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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 진보신당 피우진 후보 기자간담회
 3월 18일 진보신당 피우진 후보 기자간담회
ⓒ 진보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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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8일 진보신당 당사 기자간담회 직후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 3번 예비역 육군 중령 피우진을 만났다.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피우진은 유방암 절제 수술 후 장애판정을 받고 군으로부터 강제전역되었다.

이에 복직투쟁을 벌여 소를 제기, 1심에서 승소하였으나 국방부의 항소로 현재 2심 계류 중인 피우진이 총선에 즈음하여 진보신당 행을 선택하게 된 경위와 심경에 대해 들어 보았다.

'꼿꼿장수'와의 '악연'

- 마침 ‘꼿꼿장수’ 김장수 전 국방장관이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로 영입되면서 피 후보의 행보와 대조되고 있는데요. 기자간담회 때는 역시 기득권자는 기득권 세력으로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씀하셨지요.
"하하. 원래 군에서 악수할 때는 고개를 안 숙여요. 그게 그렇게 대단해 보였나 봐요. 김장수 전 장관과는 계속 부딪치게 되네요. 수술 이후에 강제전역을 당할 상황에서 당시 육군 참모총장 앞으로 서신을 띄웠어요. 그때가 2005년 가을이었는데 바로 김장수 전 장관이 총장이었어요. 서신 보내고 나서 기다리라는 답변서는 받았지만 실제로 그가 직접 읽어 봤는지 모르겠어요. 그 뒤에 국방장관이 되지요."

"처음에 종양이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에도 이렇게 참담한 심정은 아니었습니다. 반드시 완치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의지와 노력으로 거뜬히 이겨 냈습니다.

군인은 규정과 절차를 지키며 살아야 함을 알기에 열심히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규정도 시대에 따라 수정 보완되어야 하고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어 적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성으로서 삶을 포기해가며 군 생활을 해보려고 했던 사람에게 합리적이지도 못한 규정을 적용하며 저의 삶의 의지를 꺾어 버리려는 항공학교 장교들에게 심한 배신감과 분노를 느낍니다.

총장님! 이와 같은 상황만 보더라도 항공병과에서 저희 여군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미루어 짐작되시지 않으십니까? 군인으로도 인간으로도 취급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선택한 길이기에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버티고들 있습니다. 이 기막힌 사연들을 어떻게 모두 열거할 수 있겠습니까?" (피우진,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후 노란 글씨는 같은 책 인용)

군인이냐 여군이냐

- 야간학교 교사 일을 하다가 여군 모집 공고를 보고 ‘이게 내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원하셨다면서요.
"네, 여군이 전문직이라고 생각하고 지원했어요. 오래 직업을 갖고 일하고 싶은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지 않았지요."

면접 중에 왜 군인이 되려고 하느냐 하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 “제가 원래 동적인 성격이라 활동이 많은 군 생활에 적당할 것 같았고, 또 군대는 외모나 학벌, 남녀차별 같은 것 없이 계급 아래에 평등할 거라는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군인도 하나의 직업이라 보았을 때 제 성격과 적성에 가장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면접관 중 한 사람이 책상을 내려치며 큰소리로 호통을 했다. “직업? 아니 군에 지원하는 사람이 무슨 국가관이나 애국관은 없고 여기가 뭐 취직자리 구하는 덴 줄 알아? 그런 정신 자세로 무슨 군인이 되겠다는 거야!”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주눅들지 않고 또박또박 대답했다. “지원 동기를 물으셔서 솔직히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씀을 할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입대하고 나면 군인의 자세에 대해 그런 정신 교육을 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피우진
 피우진
ⓒ 공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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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이라는 곳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견디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여러 가지 일을 많이 겪으셨고 혹독한 훈련도 아주 많이 받으셨더군요.
"네, 그랬어요. 오랜 시간 군에 있었고 힘든 일이 많았죠.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가 있는 곳이에요. 저는 절대 그걸 잊을 수 없어요."

"나는 군이라는 환경이 만들어 주는 운명적 일체감이 마음에 들었다. 군 특유의 권위적인 시스템이나 전시적이고 획일적인 일 처리 따위들에는 실망이 컸지만, 동기들이 똑 같은 조건에서 함께 고생을 하며 자기를 이겨 나간다는 점이 나는 좋았다. 서로를 격려하면서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는 것, 그런 데에서 오는 동지애와 공동체 의식 같은 것이 내 성격에 맞았다."

- 군을 날카롭게 비판하시면서도 군에 대한 애착이랄까 애정도 강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애증 같은 것일까요.
"누가 날더러 군을 짝사랑하지 말라고도 했었는데 (웃음) 군에 오래 몸담았고 군인이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니까요. 이렇게 내침을 당했지만요."

"나의 군인 정신은 나라를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나의 적은 북쪽 어디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주변의 남군이고 문서 쪼가리들이었다."

