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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송파구가 무인카드 시스템을 이용한 양심자전거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그 보도를 접하고 드디어 새로운 자전거 시대가 열렸음을 실감했다.

 

양심자전거는 기술 발달에 따라 총 4단계로 나눠지는데, 송파구가 시행한 제도는 최첨단 방식인 4단계이기 때문이다. 이 제도의 성공 여부에 따라 우리나라 자전거 문화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물론 반대로 실패한다면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것이다.

 

구 관계자들과 함께 직접 시설이 운영되는 천호역을 찾았다. 여기에 직접 시승한 소감과 함께 양심자전거의 역사를 함께 소개한다.

 

양심자전거의 발달... 색깔만 칠한 자전거에서 스마트카드까지

 

시민공용자전거(PUB, Public Use Bikes)는 4개 단계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제도의 초보 단계인 '1세대 시민공용자전거(1st generation PUBs)'는 기증받은 자전거를 있는 그대로 사용하거나 차체에 페인트를 칠하여 일반자전거와 구분하여 사용한다.

 

이 제도는 운영체계가 매우 단순하여 큰 돈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차체 색깔만으로 일반자전거와 구분되기 때문에 장기간 개인용도로 이용하거나 분실 등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의 양심자전거와 같은 제도가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 단계인 '2세대 시민공용자전거(2nd generation PUBs)'는 일정액의 동전을 보증금으로 맡겨 두고 자전거를 이용한 뒤 보증금을 되돌려 받는 장치를 단 자전거(Coin deposit bike)다.

 

이 제도를 시행하는 대표 도시가 코펜하겐이다. 코펜하겐시는 자전거 무게, 차체 형태, 사용부품 등을 일반자전거와 다르게 하여 일정 지역 안에서만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자전거 구입비와 유지관리비용이 초보단계보다 많이 들기 때문에 제도 운영을 위해 자전거를 기증받고 바퀴 등에 후원단체 또는 기업 광고를 유치한다.

 

세 번째 단계인 '3세대 시민공용자전거(3rd generation PUBs)'는 스마트자전거시스템(smart-bike system)이라 부른다. 동전 대신 사용자 인적사항과 이용 관련 정보가 들어 있는 카드(magnetic stripe card)를 사용한다. 자전거이용자가 자전거를 되돌려주지 않거나 장기간 이용하는 경우에 추적이 가능하다.

 

카드에 개인정보를 등록하는데 다소 불편이 따르기는 하나 도난문제가 해결된다. 카드를 만들고 자전거 보관 장소에 카드수용장치(Receptor)를 설치하는 등의 기술 문제와 돈이 많이 드는 게 단점이다.

 

카드 사용 자전거, 시설보다 유지 관리에 눈길 돌리는 계기

 

네 번째 단계는 현재 운용시스템 중 가장 발전된 방식으로 '4세대 시민공용자전거(4th generation PUBs)'이다. 이 시스템은 스마트카드를 이용하는 3세대공용자전거와 같은 형식이지만 마그네틱카드대신 사용자 정보가 저장된 칩이 있는 스마트카드를 사용한다. 겉보기엔 큰 차이가 없는데, 긁는 방식의 교통카드와 갖다 대기만 하는 교통카드 정도 차이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프랑스 리용의 '벨로브(Velov)'와 파리의 '벨리브(Valib)' 등이 대표적이며, 송파구가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무인자전거대여시스템(SPB, Songpa Public Use Bike)도 여기에 해당한다.

 

송파구가 새로운 자전거 시스템을 선보인 것은 올해 들어서다. 지난 2월 11일 송파구는 '여가와 레저 중심의 자전거 이용을 생활권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생활권 단위의 자전거이용 활성화 시범사업'의 하나로 무인자전거대여시스템을 개발, 한 달간의 시험을 거쳐 3월부터 본격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사업은 자전거를 이용한 대중교통(전철) 환승유도가 목적이다. 송파구 풍납동에 있는 동아한가람아파트와 천호역 사이를 자전거를 타고 오가게 하는 것. 구는 이를 위해 무선인식 리더기가 장착된 포스트(키오스크, 무인자전거보관대)를 동아한가람아파트에 30대, 천호역에 10대를 설치하였다.

