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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투어에 참여한 학생과 학부모들. 버지니아 대학교(UVA) 기숙사 앞에서.
 캠퍼스 투어에 참여한 학생과 학부모들. 버지니아 대학교(UVA) 기숙사 앞에서.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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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서 말하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이것' 때문에 집 사는 것을 연기한다(44%).
'이것' 때문에 기다렸다가 아이를 갖는다(28%).
'이것' 때문에 치과 치료 등 필요한 병원 진료를 연기한다(27%).
'이것' 때문에 결혼을 미룬다(18%).

정답 : 대학 때 빌린 학자금 갚는 일.

(얼라이언스 번스타인 투자회사의 학자금 대출에 관한 2006 보고서)

이것은 한국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대학생들이 재학 중 빌려 쓴 학자금 때문에 겪는 서글픈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의 '전국고등교육 학생보조연구(NPSAS : 2003~2004)'에 따르면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의 3분의 2(65.6%)가 평균 1만9202불(약 19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고 한다. 졸업을 앞둔 4학년생의 평균 빚은 1만9237불. 학부생 가운데 4분의 1은 2만4936불, 10분의 1은 3만5213불 이상이나 되는 빚을 지고 있다.

의대생의 경우 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미국 의과대학 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Medical Colleges)의 2006년 자료에 따르면 의대 졸업생의 86%가 빚을 안고 졸업한다고 한다. 공립대 의대 졸업생은 평균 1만9000불을, 사립대 의대 졸업생은 평균 15만불의 빚을 안고 있는데 최고 35만불(약 3억5천만 원)을 빚진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의대생들이 엄청난 빚을 지게 된 원인은 지난 20년 동안 사립대 의대 등록금은 165%, 공립대 의대 등록금은 312%나 인상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공립대의 경우에는 최근의 경제 침체와 연방 정부 및 주 정부 예산이 삭감된 것이 주요 이유라고 한다.

ⓒ NPSAS 2003-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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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등하는 미국 대학 등록금... 4년제 대졸자 평균 부채, 1900만원 

한국도 이제 대학 등록금 1000만원 시대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있지만, 이처럼 미국에서도 대학 등록금은 큰 부담이 되고 있다.

▲ 등록금 인상률, 물가상승률보다 높아(예일 데일리뉴스)
▲ 파산하지 않고 대학 졸업장 따기(미국 공영방송 NPR)
▲ 부모를 위협하는 등록금 인상(이투르스 닷컴)
▲ 등록금 인상에 맞서 학생들 투쟁(데일리 브루인)

미국 언론에서 전하는 등록금 관련 기사다. 등록금 때문에 시름이 깊은 우리네 사정과 아주 흡사하다. 도대체 대학 등록금이 얼마나 되기에 졸업생들이 '파산' 운운하면서 결혼을 미루고 아이 갖는 것과 집 사는 것까지 늦춘다고 하는 것일까.

대학입학시험(SAT)을 주관하는 대학연합회인 '컬리지보드'가 전하는 2007~2008 미국 대학 등록금이다. 미국은 보통 학비(tuition) 외에 제반 수수료(fee)가 등록금에 포함된다. 물론 기숙사비와 식비는 별도다.

4년제 공립대, 4년제 사립대와 2년제 대학의 등록금, 기숙사비 등을 비교한 컬리지 보드 자료.
 4년제 공립대, 4년제 사립대와 2년제 대학의 등록금, 기숙사비 등을 비교한 컬리지 보드 자료.
ⓒ 컬리지 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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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표에서 볼 수 있듯이 4년제 공립대학의 2007~2008 등록금은 해당 주에 거주하는(in-state) 학생 기준으로 1년 평균 6185불이다. 5년 전보다 51% 증가했다. 여기에 기숙사비와 식비를 더하면 총 1만3589불이 된다. 

반면, 4년제 사립대학의 2007~2008 평균 등록금은 2만3712불이다. 5년 전보다 25% 증가했다. 역시 기숙사비와 식비를 더하면 3만2307불이 된다. 한국에서 비싼 등록금 시대를 연 금액인 1000만원의 세 배가 넘는 돈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하버드 대학의 경우 등록금만 3만4998불로 기숙사비까지 포함하면 4만 달러가 훨씬 넘는다. 우리 돈으로 무려 4000만원이 넘어 웬만한 가장의 연봉에 해당되는 엄청난 금액이다.

등록금 비싸지만 입학생 2/3에게 재정 보조하는 하버드 

미국의 사립대학 형편이 이러하니, 돈이 없는 사람은 아예 사립대학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2007년 3월 22일자, 하버드 대학 주간 학보인 <하버드 가제트>에는 이 대학 문리대 학장인 제레미 놀즈의 발언이 실려 있다.  

