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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얼굴같은 모습의 고목
 코끼리의 얼굴같은 모습의 고목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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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겼다고 비웃지 마라
찌그러졌다고 흉보지 마라

그게 다 세월의 무게인 걸
품어주고 나누어 준 희생의 흔적인 걸
그 오랜 시간 품에 들어
새 생명을 키운 새들은 얼마나 많았으며
줄기와 그늘에 들어
몸을 키운 작은 것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때로는 가지를 주고
때로는 뿌리의 한 부분까지 주었나니
너는 과연 누구에게
네 작은 부분 하나라도 나누어 준 적 있는가.
너 자신을 버려
남을 위해 너를 불태운 적 있는가.
모든 것을 주어
누구를 그렇게 사랑해본 적 있는가.
너를 비워 텅 빈 가슴으로
모든 것을 품어본 적이 있는가.

나, 얼마나 더 살아야
저런 가슴을 가질 수 있을까?

- 이승철의 시 '고목 앞에서' 모두

아름답습니까? 흉한 모습입니까?
 아름답습니까? 흉한 모습입니까?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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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투성이 고목
 상처투성이 고목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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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어린 모습은 무엇이나 아름답다. 방긋 웃는 아기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이 그렇고, 갓 피어나는 꽃봉오리도 예쁘다. 귀여운 고양이 새끼나 강아지는 말할 것도 없고, 조금 못생긴 축에 드는 돼지까지도 어린 것은 귀엽고 예쁘다.

그러나 늙고 시든 모습을 아름답다고 표현하기는 아무래도 무리일 것이다. 짐승들도 늙은 모습은 초라하고 추하다. 동물만 그런 것은 아니다. 식물들도 늙고 시들어가는 모습은 새싹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람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외모로만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일반적인 시각을 뛰어넘는 것이 있다. 바로 고목이다. 수백 년 혹은 그 이상을 살아온 늙은 고목을 보고 있노라면 경이로운 느낌과 함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오랜 풍상을 겪으며 꺾이고 상한 부분들이 썩어 들어가고 울툭불툭 튀어나오기도 한 모습은 어찌 보면 매우 흉한 몰골이다.

엄지와 검지로 무얼 표시하고 있을까요?
 엄지와 검지로 무얼 표시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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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드러낸 고목
 뿌리를 드러낸 고목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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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고목은 마구 뒤엉키고 잘린 뿌리가 드러나거나, 강가의 물길에 흙이 씻겨나가 온통 뿌리를 드러낸 모습이 흡사 치부를 드러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넝쿨식물들이 휘감고 올라간 나무는 줄기에 그 자국이 남아 뒤틀린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꼬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생명체들과는 달리 고목은 그런 흉측한 모습까지도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왜일까? 물론 그 흉측함이 역설적으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고목에서 발견하고 느끼는 아름다움은 그 고목의 오랜 연륜 때문일 것이다. 그 오랜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고목의 모습에서는 어떤 숭고함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오래된 마을들은 대개 당산나무라는 것이 있다. 마을의 수호신으로 섬기는 일종의 토속신앙화 된 나무 말이다. 이런 당산나무들 중에는 전설이 깃든 나무도 있다. 당산나무가 정해져 있는 마을들은 해마다 정월 중에 대개 당산제라는 것을 지낸다.

줄기 하나가 썩어 새로운 생명체를 키울 듯
 줄기 하나가 썩어 새로운 생명체를 키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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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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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의 계룡산 갑사 입구에도 이런 나무가 있다. 갑사의 창건과 연륜이 거의 비슷하다는 이 나무는 수령이 1600여 년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이 느티나무에는 전설 하나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갑사에서는 입구에 장명등(長明燈 : 대문 밖이나 처마에 불을 밝혀 걸어 놓는 등)을 걸어 놓았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 장명등의 기름이 없어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절에서는 기름을 훔쳐가는 도둑을 잡기 위해 승려들이 교대로 밤에 몰래 번을 서 지켰다는 것이다. 그런 어느 날 밤 키가 커다란 거한이 기름을 훔쳐가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래서 승려들이 뒤를 따랐는데 그 도둑은 놀랍게도 절 입구의 당산나무인 느티나무 고목의 당산신이 아닌가.

이런  모습 보신 적 있습니까?
 이런 모습 보신 적 있습니까?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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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모양의 나무뿌리
 특이한 모양의 나무뿌리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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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승려들이 그 당산신에게 왜 장명등의 기름을 훔쳐 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당산신은 사람들이 담뱃불로 당산나무의 뿌리에 상처를 입혀서 그 상처에 기름을 발라 치료하느라고 기름을 훔쳐갔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갑사의 승려들과 마을사람들이 합심하여 당산나무 주위에 울타리를 세우고, 주변 정리를 잘하여 사람들이 담뱃불을 던지거나 나무를 훼손치 않게 만들어 주었다. 그 이후부터 장명등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마을에서는 그 이후부터 매년 정월 초사흘 날에 당산제를 지내왔는데, 불행하게도 15년 전에 심한 태풍으로 나무가 꺾여버려 지금은 밑둥치만 고목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지금은 죽은 고목인 것이다.

쓰러지기 직전입니다.
 쓰러지기 직전입니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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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거나 등산을 자주 하다보면 이렇게 수백 년 혹은 그 이상 오래된 고목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이런 나무들에 얽힌 전설이나 사연을 다 알아볼 수는 없지만 그런 고목들, 특히 아직도 살아 있는 고목들을 보노라면 그 깊고 오랜 연륜에서 풍겨 나오는 아름다움에 매료당하기도 한다. 사진은 며칠 전 변산과 선운산에서 만난 고목들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삶의 무게, #고목, #전설, #당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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