 

앞으로 현재 운영 중인 4개 대여소(잠실, 거여·마천, 문정·가락, 풍납대여소)에도 적용하고, 전철역 등 주요지점에 자전거무인대여스테이션(대여정류장)을 설치해 완벽한 도시자전거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임을 밝히고 있다.

 

나는 관계자로부터 '공공자전거회원카드'를 빌려 천호역에서 시설을 직접 이용해보았다. 2005년 노르웨이 오슬로시를 방문하였을 때 접한 후 처음이다.

 

카드를 키오스크의 판위에 갖다 대는 순간 키오스크와 자전거를 연결하는 잠김 봉이 풀렸다. 자전거는 키오스크에서 해방되면서 시민을 위한 공용자전거가 된다. 신분증을 맡기고 자전거를 빌리는 대여소와 비교한다면 카드 하나로 자전거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감동적이다.

 

자전거 타고 성숙한 신용사회로 달려가자

 

생활 측면에서 본다면 전혀 다른 세계에 온 것이다. 자전거문화가 변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 순간이다. 카드에 개인정보등록을 가능하도록 한 IT기술과 이를 활용한 제도의 등장은 우리의 자전거정책과 자전거문화에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자전거정책 측면에서 본다면 각 지자체는 자전거도로와 자전거주차장 등 이용시설정비 위주의 정책뿐만 아니라 이들 시설에 대한 유지관리와 효과적인 운영에 눈을 돌려야 하는 부담을 갖게 되었다. 이제는 정비된 시설규모가 실적이 아니라 시설에 대한 이용횟수와 이용거리, 이용계층 등 구체적인 결과들로 사업의 성과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다양한 분석들이 쏟아져 나오고, 이에 근거한 문제점 지적과 대안이 정책에 반영될 것이다. 또한 이용시설 정비와 제도개선 등에 있어서도 정책주체의 일방 추진보다는 자전거 이용자의 요구에 의한 실수요자 중심 정책으로 바뀌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무인자전거대여시스템의 시행은 문화 측면에서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사전약정에 의해 발급된 카드이기는 하지만, 직접적인 신분확인 없이 방범장치가 되어 있는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변화이다. 이것은 성숙된 신용사회로 가는 길을 자전거가 안내한다는 데에도 의의가 있다.

 

또한 자전거이용도 아파트와 지하철역으로 한정함으로서 교통정책에 있어 'Park & Ride'(자동차와 지하철을 이용한 통근)에서 'Bike & Ride'(자전거와 지하철을 이용한 통근)로 바뀌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현재까지의 자전거역할이 건강이나 여가 또는 레저수단으로 인식되던 것이 교통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전거문화 역시 건강과 여가에서 교통과 생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자전거의 사회 가치에 대한 정책집행자들과 이용시민들의 인식 변화는 보다 다양하고 가치 있는 자전거문화와 올바른 정책을 지향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특정분야가 아니라 교통·환경·문화·경제·청소년·에너지 등 분야에서 자전거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될 것이다. 자전거는 깃발로 상징되는 홍보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들을 없앨 수 있는, 생활 속에 파고드는 관심의 대상으로 바뀔 것이다.

 

파리의 '벨리브'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파리시의 벨리브(Velib')가 무인대여시스템에 의한 시민공용자전거로 탄생하기까지는 많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1995년 파리시의 자전거도로(차로 포함)는 단지 8.2㎞에 불과하였다. 그러던 것이 장 티베리 시장이 취임하면서 버스전용차로를 자전거도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차로를 줄이거나 없애면서 자전거전용차로 등을 정비하여 2006년에는 371㎞의 자전거전용 또는 공용 노선을 확보하였다.

