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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대체: 23일 저녁 11시 55분]

한나라당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새 정권을 출범시킨 지 한 달도 안된 상황에서 잇단 실책과 무리수로 민심이 이반된 데다 공천 후유증까지 겹쳐 잠재돼 있던 계파갈등이 순식간에 분출한 것이다.

23일 한나라당에서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뉴스들이 줄을 이었다. 한 건 한 건이 다 정치권에 메가톤급 충격을 안겨줄 뉴스들이 한나절 사이에 4~5건이나 연이어 터져 나왔다.

지난 2005년 당대표이던 박근혜 의원과 원내대표이던 강재섭 의원이 의원총회에서 동료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자료사진).
 지난 2005년 당대표이던 박근혜 의원과 원내대표이던 강재섭 의원이 의원총회에서 동료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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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2시 박근혜 전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어 당의 공천결과를 비난하며 지도부의 책임을 물은 것을 시작으로, '이명박계'로 분류되는 출마자들의 이상득 의원 불출마 촉구 기자회견, 강재섭 대표의 총선 불출마 선언, 그리고 이재오 의원이 청와대에 자신과 이상득 의원의 '동반사퇴론'을 제기했다는 소식 등이 이어졌다.

총선 후보등록을 코 앞에 두고 집권당에서 벌어진 이런 초유의 상황은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저마다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결국 이번 총선에서 자파의 세력을 최대한 확대시켜보려는 계산에 따라 취해진 행동임을 알 수 있다. 총선을 앞두고 집권당의 정책이나 비전은 온데 간데 없고, 오직 권력투쟁만 난무하는 것이다.

이렇게 분출된 계파갈등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현 단계에서는 누구도 자신 있게 예측하기 힘들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더 이상 한나라당이 단일한 정치세력으로서 국민들에게 인식되기는 어렵게 됐다는 점이다. 박근혜·이상득·이재오 등 계파갈등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주요 인사들의 향후 거취가 주목된다.

'간판스타' 사라진 한나라당 총선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은 23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총선 공천을 "한마디로 정당정치를 뒤로 후퇴시킨 무원칙한 공천의 결정체"라며 " 대표와 지도부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은 23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총선 공천을 "한마디로 정당정치를 뒤로 후퇴시킨 무원칙한 공천의 결정체"라며 " 대표와 지도부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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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정치를 뒤로 후퇴시킨, 무원칙한 공천의 결정체였고, 어리석은 공천이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정책 혼선과 잘못된 인사, 의미가 퇴색된 개혁공천 등에 대해 사과드리며, 청와대와 당 지도부도 국민들게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 (한나라당 이명박계 공천자 46명)

박근혜 전 대표가 이날 계파 후보들이 공천에서 대거 탈락한 뒤 무소속 출마를 결행한 상황과 관련해 강재섭 대표에게 용퇴를 요구한 데 이어 이명박계 후보 46명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불출마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 전 대표는 국회 기자회견에서 당 안팎의 후보들이 요구할 어떠한 형태의 지원 유세에도 응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박 전 대표는 "내 선거도 있다"고 핑계를 댔지만, 그가 선거구 걱정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정치권에 거의 없다.

박 전 대표의 주변에서는 "중앙선대위 발족을 하루 앞두고도 '공동 선대위원장' 얘기도 없는 마당에 무슨 자격으로 (당내) 타 후보들의 지원 유세를 하냐"는 얘기도 나왔다. 정확한 사태의 전말은 알 수 없으나 박 전 대표가 지원 유세를 사양할 정도로 당 지도부와의 관계가 틀어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각 지역구마다 격전지가 적잖은 이번 총선에서 박근혜와 같은 '간판스타'가 지원 유세에 나서지 않을 경우 한나라당의 전력에도 큰 타격이 예상된다.

더구나 박근혜계로 분류되는 한나라당 후보 수가 30명이 넘는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일체의 지원 유세를 하지 않기로 한 것에 대해서는 당내 박근혜계의 불만도 예상된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이에 대해 "지금 누구는 지원유세 해주고 누구는 안 해줄 형편이 아니다, (지원유세 안 하면) 차별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겠냐"며 "박 전 대표가 사실상 지역구에 '칩거'하는 것으로 해석해도 좋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후보 46명 "이상득 불출마, 선거 판세 바꿀 것"

박 전 대표의 기자회견이 끝난 지 두 시간 뒤 이번에는 이명박계 한나라당 후보 20여명이 여의도당사를 찾아와 민심 이반에 대한 당 지도부의 사과와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불출마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포함해 총 46명의 한나라당 후보들이 기자회견 내용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은 "'형님공천' '형님인사' 등으로 민심 악화의 주요원인이 됐던 이 부의장이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향후 일체의 국정 관여행위를 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틀 전 '이상득 불출마'를 요구한 남경필 경기도당 위원장의 바통을 받은 셈인데, 기자회견에는 공성진 서울시당 위원장과 정두언 의원 등이 동참했다.

