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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초부터, 필자는 "미국의 국립공원에서 배운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다. 매주 수요일 연재 계획이어서 지난주 화요일 세 번째 원고를 송부했더니, 담당자가 "이번 주에 요세미티 등 미 국립공원 다큐멘터리가 방영될 예정"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포털 뉴스 검색창에서 얼핏 본 듯하다. '미국 국립공원'을 검색해 보니 EBS의 다큐프라임 <세계의 자연- 미국의 국립공원>이 뜬다.

반가웠다. 주제도 주제였지만(동일한 주제여서) 대한민국의 환경다큐 간판 프로그램인 '하나뿐인 지구'로 유명한 EBS 작품이라면 기대해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것도 일주일에 1회가 아니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3월 17일~21일) 연속 방영한다고 하니, 그만큼 심혈을 기울인 프로그램이라는 말이 아닌가.

한국에 있었으면 매일 밤 TV로 시청했을 터이지만, 필자가 있는 이곳 샌프란시스코는 시차가 안 맞아 방영 다음날 인터넷으로 보기로 했다. 재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도 공짜가 아니어서(비록 얼마 되지 않는 돈이었지만) 시청을 위해 카드결재까지 했다.

미국의 국립공원 사진은 방송된 프로그램의 한 장면
▲ 미국의 국립공원 사진은 방송된 프로그램의 한 장면
ⓒ http://www.e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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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프로그램이 '국내 최초의' 미 국립공원 탐사 프로그램이라는 예고 기사를 보고 놀랐다(그동안 이 주제가 한 번도 공중파에서 다뤄진 일이 없었단 말인가?) 시청하면서는 요세미티, 그랜드캐니언, 옐로우스톤 등 미국의 대표적인 국립공원이자 세계자연유산의 이모저모를 육상은 물론 공중에서까지 입체적으로 세밀하게 촬영했을 뿐만 아니라, 그래픽을 이용하여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지질사 등을 표현한 것을 보고 정말 감탄했다. 참으로 대단한 시간과 비용, 인력이 투입된 역작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여기서 이 프로그램의 애초 취지와는 달리 시청자를 오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몇몇 장면을 보게 됐다. 잘못하면 이로 인해 프로그램의 의미까지 크게 퇴색시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몇 자 적는다.

미국 국립공원의 이념이 '실용적 보존주의'?

방송은 미국립공원의 '이념'이 '실용적 보존주의'라 규정하면서 그 사례로 요세미티의 헤치헤치와 그랜드캐년에 건설된 '댐', 록키에 조성된 '도로' 등을 들었다.

그리고 1편 <빙하가 빚은 예술-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남쪽 입구 와워나(wawona) 지역에 있는 골프장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와워나'라는 말은 인디언 말로 '초원'을 뜻하는 말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초원지대를 계속 보존하기 위해 골프장을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우리나라라면 이런 일이 가능했었을 까요? 굳이 그 이유를 말하라면 이용과 보전이란 두 가지 가치를 대립적 개념으로 보지 않고 같은 틀 내에서 수용하는 미 국립공원 정책의 실용주의적 철학 때문이라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후략)"

그리고 방송 5편에서는 이러한 미국의 국립공원의 실용주의적 보존정책의 근거로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북동쪽 입구에 서 있는 루즈벨트탑(Tower-Roosevelt)에 새겨진 "국민의 즐거움과 복리를 위하여(for the benefit and enjoyment of the people)"라는 문구를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국립공원이 국민의 '이용'을 중시한다는 예시인 셈이다.

이 프로그램을 주의 깊게 본 시청자로서는 당연히 EBS가 얘기하는 대로 미국의 국립공원이 이렇게 '실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이해할 만하다. 백보 양보해 이런 생각만으로 그치면 좋겠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국립공원의 원조인 미국이 이렇게 실용적으로 국립공원을 관리하고 있으니, 우리나라도 실용적으로 접근하여 댐도 만들고, 골프장도 허가하자"는 주장으로 비약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이게 단순한 기우가 아니라는 사실은, 위의 골프장 사례를 언급하며 "우리나라라면 이런 일이 가능했겠는가"라는, 다소 비하하는 듯한 표현까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필자가 글을 쓰게 된 주요한 동기다.

와워나 골프장 와워나 골프코스
▲ 와워나 골프장 와워나 골프코스
ⓒ www.yosemite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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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건설된, 와워나 유기농골프장

요세미티 국립공원 남쪽 출입구에 있는 와워나(wawona)호텔은 루즈벨트, 그랜트, 해리슨 등 미국의 역대 대통령이 방문했던 유명한 곳으로 '국립역사랜드마크(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지정돼 있다. 이 호텔과 바로 길하나 사이를 두고 마주보고 있는 와워나골프장. 이 골프코스는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인 1918년에 만들어졌다.

