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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을 바짝 세웠던 이재오 의원이 결국 꼬리를 내렸다.

 

이재오 의원은 25일 오전 서울 은평구 구산동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8대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부의장과 자신의 '동반 불출마' 카드를 꺼내든지 이틀만이다. 이 부의장이 출마 뜻을 굽히지 않자 자신도 살 길을 선택한 셈이다.

 

이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4월 9일 총선에서 은평을 유권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이명박 정부의 경제살리기에 버팀목이 되겠다"며 "모든 오해와 음해를 뚫고 정권교체의 참뜻을 실현하는데 내 전부를 바칠 것"이라고 말했다.

 

태도를 180도 바꾼 근거로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를 통한 정권교체 완수를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에게 각을 세웠던 '실세' 이 의원으로서는 다소 체면이 서지 않는 선택이다.

 

이 의원은 23일 밤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독대하며 이 부의장의 불출마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박찬숙·공성진·차명진 의원 등 자신과 가까운 의원 55명도 같은 날 "이 부의장의 불출마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공천장 반납도 불사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이 의원은 외부와 연락을 끊고 칩거를 하는 '시위'도 벌였다. 하지만 이 부의장은 출마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공천을 버린 사람이 누군데 나한테 얘기를 하느냐, 자기가 뒤에서 개입해놓고 나한테 그러느냐"며 공개적으로 이 의원을 비난했다.

 

또 자신의 불출마를 요구한 55명의 공천자를 향해 "인간들이 그렇게까지 갈 수 있다는 걸 몰랐다"며 직설적으로 불편한 마음을 나타냈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 의원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 의원과 함께 목소리를 높였던 총선 후보자 55명의 처지도 곤란해졌다. 이들은 지난 23일 밝힌 것과 달리 실제로 공천권을 반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퇴의 명분도 뚜렷하지가 않다.

 

이재오 "국회의원 안 해도 다른 큰일 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

 

이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총선후보자 55명의 충정어린 요구는 당의 미래와 이명박 정부의 희망을 보여주었다"고 이들을 위로했다. 이어 "55명의 총선후보자도 그 충정을 가슴에 담고 18대 총선에 전원 당선되어 당과 나라의 희망이 되길 바란다"는 희망을 밝혔다.

 

이번 공천 파동을 거치며 힘의 한계를 노출한 이 의원의 총선 행보 또한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은 서울 은평에서 내리 3선을 한 정권 실세지만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에게 지지율이 10% 포인트 이상 뒤지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이 의원도 이를 의식한 듯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근 은평을에 느닷없이 강남 도곡동의 수백억대 부자이며, 결혼도 안 한 딸들에게 수억의 금융자산을 용돈 주듯 하는 사람이 출마한 것을 보고 황당함을 넘어 기가 막힌다"며 "은평구는 지역 발전과 무관한 개인의 정치적 야심을 채워주기 위해 아무나 국회의원을 시켜주는 그런 곳이 아니다"고 문 후보를 비판했다.

 

반면 "40여 년간 이 지역에 살면서 4년간 대성고등학교에서 많은 제자를 가르치고, 은평뉴타운 개발로 지역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며 자신의 공적을 적극 내세웠다. 

 

이어 이 의원은 최근 지지율과 관련 "나는 정권교체를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은평구 주민들이 '이재오는 국회의원 안 해도 다른 큰일을 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우리가 객관적으로 여론조사를 해보면 내가 이기는 걸로 나온다. 17대 때도 25% 포인트 뒤지다가 결국엔 2% 포인트 차이로 이겼다"며 총선 승리를 자신했다.

 

그러나 이 의원은 대운하 반대를 정면으로 내건 문 후보를 의식해 "대통령이 이미 수차례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고 밝힌 바 있고 나도 국민들의 뜻을 직접 묻는 방법을 택하자고 건의했다"며 "운하는 은평 지역 국회의원 선거공약과 무관한 것"이라고 민감한 모습을 보였다.

 

자택에서 기자회견... "20년 넘게 산 집, 장마철에는 비 샌다."

 

 

이 의원이 이날 기자회견 장소로 자택을 선택한 것도 총선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의원은 "20년 넘게 이 집에서 살았다", "아직도 장마철에는 비가 샌다", "이 집을 제외하고 다른 재산이 없다"는 등의 말로 부유한 문 후보와 차별되는 자신의 서민 이미지를 적극 부각시켰다. 

 

이처럼 이 의원은 정권 실세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자신의 지역구에서 고전하고 있다. 게다가 '상왕'이라 불리는 이 부의장과의 기세 싸움에서 밀리며 이틀이라는 금쪽같은 시간도 허비했다.

 

이 의원과 가까운 한 지역주민은 "이 의원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고 말했다. 기싸움에서 밀리고, '굴러온 돌'이라 할 수 있는 문 후보에게도 뒤지고 있는 이 의원은 지금 사면초가의 상황에 몰려있다.


태그:#이재오, #이상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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