대한민국은 군대다

- 군은 대표적인 계급사회인데요. 여군이나 장교의 문제가 있는 한편 병역의 의무를 지는 남성 국민들, 병역의 의무가 없는 대신 대가를 치르는 소위 이등국민과 비국민들이 있고요.
"병역의 의무를 지는 남성들은 군인 시절이 다 있잖아요. 군인이었다가 국민이었다가, 국민이었다가 군인이었다가 그렇잖아요. 군이 어떤 곳인지 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 모두가 정확히 알고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고, 우선 저는 제가 보고 겪은 것으로부터 문제제기를 시작한 것인데요.

저는 군이 계급사회이긴 하지만 최소한 계급 안에서 평등하고 계급에 따라 투명하게 일이 주어지고 능력에 따라 기회가 공정하게 보장될 거라고 믿었어요. 또한 상급자들이 계급에 기대어 부리는 횡포는 정말 견디기 어려웠어요. 계급이 높으니까 그런 횡포가 없어도 자연히 계급이 보장하는 권위가 따르는 것인데 왜 그런 횡포를 부리는지 이해가 안 갔어요.

현재 군대에서 해결되어야 할 복잡한 문제들이 정말 많지요. 시간이 많이 걸리고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문제들. 그러나 반드시 개선되고 시정되어야 하겠죠. 제가 생각하기에 좋은 조직은 힘든 건 힘들다고 솔직히 털어놓고 말할 수 있으면서 힘든 것을 함께 극복할 수 있는 조직이에요. 사람이 힘들다고 다 못 견디는 게 아니거든요." 

"계급이 곧 폭력이 돼 버리는 권위적인 질서 같은 건 아무리 많이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상위 계급이란 게 단지 임무상의 윗선이 아니라 하급자를 자기 뜻대로 조정하고 부려먹는 도구가 되는 게 군대다.

제대로 된 조직이라면 사람들이 나약한 본능으로 움직여 가는 게 아니라 내면의 좋은 능력이 살아나도록 제도가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내가 기대했던 군이 바로 그런 조직이었다. 영업을 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기에 능력을 우선하는 공평한 시스템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나는 얼마나 순진했던가. 군대란 곳은 일반 사회보다 더 원색적인 경쟁과 폭력적 권위주의가 횡행하는 곳이었다."

- 원래 반골 기질이 좀 있으신가 봐요. 훈련소 시절에도 부조리한 자질구레한 규칙은 도저히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해서 결국 최고 벌점왕이 되었다면서요.
"제가 좀 그래요. (웃음)"

"여고생이 되어서도 나의 이런 기질은 변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수업료를 못 내는 아이들을 혼내면 벌떡 일어나 “수업료 못 내는 게 아이 잘못인가요?”하고 따졌고, 다 큰 여고생들에게 너무 짓궂은 장난을 건다 싶으면 정색을 하고 지적을 했다. 우리 사회에는 나이 어린 사람이 정면으로 지적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풍토가 있다. 원칙과 예의를 들먹이며 항의하는 나를 대견하게 보고 격려해 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못마땅하게 보는 경우가 늘 더 많았다. 그래서 언젠가는 학교 선생에게 100대까지 맞아 보기도 했다. (중략) 그렇게 맞다가 종례시간이 다 되었다. 나 때문에 집에 못 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미안해졌다. 나는 벌떡 일어나 “종례하시고 때리세요. 다시 맞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담임이 시뻘개진 얼굴로 “너 이거 부러질 때까지 맞아 봐라” 하고는 다시 엎드리게 했다."

유방 없는 여군은 군인이 아니다

"나는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30년 가까운 여군 생활 동안 남군에게 뒤지지 않으려 온갖 노력을 다 할 때마다 그렇게 거추장스러울 수 없던 여성의 상징을 그 수술에서 없애 버렸다. “이제야 홀가분하네.” 수술에서 깨어난 후 울먹이는 가족들 앞에서 내가 던진 첫마디였다. 쓸쓸한 감정을 밀어내며 그런 농담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여성이기 보다는 군인이 되고자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온 지난 세월이 있어서 가능했다."

기자간담회장에 함께 한 군 동기들과 함께
 기자간담회장에 함께 한 군 동기들과 함께
ⓒ 공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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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무 여부를 결정짓는 장애등급은 상위의 2급으로 판정되어 전역 대상이 되었는데 연금 액수가 걸린 상이 등급은 최하위 7급으로 나왔다면서요?
"그러게 말이에요. 전역은 시키면서 지금은 멀쩡하지 않느냐면서 연금은 많이 못 준다는 거죠." 

인터뷰 자리에 동행한 피우진의 군 동기인 임연희가 알려 준다. "피우진이 친구들 앞에서 활짝 웃는 얼굴로 '내 가슴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줄까' 하더라"고.

