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전반기 시놉시스 내 고향은 전남 담양이다. 정송강 정철의 고향인 지실 마을과 5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난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 한글을 전혀 읽지 못할 만큼 지진아였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모든 깨침은 단박에 온다. 어느 날 갑자기 대오각성하여 한글을 읽게 된 것이다. 내 문맹의 시절에 얽힌 에피소드가 하나.
4학년 때 담임선생은 마침 우리 아버지와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한 번은 국어 시험에서 빵점을 맞았다. 성적이 나쁜 아이들은 하나씩 교단 앞으로 불려 나가 손바닥을 맞았다. 나 역시 당연히 손바닥을 맞을 걸로 생각하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선생은 손바닥 아닌 머리통을 겨냥했다. 대나무 뿌리로 된 매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아버지는 영리한데 네 녀석은 왜 이 모양이야!"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괜히 선생하고 친구가 되어 가지고…. 그때의 통증이 얼마나 심했던지 지금도 가끔 편두통으로 나타나곤 한다.
글자를 깨치고 나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독서에 빠져들었다. 독서에 빠져 끼니를 건너뛰는 일도 많았다. <몽테크리스토 백작> <소공녀> <소공자> <아라비안 나이트> 등을 읽었다. 6학년 무렵에는 톨스토이의 <부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등으로 독서 수준을 업그레이드 시켰다. 물론 제대로 된 번역본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나를 길고 막막한 삶의 도정에서 이리도 오래 서성거리게 한 것은 어린 날의 지독한 독서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코 무책임한 책임 전가가 아니다. 그렇지만, 삶에 대한 내 오랜 갈짓자 걸음을 두고 나 자신은 '모색'이라고 스스로를 격려한다. 그러나 나를 아는 사람들은 '방황'이라고 한마디로 일축해버린다. '모색이었다'라고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기라도 하는 것일까.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원하던 학교에 가지 못하고 그 대신 삼류 중학교에 3년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해 5월에 나와는 거의 상관없는 '수업료 인상 반대' 스트라이크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학교를 자퇴하고 말았다. 그냥 '농사나 지으며 살겠다'라는 생각이었다. 세상은 어린 내게 아주 일찍부터 자신의 시시껄렁한 뒷모습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난 어느덧 데카당스 한 소년이 되어 있었다. 고향에 처박혀 할아버지 곁에서 농사를 짓는 일을 도왔다. 새들이 우는 내력이나 알아보면 되는 무료한 나날이었다. 그러한 평화도 잠시, 그해 9월 나는 당시 전북 군산에서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의 강권에 의해 다시 학교로 채집되었다. 6개월 이상 농사에만 전념한 관계로 내 머릿속은 완전히 방전돼 있었던 것이다.
보다 못한 아버지는 안 되겠다 싶으셨든지 한 초등학교에 다시 6학년으로 꾸겨 넣었다. 내 뒷자리엔 훗날 기인으로 이름을 떨칠 피아니스트 임동창이 왕방울같은 눈을 끔벅끔벅하며 앉아 있었다(그와는 10년 후에야 다시 안양의 골방에서 만난다. 할 일 없이 방에 틀어박혀 소주나 즐비하게 마셔대던 임동창의 골방에서 만나 서울대 음대 다니던 친구랑 셋이서 소주를 사정없이 까게 된다. 그때 그 빈 병들의 사후가 궁금하다).
그렇게 해서 다시 중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내 부드러운 감수성은 딱딱한 학교생활을 못 견뎌 했다. 학교에 등교 하자마자 곧바로 뒷담을 넘어서 도망쳐나오기 무릇 기하였던가. 아마도 중학교 3년을 통틀어 절반도 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남들은 부조리라고 하지만 나로선 불가사의라고 우기고 싶은 일이 일어났다. 마지못해 참석한 졸업식에서 3년 개근상과 우등상을 동시에 거머쥐는 쾌거(?)를 이룩한 것이다(이 게이트 때문에 훗날 난 수시로 중학교 동창들에게 추궁당하게 된다. 동창 녀석들 가운덴 일사부재리의 원칙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놈들이 득시글거린다. 술자리에선 더더욱 그렇다).
알코올에 의해 내 기억세포들이 박멸되기 전까지 나의 기억력은 정말 굉장한 것이었다. 무엇이든지 한번 읽으면 거의 입력이 가능했던 램 성능의 우수함에 힘 입어 고등학교는 별 힘들이지 않고 들어가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당시(唐詩)와 송시(宋詩)에 빠져 살았다. "이 세상 무엇도 의미 있거나 가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도도한 허무주의가 사춘기와 더불어 찾아왔다. 나는 과감하게 황혼의 풍경을 내 삶의 일부로 편입시켰다. 쓸쓸함, 덧없음, 흔들림, 삐걱거림 따위의 감정들이 혈연처럼 얽혀들어 내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싸스다.니체와 융의 사상이 깊이 흐르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그것은 죽음과 재탄생의 시원(始源)인 어머니의 원초적 마력에 대한 매혹적인 노래였다. 디오니소스적 마성(魔性)에의 도취. 그러나 내겐 철저한 파괴가 없었으므로 새로운 세계는 열리지 않은 채로 고교시절이 끝났다.
