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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가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
▲ 이랴~ 밭가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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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철이 되었습니다. 농부는 소를 몰고 밭갈이에 나섰고, 비닐하우스에는 고추와 벼모종이 키를 키우고 있습니다. 흐린 하늘에서는 눈발을 뿌리기도 하지만 농사 준비를 하는 농부의 손길을 분주하기만 합니다.

젊은이들이 떠난 농촌에는 노인들의 기침 소리만이 쿨럭쿨럭 들려 옵니다. 평생을 밭과 함께 보냈을 할머니의 몸은 빈들판처럼 볼품이 없습니다. 농사일 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산촌을 떠나지 못한 노인들입니다.

아버지의 아버지 대에서부터 심었던 콩밭이지만 올해도 콩을 심을 생각이라는 할아버지는 눈발 날리는 밭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지난해 덮었던 비닐을 걷는 할머니는 자주 허리로 손을 가져갑니다.

용탄 마을 어르신들 요즘 신이 났습니다

강원도 정선의 용탄 마을은 가리왕산이 만들어낸 골짜기가 만들어낸 마을입니다. 가리왕산은 옛날 갈왕이 피신해 살았다 하여 '가리왕산'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가리왕산에는 갈왕이 살았다는 대궐터가 존재하고 있어 먼 옛날 이야기만은 아닌 곳입니다.

요즘 용탄 마을 사람들 신이 났습니다. 이번 달 초 보건진료소가 새롭게 문을 열면서부터 생긴 일입니다. 진료소 가는 일이 뭐가 그리 좋을까 싶지만 농사일로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어르신들에겐 진료소가 오아시스 같은 곳이 되고 있었습니다.

어제(24일) 어머니와 이웃집 할머니를 모시고 진료소에 갔습니다. 어머니는 감기 기운에다 그동안 드시던 혈압약이 떨어져 진료소를 간 것이고, 이웃집 할머니는 밭일을 가던 중에 보건진료소 간다니 함께 가자며 따라나선 것입니다.

진료소에 들어서니 할머니 네 분이 와 계십니다. 한 분은 진료소를 꾸려가고 있는 이혜영 소장에게 진료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그 시간 나머지 할머니들은 진료소에 마련해둔 운동 기구들을 하나씩 꿰어차고 계십니다.

진료소에 마련된 운동기구는 전동 발 마사지와 전동 안마기, 발 지압 매트, 런닝머신, 덜덜이라고 부르는 체지방분해기 등입니다.

등을 비롯해, 어깨, 목, 종아리 등 온 몸을 마사지한다. 나른함에 잠이 절로 온다.
▲ 전동 안마기. 등을 비롯해, 어깨, 목, 종아리 등 온 몸을 마사지한다. 나른함에 잠이 절로 온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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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놓고 있으면 기계가 알아서 마사지를 다 해준다.
▲ 발 마사지. 발을 놓고 있으면 기계가 알아서 마사지를 다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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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 빠져나가니 사진 찍지 말어요

발 지압을 하고 있는 할머니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려 하는데, 할머니께서 손을 저으십니다.

"아이고, 사진 찍지 말애요. 그러잖아도 혼이 빠져나갈 날이 얼매 남지 않았는데 사진 찍으면 더 빨리 빠져나가잖애요."

할머니의 말을 들으니 카메라를 켜 둘 수가 없습니다. 살아온 날이 엊그제 같다지만 벌써 죽음의 시간을 기다린다는 할머니의 손에는 한 달 치 약이든 약봉지가 들려 있습니다. 할머니의 손은 쪼글쪼글 줄어 들어 있었고, 검게 그을린 얼굴에 핏기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할머니, 어디가 아프세요?"
"무릎 고뱅이(무릎 관절), 어깨, 골(머리), 허리… 아유, 안 아픈 곳이 없어요."

건강한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 산촌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입니다. 농사 짓는 집에서 태어나 농사 짓는 일을 평생 했으니 밭과 함께 살아온 육신이 성할 리가 없겠지요.

"저짝 동네에 갔더니 거긴 하루 일당을 3만 밖에 안주데요?"
"점심은 먹여 주구요?"
"아니래요, 벤또(도시락)는 싸가지고 가야 한데요."
"우리 마실은 점심 맥애주고 3만원 주던데요?"
"점심 맥애주고 3만원이면 건찬네요."

할머니들이 진료를 기다리면서 나눈 대화입니다. 할머니들은 자신의 밭 일을 하면서도 틈 나는 대로 다른 집 농사일까지 합니다. 할머니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용돈은 그렇게 벌어집니다. 자식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들 사십니다.