"하버드 대학은 자격을 갖춘 모든 학생이 부모의 재정 형편에 구속받지 않고 하버드에 다닐 수 있도록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이들에 대한 재정 보조를 확대하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하버드는 사회, 경제적인 계층의 다양성을 확보하여 우리 대학이 가장 뛰어난 학생들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약속을 보여주고 있다."

하버드 대학은 가장 비싼 등록금을 받는 대학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지만 이 대학은 재정 보조를 확대, 저소득 계층 학생들을 위해 문호를 확대하고 있다. 즉, 등록금은 올리되 그렇게 오른 등록금 때문에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그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하버드 대학은 올해 학생들에 대한 재정 보조 예산을 큰 폭으로 늘렸다. 늘어난 1억2500만 달러의 재정 보조 예산은 작년보다 21.4% 증가한 수치다. 그리하여 하버드 대학 입학생의 2/3 이상이 장학금, 융자, 일자리 등의 재정 보조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 하버드 대학은 2008년부터 가정의 1년 수입이 18만 달러(약 1억8천만원) 미만인 학부생의 등록금을 1년 가정 수입의 10% 이하로 내릴 계획이라고 지난해 12월 발표한 바 있다.

서부의 명문인 스탠포드 대학 역시 '연소득 10만 달러(약 1억원) 이하 가정 자녀 등록금 면제'라는 재정 보조 확대 정책을 최근에 발표하여 중하층 학생들이 돈 때문에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다.  

학생 등록금에만 의존하지 않는 미국 대학들

소득이 적은 가정의 자녀에게 등록금을 면제해주고 장학금 등의 혜택을 주는 재정 보조는 어떻게 가능할까. 바로 대학이 운영하는 기부금 덕분이다.

미국 교육 지원위원회(CAE)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전체 대학에서 거둬들인 기부금은 300억 달러. 이는 전년보다 6% 늘어난 액수라고 한다. 물론 이런 기부금이 상위 20개 대학에만 몰려 전체 1%도 안 되는 대학이 기부금의 26%를 가져가는 기부금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난해 8억3200만 달러의 기부금을 모집해 1위를 차지한 스탠포드 대학이나 6억1400만 달러를 끌어들인 하버드 대학의 경우, 돈이 없어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던 가난한 학생들에게 그 혜택을 돌리기 때문에 "돈 때문에 (등록금 비싼) 하버드 대학에 못 간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나저나 미국의 경우에는 학생들이 내는 대학 등록금이 전체 대학 재정의 몇 %를 차지하고 있을까. 한국 사립대학의 경우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재단 전입금이 전무하다시피 한 경우도 있어 학생들의 불만이 높은데 미국 대학들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컬리지 보드 2005~2006 자료에 따르면 주립대학의 경우 재정에서 학생 등록금에 의존하는 비율은 단 33%이다. 주정부와 지역 정부(43%)의 지원, 그 밖에 보조 수입(11%)과 연방정부(7%)의 수입 등에 의존하고 있다.  

반면 4년제 사립대학의 경우, 학생 등록금을 통한 수입은 54%이고 나머지는 기부금(14%)과 보조수입(13%), 투자 수익(12%)을 통한 수입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학 재정, 등록금에만 의존하지 않아요.' 2005~2006 대학, 대학원 수입원 자료. 막대그래프는 4년제 공립대(파랑), 공립 대학원(녹색). 4년제 사립대(보라), 사립 대학원(주황) 순이다. 왼쪽부터 등록금, 연방정부 지원금, 주 정부 및 지역 정부 지원금, 보조 수입, 기부금, 투자수익, 기타 수입원이 대학(원)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대학 재정, 등록금에만 의존하지 않아요.' 2005~2006 대학, 대학원 수입원 자료. 막대그래프는 4년제 공립대(파랑), 공립 대학원(녹색). 4년제 사립대(보라), 사립 대학원(주황) 순이다. 왼쪽부터 등록금, 연방정부 지원금, 주 정부 및 지역 정부 지원금, 보조 수입, 기부금, 투자수익, 기타 수입원이 대학(원)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 컬리지 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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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등록금 때문에 대안으로 떠오른 2년제 커뮤니티 컬리지

이렇게 비싼 등록금을 내야 하는 학생들에게 뭔가 해법은 없을까. 바로 2년제 커뮤니티 컬리지가 대안이 되고 있다. 기자가 살고 있는 버지니아 주 해리슨버그에서 16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블루리지 커뮤니티 컬리지(BRCC)'. 이곳의 한 해 등록금은 2007~2008 기준으로 2470불이다. 4년제 공립대학 평균 등록금(6185불)의 40%밖에 안 되는 금액이다. 이렇게 저렴한 학비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은 실속파 학생들을 직접 만나봤다. 

