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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서남부에서 최고의 여행지로 알려진 리장
중국 서남부에서 최고의 여행지로 알려진 리장 ⓒ 박경

물길을 따라갔는데 어느새 물길이 발길을 졸졸 따라오는 곳 리장 고성(麗江 古城).

따리에서 버스로 4시간 정도를 달려와 나시족(納西族)의 고향, 리장에 닿았다. 해발 2400미터, 따리보다 추운 듯싶지만 그래봤자 좀 쌀쌀한 서울의 봄 날씨 정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고성의 골목길은 시작부터 눈길을 잡아끌었다. 조랑조랑 매달린 은주전자들과 안개처럼 소리가 가라앉을 것만 같은 황동의 종(鐘)들, 다양한 목공예품들, 갖가지 상점들이 올망졸망 모인 골목길이었다.

 

어느 순간 비가 왔나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발밑에 깔린 돌들이 꿀 발라 놓은 떡처럼 너무나 반들거려서. 수백 년 동안 인간의 발길을 견뎌 왔다는 게 참말인가 보다.

 

 사람들의 발때가 타서 반질반질해진 돌바닥. 이곳보다도 대석교 중심에 깔린 돌들은 수백년도 더 오래된 돌들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발때가 타서 반질반질해진 돌바닥. 이곳보다도 대석교 중심에 깔린 돌들은 수백년도 더 오래된 돌들이라고 한다. ⓒ 박경

아담한 물길들이 골목을 굽이쳐 흐르고 또 고만고만한 돌다리들이 얹혀진 모습이 소인국에 온 것처럼 아기자기하고 아름답다. 물길은 새색시이고 개구쟁이이다. 어느 순간 수줍게 사라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짠하고 나타난다.

 

오늘날 리장이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지가 되기까지 사연이 있다. 지리적으로 운귀고원과 티베트고원이 만나는 곳에 있는 리장은 지진이 잦은 곳이다. 1996년에 큰 지진이 일어나 폐허가 된 리장은 각계각층의 구조의 손길에 힘입어 재건되었다. 당시 다행스럽게도 대연전(고성)은 피해가 적었고, 리장은 관광도시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리장에는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다. 소수민족인형(왼쪽)과 풍경처럼 매달린 종(오른쪽).
리장에는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다. 소수민족인형(왼쪽)과 풍경처럼 매달린 종(오른쪽). ⓒ 박경
 윈난은 은 공예품들이 발달해 있다(왼쪽). 우리가 동파문자 사전을 산 곳(오른쪽).
윈난은 은 공예품들이 발달해 있다(왼쪽). 우리가 동파문자 사전을 산 곳(오른쪽). ⓒ 박경

 

가장 리장 다운 것

 

리장 고성에서, 뭐니뭐니해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나시족의 상형문자인 동파문자(東巴文字)다. 동파란, 불교와 샤머니즘이 결합된 그들의 종교를 말한다. 조상과 원시자연을 숭배하는 동파교는 불교가 전파되기 전, 티베트 전통종교였던 본교와 샤머니즘이 혼합된 형태로서 나시족의 전통적인 신앙이다. 하지만 오늘날 동파교를 종교로 믿는다기보다는 동파의식을 거행하는 관습적인 행위로 그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러한 동파문화에서 나온 동파문자를 그들은 상업과 예술에 접목시켜 이방인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현재까지 사용되는 유일한 상형문자인 동파문자는 나시족의 종교경전인 동파경에 주로 쓰인다.

 

리장 고성을 누비고 다니다 보면, 나시족들의 동파문자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동파문자로 된 간판들은 아름답고도 독특하다. 동파문자와 관련된 사전이나 달력들을 파는 작은 서점에서는 깎아주는 법 없이 정가대로 판다. 동파문자를 빽빽하게 나무판대기에 조각하는 장인은 수행이라도 하는 듯 묵묵하고 지극하다.

 

바로 그런 것들이 리장을 리장답게 하고 있다. 넥타이가 아닌 민속 의상이, 빌딩이 아닌 이끼 푸른 기와지붕이, 영어가 아닌 동파문자가 이방인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비수기인데도 다른 곳과 달리 외국인들로 북적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처럼 미친 영어 바람이 불지 않아도, 지독히도 영어가 통하지 않는데도 외국인들은 리장에 파고들고 모여든다. 인간이 소통하는 길은 영어 말고도 많다. 또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통하고 급하면 급한 대로 통하는 게 인간의 마음길이다.

