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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약자'라는 말이 있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에 따르면 교통약자는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자, 어린이 등 일상에서 이동 시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을 뜻한다.

 

법률에 따르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교통약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보행환경개선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시행해야 한다. 법률처럼 천안의 교통약자들은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충분히 누리고 있을까?

 

교통약자의 권리보장에 관한 충남 천안시 행정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지역이 있다. 바로 천안역 인근의 지하상가 도로이다.

 

지하도 이용 포기하고 무단횡단하는 교통약자들

 

천안역 동부광장에서 구 시청사 방향의 도로 버들거리 아래에는 지난 98년과 94년 두 차례 완공된 284m 연장의 천안역 지하상가가 소재하고 있다. 행정구역상 주소는 대흥동 30-7번지 일원. 연면적은 9761.6㎡로 천안지역 최대 지하상가이다.

 

명동상가와 공설시장 사이에 놓인 버들거리에는 지하상가 설치전 횡단보도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하상가 조성으로 하나은행~서독안경원 구간의 횡단보도는 사라지고 대신 도로 양 켠에 지하상가의 출입구가 시설됐다.

 

명동상가와 공설시장을 잇는 횡단보도가 없어진 뒤부터 문제는 끊이지 않고 있다. 교통약자들이 급경사에 많은 계단으로 이루어진 지하상가 지하도의 이용을 불편함 탓에 멀리하고 예전 횡단보도가 있던 지점을 무단횡단하며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

 

특히 천안역 지하상가의 지하도는 건설된 지 오랜 시간이 경과해 리프트 등 교통약자의 이동편의를 위한 시설은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은 지하도 이용이 원천적으로 차단, 무단횡단을 감행하거나 먼 곳에 위치한 횡단보도를 이용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 20일 오후 5시에도 명동상가에 속한 하나은행과 공설시장 쪽 서독안경원 구간에서는 지하도를 이용않고 무단 횡단하는 보행자들이 5분여 동안 20여 명이나 목격됐다.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 중에는 짐을 갖고 자동차들 사이에서 위험스럽게 도로를 건너는 할머니들도 있었다.

 

지하상가의 지하도가 사실상 보행축을 단절하고 교통약자의 이동에 걸림돌로 작용하며 하나은행과 서독안경원 구간에 횡단보도를 설치하자는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지난 1999년 9월 18일에는 천안YMCA 등 지역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걷고싶은천안만들기시민연대가 이곳에 횡단보도 설치를 주장하며 120여 명이 참가한 시위를 벌였다. 2001년에는 한 시민이 '횡단보도 설치'를 주장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시에 청원서까지 제출했다. 하지만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천안경실련 횡단보도 설치 제안, 시와 경찰서 난색

 

천안아산경실련추진위원회(천안경실련)는 천안역 지하상가 위 도로에 없어진 횡단보도를 복원해야 한다는 제안을 최근 천안시와 천안경찰서에 전달했다.

 

천안경실련은 횡단보도 설치 제안서에 시민들 설문조사결과도 첨부했다. 지난 3일부터 20일까지 천안경실련이 시민 17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88.8%가 천안역 주변 보행이 불편하다고 응답했다. 시민 88.2%는 횡단보도 설치를 찬성했으며 반대는 5.3%에 불과했다.

 

정병인 천안경실련 간사는 "횡단보도가 사라진 지하상가 위 도로는 교통약자들의 안전한 이동권을 박탈, 교통사고 위험성을 개인들에게 전가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간사는 또 "불특정 다수의 일반 보행자들에게 지하도 통행을 강제하고 있지만 열악한 여건으로 지하도 이용은 외면당해 무단횡단을 유발시키고 있다"며 "교통약자는 물론 일반 보행자들을 위해서도 횡단보도 설치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관계기관은 횡단보도 설치에 소극적이다. 한동흠 천안시 교통과장은 "이번 달 개최 예정인 1/4분기 교통규제심의위원회에 천안역 앞 횡단보도 설치를 안건으로 상정해 놓은 상태"라며 "심의결과를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한 과장은 개인적으로는 횡단보도 설치보다 지하도 시설의 보강이 교통약자의 권리보장에 더 낫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동흠 과장은 "한곳에 횡단보도를 설치하면 주변의 설치요구가 도미노처럼 제기될 것"이라며 "내년 5월에 지하상가의 점용권이 시로 이관되면 민자역사 신축과 더불어 종합대책 수립 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년 5월 이후에도 지하상가와 주변 지하도의 정비 및 시행계획 수립에는 상당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천안역 지하상가 291개소 점포 가운데 161개소는 내년 5월 점용권이 시로 이관된다. 130개소는 2014년까지 계속 일반인들이 점용권을 가져 전반적인 리모델링이 쉽지는 않은 상황.

 

천안경찰서는 횡단보도 설치와 관련해 주민의견이 상충되는 점을 거론하며 어려움을 밝혔다. 강홍선 천안서 생활안전과장은 "차량소통과 보행환경 조성에서 고민이 많다"며 "횡단보도 설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주변 민원이 상충되어 추진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명동상가번영회와 공설시장번영회는 횡단보도 설치를, 지하상가번영회는 불가 입장에 서 있다. 강창근 지하상가번영회장은 "횡단보도가 설치되면 지하도를 이용하는 유동인구가 줄어 가뜩이나 경기불황에 시달리는 지하상가 상인들의 운영난이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예산투자를 강조한 천안시의회 전종한 의원은 "지금부터라도 계획을 수립해 시범적으로 교통약자의 권리보장을 실현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며 횡단보도 설치 추진을 주장했다.

 

한편 지난해 WHO 천안안전도시 만들기 기본조사를 실시한 단국대 용역진은 중간보고서에서 보행시스템 개선을 위해 천안역 지하상가 위 횡단보도 설치를 시에 제안했다.

 

천안시 교통약자 2012년 16만

지난해 13만, 편의시설 설치율 낮아

천안시가 수립중인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천안시 교통약자는 13만7954명으로 추산됐다. 어린이가 4만1554명으로 가장 많고 고령자 3만8644명, 영유아 3만1434명, 장애인 1만9797명, 임산부 6526명으로 나타났다. 교통약자 수는 매년 늘어나 2010년 15만1672명, 2012년 16만2802명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교통약자들의 이동편의시설 실태는 어떨까? 보고서에 따르면 열악하다. 계획수립 용역을 맡은 한국산업관계연구원의 조사 결과 천안지역 시내버스의 교통약자용 좌석 기준 미적합율이 82.9%에 달했다. 좌석버스의 교통약자 좌석은 61.1%가 기준에 미달했다.

 

천안지역 육교는 18개소 가운데 장애인 경사로가 설치된 곳은 2개소에 그쳤다. 육교 및 지하도의 기준적합율은 18.3%에 머물렀다. 특히 13개 지하도의 경우 경사로 손잡이, 경사로 점자블록, 계단 추락방지턱 미설치율이 90% 이상을 기록했다.

 

여객시설은 천안역 동부역 계단에서 엘리베이터로 가는 복도가 좁아 휠체어 사용자 이용에 부적합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설치된 82개소의 음향신호기는 18개소를 표본 조사한 결과 산업단지 입구 3가에 설치된 음향신호기만 제대로 작동, 다른 음향신호기는 고장으로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472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윤평호 기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cnsisa


태그:#횡단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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