 

이 시설들은 우리의 자전거도로와는 기능상 다르다. 이러한 기반시설이 있기에 벨리브(Velib)와 같은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었다.

 

천호역에서 동아한가람아파트까지 거리는 이용하는 도로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1㎞ 내외다. 아파트 앞에서 천호역까지 1㎞킬로미터 구간 중 700m 구간은 자전거도로가 정비되어 있다.

 

어떤 도로를 이용하여도 거리에는 차이가 없지만 이용자들은 대부분 자전거도로가 정비된 구간보다는 이면도로를 이용한다. 그 원인으로는 자전거도로 폭이 좁은 상태에서 이면도로와 교차하는 지점이나 공동주택의 진출입로를 지날 때, 이곳을 드나드는 차량이나 보행자들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결국 자전거도로가 정비되더라도 안전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자전거이용자들은 거리와는 상관없이 안전하고 편한 도로를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범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전거를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노선 개발이 필요하다. 이 노선은 안전해야 하며, 평소 자전거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길이어야 한다. 그러한 요건을 고려할 경우 현재 일방통행도로로 지정되어 있는 '토성북 1길'에 한하여 '자전거'가 양방향통행이 가능하도록 관련법령을 바꿔야 한다.

 

이후 유럽이나 일본처럼 일방통행도로에서도 자전거에 한하여 양방향통행이 가능하도록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적재적소에 노선에 대한 안내표지, 일방통행도로의 노면주차공간 폐지, 키오스크가 있는 위치에 노선지도도 설치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제도에 이용되는 자전거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주 이용노선이 보행자와 자전거가 함께 다니는 자전거보행자겸용도로 또는 보도가 없는 이면도로라는 점, 자전거이용반경(이동거리)이 넓지 않은 점, 자전거 또는 주요부품 등의 도난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전거의 속도를 통제할 수 있도록 차체 무게를 신경쓰야 한다. 변속기장치, 광고활용을 위한 바퀴 구조, 자전거 부품도 일반자전거와는 함께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전시행정이 아닌 지속가능한 사업이 되기 위해서는 재정확보가 필수다. 자전거이용 유료화, 자전거바퀴 공간을 활용한 광고 등도 한 방법이다.

 

빠른 확산보다는 제대로 뿌리내리는 데 초점 둬야

 

이 사업은 무인자전거시스템으로 자전거이용을 활성화하겠다는 바람직한 정책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좋은 정책이 제대로 시행도 못해 보고 원점으로 돌아간다면 자전거정책과 자전거문화발전에 큰 불행이다. 그래서 송파구가 시범 실시한 이 사업의 성공여부는 송파구뿐 아니라 서울시, 나아가 전국 지자체의 자전거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기점에 놓여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사업의 확산보다는 사업의 성패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용인원과 이용회수 등을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나오는 문제점과 이에 대한 개선점을 찾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도로교통 관련법령의 개정, 자전거이용주민들의 공공시설이용에 대한 바른 인식, 주민들에 대한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홍보계몽 등의 과제들을 해결하여야 한다.

 

시범대상을 대규모 공동주거지에서 전철역까지의 대중교통연계에 둔 것은 성공적이다. 하지만 이용자를 아파트 거주민, 즉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점은 한계다. 앞으로 시행할 후속 시범사업은 불특정다수, 즉 시민전체를 대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무인자전거시스템에 의한 시민공용자전거는 반드시 정착되어야 한다. 그래서 빠른 확산보다는 제대로 된 문화를 만들면서 느리게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제도가 성공리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확산보다 바르게 가고 있는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송파무인자전거대여시스템(SPB, Songpa Public Use Bike)은 우리나라 시민공용자전거의 불씨이다. 또 다른 양심자전거의 탄생과 소멸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시민공용자전거의 탄생이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오수보 기자는 사단법인 '자전거21' 사무총장입니다.


태그:#서울시송파구, #공용자전거, #양심자전거, #벨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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