 

동파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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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

 

영어 못할수록 여행은 더 재미있어

 

리장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삼성급 호텔을 찾았었다. 좀 더 깔끔하고 좀 더 포근한 잠자리에 목말라 있던 우리 가족, 120위안짜리에서 180위안짜리로 과감한(?) 업그레이드를 시도했다. 중국에서는 객잔보다는 빈관이, 빈관보다는 주점이 더 고급이라니까 기대를 하고 호텔 문을 열었다.

 

구내매점에서 컵라면이나 팔 것 같은 분위기의 아가씨가 두꺼운 외투를 껴입은 채 프런트를 지키고 있었다. 별 세 개짜리 호텔 맞아? 의아해 하며 객실요금을 훑어보다가 눈알이 띠용 튀어나올 뻔 했다. 트윈룸 580위안.

 

혹시나 말 걸어보니 역시나 영어 못한다. 전혀, 조금도 영어를 모르는 눈치다. 아가씨는 무척이나 쑥스러워 한다. 별 세 개짜리 호텔 맞아? 아무리 중국인들이 주로 오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호텔인데, 참 난감하다.

 

서로 허공에다 대고 몇 마디, 한자로 필담 몇 마디 던지다가, 우리는 180위안이라고 소개된 가이드북을 들이댔다. 아가씨는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그러더니 순순히 오케이를 한다. 이거 진짜 별 세 개야?

 

어쨌든 이게 웬 떡, 날름 삼켰다. 이것 참 호텔에서 숙박비를 반 넘게 뚝 깎아보긴 또 처음이다. 호텔방을 보고 기분이 삼삼했다. 널찍한 실내에다 베드는 퀸 사이즈나 다름없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가까이 있는 리장 고성이나 가볍게 산책하려고 나오던 중이었다. 그사이 프런트엔 지배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타났다. 말이 좀 통하려나 싶어, 슬리퍼를 하나 더 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이 남자, 전혀 못 알아먹기는 마찬가지. 발을 가리키며 슬리퍼! 슬리퍼! 해도 못 알아듣는다. 혼자서 꿀 다 먹은 벙어리처럼 입 꾹 다물고 미안한 표정만 짓는다.

 

'실내화'라고 한자를 써 보여주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가 한자 세대라는 게 어찌나 다행스러운지. 궁하면 통한다더니 영어가 안 되면 한자가 있다. 아침마다 조식도 다 챙겨 먹었고, 필요한 물건은 비품방에서 직접 꺼내다 쓰는 용기도 발휘했다. 때는 마침 비수기라 손님이라고는 우리밖에 없었다.

 

사흘 동안 그 호텔을 드나들면서 필요할 때면, 아가씨와 한자로 필담을 주고받다 보니 정이 들었다. 다정하게 머리를 서로 맞댄 채 적나라한 한자 글씨체를 드러내면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자연스러워졌다. 마지막 날에는 오렌지 한 봉지를 넘기며 섭섭한 마음을 달래야 했다.

 

만일 영어로 소통했다면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물론 좀 더 매끄럽게 원하는 바를 얻었겠지만 아가씨의 순정한 미소에 정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사람들은 우리 가족이 자유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한결같이 묻는 말이 있다. 말이 어떻게 잘 통하느냐고. 그럼 나는 대답한다. 말로만 말 통하냐고, 세상에 언어는 영어밖에 없냐고, 들으려고 하면 다 들리게 되어 있다고.

 

또한 꼭 영어를 문법에 맞게 제대로 해야만 통하는 건 아니라는 걸 베트남 여행에서 경험한 적도 있다. 나와 딸이 호텔방에서 쉬는 동안, 남편은 기차표를 예매해 왔다. 보니까, 살뜰하지 못한 이 남편, 어른표 석 장을 사왔다. 알뜰한 이 마누라, 남편 앞장세우고 표를 바꾸러 갔다.

 

좀 전에 표를 사간 사람이 다시 나타나자 가무잡잡한 베트남 아가씨는 무슨 일인지 의아하게 쳐다본다. 남편은 아주 정중하게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입을 떼기 시작한다. 조금 전에 어른표 석장을 샀는데 확인해 보니 잘못 샀더라, 미안하지만 하나는 어린이표 하나로 바꾸려고 한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의 말을 영어로, 제대로 문법 안 틀리게 늘어놓으려고 용을 썼다.

 

경상도 억양이 들어간 남편의 영어를 알아듣고자, 베트남 아가씨는 인상을 잔뜩 쓴 채, 이 사람이 대체 또 뭐가 필요한 건가, 고개를 이리 꼬고 저리 꼬며 노력 중이다.

