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일상을 새롭게 만들 수 있다고 하였던가? 단순한 말 같지만 음미하면 할수록 그 의미를 반추할 수 있게 된다.

 

흐르는 물
흐르는물 ⓒ 정기상

남원을 지나 순창으로 향하는 도로에서 터널을 통과하니 구례다.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이 노란 산수유다. 4차선 도로 양 옆으로 심어져 있는 나무들이 일제히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그 꽃이 어찌나 노란지 온통 노란 세상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노란색으로 물들여지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노란 색깔이 되어버린다.

 

산수유

 

노란 꽃 노란 세상

흔들흔들 나도 노랑

 

은밀하게 깊은 곳

숨 쉬는 빨강이여

 

묻히니

빛나는 별들

밝아지는 새 세상

(자작시)

 

산동에 들어서니, 온통 노란 세상이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노란 색깔이 묻어나니, 세상살이 근심걱정이 한 순간에 사라진다. 산사에도 노란 산수유요, 하나님을 모시는 교회에도 노란 세상이다. 산수유는 모든 분별을 없애버렸다. 하늘 아래 모두가 하나라는 사실을 실감나게 해주고 있었다.

 

은은한 향
은은한향 ⓒ 정기상
앞에도 노란색이요, 뒤로 옆도 노란 세상이니, 구별이 되지 않는다. 너도 노랑, 나도 노랑이니, 무슨 차별이 필요하겠는가?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즐거워지고 흥겨워지는 것이다. 노란 색은 가볍다. 보기만 하여도 둥실 떠오르는 기분이다. 파란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으니,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겠는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지리산의 싱그러운 산채 나물을 반찬으로 점심을 먹게 나니,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었다. 직접 채취하여 만든 것이어서 그렇게 맛이 좋은 모양이다. 음식이 먹고 난 뒤에도 그 향이 아주 오래 남았다. 노란 산수유에 취하여 산채로 입맛을 돋우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벌 분주한
분주한 ⓒ 정기상

아이들의 거절로 인해 처연해졌던 마음은 어디론지 사라져버렸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의 노란 산수유에 취하다 보니, 다른 것은 모두 다 잊어버릴 수가 있었다. 구례 산수유 꽃 축제가 3월 20일부터 열린다고 준비에 한창이었다. 노란 축제가 사람들의 생활에 큰 빛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였다. 노란 세상에 푹 젖을 수 있어 좋았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남 구례 산동에서(2008.3.16)


#산수유#구례#향#노란#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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