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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에세이집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를 펴낸 사진작가 임종진이 '오마이스뉴스'의 <저자와의 한밤> 두번째 손님으로 초대됐다. 21일부터 22일까지 강화도 오마이스쿨에서는 김광석을 통해 이어진 또 다른 인연들이 모여 따뜻한 밤을 함께 지새웠다. <기자 주>

'사람'이라는 피사체를 두렵지 않게 만들어준 그이

임종진이 사진에 빠져들기 시작한 시기는 그가 김광석이란 가수를 좋아하게 된 시기와 일치한다. 제대 후 막 복학한 대학생 임종진은 세상과 그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사진'을 선택했다.

"사진에 대해 잘 모를 때였고, 특히 '사람'이라는 피사체를 많이 두려워했던 시기였어요. '좋아하는 사람'을 찍다보니 거부감이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1993년부터 1995년 여름까지 임종진은 김광석의 공연을 찾아다니며 그의 모습을 담아냈다. 지금은 공연장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만, 그때만 해도 공연장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임종진 한사람뿐이었단다. 그는 공연장을 자유로이 누비며 김광석을 향해 한 컷 한 컷 소중한 셔터를 눌러댔다.

사회를 맡은 지주연씨와 임종진 작가
▲ <김광석, 그가 그리운 봄날에…> 사회를 맡은 지주연씨와 임종진 작가
ⓒ 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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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를 추억할 사진들, 10년 만에 세상으로

그렇게 생겨난 수백 통의 필름은 김광석의 죽음과 함께 어둠의 구석에 박혀 버렸다. 임종진은 그가 담아 놓은 김광석의 모습들을 볼 수가 없어 그 필름을 치워 버렸다.

"필름을 보는 게 싫었어요. 상실감이 들어서…. 광석이 형이 하늘로 간 뒤로 10년이 지난 2006년에서야 다시 그 필름들을 꺼내보기 시작했지요."

필름을 꺼내 옛 기억을 하나씩 떠올리며 작업을 하다 보니 이 사진들을 책으로 묶어 김광석을 추억하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단다.

"정말 꼼꼼히 작업했어요. '내가 이걸 언제 찍었나'하는 사진들도 발견하게 됐고요. 김광석의 울림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 1년 반이었습니다."

그 분이 "이정도면 됐다"고 말할 성 싶을 때까지 정성을 다했다는 임종진. 그의 말대로 김광석은 평범한 것을 세심하게 짚어내고 세대를 아울러 '평범한 삶 속의 행복'을 노래했기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무르며 사랑받고 있는 게 아닐까.

임종진이 말하는 '사진을 통한 소통'

임종진은 그의 에세이집에 수록된 사진과 미수록분을 함께 보며 이야기를 더해갔다. 깊이 있는 흑백 사진들 중에는 더러는 흔들리고, 노출과 초점이 조금 엉성한 사진들도 눈에 띄었다.

"제가 사진 강의를 할 때 지적하는 실수들이 제 과거 사진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지금의 제가 사진작가이다 보니 그때 사진들의 실수까지 의도된 기술로 생각하지만 지금 보면 사실 창피한 사진들이 많아요."

김광석을 향한 임종진의 풋풋한 떨림과 기교 없는 손짓이 사진 속에 살아 숨 쉬는 듯하다.

"사진은 소통입니다. 사진은 일방적이어서도, 혼자만 즐거워서도 안 되죠.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은 사진과 대상의 관계를 더 이상 1:1의 같은 크기로 놓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사진만큼 대상과 함께 공존하는 창작행위는 없다고 말하는 임종진은 '천천히 호흡하며 대상과 관계 맺기'를 제안한다. 이는 곧 사진을 찍는 나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즐거운 사진을 말한다.

"피사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에 따라 사진은 다르게 나옵니다. 바로 어떤 소통의 과정이 있었느냐에 따라 다른 사진이 나온다는 거죠."

당시 상황과 느낌, 삶과 사람을 담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하다. 소통의 방식은 주로 '대화'가 될 수 있겠지만 때로는 눈빛만으로도 상대와 소통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덜고 빼기'와 '기다림'

임종진이 눈빛을 교환했던 네팔 할머니
▲ 옥수수더미를 지고 가는 네팔 할머니 임종진이 눈빛을 교환했던 네팔 할머니
ⓒ 임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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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진을 잘 찍는 비법에 관해 두 가지 팁을 제시한다. 하나는 '사진에 모든 걸 담으려 하지 말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기다림'이다.

"내 몸의 움직임을 통해서, 사각 프레임을 채울 때 무엇을 빼고 덜어낼지 깊이 고민해야죠. 나를 카메라에 맞추려 하지 말고 카메라에 나를 맞춰보세요."

가만히 한 자리에 서서 연신 셔터를 눌러대던 자신이 머쓱해지는 순간이다.

"사진은 기다림의 미학입니다. 최고의 순간, 내가 담고 싶은 그 순간을 위해 기다리세요."