 

답답한 건 나다. 베트남에서 바가지 상혼에 상처받은 내가 혹시나 표를 바꾸지 못할까 봐 지레 마음 다급하고 초조해진 나머지, 남편의 말을 끊어 버리고 외쳐버린 한마디는 이거였다.

 

티켓 체인지! 아가씨 얼굴이 확 펴지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베트남은 여행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영어가 잘 통하는 곳이었다.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영어 실력이 대단했는데 발음은 영 엉망이었다. 영어를 잘 못하는 나는 당최 알아듣기 힘들 정도인데, 서양인들은 신기하게도 잘 알아들었다. 그런데 왜 미국 가서 오렌지로 발음하면 못 알아듣고 오린지로 발음해야 알아듣는다는 걸까.

 

베트남에서 깨달았다. 급하면 입으로 튀어나오는 게 말이고, 들으려고 하면 들리는 게 언어라는 걸. 여행 온 서양인들은, 들으려고 하니까 자신들과 다른 발음도 다 들리는 것이다.

세상엔 영어만이 다가 아니다. 미국식 영어만이 다가 아니다.

 

미국 과일가게 가서 '오린지'는 뭐 하러 애써 발음하나. 그냥 가리키면 되지. 오렌지가 낑깡처럼 코딱지만 해서 눈에 확 안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아니면 그 예의 없는 미국 상인이, 오렌지 발음 제대로 하면 오렌지 하나 공짜로 주~지~ 했나?

 

여행을 하다 보면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절감하게 된다. 우리 한글만큼 영어발음에 가깝게 표기할 수 있는 섬세한 언어가 동양어에 또 있을까 싶다. 일본에서는 커피를 '고히'로 비어(맥주)를 '비루'라고 발음나게 표기한다. 그래도 선진국 대접 받으며 잘만 살더라.

 

중국에서는 패스트 푸드점 '켄터키'를 '컨더지(肯德基)'로 발음한다. 우리는 '켄터키'를 조금만 느끼하게 굴려주면 원음에 거의 가깝지 아니한가.

 

중국에서는 복잡한 한자는 이제 찾아볼 수가 없다. 거의가 간자체로 바뀌어, 한자세대인 내 눈에는 중국 간판의 한자가 마치 쓰다만 한자 같고, 이 빠진 한자 같기만 했다. 그 복잡한 고유의 한자를 스스로가 부정하고 나섰으니. 그에 비하면 우리 한글은 얼마나 간단하고 표기도 무궁무진한지.

 

리장의 동파문자는 일상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관광 상품으로 혹은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다. 운치 있는 카페의 간판으로도 손색이 없고, 상형문자이다 보니 글자라기보다는 그림 작품으로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간단한 동파문자 사전을 하나 샀는데, 내용을 보니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텅 빈 배와 새처럼 튀어나온 주둥이를 그린 건 배고픈 걸 의미하며, 두 사람이 손을 맞잡은 것은 친구를 뜻하고 있다.

 

 밤이 되어 저 등에 불이 켜지면, 물길 따라 붉은 빛은 밤 새도록 흐르리라.
밤이 되어 저 등에 불이 켜지면, 물길 따라 붉은 빛은 밤 새도록 흐르리라. ⓒ 박경

어느새 해는 지고 줄줄이 늘어진 등불에 불이 환하게 켜진다. 물 위에도 등불이 켜진다. 붉은 등불이 물길을 따라 휘돌아 감기고 지붕마다 조명등이 켜지면서 기와의 곡선이 무지개 빛깔로 펼쳐진다. 우리 가족은 사방가를 가로질러 뒷골목을 밤늦도록 쏘다녔다.

 

다닥다닥 붙은 상점들이 끝나는 곳, 어디선가 컹컹 개 짖는 소리와 찹쌀떡 사려, 하는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골목길, 어쩌다 물컹 개똥을 밟기라도 할 것만 같은 어둑신한 골목길, 휴식의 숨소리가 불빛처럼 새어나오는 아득한 골목길…….

 

광장에는 귀여운 나시족 할머니들과 이방인들이 어깨동무를 한 채 빙빙빙 돌며 춤을 추고 있었다. 누구든지 끼어들 수 있고 음악이 나오는 중간, 막 돌아가는 춤을 추는 언제라도 끼어들 수 있다. 리장의 밤은 그렇게 열린다.

덧붙이는 글 | 2007년 12월 13일 떠나 중국 윈난을 여행하고 2007년 12월 24일 돌아왔습니다.

이 글은 네이버 카페 '중국여행길라잡이'에도 올립니다.


#중국#윈난#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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