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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은 교사.
 이경은 교사.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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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 교사가 있었다. 그는 담임을 맡은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에게 지난해 학기말 설문지를 돌렸다.

- 행복했던 기억은 무엇이 있나요?
"선생님을 만났을 때", "선생님께서 초상화를 그려주신 것", "생일날 모두가 축하해줄 때", "독수리 자세, 명상을 한 것", "초상화 받은 것"….

한 젊은 교사와 제자 38명이 있었다

이경은 교사가 그린 초상화.
 이경은 교사가 그린 초상화.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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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사 때문에 한 해를 행복하게 보낸 아이들 38명이 있었다. 이 아이들 때문에 그 교사는 다시 행복한 새 학기를 시작했다. 올해는 '힘겨운 6학년' 담임이다.
자기 반 학생에게 얼굴 그림(초상화)을 그려주는 이경은 교사(27·충남 보령시 동대초). 첫 발령을 받은 지 4년째 그가 줄곧 해온 일이다.

"학생 하나하나 얼굴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다보면 '이렇게 예쁜 아이인데 말썽꾸러기라고 생각을 했구나'하고 되돌아보게 돼요. 도화지에 연필로 아이들 얼굴을 새길 때마다 애정이 생겨나요."

최근 성주산 자락에 있는 동대초에서 만난 이 교사의 얼굴은 희고 여려 보였다. 그의 소식을 처음 들은 때는 올해 1월 전교조가 연 참교육실천대회에서다.

얼굴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줄잡아 1시간. 쉬는 시간을 줄여가며 학교에서도 그리고, 자는 시간을 줄여 집에서도 그렸다고 한다. 여태껏 그린 그림이 60여 장에 이른다.

"칭찬할 때 주는 상품권 70장을 모으면 초상화를 그려줍니다. 상품권이 10장일 때는 '부모님께 칭찬문자 발송'하고 20장일 때는 '자리 자유 이동권'을 주고…."

이 모두 그가 매(체벌) 대신 손에 든 동기유발 방법이다. 초상화를 받은 아이들이 뛸 듯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팔은 아프지만 마음은 기쁘다고 한다.

학부모가 찾아와서 울 수 있는 교사

이경은 교사가 그린 초상화.
 이경은 교사가 그린 초상화.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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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종업식을 앞둔 어느 날 한 학부모가 그를 찾아왔다. 한 번도 학교에 오지 않은 이였다. 학부모는 이 교사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고맙다고 하시면서 눈물을 보이시는 거예요. 너무 조용했던 아이라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어요."

학부모의 눈물 속엔 고마움이 배어 있었다. 교사는 이런 눈물 속에서 지친 날개를 다시 곧추세울 수 있는 것이리라.

이 교사에게 요즘 걱정이 있다. 일제고사, 학원 '뺑뺑이'에 지친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척 아프다고 한다. 이럴 때마다 초상화를 그려줘야겠다고 다시 다짐을 하게 된단다.

"웬 학원이 그렇게 많나요. 그리고 시험은 또 …. 대학도 좋은 곳에 가야하고, 걸핏하면 교실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우리나라 초등학생들 지금 절망을 먼저 배우고 있어요."

충남 성주산 왕자봉에 오르는 언덕길. 메마른 잎새들 틈에 연분홍 진달래가 꽃망울을 막 틔우려 하고 있었다. 학생 얼굴 그리기에 힘을 쏟는 이경은 교사의 모습 같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교육희망>(news.eduhope.net)에 쓴 내용을 일부 손질한 것입니다.



태그:#이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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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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