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달리는 멧돼지를 포획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그물을 던졌지만, 보란 듯이 빠져나가 버렸다.
▲ 멧돼지 포획 달리는 멧돼지를 포획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그물을 던졌지만, 보란 듯이 빠져나가 버렸다.
ⓒ 송호정

관련사진보기



"출동! 종로구 삼청동 삼청공원 내에 멧돼지 출현! 종로소방서 119 구조대는 신속히 출동하여 멧돼지를 포획하라!"

3월20일. 출동 지령이다. 야생 멧돼지가 현재 산책하고 있는 시민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는 부연 설명까지 덧붙여졌다. 출동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저런 부연 설명이 붙은 지령 방송을 들으면 우리 구조대원은 마음이 아주 급해진다. 현장 상황을 쉽게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청공원에 들어서자 산책 중인 분들이 멧돼지가 있는 위치를 가르쳐준다. 알았다는 시늉을 하고 바로 옆 야산으로 다가가자 20미터 앞에서 멧돼지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구조대는 마취총과 그물총 그리고 포획용 그물을 준비하여 조심조심 멧돼지에게 접근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멧돼지가 우리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쏜살같이 달아나는 게 아닌가. 눈 깜박하는 사이 멧돼지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사이에 능선 하나를 넘어 가버린 거다.

무척 빠르다. 출동해서 약 50분간 이 능선 저 능선 왔다갔다 반복했지만 결국 맷돼지의 흔적을 놓쳐 버렸다. 주변이 조용하다. 멧돼지로 인한 위험요소가 없는지 확인한 후 '일단 후퇴'다.

밥 먹다 말고 다시 멧돼지 잡으러 출동~

아니나 다를까. 불안불안해 하며 소방서로 들어와 점심을 막 먹는데 다시 '출동 지령'이다. 오전에 갔던 곳과 똑같은 장소, 삼청공원이다. 식판에 밥을 배식 받아 이제 막 식탁에 앉았는데……. 밥 몇 숟갈을 입으로 떠넣고 국은 그릇째로 들고 후루룩 마시고, 또 출동이다. 밥이 입으로 넘어 가는지, 코로 넘어 가는지……. 그런데 대원 누구 하나 말이 없다. 무언의 스트레스 해소법! 우리 구조대원은 자기 스스로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해소 비법을 가지고 있다. 

삼청공원 안에는 주변 사무실 직장인들이 점심 식사 후 산책을 나왔는지 오전과 달리 꽤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우리 구조버스가 공원 안으로 들어서자 "방금 바로 뒤에서 멧돼지를 봤다"는 제보가 이어진다.

"멧돼지가 웅덩이에서 목욕하는 것 같았어요. 저 하고 눈이 마주치자 한참 노려 보더니 산등성이 쪽으로 달아나 버렸어요."

산책하던 어느 중년의 아주머니의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우리 구조대는 포획용 그물과 마취총, 그물총을 뒤로 숨기고 조심조심 멧돼지가 숨어 있을 만한 계곡으로 접근했다. 이번에는 기필코 생포해야만 한다. 공원관리소 직원들도 합세했다.

마취 주사도 못 뚫는 멧돼지 가죽... "세네"

돌진하는 멧돼지, 너무 빠르다!
▲ 멧돼지 돌진하는 멧돼지, 너무 빠르다!
ⓒ 송호정

관련사진보기



계곡 쪽에 뭔가 움직임이 포착됐다. 아까 보았던 바로 그 멧돼지다. 제법 크다. 그런데 여전히 빠르다. 지나가던 시민들도 일부 지원에 나섰다. 산속을 헤집고 다니는 야생동물 한마리 포획하는 게 이렇게도 힘이 들다니. 다행히도 멧돼지는 삼청공원 인근 야산을 벗어나지 않는다. 바로 아래 동네로 뛰어들면 큰일이다.

동료 구조대원이 마취총을 장전했다.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마취총의 유효 사거리가 5미터밖에 안돼 움직이는 물체에 가까이 접근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숨바꼭질이다. 결국 계곡에서 능선으로 수차례 왔다갔다하던 중 마취총을 들고 있던 구조대 백 반장이 정확하게 멧돼지의 옆구리를 쐈다.

"대장님! 한방 정확히 맞았습니다!"
"옳지. 잘했어!"

그런데 이게 웬 걸. 마취총에서 발사된 주사바늘이 두꺼운 멧돼지 가죽을 뚫지 못하고 금방 떨어져 버렸다. 멧돼지는 여전히 종횡무진이다. 난감했다. 이제 마취총탄은 한방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 전에 맞았다 떨어진 마취총이 효과가 있었던지 멧돼지의 움직임이 조금 둔해 진 느낌이다. 그래도 야생이라 움직임이 쏜살같이 빠르다. 휘청 넘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일어나 뛰고, 몇 분이 지나자 마취가 풀려가는지 오히려 움직임이 더 빨라진다.

구경하는 시민들의 '잔소리'가 만만치 않다.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우리는 이렇게 정신없이 산등성이를왔다 갔다 하는데 뒷짐만 지고 훈수하는 모양새에 짜증이 나려고 한다.

드디어 멧돼지 생포! 작전 종료

멧돼지는 마침내 그물망에 갖혔다.
▲ 포획 완료 멧돼지는 마침내 그물망에 갖혔다.
ⓒ 송호정

관련사진보기


그래도 우리는 저 멧돼지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생포해야 한다. 만약 잡지 못하면 계속 우리 구조대원을 괴롭힐 것이다. 마지막 마취총 한방으로 끝내야 한다. 한참을 왔다갔다 하던 중 백 반장이 다시 한번 마취총을 발사했다. 명중이다. 다행이다. 그래도 움직임이 빠르다.

마취총도 다 썼고 잠시 작전회의다. 대장님의 의견은 멧돼지를 계곡으로 몰자는 거다. 그런 다음 포획용 그물로 놈을 덮치자는 것.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이다. 다시 시작이다. 그런데 멧돼지는 금방 또 눈앞에서 사라졌다. 저 앞쪽 바위 밑에 은신중이다. 저 놈도 분명히 지쳤다.

구조대원 한명이 다시 놈을 몰기 시작했다. 이내 멧돼지는 뛰기 시작했다. 포위망이 좁혀지자 놈은 혼신의 힘을 다해 다리 사이로 빠져 나갔다. 그런데 놈도 지쳤는지 산책로 큰 길로 갑자기 도망치기 시작하더니, 길가 바로 옆 배수로에 빠져지면서 머리를 부딪혔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우리 구조대가 포획용 그물로 놈의 몸을 덮었다.

그래도 멧돼지는 낑낑 거렸다. 대장님의 무전기는 "멧돼지 포획 성공! 삼청공원 멧돼지 출현 상황종료!"를 알렸다. 시계를 보니 1시가 조금 넘었다. 길고 긴 한낮의 멧돼지 소동은 이렇게 끝났다. 우리는 멧돼지를 대한수렵협회에 인계하고 철수했다.

대한수렵협회 관계자 말에 의하면 포획된 멧돼지는 완전한 야생이란다. 약 14개월 가량 된 새끼 멧돼지. 숫놈이다. 완전히 성장한 멧돼지는 식성이 좋고 성질이 포악하여 사람에게 위협이 되기도 한단다. 도심 한복판 공원에 야생멧돼지라니! 시민들도 의아해 하는 눈치들이다.

덧붙이는 글 | 송호정 기자는 종로소방서 홍보 담당자입니다.



태그:#멧돼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