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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크리스천이라 기도를 많이 하는데,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 모시고 북한에 가서 백화원 초대소에서 기도를 하면서 많이 울었다.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북에도 축복을 많이 주셔서 남북관계 좋아져 잘 살고 번영된 나라 이루고 통일도 이룰 수 있게 해달라고 방에서 무릎 꿇고 아침 저녁으로 기도했다." (2008년 3월 3일 김하중 통일부장관 내정자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끔찍이도 통일을 염원하던 김하중 장관이 난 데 없이 "과거의 대북정책에 반성이 필요하다"고 하더니, 이어서 "북핵문제가 타결되지 않는다면 개성공단을 확대하기 어렵다"고 발언했다. 그러자 북한에서는 즉각 개성공업지구 내의 남측 공무원 철수를 요구해왔고 이에 따라 남측 공무원 11명은 27일 심야(0시 55분)에 개성공단에서 철수해야 했다.

 

북한은 왜 이렇게도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일까?

 

첫째 김하중 장관의 발언이 북측의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일단 개성공단은 핵 문제와 연계시킬 수 있는 사안이 결코 아니다. 개성공단은 남과 북 양자의 잇속이 맞아 떨어져 시행되고 있는, 말 그대로 '윈-윈'하는 경제 사업일 따름이다.

 

평소 북에 대해 수구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던 사람도 개성에 한 번 다녀오면 태도를 바꾼다. 특히 사업하는 사람들은 더 그렇다. 개성공단 사업이 남한 경제에 얼마나 이익이 되는지를 잘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 장관은 개성공단이 마치 북측에 대한 남측의 일방적인 시혜라도 되는 양 말했으니 북한으로서는 가당치 않게 느껴진 것이다.

 

정작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건 외교건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사람끼리 신의를 잃게 되면 어떠한 일도 이룰 수가 없다. 김하중 통일부장관은 김대중 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을 지내고 노무현 정부에서 주중대사를 역임하면서 북한에 대해 온갖 친화적인 발언을 다했던 사람이다.

 

"외교안보수석하면서 김용순 부장, 김인철 인민무력부장 등 북한 인사들을 많이 만났다. 박재경이란 대장이 버섯을 선물로 전달할 때 김하중에게 꼭 전달하라는 지시를 받고 와서 신라호텔에서 직접 받은 적이 있다."(김하중 <연합뉴스> 인터뷰 발언)

 

그의 말대로라면 북한 고위급 인사들은 김하중이라는 남측 사람에게 진한(?) 우정을 가지고 있었을 터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이명박 정부의 장관이 되고 나서 삽시에 말을 바꾸니 더 억하심정이 들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차라리 극우인사 조갑제나 통일부장관에 내정되었다가 낙마한 남주홍 같은 이가 그런 말을 했더라면 별 탈이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한편으로 든다.

 

'사랑과 기도'가 대북 정책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26일 "나는 누구보다도 북한 주민을 사랑하며, 누구보다도 분단국가가 통일됐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먼저 이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말로만 사랑 누가 못하는가? 요즘에는 그 '사랑'이란 것이 넘쳐나서 탈 아닌가? 말로만 하는 사랑이야말로 위선 아닌가? 위선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보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이 어디 한 나라의 정책인가?

 

대통령은 입으로 사랑한다고 하고 통일부 장관은 통일을 위해 울며 기도한다고 한다. 참 갸륵한 일이다. 하지만 도저히 한 나라의 정책 수준의 발언은 아니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이것은 주일학교에서나 해야 통할 법한 수준의 말 아니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북핵문제가 해결되면 북한을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 국가로 만들어주겠다고 말한다. 이른바 '비핵개방 3000'이라는 대북정책이다. 얼핏 보아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것처럼 공소한 대북정책도 없을 터이다.

 

한 나라의 국민소득이란 완전한 내정 문제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예민한 내정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다. 이는 핵 문제라는 전제가 없이 제안해도 북한으로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런데 핵 문제까지 전제로 하고 선심 쓰는 양 3000달러 만들어 준다고 하니, 이는 애초부터 공소하기 짝이 없는 대북정책이다. 정확히 말해서 이명박의 대북정책은 노태우보다 아래 수준이다.

 

대통령이 이렇게 나서니 아랫사람들은 일제히 '코드 맞추기'에 부산할 뿐이다. 급기야 통일부장관이라는 사람이 북핵 문제를 빌미 삼아 개성공단을 걸고 넘어지는 일이 생겼다. 이것은 크게 보아 역사의식과 국제적 안목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 가지를 계산해 보아야 한다. 먼저 실현 가능성이 있느냐 하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실익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핵 문제를 남한이 문제 삼는 일은 행위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사태를 해결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요컨대 남한은 북한의 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힘을 미칠 수가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북핵 문제에 대해 남한이 발 벗고 나서는 일이 과연 남한에 어떤 도움을 주는가의 문제다. 앞질러 말해서 이 일로 남한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란 아무것도 없다. 이 일에 매달릴수록 남북관계는 냉각되고 이에 따라 남북한 양자의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남북관계가 험악해진 김영삼 정부 시점에 IMF를 맞았음을 상기해야 한다. 아울러 김대중 정부가 나름대로 이 환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남북관계가 좋았기 때문임을 헤아려야 한다.  

 

 

거듭되는 대북 강경 발언, 저의는 없는가?

 

급기야 걱정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잇따른 대북 강경 발언들이 남북관계를 다시 긴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가까운 10·4 남북정상합의와 6·15 남북정상선언을 제쳐두고 느닷없이 17년 전 노태우 시절의 기본합의서를 들추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교안보의 최고위 인사들이 '위험 수위'라고 느껴질 정도의 아찔한 발언들을 주저 없이 하고 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의 공동회견에서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지 않는 데에 대해,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인내심이 다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전혀 외교적인 발언이 못 된다. 이 발언에는 북한에 대한 협박과 함께 미국에 대한 영합도 함께 있어 더욱 볼썽사납다. 이제 유 장관은 '정말로 인내심이 다한다면 어쩔 것인지'를 답해야 한다.

 

김태영 신임합참의장은 난데없이 북한의 핵공격 위협 시 '북한 핵기지 선제타격론'을 들고 나왔다. 먼저 이는 '합참의장'이라는 보직의 권한과 직접 관계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또한 이런 발언이 군의 작전 개념과 상관없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저의가 의심되기도 한다. 군의 책임자라면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일을 찾아 조용히 임무를 수행하면 된다. 그런데 왜 아무에게도 득될 게 없는 정치성 발언을 하는 것인지?

 

우리는 이런 일련의 발언들이 다가오는 총선 때문에 행해졌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제 북한 문제로 남한의 선거가 별 영향을 받지는 않는 것 같다. 지난 대선에서도 직전에 치러진 남북정상회담이 거의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따라서 남북관계가 냉각된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이익을 보지 못한다. 다만 쓸데없는 대북강경발언은 민족의 불신과 균열을 야기한다. 나아가 민족이 분열하는 데에 실익을 챙기는 쪽은 언제나 강대국이었음을 역사는 만고불변으로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김갑수 기자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역사팩션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태그:#김하중, #개성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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