올라 서서 스위치를 누르면 알아서 살을 빼준단다.
▲ 덜덜이. 올라 서서 스위치를 누르면 알아서 살을 빼준단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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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 마사지가 마사지하는 위치를 보여주고 있다.
▲ 이런 곳을 마사지 합니다. 전동 마사지가 마사지하는 위치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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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부터 늦가을까지 할머니들은 잠시도 짬을 내지 못할 정도로 바쁜 일상을 보냅니다. 비가 오는 날이 유일하게 쉬는 날이고, 장복하는 약을 타기 위해 진료소에 오는 날이 보너스 같은 날입니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어르신들, 그들의 고통을 챙기는 천사가 있습니다

어제 어머니는 감기약과 혈압약을 받아왔습니다. 혈압이 높다고 판정되면서부터 어머니는 부쩍 혈압약을 찾습니다. 어머니의 진료나 약값은 전부 무료입니다. 65세 이상이면 그런 혜택을 받습니다. 일생을 고단하게 살아온 분들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입니다.

점심 무렵 전에 어머니와 이웃집 할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후에 읍내에 다녀오는 참에 다시 진료소에 들렀습니다. 한가하리라고 생각했었지만 진료소는 여전히 북적거렸습니다. 환자를 진료 하고 있는 이혜영 소장에게 물었습니다.

"사람이 늘 이렇게 많은가요?" 
"월요일이 가장 많이 오세요. 그리고 목요일과 금요일도 많고요."
"이곳을 찾는 환자분들이 몇 분이나 되나요?"
"900여명 됩니다."

그렇게 많은 인원을 이혜영 소장 혼자 감당한다고 합니다. 그녀는 진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차상위 계층에 있는 독거노인들의 건강까지 챙깁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가정방문도 합니다. 또한,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학교구강보건 교육도 합니다. 이것뿐이 아닙니다. 결혼 이민자 여성들의 건강도 이혜영 소장이 챙겨야 할 일 중의 하나입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 같지만 그녀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습니다. 그런 친절과 예의 때문일까요. 진료소를 찾는 어르신들은 그녀를 며느리나 친딸처럼 살갑게 대합니다. 그녀 역시 진료소를 찾는 이들을 가족처럼 대합니다. 천사가 따로 없습니다.

약을 복용하는 법을 일러주는 이혜영씨
▲ 약 아끼지 마세요. 약을 복용하는 법을 일러주는 이혜영씨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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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를 받던 어르신들이 집으로 돌아간 시간 진료소에 있던 운동기구들의 효능을 직접 실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발 마사지. 15분 정도 할 수 있으며 발에 쌓인 피로를 확풀어줍니다. 발 바닥은 물론이고 발등, 발가락까지 시원해집니다.

운동기구들 직접 해보니, 피로가 확 풀리네요

전동 안마기는 사람이 하는 경락마사지와 바를 바 없습니다. 팔은 물론이고 종아리, 허리 어깨, 척추까지 잠시 몸을 맡기고 있는데도 온 몸이 나른해집니다. 아무도 없다면 잠을 청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덜덜이는 살을 빼기엔 좋은 운동기구입니다. 뱃살이 흔들리면서 몸의 균형을 잡아 준다고 합니다.

그러는 사이 환자분들이 또 오십니다. 그들은 진료를 하기 전 반드시 운동기구 하나씩을 거쳐 갑니다.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운동기구는 발 마사지와 전동 안마기입니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몸이 시원해지니 효자가 따로 없습니다.

전동 안마기를 사용하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좋으세요?"
"그럼, 효자손보다 훨씬 좋아."
"이곳에 자주 오세요?" 
"시간만 나면 와서 피로를 풀고 가. 이런 게 집에 하나씩 있었으면 좋겠어."

할아버지는 안마를 받고 나면 몸이 가뿐해진다고 합니다. 이 소장에게 어르신들의 병세가 주로 어떤 것들이냐고 물었습니다.

"일을 많이 하셔서 안 아픈 곳이 없으세요. 관절이 가장 많고요. 혈압도 문제가 많아요. 오래된 지병들이라 고칠 수도 없는 병들이지요."

이혜영 소장은 진료하랴, 약 제조하랴 바쁩니다. 그녀를 붙잡고 몇 마디 하려고 해도 시간 뺏는 것이 미안할 정도입니다. 하는 수 없이 진료소 운영에 대해 궁금한 사항은 전화로 물었습니다.

딸처럼 며느리처럼 어르신들을 대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 이혜영 소장. 딸처럼 며느리처럼 어르신들을 대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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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보건진료소, #정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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