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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른의 로이스(Reuss) 강은 피어발트슈테터(Vierwaldstatter) 호수의 서쪽에서 기원하는, 눈이 시리도록 맑은 강이다. 제법 빠르게 이동하는 강물의 물살 위에서는 수많은 백조와 오리들이 한가롭게 떠 다니고 있다.

루체른 카펠교. 칠백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온 나무다리이다.
▲ 루체른 카펠교. 칠백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온 나무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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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스 강변을 걷는다는 것은 루체른을 음미하고 즐기는 것이다. 나는 그 강변을 맞이하기 위해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그 이름 유명한 카펠교(Kapellbrucke) 위에 아침의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다. 일본에서 온 여행객들이 아침의 카펠교를 감상하며 부지런히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사진은 일출 때와 일몰 때에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고, 카펠교는 특히 해 뜰 때에 너무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이다.

카펠교의 꽃길.  수많은 꽃을 다리에 장식한 그들의 여유가 부럽다.
▲ 카펠교의 꽃길. 수많은 꽃을 다리에 장식한 그들의 여유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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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난간 밖에는 알프스에 피는 아름다운 생화들이 다리 양끝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아침 햇살이 카펠교 난간 외부에 장식된 노랗고 빨간 꽃에 조명을 반사하고 있었다. 나는 다리 전체를 수많은 꽃들로 장식한 그들의 여유가 부러웠다. 나는 목조다리를 걸으면서도, 나는 꽃길을 밟고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카펠교 다리 중간에 서서 모든 동작을 멈추고 심호흡을 해 보았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삶의 여유인가? 여행도 바쁘게 다니는 나는 아침을 맞는 카펠교에서 더 이상 서두르지 않고 있었다. 카펠교는 정지 상태로 그 아름다움을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그토록 머리 속에 그렸던 여행지를 현실 속에서 걷고 있었다. 루체른의 외양을 남김없이 드러내는, 맑기만 한 날씨 속에서 나는 길고 긴 다리를 계속 걷고 있었다. 내가 길이 204m의 이 다리를 길게 느꼈던 것은 실제로 이 다리가 현존하는 가장 긴 목조다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꿈꾸는 여행지가 길게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나무다리는 1333년에 로이스 강변에 지어졌으니, 약 700년에 가까운 세월을 견뎌온 현존 최고의 다리이다. 숭례문 화재와 같이 이 카펠교도 1993년 8월에 많은 부분을 잃는 화재를 겪었으나, 지금은 말끔하게 재단장되어 있었다.

나는 십수년 전에 보았던, 세월의 이끼에 푸석거리던 카펠교 나무의 질감이 떠올랐다. 그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은 사라졌지만, 새로 복원된 카펠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루체른을 상징하고 있었다.

카펠교의 패널화. 루체른의 역사상 중요한 사건들이 그려져 있다.
▲ 카펠교의 패널화. 루체른의 역사상 중요한 사건들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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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특이하게도 지붕을 가지고 있고, 그 지붕의 들보 아래에는 다리 위의 갤러리가 펼쳐지고 있었다. 다리를 걸으면서 머리를 조금만 올려보면, 1599년 이후 화가 하인리히 베크만이 그리기 시작한 패널그림 112개가 이어진다. 삼각형 나무 패널에 담긴 이 그림 속에는 루체른의 수호성인인 마우리티우스(Mauritius) 등의 생애가 나오고, 건국설화, 순교자와 영웅들의 영광, 흑사병 시기 등 스위스와 루체른의 역사상 중요한 사건들이 슬라이드처럼 연결된다.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특이한 버릇이 하나 있다. 눈에 보이는 건축물에 무엇이 몇 개 있다고 하면 그 수를 한 번 끝까지 세어보는 것이다. 과연 그 수가 맞는지 보자는 것이다. 나는 카펠교의 패널화가 과연 112장이나 되는지 한 번 세어보았다.

경치를 감상하며 패널화 수를 세고, 수를 세다가 경치를 감상했기 때문에 약간은 헷갈렸지만, 패널화의 수는 112장에 훨씬 못 미쳤다. 아무래도 1993년 화재의 영향일 것이다. 문화재의 화재는 한순간이지만, 문화재 복원은 수십 년이 걸리는 지난한 과정이고, 카펠교도 그 충격에서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것이다.

다리를 걷다 보니 팔각형의 물탑, 바서투름(Wasserturm)이 고깔 같은 붉은 지붕을 이고 서 있다. 높이 34m의 이 탑은 공문서, 전리품과 보물을 보관하였을 뿐만 아니라, 감옥과 고문실로도 이용되었다. 이 탑은 호수의 배들에게 등대가 되기도 하였고, 호수로 침입하는 적들을 감시하면서 비상시에는 시민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나는 아주 오랜 전통의 이 목조다리 위를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고, 이 다리가 아직도 다리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게다가 바서투름은 작고 귀여운 목조 기념품들을 파는 기념품점이 되어 있다. 루체른 시민들은 문화재 출입을 엄금하고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문화재를 그 목적에 맞게 현대에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것이다. 스위스라는 관광대국의 이러한 판단은 많은 외국의 여행자들을 이 카펠 다리 위에 불러 모으고 있었다.