한편 1890년 요세미티가 옐로우스톤 다음으로 인근의 세쿼이아 등과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으나 1930년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이 와워나지역은 국립공원 구역이 아니었다(1932년에야 비로소 이 지역은 국립공원 구역으로 편입된다).

이처럼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일부로 편입되기 전부터 존재했던 와워나골프장은,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조성된 최초의 골프장이 됐을 뿐만 아니라, 미 국립공원 내의 최초의 골프코스가 된다. 방송에서 오해하는 것처럼 실용주의적 보전정책에 의해, 국립공원으로 설정된 지역 내에 골프장을 허가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요세미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는 공원 내에 있던 기존의 골프장을 제거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중심 시설지구인 요세미티 밸리(Yosemite Valley)에 있는 또 다른 국립역사랜드마크인 '아와니(Awahnee)호텔' 배후에 있던 소형(미니어처) 골프코스가 1970년대에 제거됐다.

아와니골프장 1900년대 초반 아와니호텔 앞에 있던 소형골프장
▲ 아와니골프장 1900년대 초반 아와니호텔 앞에 있던 소형골프장
ⓒ http://www.nps.g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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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와워나 골프장은 살아남았을까? 이곳이 아와니처럼 생태적으로 매우 민감한 지역(요세미티 밸리와 같은 지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요세미티 남부 초입에 있는 골프장이라는 점(실제로 이 지역은 국립공원 관내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국립공원 초입의 집단 시설 지구와 같은 곳이다), 그리고 국립역사유적인 와워나 호텔과 함께 운영돼 온 역사성을 갖고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예외적으로 허용해 준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허용해 준 것도 아니었다. 대신 엄격한 단서를 붙였다.

현재 이 골프장은 공인된 '오두반 협력 생크츄어리 프로그램(Audubon Cooperative Sanctuary Program ; ACSP - 골프장 조성으로 인한 자연지역 손실 복구를 위한 프로그램)에 가입된, 미국의 몇 안 되는(1% 미만의) '유기농 골프 코스' 중 하나이다. 여기서는 재활용 물만을 사용하며, 어떤 종류의 비료, 농약이나 제초제도 사용하지 않는다. 잡초는 순전히 제초기와 맨손만(bare hands)을 사용하여 해결한다. 업자가 18홀로 확대시키려 했으나 공원 당국은 허가해 주지 않았다. 이 정도면 어떠한 생태적 위험도 없는 골프장인 셈이다.

이러한 역사를 모른 채, 국립공원에 골프장이 있으니 그게 보존과 이용의 조화라는 실용주의적 보존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석한다면, 요세미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로서는 여간 황당한 일이 아닐까 한다.

요세미티 북부지역에 있는 헤치헤치(Hetch Hetchy)댐도 그렇다. 이 또한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이 댐 건설계획은 1913년에 확정됐다. 즉, 이는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국립공원청(NPS)이 설립(1916년)되기도 전의 일이라는 것.

'세계 환경운동의 아버지'이자 '국립공원의 아버지'라 불리어지는 존 뮤어(John Muir)를 죽음으로 몰아넣게 한 사건이 바로 이 헤치헤치댐 건설이었다. 급성장하는 샌프란시스코의 물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건설해야한다는 댐 건설 찬성논리에 맞서 1907년부터 존 뮤어를 중심으로 시에라클럽 등의 반대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나, 결국 1913년에 댐건설 법은 통과되고 만다.

어쨌든 이 댐은 국립공원관리청이 설립되기도 전에 이미 결정된 건설 사업이었다는 것이다. 즉 국립공원 관리의 미션조차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시의 불가피한 현실적 상황(샌프란시스코의 식수원 공급이라는)이 강제한 사건이었지, EBS가 얘기한 대로 미 국립공원청의 실용적 정책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국민의 즐거움과 복리를 위하여"라는 문구에 담긴 함의

루즈벨트 탑 옐로우스톤 북쪽 입구에 세워진 루즈벨트탑
▲ 루즈벨트 탑 옐로우스톤 북쪽 입구에 세워진 루즈벨트탑
ⓒ yellowstone-natl-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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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옐로우스톤에 있는 루즈벨트탑(1903년 완공)에 새겨진 "국민의 즐거움과 복리를 위하여"라는 문구가 갖고 있는 함의다. 방송은 이 문구야 말로 미국 국립공원 이념의 실용적인 측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또한 국립공원의 역사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결과다.

테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은 1903년 4월 24일 엘로우스톤 국립공원 북쪽 입구에 세워진 루즈벨트탑 준공식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This Park was created and is now administered for the benefit and enjoyment of the people... it is the property of Uncle Sam and therefore of us all." (이 공원은 모든 국민의 즐거움과 복리를 위해 창조되었고 현재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정부), 나아가 우리 모두의 자산입니다." - http://www.yellowstone-natl-park.com/arch.htm

또한 미연방의회는 1872년 3월 1일 옐로우스톤을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법으로 지정하면서 국립공원의 설립취지를 이렇게 쓰고 있다.

