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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끝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임명을 강행할 태세이다. 청와대는 23일 국회에 인사청문 보고서를 재요청했다. 이미 야당 측에서 청문회 보고서 채택을 거부한 사안에 대해 능청스럽게 다시 보고서 제출을 요구한 것은 임명 강행을 위한 요식행위처럼 비친다.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한 지 20일밖에 안 되었는데 6개월은 된 것처럼 피곤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진중권 교수는 "한 일이 뭐가 있다고 피곤하다는 것이냐?"라고 되받았다. 대통령의 말이나 진 교수의 말은 둘 다 옳은 측면이 있다. 하지만 불과 며칠 사이에 상황은 더욱 악화된 것처럼 보인다.

 

총선을 불과 보름 남겨 둔 시점에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때 이른 위기를 맞고 있다. 어설픈 정책 발표와 부도덕한 인사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내부 권력 투쟁까지 노골적으로 비화되고 있다. 이런 마당에 그들은 왜 여론 악화를 무릅쓰고 최시중 임명 건을 강행하려는 것일까?

 

게다가 이미 이명박 대통령은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국회 청문회의 '부적격' 의견을 묵살하고 임명한 바 있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이 방통위원장마저 이런 식으로 임명해 버린다면, 그는 국회를 무시하고 법 절차를 경시한 대통령으로 각인될 터이다.

 

'큰형님'만으로는 부족합니까?

 

한나라당의 공천 양상이나 엊그제 있었던 각종 성명 발표와 사퇴 파동 등을 종합해 보건대, 이미 한국의 집권세력은 심각할 정도로 파벌주의에 감염되어 있었다는 것을 드러냈다. 특히 최시중 방통위원장 내정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형님'와 긴밀한 사이며 이명박 대통령과도 '측근 중의 측근' 관계임을 국회 청문회에서 인정한 바 있다.

 

이미 당과 청와대에 실세를 심는 데 성공한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부의장은 방송을 장악할 또 한명의 실세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아마 이명박 대통령은 '큰형님'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고, 이상득 부의장은 '아랫동생' 하나만으로는 모자라다고 느꼈을 수도 얼마든지 있는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1941년 생으로 67세, 이상득 '형님'은 1935년 생으로 73세이다. 그리고 이 가운데에 1937년 생 71세인 최시중 내정자가 있는 것이다.

 

어감으로 보아 '방송통신위원장'은 장관도 아닌 것 같고 권력적이지도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이 직책의 권한과 영향력은 실로 가공할 만한 부피를 갖는다. 일단 방송통신위는 과거의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 업무를 포괄한다. 이것만으로도 이 직책은 장관급보다 단연 높은 것이다. 게다가 이 기구는 대통령 직속으로 되어 있기까지 하다.

 

최시중 임명만은 절대 안 되는 이유들

 

미국에는 연방통신위원회(FCC)라는 것이 있다. 여기에서는 인터넷을 비롯한 미디어 전반을 총괄한다. 그런데 이 기구는 권력과 영향력이 너무 크다고 해서 간혹 문제가 된다. 하지만 한국의 방송통신위는 미국의 연방통신위보다 훨씬 더 큰 권한과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다.

 

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상파 방송을 포함한 모든 방송사업자와 케이티, 에스케이텔레콤 등 통신사업자 인·허가권과 각종 규제권을 갖는다. 또한 이 기구에서는 KBS와 MBC의 이사 선임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두 방송을 실질적으로 장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방송통신위원장은 21세기 최고의 문화요직이다. 이 직책은 실제로는 국무총리 이상으로 영향력이 크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론 조사업을 하면서 중차대한 국내 정보를 법을 어기면서까지 미국에 넘겼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최시중씨만은 부적격이라는 지적의 타당성이 배가되는 것이다.

 

또한 방송통신위원회는 각종 이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이런 자리를 부동산 투기를 '귀신처럼' 하고 90억 증여세 탈루 의혹을 '귀신 탓'으로 돌려버리는 사람이 차지한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최시중 내정자는 청문회에서 자기의 비리 의혹 건을 수사 의뢰하겠다고 말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하더니 지금까지 조사에 필요한 기본 서류조차 제출하지 않고 있다.

 

그는 군 복무 시절 3일 동안 탈영해 놓고 탈영이 아니었다고 기만하기도 했다. 군대에 가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미귀 24시간 내에는 탈영보고서가 제출되도록 되어 있다. 또한 그의 차남은 병역 의혹 면제에 휩싸여 있다. 이런 사람이 국가의 최고 요직에 기용된다면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해줄 수가 있겠는가?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부적격자, 누가 감싸나

 

때마침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최시중 감싸기'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에는 조중동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이제 대통령과 그의 '형님'은 방송마저도 조중동화 하려는 듯하다. '신문 조중동'만으로도 이 나라의 국민들은 버겁다. 그런데 만약 '방송 조중동'이 출현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울적한 미래가 아닐 수 없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24일 성명서를 내 '최시중 임명 강행은 여론을 짓밟는 도발'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끝내 최시중 방통위원장 임명을 강행하더라도 끈질기게 투쟁해 방송독립을 지켜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지난 8일 '코리아리서치센터'가 조사한 전화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5%가 '최시중 위원장 내정자를 교체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또한 KBS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하여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70%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만약 최시중 임명을 '감행'한다면 우리는 그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권력의 나팔수를 자임하고 나선 유인촌 문화부장관의 언행에서 몇 차례 소름이 돋은 바 있다. 유인촌 장관은 부임 초기 신문과 방송을 겸업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만약 이 법이 통과되고 유인촌 문화장관과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콤비를 맞춘다면 그 후의 일은 어떻게 전개될지 두려워질 정도다.

 

관점에 따라 최시중 내정자의 임명 강행은 법이 허용하는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보아줄 수도 있다. 하지만 최시중 내정자의 경우처럼 권력 핵심에 '측근중의 측근'으로 끈이 연결되어 있는 경우라면 방송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보장되기를 기대하기란 실로 난망한 일이다.

 

언론노조의 성명서에 의하면 최시중 내정자의 비리 의혹은 땅투기, 세금탈루 등 10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많은 의혹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명된 것이 없다.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미래의 가장 중요한 매체가 될 IPTV에 대해서도 엉뚱한 답변을 하는 등 자질 부족 문제까지 드러냈다. 다른 것에 앞서 오로지 이 이유만으로도 그는 방통위원장으로서는 자격 미달이라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최시중 내정자 임명을 강행한다면 그것은 이명박 정부의 자충수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태그:#방통위원장, #권력구도, #최시중,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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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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