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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21일)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1면 머리기사는 기사 쓰기의 대표적 모범사례로 제시할 만하다. 또 시간차 특종, 즉 뒤늦은 보도라도 어떻게 특종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겠다.

뒤늦은 보도라도 이렇게 하면 특종한다!

<조선일보>는 어제 국정원 인사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특종 보도했다. 19일 1급 이상 고위 간부 30여 명 가운데 60% 이상을 바꾸는 대폭 물갈이 인사를 했다는 기사였다. 주요 부서장과 시·도지부장을 대부분 교체했다. 조직도 개편했다. '2개 국'으로 돼 있던 국내담당을 '1실'로 개편했으며, 해외 분야와 대공 분야 기능을 강화했다고 한다.

국정원 인사는 원장과 차장급 인사를 제외하고는 공표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명박정부 들어 첫 국정원 간부 인사인 데다가 조직개편까지 수반한 것이어서 어제 <조선일보> 기사는 1면 머리기사로 올릴 만한 특종보도라고 할 수 있다.

<한겨레>는 <조선일보> 특종의 후속 기사로 또 하나의 '특종'을 건졌다. 임명도 안 된 김성호 국정원장 후보자가 국정원 인사와 조직개편에 관여한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사진은 <한겨레> 사이트 첫 화면. 김성호 국정원장 후보자 기사가 첫 기사로 올라있다.
 <한겨레>는 <조선일보> 특종의 후속 기사로 또 하나의 '특종'을 건졌다. 임명도 안 된 김성호 국정원장 후보자가 국정원 인사와 조직개편에 관여한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사진은 <한겨레> 사이트 첫 화면. 김성호 국정원장 후보자 기사가 첫 기사로 올라있다.
물을 먹은 다른 신문들은 오늘 <조선일보> 보도내용을 확인해 뒤늦게 보도했지만 <한겨레>는 그 후속 기사로 또 하나의 '특종'을 건졌다.

임명도 안 된 김성호 국정원장 후보자가 국정원 인사와 조직개편에 관여한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는 김성호 국정원장 후보자가 이번 간부급 인사와 조직 개편에 '사실상' 관여했음을 확인해 주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정원법에 따라 국정원장이 공석일 때는 1차장이 직무대리를 하고 있으며, 이번 인사안은 김성호 후보자와 상의해서 마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한다.

국정원 공보팀은 이에 대해 "원장 권한 대행을 하는 1차장이 2, 3차장 및 기조실장과 협의해 인사안을 마련해 대통령이 임명했으며, 김 후보자와 인사문제를 협의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국정원의 이런 해명은 그러나 김성호 국정원장 후보자가 법적 권한이 없는데도 국정원 인사와 조직 개편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미칠 파장을 우려한 사후 수습용 해명일 개연성이 커 보인다.

국정원장 후보자와 상의없이 대대적인 조직개편 단행?

국정원의 이런 해명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떡값 논란에 따른 김용철 변호사 증인 채택 문제 등으로 청문회가 열리지 못해 임명 절차가 늦어지고는 있지만 국정원장이 내정된 상태에서 국정원장 내정자의 의중과 무관하게 대대적인 간부급 인사와 조직개편을 단행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 국정원은 이미 김성호 국정원장 후보자가 취임할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이 <한겨레> 취재를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 <한겨레>가 오늘 별도로 보도한 '국정원의 어이없는 충성' 기사에 따르면 국정원 홈페이지에는 '공지/보도' 꼭지에 '사제단의 주장에 대한 국정원장 후보자 추가 입장'이란 자료가 떠 있다. 사제단과 김용철 변호사의 떡값 수수 폭로에 대해 김성호 국정원 후보자가 낸 '개인차원의 해명' 자료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김 후보자는 정식 취임은 되지 않았지만, 임명될 가능성이 커서 보도자료를 낸 것"이라며 "보도자료는 모두 홈페이지에 올려놓는 관례에 따라 김 후보자의 '해명자료'도 올려놓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마디로 김성호 후보자의 자격 논란이 있지만, 김성호 후보자가 국정원장으로 취임할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김성호 국정원장 후보자는 어디까지나 국정원장 후보자일 뿐이다. 그것도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았다는 '결정적인 의혹'이 제기돼 있는 상태다. 당연히 거쳐야 할 국회 청문회 자체가 열리지도 못하고 있다. 그는 이 순간까지는 개인 김성호일 뿐이다. 국정원장은 지금 공석중이다.

국정원을 편리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위험한 발상'

그런데 대대적인 간부급 인사와 조직 개편이 단행됐다. 누가 보더라도 이상한 일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첫 국정원 간부인사이자 조직개편이라면 당연히 새 국정원장이 취임하고 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당연히 김성호 후보자가 인사와 조직개편에 관여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청와대 관계자도 그것을 확인해주었다. 법과 절차를 무시한 것이다. 국정원을 편한 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위험한 발상'이 엿보인다.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초기 고영구 국정원장 후보자를 지명했지만, 국회의 반대로 논란이 거듭되자 후보 지명 두 달 후 고영구 원장이 취임한 후 차관급과 간부급 인사를 순차적으로 한 바 있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어제 국정원 간부 인사 소식을 특종 보도한 <조선일보>는 이런 '상식적 의문'을 품어보지 않았을까? 특종을 건졌다는 만족감에, 혹은 사실 확인에 몰두하는 바람에  미처 그 점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한 발 더 나가기를 주춤했던 것일까?

<한겨레>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인사와 조직 개편 소식은 비록 <조선일보>가 특종을 했지만, <한겨레>는 더 중요한 '특종'을 건졌다. 상식적인 의문이 거둔 빛나는 특종이다.


태그:#김성호, #국정원, #편법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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