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 여인이 하얀 고깔을 쓰고 춤을 추고 있다. 언제부터 걸려있는지도 모를 허름한 액자 속에서 한 여인은 동중정(動中靜)의 자세가 되어 걸려있다.

 

무희는 어둠 안에 있으면서도 어둠 밖에 있다. 얼굴은 까맣다. 고뇌 가득한 표정이다. 눈망울은 보이지 않는다. 지그시 내리 깔은 눈매와 옹다문 입술엔 고집 같기도 하고 슬픔 같기도 한 그 무언가가 무희를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걸음을 띄지 못하게 한다.

 

나그네는 허상과 망상 속으로 한 번 들어가 본다. 어떤 고뇌가 그리 많아 어두운 얼굴을 하고 한밤중에 저리 춤을 추고 있을까? 아니 그 승무를 추는 여인을 새긴 사람은 온화한 얼굴의 여인을 놔두고 무겁게 걸린 검은 구름 같은 얼굴의 여인을 상상했을까? 그렇게 한참을 여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내 예닐곱 무렵 무서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무녀의 춤사위가 떠올랐다. 그리고 시인 조지훈의 ‘승무’도.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우리 앞집에 살고 있는 순이 아줌마는 키가 크고 예뻤다. 순이 아줌마 집은 고기와 막걸리를 겸해서 팔았다. 순이 아줌마의 남편인 복동이 아저씨는 술도가에서 짐자전거로 술을 배달하면 아줌마는 장사를 했다. 그래서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쉰내 나는 막걸리 냄새와 고기의 비릿한 내음이 가난한 창자를 후비곤 했다. 가끔 친구들과 고개를 기웃거릴라치면 복동이 아저씨는 대뜸 소리를 쳐서 우리를 쫒곤 했다.

 

"이놈들! 어린놈들이 술집은 왜 기웃거려. 썩 어서 가지 못혀!"

 

싸낙베기(성을 잘 내는 사람)로 소문난 아저씨가 소리치면 우리는 고무신이 벗겨지도록 꽁무니를 빼곤 했다. 그러면 순이 아줌마는 아저씨가 잠시 자리를 비는 사이에 우리를 불러 번데기나 고구마과자 같은 것을 손에 쥐어주곤 했다.

 

참 말이 나왔으니 복동이 아저씨 이야기를 좀 더 해야겠다. 아버지와 친구인 아저씨는 돼지 잡는 선수였다. 동네의 모든 돼지는 복동이 아저씨 집에서 아저씨가 잡았다. 그 집에는 돼지 잡을 때 사용하는 칼이 대여섯 개 있었다. 부엌칼보다 긴 칼도 있었고 작은 칼도 있었다. 아저씨의 칼 다루는 솜씨는 가히 일품이었다. 뜨거운 물을 부어 털을 벗기고 나서 돼지를 해부할 때의 솜씨를 보면 저절로 신음 같은 감탄사가 우리 꼬맹이들 입가에서 절로 흘러 나왔다.

 

돼지를 망치로 쳐서 죽일 때도 복동이 아저씨가 했다. 종종 덩치 좋은 사람들이 하긴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쾍쾍거리는 돼지 비명소리만 요란할 뿐 돼지는 죽지 않고 생똥을 쌌다. 그 모습을 팔짱을 끼고 옆에서 지켜보던 복동이 아저씨는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으면서 커다란 도끼 망치를 받아들고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혀서 돼지 잡겄능가. 저놈만 고통을 주는 기여. 한방에 가게 해야 한당게."

 

그렇게 말하고 쇠뭉치를 내리친 아저씨의 이마엔 찐득한 땀이 햇빛에 반짝거렸다. 돼지도 이내 몇 번 발버둥치다 축 늘어졌다. 그리고 어느 틈엔지 손엔 칼이 들려져 있었다. 아저씨는 그 날카롭고 긴 칼로 망설임 없이 돼지의 멱을 땄고, 돼지의 목에서 붉은 피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그 피는 이미 준비된 커다란 냄비에 담겨졌고 나중에 자신의 창자 속으로 들어가 순대가 되어 사람들 술안주가 되어 나왔다.

 

순대를 만드는 작업은 순이 아줌마가 했다. 돼지를 잡는 날이면 순이 아줌마네 부엌의 가마솥엔 뜨끈뜨끈한 순대가 가득했다. 순이 아줌마는 그 순대를 인심 좋게 우리들에게 주곤 했다. 복동이 아저씨가 쏘아 보긴 했지만 그날만은 모른 척 했다.

 

그런데 마음씨 좋은 순이 아줌마가 아프기 시작했다. 막걸리도 팔지 않았다. 종종 우리들이 놀러가거나 지나다 인사를 하면 힘없이 웃어주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순이 아줌마 집에서 굿판이 벌어졌다.

 

"엄마, 왜 굿을 한디여?"

"응, 순이 아줌마가 아픈 게 귀신이 붙어서 그런디야."

"그럼 무당이 굿 하면 낫는기여?"

"몰러. 넌 집에 있어라잉. 귀경 오지 말고."

"싫어! 나도 구경할래."

 

기억 속의 무당은 하얀 옷과 하얀 천을 치렁치렁 감고 있었다. 무당은 알아듣지 못할 소리로 징과 장고의 장단에 맞춰 빠르게 때론 느리게 몸을 흔들어댔다. 이따금 불빛에 비치는 눈빛이 무서워 난 엄마의 치맛자락 뒤에 숨어 슬쩍슬쩍 훔쳐보았다. 그때 순이 아줌마는 마당 멍석가에 쪼그려 앉아서 병든 병아리마냥 앉아 있었고 이웃 몇몇 아줌마들은 쯧쯧 혀를 차면서 두 손바닥을 연신 비벼댔다.

 

장고소리에 맞춰 무녀의 춤사위도 더욱 격렬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얀 천을 밖으로 휙 내던졌다 끌어당기곤 했다. 그렇게 춤사위는 근 새벽이 다가올 때까지 계속됐다. 그러나 순이 아줌마는 걸판진 굿판을 벌인 효험도 없이 그해 여름 팔월에 세상을 떠나버렸다.

 

생각의 파고를 멈추고 다시 벽면에 걸려있는 액자를 바라보았다. 조지훈의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파르라니 깎은 머리 /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라는 시구가 입속을 맴돌았다.

 

시인은 고운 모습을 감추고 춤을 추는 여인의 어떤 모습이 서럽게 느껴졌을까.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이라고 노래하던 시인의 말처럼 저 액자 속의 여인도 자신의 번뇌를 춤으로 승화하여 별빛을 만들었을까. 그러나 내 눈에는 여인에게서 슬픔과 번뇌만 보일뿐 별빛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어릴 적에 보았던 그 무서웠던 무녀와 액자 속의 무희가 겹쳐질 뿐이다. 그리고 힘없이 미소 짓다 어느 여름 세상을 떠났던 순이 아줌마가 오버랩 되어 보일 뿐이다.


태그:#승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너! 나! 따로 가지 말고 함께 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