- 국방부가 항소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복직소송 1심은 승소했고 군대에 돌아가서 정년을 마치실 가능성이 높았는데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가 되셨으니  어려운 결정을 하신 셈이네요.
"괜히 정치에 말려들지 말라고 충고하는 분들 많았어요. 이 친구도 처음에 되게 반대했어요. 저도 고민 진짜 많이 했고요. 그렇지만 정치를 한다고 해서 잘못된 길을 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정치를 하느냐가 중요한데, 제가 군 대표나 여군 대표는 아니지만 오래 군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믿어요."

- 혹시 다른 당에서도 제안이 있었나요?
"아뇨, 없었어요."

- 인권단체에 2년이 넘게 꾸준히 나가셨다면서요.
"제 일이 이렇게 되고 나서 도움이 필요했고 궁금한 것도 많았어요. 아는 사람 중에 전교조 활동을 한 교사가 있어서 소개를 받아 단체를 찾았어요. 어쨌거나 저는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 꼬박꼬박 받으며 살아 온 사람인데 사심 없이 헌신하는 분들 보면서 부채감 같은 게 많이 들었지요."

진보신당과 '빨간 마후라'

- 일각에서는 오랜 시간을 직업 군인으로 지낸 피 후보님과 진보신당이 어울리는지 의구심을 표하고 있는데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요. 맞아요, 저 군인이었어요. 그러나 군 내부에 있으면서 생각을 표현할 여건이나 기회가 없기 때문이지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에요. 군인이라도 해도 다 동일한 개인이 아니고요. 군인은 이럴 거야 저럴 거야, 이러면 안 돼 저러면 안 돼, 그런 편견을 깨고 싶어요."

- 진보신당 창당대회 날 선글라스 패션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진보는 패션이라는 말씀과 함께. 목에 두르신 빨간 스카프도 잘 어울리시네요.
"이게 빨간 마후라거든요. 바로 그 빨간 마후라. 실제 비행할 때 두르던 거라 오래 된 거에요. 이번 총선 기간 동안 계속 하고 다닐 거에요. 선글라스도 조종 중에 끼던 거고요. 창당 대회 때 그러고 나타나니까 주변에서 설마 그러고 단상까지 올라가실 건 아니죠, 라고 묻더군요. 실은 단상 위에서도 선글라스를 끼려고 했었는데(웃음)."

등산 중의 피우진
 등산 중의 피우진
ⓒ 피우진과 함께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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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콜릿은 안 좋아하세요?
"아뇨, 좋아해요. 등산을 할 때면 갖고 다니면서 자주 먹어요. 애초에 제가 정한 제목은 ‘응답하라 여기는 불사조’였어요. 책에 소개했듯이 군에서 헬기 조종할 때 제 항공 호출명이 피닉스, 불사조였거든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여러 제목을 뽑아 모니터링을 해 보니까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 제일 반응이 좋았다고 해요. 그래서 제목이 그렇게 정해졌죠. 하하."

"여군단 해체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어느 날이다. 육군본부의 인사참모가 여군단의 주요 간부들을 소집하여 간담회를 하면서 여군병과 해체 후 여군들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하여 몇 마디 언급을 했다. “앞으로는 치마폭이나 눈물에 기대지 말고 초콜릿을 원하지도 말라.” (중략)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군은 과연 우리 여군들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능력인가, 치마인가? 나는 우리의 여군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많은 여군들이 남성 못지않은 능력을 다방면에서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지휘관은 우리 여군들에게 ‘능력’보다는 군이라는 남성 문화에 부드러운 역할을 해주는 ‘치마’로서의 여성을 원한다. 여군의 능력보다는 여성의 능력을 원하는 경우가 사실은 더 많았다. 스스로 치마폭과 눈물과 초콜릿에만 감싸여 있기를 원하는 여군은 별로 없다."

- 어려운 결심하셨는데 당선 안 되면 어쩌죠?
"하하. 당선되어야죠. 그렇지만 당선 안 되어도 결과 여부와 무관하게 제 길을 계속 가는 거지요." 

나는 굳이 피우진에게 핫초코를 권했다. 그녀가 편안한 모습으로 초콜릿을 먹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간담회장에서 노회찬 의원은 진보신당이 피우진을 선택한 것이 "이유 있는 확장”이라고 말했다. 피우진도 아마 그럴 것이다. 피우진에게도 당에게도 절실했을 확장과 변신. 훈련소 시절 그녀가 좋아하는 시구를 따서 붙였다는 기훈 “다시 우뚝 서 본다”와 그녀가 그토록 불리길 원하는 그 이름을 붙여 이렇게 불러본다: 다시 우뚝 서라 불사조!

인터뷰 중에 전화를 받고 활짝 웃는 피우진
 인터뷰 중에 전화를 받고 활짝 웃는 피우진
ⓒ 공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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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인터뷰를 진행한 공숙영은 인터뷰전문웹진 퍼슨웹 www.personweb.com  편집장을 지냈고 현재 대학원에서 '국제법과 인권'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태그:#피우진, 총선, 진보신당, 비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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