BRCC 2학년에 재학 중인 오톰(21).
 BRCC 2학년에 재학 중인 오톰(21).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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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CC 2학년에 재학 중인 오톰 홀(21). 금년 봄에 졸업하게 된 오톰은 현재 전공을 정하지 않은 채 일반 과목(General Studies)만 듣고 있다. 오톰의 계획은 올 가을에 4년제 공립대학인 제임스매디슨 대학교 3학년으로 편입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생물학이나 보건학을 전공하려고 하는데 학사 학위를 마친 후에는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다. 앞으로 공부를 계속할 학구파인 그에게 커뮤니티 컬리지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우선 학비가 싸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아시다시피 지금은 모든 학생이 등록금과 전쟁을 치르고 있잖아요. 일반 대학의 절반도 안 되는 등록금으로 학부 과정 2년을 마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장점이지요.

또 하나 좋은 점은 큰 대학과 달리 규모가 작기 때문에 교수와 학생간의 유대가 강해요. 그래서 학업 등 여러 면에서 친절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어요. 한 가지 걱정은 이제 가을부터 4년제 대학의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큰일이에요. 학생 융자를 더 많이 신청해야 하기 때문이죠."

2학년 학생인 제프리 스티거(20) 역시 커뮤니티 컬리지에 대해 대단히 만족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오면 자율이 많이 강조되는 만큼 어떤 면에서는 대단히 혼란스러운데요, 커뮤니티 컬리지의 경우에는 이런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어요. 그리고 1:1로 교수와 학생들이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도 대단히 좋고요.

성적이 좋은데도 커뮤니티 컬리지에 왔냐고요? 그럼요. 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4년제 대학 세 곳으로부터 합격 통지서를 받았어요. 하지만 경제적인 사정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커뮤니티 컬리지가 제게 맞을 것 같아서 이곳을 선택했어요.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대신 학비는 제가 벌어서 다니고 있어요."

2년제 커뮤니티 컬리지를 나온 뒤 편입해서 대학을 졸업할 경우, 그냥 4년제 대학을 나온 것과 비교하여 혹시 사회에서 편견이 있진 않느냐고 묻자 제프리는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기자가 만나본 BRCC 재학생들은 비싼 등록금 시대에 저렴한 학비와 가족적인 분위기를 내세우는 커뮤니티 컬리지에 대해 대단히 만족하고 있었다.  

엄마와 함께 BRCC를 찾은 딸이 상담을 하고 있다.
 엄마와 함께 BRCC를 찾은 딸이 상담을 하고 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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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졸-고졸 평생 임금 차이 8억원... 한국은?

지난 3월 23일자 <워싱턴포스트>에도 '노던버지니아 커뮤니티 컬리지(NOVA)' 총장인 로버트 템플린의 이야기가 실려 눈길을 끌었다. 미국 고등교육 기관 가운데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 대학에 대해 템플린 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커뮤니티 컬리지에서는 100개 이상의 준학사 학위와 자격증을 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운용되고 있습니다. 풀타임 학생 기준으로 1년 등록금 2600불만 내면 준학사 과정을 마칠 수 있고 성적이 좋으면 버지니아의 어떤 공립대학에도 바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기자 주: 버지니아 주에서는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B학점 이상 받은 학생이 4년제 공립대학에 지원하면 곧바로 편입이 허용된다.)

그나저나 등록금이 비싸다고 불평하고 대학 졸업 후 학생 융자 때문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울 게 뻔한데도 왜 사람들은 대학에 가려고 할까.

2007년 컬리지 보드 자료에 따르면,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보다 60% 이상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고졸자와 대졸자간의 임금 격차는 사람의 평생을 두고 본다면 80만 달러(약 8억원) 이상이 된다. 즉, 단기적으로 대학 교육을 위해 어떤 희생이라도 치르면, 장기적으로는 그 돈을 상환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교육은 투자고 남는 장사다.

하지만 대학 진학률이 이미 80%가 넘는 한국. 이곳에서도 과연 대학 교육은 무조건 수지맞는 장사라고 할 수 있을까.

교육 수준에 따른 평생 임금 예상치. 고등학교 졸업자 임금을 1로 봤을 때 전문대 졸업자는 1.28, 대학 졸업자는 1.61, 대학원 석사 소지자는 1.93, 박사 소지자는 2.37, 전문직은 2.87이다.
 교육 수준에 따른 평생 임금 예상치. 고등학교 졸업자 임금을 1로 봤을 때 전문대 졸업자는 1.28, 대학 졸업자는 1.61, 대학원 석사 소지자는 1.93, 박사 소지자는 2.37, 전문직은 2.87이다.
ⓒ 컬리지 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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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등록금, #학자금 대출, #커뮤니티 컬리지, #하버드, #스탠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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