"as a public park or pleasuring-ground for the benefit and enjoyment of the people" (모든 국민의 즐거움과 복리를 위한 공공(公共)의 공원이자 위락지로서) - http://www.nps.gov

이 두 개의 문장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이 문구가 강조하고자 한 것(핵심적인 키워드)은 '즐거움과 이익(benefit and enjoyment)'이 아니라 '모든 국민(the people)'이었다. '사유(私有)'가 아닌 '공공(公共)의' 공원이라는 데 있다는 말이다(이지훈, <국립공원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 옐로우스톤 / 위대한 발견, 국립공원’의 역사와 의미>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44284 참조).

다시 강조하지만, 당시 미국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규제와 제한 없이 땅을 소유할 수 있던 때였으며 개인들 간 땅 차지 경쟁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엄청난 잠재적 투자가치가 있는 주요한 경관지역을 사유화하지 않고 공공의 소유와 대중의 이용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것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큼 매우 획기적이며 역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이 문구가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은 생략하고 단지 자구적 해석('즐거움과 이익' 등)에 의거 실용주의적 정책을 상징하는 문구로 평가한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국립공원 정책의 이념은 무엇인가? 여기서 상세히 살펴볼 시간은 없다. 단 '각각의 현실은 어떠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미국 국립공원의 이념은 '보존(preservation)'이란 단어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 국립공원청은 그들의 홈페이지에 그들의 제일의 사명(mission)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The National Park Service preserves unimpaired the natural and cultural resources and values of the National Park System for the enjoyment, education, and inspiration of this and future generations." (국립공원국은 현 세대 및 미래세대가 즐기고, 배우며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손상되지 않은 자연적 문화적 자원과, 국립공원 시스템의 가치를 보존한다.) - www.nps.gov

말 그대로, 현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도 즐기고 배우기 위해서라도 (앞서 얘기한 국민의 즐거움과 복리를 위해) 자연·문화 자원과 국립공원 시스템을 '손상되지 않게 보존'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미국의 국립공원 시스템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다. 특히 '있는 그대로의 자연경관'을 그들은 매우 중요시한다. 물론 그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관리했던 것은 아니었다. 초창기 미국의 국립공원은 야외 휴양지로서의 기능이 강조되면서 탐방객의 폭증, 과도한 인공 편의시설의 도입 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1950년대 이후부터 레크리에이션 기능 보다는 자연경관의 보존과 야생동식물의 보호가 우선돼야 한다는 재평가에 따라 엄격한 관리를 해오고 있다. (이지훈, 국립공원에 '불 지르는(!)' 공원관리청-(3)국립공원의 이념(상))

물론 이러한 이념이 일부 국립공원에서는 여전히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반드시 공개적으로 수정 보완돼야

언급한 몇 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특히 국립공원의 역사가 역설적으로 아메리카 인디언에게는 정든 땅에서의 추방의 역사였으며 세계 최초의 보존난민이었다는 코멘트 등은 적절한 지적이었다. 이러한 긍정적인 면이 혹여 언급한 문제로 인해 빛을 가리게 되지나 않을까 저어된다.

하여 어떠한 형태로든 공개적인 보완 수정작업이 뒤따라 주었으면 좋겠다. 특히 그 내용이 이번 취재를 총정리하는 결론 격이니 더욱 하는 말이다.

EBS를 사랑하는 시청자 중 한사람으로서의 바람이기도 하지만, 또한 이 프로그램을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또한 다른 방법을 통해 시청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미 시청한 국민들이 혹여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EBS 다큐프라임팀의 발전과 건승을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전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로, 현재(작년 8월부터) 미 스탠포드대에서 객원연구원으로 ‘미국의 국립공원 관리 정책’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으며, 지난 3월초부터 인터넷신문 <제주의소리>(www.jejusori.net)와 ‘희망제작소(상임이사 박원순)’의 세계도시라이브러리(www.makehopecity.com)에 “미국의 국립공원에서 배운다”라는 제목으로 연재하고 있다.


이 기사는 제주의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BS다큐프라임#미국의 국립공원#요세미티#그랜드캐니언#옐로우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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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부탄과 코스타리카를 다녀 온 후 행복(국민총행복)과 행복한 나라 공부에 푹 빠져 살고 있는 행복연구가. 현재 사)국민총행복전환포럼 부설 국민총행복정책연구소장(전 상임이사)을 맡고 있으며, 서울시 시민행복위원회 공동위원장, 행복실현지방정부협의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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