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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른들은 못찾는 아이들의 해방 공간
 
니체는 '영혼의 하수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활을 하다보면, 생활의 하수구와 같은 해방 공간이 필요하구나 느낀다. 삶의 정화를 위한 마음의 하수구도 필요하고, 각박한 삶에 해소의 공간은 더 절실해진다. 그 영혼의 하수구를 찾기 위해, 화려한 백화점 쇼핑도 하고, 친구도 만나 웃고 떠들어 보아도, 삶의 갈증이 더해질 때, 강아지 앞장 세워 동네 한 바퀴 돌고나면 아이처럼 즐거워진다. 
 
 
다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아침일찍 일어나 동네 한바퀴
우리보고 나팔꽃 인사합니다
우리도 인사하며 동네한바퀴
바둑이도 같이돌자 동네한바퀴
 
- 동요, '동네 한바퀴'
 
 
동네 한바퀴 돌며 푸른 삶의 채소를 얻어오다
 
동네 한 바퀴 산책은 즐겁다. 유쾌한 이웃과의 대화이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동네 한 바퀴 도는 시간은 저녁 먹기 전이나 저녁 먹고 나서가 좋지만, 딱히 시간을 정해 놓을 필요는 없겠다. 
 
허슬리의 '박물학을 조금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시골이나 바닷가를 산책하는 것은, 놀라운 미술 작품들이 가득차 있는 화랑을 걷은 것이나 마찬가지다'는 말처럼,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보면, 빛바랜 골목길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하얀 빨래 사이로 구름을 만나고, 졸졸졸 하수구의 물소리에 뭔가 뻥 뚫리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삶의 맨살들이 다 보이는 어깨 낮은 담장 너머로 들려오는 부부싸움 하는 소리, 아이들 우는 소리도 오랜된 동네 골목길에서는 모두 모두 정겹다.
 
      
 
제2의 '잭슨 폴록'이 그린 벽화
 
요즘처럼 공부로 스트레스 받는 아이들이 있을까. 아이들의 성장은 놀이에서 무한한 상상력과 체험이 쌓이는데, 아침부터 밤 늦도록 공부에 시달리는 아이들, 넓은 아파트 단지에 놀이터가 있지만, 시간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 같다. 
 
부지런히 동네 한 바퀴 돌다가, 아이들이 낙서가 분분한 골목길과 아이들의 솜씨로 보이는 벽화가 그려진 콘크리트 벽을 만났다. 이곳은 해운대 신시가지로 통하는 고가도로로 생성된 듯 보인다. 그래서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소이고, 동네의 이편과 저편 동네를 이어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이 터널은 아이들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장소. 그 터널 안에 그려진 그림들은 초등학교 아이들의 낙서라고 말하기는, 약간 수준이 느껴지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터널 속은 왜 그렇게 따뜻한 엄마의 품 같았을까. 마치 '잭슨 폴록'의 그림 연상케 할 만큼, 아이들의 재미 나는 상상의 그림에 나도 절로 흥겹다.
 
 
사람 냄새 나는 골목길의 인정 그립다
 
고가도로의 터널을 지나 2~3분 걸어오면, 높은 건물과 빌딩 속에 파묻힌 작은 골목길로 길은 이어지고, 대문이 없는 골목 안에는 개 짖는 소리, 아기 울음 소리 간간이 들린다. 대문이 현관문이고 방문인, 골목 안에 아기자기 놓여진 꽃 화분과 함께 채소를 가꾸는 화분의 임자들은 일터로 나갔는지, 대낮의 골목길은 언제나 한가하다. 
 
그러나 초등학교가 파하는 시각이면 아이들끼리 어울려 뛰어 노는 소리, 그리고 일터에서 돌아온 주부들의 저녁 끼니 장만하는 마늘 찧는 소리, 설거지 빨래 하는 물소리 등 금세 왁자왁자해진다. 
 
오늘은 일요일/ 어제는 토요일/ 이 좁은 골목안에/ 부드러운 햇살이 아낌없이 쏟아지는 속에/아이들이 그득히 나와서 논다./ 달리는 아이,/우는 아이,웃는 아이, 고함지르는 아이,부르는 아이, 대답하는 아이  - 김윤성, '골목안'
 
 
세닢 주고 집 사고, 천냥 주고 이웃 산다
 
아파트 생활은 골목길이 없는 삶. 그래서 이웃을 앗아 가버린 것은 아닐까. 이웃이 없는 삶이 행복할 수 있을까. 오래된 골목 속으로 들어오면, 여기서는 사람이 사는 냄새 같은 이웃과 이웃간의 인정이 피부로 느껴진다. 니 것 내 것 경계 없이, 서로 나누며 사는 모습처럼, 문 밖에 내 놓은 파릇파릇 채소 화분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어느 골목길이나 다 정겹지만, 초등학교 벽돌  담장이 있는 이 골목길 지날 때마다 들려오는 풍금소리는 내 추억의 골목길처럼 정말 정겹다.
 
"이웃이 좋아 정말 이사하기 싫은데…' 서로들 이삿짐 싸 두고 헤어지기 싫어 눈물의 인장을 찍던 그 옛 이웃들의 모습도 그립다. '맹모삼천지교'를 떠올리게 하는 이곳 골목길의 담장은 해운대 초등 학교 담장이다. 항상 골목길 비워 있어도 아이들의 노래 소리, 아이들의 왁자한 노는 시간의 웃음 소리 가득하다. 그래서 이 동네 저 동네의 경계가 허물어지는,아이들이 한데 어울려 놀기 좋은 골목길이기도 하다. 
  
 
얼마나 우줄대며 다녔었나/ 이 골목 정동 길을/ 해여진 교복을 입었지만/ 배움만이 나에겐 자랑이었다/중략/돌아오는 황혼이면/무수한 피아노 소리/ 피아노 소리 분수같이 눈부시더라/중략/커어다란 노목이 서 있는 이 골목  - 장만영, '정동골목'

태그:#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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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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