아직도 디지털 카메라보다는 필름 카메라를 선호한다는 그는 사람과 느리게 대화하며 눈을 맞추고, 상대가 마음을 열 수 있게 천천히 기다려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선이골 기획'과 '북한 기획'을 작업한 임종진의 사진 작품들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카메라 렌즈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이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천진난만하게, 때로는 수줍게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이며 렌즈를 향해 웃는 사진 속의 인물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잔잔한 미소를 흘리게 한다. 이것이 바로 혼자만이 아닌, 서로 행복한 사진 찍기라는 것을 임종진은 강의가 아닌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캄보디아로 떠난다

10여년의 사진기자 생활을 마무리하고 '캄보디아'로 떠나는 임종진은 1년 정도 생활하면서 그가 그동안 꿈꿔왔던 일들을 하고 싶단다. 물론 그의 언어인 '사진' 작업도 포함될 것이다.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의 인세는 그곳에서 유용하게 쓰일 거예요. 우선 몇 명에게 학비를 지원해 주고 싶어요. 우리나라 돈으로 한 학기에 40만원 정도 되는 등록금이 없어서 대학에 가지 못하는 똑똑한 아이들이 많거든요."

몇 년 후 개정판이 나올 때쯤엔 그 아이들의 사진도 함께 실을 예정이다. 차근차근 자신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는 그가 캄보디아에서는 또 어떤 세상을 만나고, 그 세상을 어떻게 풀어내서 돌아올지 기대된다.

행복한 김광석, 그를 보듬는 사람들

초대가수 이성호씨와 함께 한 추억의 순간
▲ 모두가 함께한 2부 초대가수 이성호씨와 함께 한 추억의 순간
ⓒ 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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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에 가까운 임종진의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김광석으로 하나가 된 사람들의 작은 축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새벽'이란 노래모임에서 김광석과 함께 활동했던 '이성호'가 그를 대신해 초대 가수로 한걸음에 와주었다.

가장 바쁜 금요일 장사를 내팽개치고 온 사람치고는 너무 싱글벙글한다. 김광석을 다시 따뜻하게 추억하게 해준 임종진과 이성호를 통해 다시 한 번 김광석을 느끼기 위해 모인 이들. '거리에서'를 시작으로 계속 이어진 노래와 이야기들 속에서 그들은 김광석과 진정하나가 된다.

"광석이형이 콘서트에서 '안녕'으로 시작해서 '행복하세요'로 마무리했잖아요. 아는 사람 만날 때도 똑같았어요. 하회탈 같은 얼굴로 '안녕'하더니 꼭 헤어질 때는 '행복해야 돼'라고 말하는 사람이었어요. 정말 사람들이 많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소박하고 맑은 그런 형이었는데……."

노래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김광석의 추억담을 풀어놓은 이성호의 눈가로 눈물이 흘렀다. 김광석이 세상을 등진 지 12년 만에 흘리는 눈물이란다. 그런 소박한 김광석에 대한 관객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가객 김광석이 아닌 인간 김광석을 보고 싶었던 오래된 팬들의 바람이었다.

"키 정말 작아요?"
"(웃음) 자기가 들고 다니는 기타보다 조금 커요."

"성격은 어땠어요?" 
"음, 자기 것을 못 챙기는 사람이에요. 나 같으면 그 정도 돈 벌었으면 큰 빌딩 하나는 사놓았을 거예요, 그런데 형은 쓸 줄도 모르고 너무 검소했어요. 남한테 싫은 소리도 못하고."

"돈 많이 버셨어요?"
"그럼요. 꽤 벌었지요. 그런데 1000회 콘서트 때 형이 자기 보고 돈 버는 기계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노래만 하고 싶었는데 그것뿐이었다고. 참 바보 같은 사람이죠. 난 그런 형이 꿈이에요."

어느 새 이성호의 눈에는 웃음이 가득 차있었다. 임종진도 강의 때보다 긴장이 풀어진 편안한 모습이었다. 김광석도 거기 있는 듯했고, 관객들 모두 마이크를 잡고 김광석 노래를 한곡씩 불렀다.

임종진은 '나무'란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김광석이 화려한 꽃잎보다 수수한 나무를 닮았기 때문이란다. 임종진의 노래가 끝날 무렵, 악보가 떨어졌다. 이성호가 악보를 주워들어 다시 펴며 말했다.

"나 김광석 비디오 자료 좋은 것으로 희귀본 있는데, 이거랑 바꿀래요?"
"(머리를 긁적이며) 아, 그게 그 모음집에 막내 동생이 글 써놓은 게 있어서…"

임종진은 핑계 아닌 핑계로 거절을 표현했다. 여기저기서 "저거 절판되었는데" "좋겠다"하는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너덜너덜해진 '김광석 노래 모음집' 하나에 어른들의 눈빛이 쏠렸다. 무엇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이토록 행복한 일이라는 사실을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광석이 형이 32살에 갔잖아요. 나는 이제 마흔이 훌쩍 넘었어요. 그런데 그는 아직 어린 모습 그대로예요. 더 이상 슬퍼하고 그리워할 대상이 아니라, 이제 어린 그를 보듬어 줘야할 것 같아요."

이성호는 콘서트의 마지막 노래를 '일어나'로 정했다. 모두 '일어나' 밖에서 비공식 뒤풀이 콘서트를 하자는 이야기다. 모두 김광석이 좋아하는 막걸리 한 사발을 들고 '일어나'를 외치며 밖으로 나갔다. 살갗을 차갑게 적시는 새벽이슬에 모닥불이 비쳤다. 그때가 5시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맑은 눈망울로 김광석을 추억하고 있었다. <작가와의 한밤>은 김광석에게도 행복한 한밤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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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광석, #지주연, #임종진, #저자와의 한밤, #이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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