성명서를 낭독한 박찬숙 의원은 "우리는 이 부의장의 불출마가 선거 판세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 의원의 기자회견 직후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몰아내는 건 개혁이 아니다, (남 의원을) 크게 꾸짖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강 대표가 어떤 의미에서는 당내 소장파들에게 포위가 된 형편이다.

46명 중 재선의 심재철·안경률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초선의원이거나 18대 총선에 처음 출마하는 정치신인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정권 출범 한 달 만에 선거 구도가 '노무현 심판론'에서 '이명박 심판론'으로 바뀐 데 대해 큰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기자회견을 준비했다고 한다.

익명의 수도권 후보는 "대선 직후만 해도 수도권에서 5석도 얻지 못할 것이라던 민주당의 우세지역이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15석 안팎으로 늘렸다"며 "저쪽에서 '한번 해보자'고 정권 심판론을 밀어붙이면 수도권과 충청권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한나라당 박찬숙, 심재철, 차명진, 공성진, 진수희 의원 등을 비롯한 공천자들이 23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청와대와 당 지도부에 민심수습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퇴색된 개혁공천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이상득 부의장의 불출마 선언 등을 촉구했다.
 한나라당 박찬숙, 심재철, 차명진, 공성진, 진수희 의원 등을 비롯한 공천자들이 23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청와대와 당 지도부에 민심수습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퇴색된 개혁공천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이상득 부의장의 불출마 선언 등을 촉구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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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이대로 가면 이명박 정부를 뒷받침할 안정 과반의석 목표가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이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와 함께 ▲ 서민을 외면한 정책혼선과 잘못된 인사, 의미가 퇴색된 개혁공천 등에 대한 청와대와 당 지도부의 사과 ▲ 부실한 검증과 폐쇄적인 인사 건의로 인사 파동을 초래했던 청와대 관계자의 문책 ▲ 인사와 비례대표 공천, 정책시행의 우선순위를 서민과 약자, 소외지역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공천에 탈락한 뒤 '불출마' 대열에 합류한 5선의 김덕룡 의원도 보도자료를 통해 "현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국민적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서는 이 부의장이 먼저 한나라당 공천을 반납하는 용단을 내리는 것이 사태수습의 첫 걸음"이라고 주장했다.

소장파에게까지 포위된 강재섭

그러나 이들의 기자회견을 당내 권력투쟁의 소산 정도로 평가 절하하는 시각도 있다. 기자회견 참석자의 절대 다수가 이 부의장 중심의 노장그룹과 대립축을 형성해온 이재오·정두언 의원과 가까운 인사들이었기 때문이다. 박근혜계로는 유일하게 강원도 원주의 이계진 의원이 명단에 포함됐다.

이들이 '개혁공천의 퇴색'을 비판하면서도 공천 심사에 직접 참여한 이방호 사무총장과 막후 실세로 거론되는 이재오 의원에 대해 이렇다 한 얘기를 하지 않은 것도 이 같은 인적 구성과 무관하지 않다.

공성진 의원은 이같은 시각에 대해 "이재오 의원은 공천에 개입하지도 않았는데,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방호 총장을 거론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항변했다. 공 의원은 "(똑같이 5선을 한) 박희태 의원까지 떨어진 마당에 이 부의장만 공천을 받는 것을 민심이 감성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건 권력투쟁이 아니라 생존게임"이라고 절박한 상황을 표현했다.

반면, 박찬숙 의원은 "이런 성명서를 특정계보가 발표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용기 있는 결단 아니냐"고 답변해 눈길을 끌었다.

결국 불출마... "저의 충정 모두가 이해할 것"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23일 저녁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8대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23일 저녁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8대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밝혔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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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내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강재섭 대표는 저녁 7시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18대 총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강 대표는 이날 배포한 기자회견문에서 "저는 국민 여망인 정권교체의 마무리가 되는 이번 총선의 승리를 위해 저의 모든 것을 던질 각오가 되어있다"며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 그러면 저의 충정을 모두가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더 이상 '친박, 친MB다' 이런 얘기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며 "당원이라면 누구도 이제는 공천 결과에 대해 시비걸지 말고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정권교체의 마무리에 나서자"고 호소했다.

강 대표는 "내 정치인생은 항상 양보하고 인내하는 것이었다"며 "이제 당대표로서 떳떳하게 곳곳을 누비면서 당을 위해 희생하겠다, 공천받은 한나라당 후보만을 위해 어디든 뛰어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복잡한 것이 싫다, 그 결과로 책임을 지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또 한 사람 계파갈등의 '고리'인 이재오 의원은 이날 오후 8시께부터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을 앞둔 민심 동향과 당내 갈등에 대한 수습책이 논의됐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이재오계'라 할 수 있는 공천자들이 다수 포함된 이날 낮 '이상득 불출마 촉구' 기자회견과 관련 어떤 논의가 이뤄졌는지 주목된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 의원이 자신과 이상득 의원의 '동반사퇴'를 제안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태그:#박근혜, #강재섭, #이상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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