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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에서 만난 산자고
 변산에서 만난 산자고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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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기도 하셔라
누가 그리 재촉했나요,
반겨줄 임도 없고
차가운 눈, 비, 바람 저리 거세거늘
행여,
그 고운 자태 상하시면 어쩌시려고요. 

살가운 봄바람은 아직,
저만큼 비켜서서 눈치만 보고 있는데
어쩌자고 이리 불쑥 오셨는지요,
언 땅 녹여 오시느라
손 시리지 않으셨나요,
잔설 밟고 오시느라
발 시리지 않으셨나요,

남들은 아직
봄 꿈꾸고 있는 시절
이렇게 서둘러 오셨으니
누가 이름이나 기억하고 불러줄까요,
첫 계절을 열어 고운 모습으로 오신
변산 바람꽃

- 이승철의 시 <변산 바람꽃> 모두

내소사 경내에서 만난 노루귀
 내소사 경내에서 만난 노루귀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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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설이 남아 있는 양지쪽 언덕에 찬바람을 피해 살짝 고개 들고 피어나는 변산 바람꽃. 그러나 3월도 하순으로 접어든 21일, 22일 뒤늦게 찾은 변산과 선운산에서 ‘변산 바람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시기가 너무 늦어 변산 바람꽃은 이미 시들어버리고 없었다.

내소사 일주문을 들어서자 왼편 평지 나무 그늘 아래 좁쌀처럼 작은 노루귀들이 피어 있는 모습이 앙증맞고 귀엽다. 꽃은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너무 작아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었다.

관음봉으로 오르는 산등성이 양지바른 곳에 피어 있는 백합과의 작은 꽃인 산자고(山慈姑)역시 여간 귀엽고 예쁜 것이 아니었다. 별처럼 생긴 하얀 꽃들이 어젯밤 봄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별들이기라도 한 것처럼 화사하고 찬란하다. 이 작고 귀여운 산자고(山慈姑)의 전설이다.

내소사 앞에서 만난 매화꽃
 내소사 앞에서 만난 매화꽃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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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산골에 마음씨 고운 아낙네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아낙네는 3남매를 키웠는데 위로 딸 둘은 출가시키고 막내인 외아들만 남았다. 그런데 늙은 어머니를 부양하며 가난한 산골에서 사는 이 총각에게 시집을 오겠다는 처녀가 없었다.

아들을 장가들이기 위해 근처 큰 마을에 몇 번이나 매파를 보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는 동안 늙은 어머니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 봄날 밭에서 일하던 어머니의 눈에 보퉁이를 든 처녀 하나가 나타났다.

이 처녀는 산 너머에서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었는데 역시 시집을 가지 못하고 있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나 죽으면 산 너머 외딴집을 찾아가보라”는 유언을 남겨 찾아온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짝 지워진 아들과 며느리를 볼 때마다 어머니의 마음은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다. 아들과 며느리의 효성도 지극했다.

그런데 이듬해 초봄 이 귀엽고 착한 며느리의 등에 아주 고약한 등창이 생겼다. 며느리는 너무 아픈 등창 때문에 여간 고생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까운 곳에 의원도 없고 마땅한 치료를 해줄 수가 없어 애태우던 이 어머니는 며느리의 종창을 치료할 약재를 찾아 막연하게 산 속을 헤매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어머니에게 우연히 양지 바른 산등성이에서 별처럼 예쁘게 생긴 작은 꽃이 눈에 띄었다. 아직 꽃이 피기에는 이른 계절인데 예쁜 꽃이 피어 있는 것이 신기하여 살펴보고 있는데 그 작은 꽃 속에서 며느리의 상처가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 뿌리를 캐다가 으깨어 며느리의 등창에 붙여 주었다.

선운사 경내에서 만난 산수유
 선운사 경내에서 만난 산수유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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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고름이 흐르고 짓물러 며느리를 괴롭히던 고약한 상처가 며칠 만에 감쪽같이 치료가 된 것이다. 며느리는 물론 시어머니의 마음도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이 작고 예쁜 꽃 이름을 “산자고(山慈姑)‘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며느리를 사랑하고 귀히 여긴 시어머니의 전설이 깃든 꽃인 것이다.

산자고는 ‘소귀나물’ 또는 ‘까치무릇‘이라는 정다운 우리이름을 가진 꽃이기도 하다. 잎과 뿌리의 생김새에서 비롯된 이름인 것이다.

내소사 절마당과 누구네 집 앞 마당에는 가지런하게 다듬어 키운 산수유가 노란 꽃을 터뜨려 화사한 모습이었다. 매화도 하얀 꽃 붉은 꽃이 다투어 피어나고 화단가에 핀 몇 송이 노란 수선화가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길손들을 유혹한다.

고창의 도솔산 자락에 안긴 천년고찰 선운사 대웅전 뒷산자락을 뒤덮은 동백꽃은 이제 피어나기 시작한 듯 아직은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쪽 언덕에는 커다란 산수유나무 몇 그루가 활짝 피어 노란 꽃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선운사 담장에 기대선 찻집 툇마루 밑에도 수선화 노란 꽃들이 한창이다. 수선화들은 노랗고 탐스러운 아름다움이 노루귀나 산자고와는 전혀 다른 화려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 화사한 꽃들을 보며 정호승 시인의 시 한 수를 떠올려 보았다.

선운사 담장길에서 만난 수선화
 선운사 담장길에서 만난 수선화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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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중략-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정호승의 시<수선화에게> 중에서

▲ 변산과 선운사에서 만난 봄꽃들 변산 바람꽃은 이미 지고 대신 만난 작고 귀여운 노루귀와 산자고는 매우 청초한 모습이었다. 또 한창 피어나고 있는 산수유와 매화, 그리고 수선화의 아름다움이 변산바람꽃을 대신하고 있었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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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변산바람꽃, #노루귀, #산자고, #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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