다리는 삐걱거리지 않았고 너무나 튼튼했다. 루체른의 상징, 카펠교와 바서투름의 붉은 지붕은 햇살이 밝게 반사되면서 무척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아침 식사를 든든하게 먹고 가족과 함께 카펠교로 다시 나왔다. 따뜻한 태양이 카펠교 지붕 위의 세월 품은 이끼에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아침에 둘러본, 시립극장 쪽의 다리는 재건된 것이지만, 카펠 광장 초입의 다리 약 10m는 다행히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 카펠교 입구는 루체른의 상징물이어서 루체른을 상징하는 모든 안내책자와 엽서에 등장하는 곳이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카펠교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 다리는 로이스 강과 어울리고 있었다. 피어발트슈테터 호수에서 흘러나온 로이스 강의 물줄기는 다리의 교각에 잔잔하게 부딪치며 흘러가고 있었다. 로이스 강을 바라본다는 것은 피어발트슈테터 호수를 바라보는 것과는 다른 여행이었다. 호수와 달리 이 강물은 시간이 흘러가듯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강변 북단으로는 노천 식당의 테이블들이 나와 있고, 그 사이에 자리 잡은 호텔에는 유럽 국가들의 국기가 걸려 있었다. 많은 여행자들이 노천카페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순간, 십수년 전, 나의 여행이 머리 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 겨울의 밤에 나는 노천카페에서 추위를 달래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었고, 일단의 루체른 젊은이들은 어두운 조명 속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밝게 웃는 그들의 사진을 찍는 나에게 그들은 손을 흔들며 웃음을 보내주고 있었다. 배낭을 내려놓은 젊은 여행자에게 보내던 그들의 호의적인 웃음에 나는 잠시나마 마음이 푸근했었다. 오늘, 이른 시간의 밝고 따뜻한 태양은 사람 떠난 노천카페의 테이블들을 비춰주고 있었다.

카펠광장. 장크트 페터 성당과 프리취 분수가 아기자기하게 예쁘다.
▲ 카펠광장. 장크트 페터 성당과 프리취 분수가 아기자기하게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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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 딸과 함께 카펠교에서 내려와 카펠광장(Kapell Platz)에 들어섰다. 이 광장에서부터 루체른의 구시가지가 시작되고 있었다. 카펠광장의 장크트 페터 성당(St. Peter Kirche). 천국의 열쇠를 받은 베드로가 성당 건물 벽면에 커다란 파스텔화로 남아 있었다. 성당 내부에는 작은 베드로상이 조용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광장에서 가장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프리취 분수이다. 육각형의 작은 분수대 위에는 석재 기단이 있고, 그 위의 푸른 원통에서 4명의 괴수가 고깔 관을 통해 가느다란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얼굴만 양각된 괴수들은 일견 괴기스러운 듯하면서도 정감이 갔다.

초록색 식물문양으로 둘러싸인 붉은 고딕양식의 기둥 위에는 루체른을 지키는 수호성인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갑옷을 입고 칼을 찬 이 수호성인의 오른 손에는 루체른을 상징하는 깃발이 들려 있었다. 약간 노쇠해 보이는 이 수호성인은 꿈쩍도 하지 않고 카펠광장을 내려보며 루체른을 지키고 있었다.

이 작은 분수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예쁜 분수였다. 이탈리아의 거대하고 사실적 묘사가 돋보이는 분수와 달리, 이 프리취 분수는 귀여운 데다가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었다. 분수의 색깔의 대비도 돋보이고 아기자기한 역사를 품고 있었다. 분수의 매력이 루체른에 대한 기억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었다.

바서투름 초콜릿. 루체른의 역사가 담겨 있는 초콜릿이다.
▲ 바서투름 초콜릿. 루체른의 역사가 담겨 있는 초콜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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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펠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 초콜릿 가게를 찾았다. 그 초콜릿 가게는 카펠교의 수탑, 바서투름 초콜릿을 파는 가게였다. 이 초콜릿 가게 안에는 초콜릿 색으로 장식된 바서투름이 서 있었고, 그 아래에 바서투름 초콜릿이 잔뜩 쌓여 있었다. 루체른을 상징하는 카펠교가 문화상품화 되어 여행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루체른 초콜릿. 루체른의 어린이와 스위스 국기, 꽃으로 모양을 낸 초콜릿이다.
▲ 루체른 초콜릿. 루체른의 어린이와 스위스 국기, 꽃으로 모양을 낸 초콜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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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이는 토끼, 해바라기, 어린 아이 모양으로 만들어진 초콜릿을 보면서 키득거리고 있었고, 아내는 가게 기둥에 달린 컴퓨터에서 다양한 초콜릿 제품들을 클릭하고 있었다.

나는 카펠교 바서투름 초콜릿을 베어 물었다. 오랜 전통의 카펠교 수탑이 내 입안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유럽의 다른 초콜릿의 맛과 큰 차이는 없지만 역시 맛있는 초콜릿이었다. 초콜릿 안에 카펠교의 문화가 담겨 있기에 내 머리 속에서는 이 초콜릿 맛이 무언가 다르다는 암시를 보내고 있었다.

나의 입맛은 이제 유럽의 다양한 초콜릿을 탐닉하고 있었다. 나는 루체른에서 바서투름 초콜릿을 만난 게 반가웠다. 나는 루체른의 역사를 공부하고 루체른 카펠교의 기막힌 정경을 구경하고, 그 카펠교의 맛을 보고 있었다. 카펠교의 아름다움만큼이나 카펠교 초콜릿의 맛은 낭만적이었다. 방금 전에 햇빛에 부서지던 카펠교를 보고 낭만에 젖었기 때문이다.

나는 화재로 무너진 숭례문을 보면서, 화재로 소실되어 복구된 카펠교와 카펠교 바서투름 초콜릿을 생각했다. 아쉽지만, 숭례문은 석축과 1층 문루를 포함하여 더 많은 부분이 남지 않았는가! 숭례문도 2층 문루와 함께 성벽도 복원한다면 카펠교보다 못할 게 없지 않은가? 숭례문 표 서울 떡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전통을 쌓고 홍보를 한다면, 우리 문화유산도 외국인들의 가슴에 여행의 낭만과 아름다움으로 남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07년 7월말의 유럽여행기록입니다.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스위스#루체른#카펠교#카펠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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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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