누가 말했던가.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된다고. 그것이 내 길고 오랜 방황의 첫 머리였다. 그 방황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젠 더는 그 방황을 '모색'이라고 바득바득 우기고 싶지도 않다. 남에 의해서 가치 평가가 절하될 때, 끝내 방황으로 전락하고 마는 게 모색하는 자에게 주어진 숙명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상이 나 자신이 간추린 내 생애의 시놉시스다. 그런데 후반부는 왜 없느냐고? 여백은 나의 무기이며 적당한 숨김이 나의 전략이라는 걸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게다가 이 한정된 지면에다 무턱대고 대하 장편소설을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위에 서술한 것만으로도 현재의 내 자아를 미루어 짐작하기엔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 나름의 판단도 있다.
기분이 꿀꿀한 날엔 나 자신을 검색한다세상을 검색하는 것도 지치고, 기분도 꿀꿀한 날엔 나 자신을 검색한다. 난 내 자아가 한심하고 못마땅하기 짝이 없다. 너 본래부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녀석이었냐? 아이구, 이 빌어먹을 화상아!
무쇠 같은 꿈을 단념시킬 수는 없어서구멍난 속옷 하나밖에 없는 커다란 여행가방처럼종자로 쓸 녹두 자루 하나밖에 아무것도 없는 뒤주처럼그믐 달빛만 잠깐 가슴에 걸렸다 빠져 나가는 동그란 문고리처럼나는 공허한 장식을 안팎으로 빛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사람들이 모두 외롭다는 것은 알았어도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산을 보곤 하는 것이 모두 외롭다는 것은 알았어도저 빈 잔디밭을 굴러가는 비닐 봉지같이비닐 봉지를 밀고 가는 바람같이 외로운 줄은 알았어도 알았어도다시 외로운,새로 모종한 들깨처럼 풀 없이 흔들리는외로운 삶은하수야 새털구름아 어디만큼 가느냐배거번드(vagabond)처럼 함께 흐르고 싶다만돌린처럼 외로운 삶고드름처럼 외로운 삶 - 장석남 시 '자화상' 전문 장석남은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는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젖은 눈>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등이 있다.
이 시는 2002년에 나온 <젖은 눈>이라는 시집 속에 들어 있다. 그의 시는 매우 정적(靜的)이다. 마치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말하듯이, 조용조용 속삭이듯이 시를 쓴다. 이 '자화상'이란 시 역시 그렇다. 하기야 자신을 들여다보는 날이란 쓸쓸한 날일 터이니, 뭐가 좋다고 목소리를 돋우겠는가.
시인은 먼저 자기 고백으로 말문을 연다. 이 고백을 위해 여행가방·뒤주·문고리 등의 소품을 죽 열거한 다음 "나는 (그것들처럼) 공허한 장식을 안팎으로 빛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라고 자탄한다. 이 세상 사람치고 안과 밖이 다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그렇게까지 자신을 구석으로 몰 거 있나.
시인은 슬쩍 말꼬리를 돌린다. 비닐 봉지· 봉지를 밀고 가는 바람·새로 모종한 들깨처럼 "사람들이 모두 외롭다"라고. 당신은 어디에 속하느냐고? 나야 '봉지를 밀고 가는 바람'같은 사람이지. 아, 이 세상 배거번드(vagabond) 되어 은하수나 새털구름처럼 마냥 흘러가고 싶구나. 그렇게 흘러가면 '만돌린처럼 외로운 삶'이, '고드름처럼 외로운 삶'이 조금은 위안이 될까.
'일어나라! 너를 불태워라! 좀 더!'생각해보니, 내게 봄은 늘 위태위태한 계절이었던 것 같다. 이제 햇살은 점점 짧아지고 사람들도 그의 그림자에 겨울보다는 조금 더 가벼운 추(錘)를 달 것이다. 뭔지 모를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나의 더듬이는 잘 알고 있다. 아직 결단의 내용이 무엇인지 오리무중이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생에서 면허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독한 염세주의와 자기 혐오 외엔. 미처 따라잡을 수 없는 발 빠른 짐승이 술래가 되는 생의 언덕에선 환멸만이 내게 포획되는 유일한 진실일 뿐이다. 때로는 운명마저 토해내고 싶은 이 도도한 절망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내 안에 가득한 이 갈증의 내용은 무엇인가. 내 경험칙은 생이 일종의 고정관념이 되어갈 때, 자신을 철저하게 해체하지 못하면 끝내 다치게 된다는 것을 안다.
생이 지루하다. 생이 싫증 난다. 너무 오랫동안 끙끙대며 살았다는 느낌. 무엇에든 매달려서 그것에 혹해서 살지 않으면 안 되리라. 그런데 무엇에 매달려? 생에 그 어떤 신기루가 있다는 말인가. 그래도 살아야 하리라. 난 아직 내 생에 대한 시놉시스를 절반도 채 쓰지 않았다. 한 줌 재로 사라지기 전에 마쳐야 할 일이 남아 있다.
'일어나라! 너를 불태워라! 좀 더!'마흔 여섯 짧은 생애를 불꽃처럼 살다간 화가 최욱경. 그녀가 벽에다 붙여놓고 늘 들여다봤다는 좌우명을 생각한다. 나는 내 자화상이 좀 더 분발하길 바란다. 헛되이 흘려 보낸 나날이 밤 하늘 은하수보다 많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