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서남단에 위치한 사하구 갑은 사하(沙下)라는 이름에서 연상되듯 철새도래지인 을숙도와 함께 낙동강 하구를 끼고 앉은 지역이다. 이 때문에 사하는 한반도 대운하의 기점이자 종점이기도 하다. 이런 사하구에서 서로 '친박'임을 내세우는 두 후보가 4·9 총선을 앞두고 초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 지난 23일 SBS-<조선일보> 여론조사에서 현기환 한나라당 후보가 30.3% 지지로 28.4%에 그친 엄호성 친박연대 의원을 앞선 반면, 같은날 KBS 여론조사에서는 엄 후보가 30.5%로 24.6% 얻은 현 후보를 5.9% 포인트 앞서기도 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형세는 26일 MBC-<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도 엄 후보가 28.4%, 현 후보가 28.3%를 얻어 0.1% 포인트 차이로 초접전 양상을 벌이고 있었다. 이쯤되면 "정말 재미있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보는 사람은 재밌죠? 겪는 사람은 죽을 판입니다"라는 한 후보 캠프 관계자의 앓는 소리가 이해할만하다. 내가 바로 '원조' 친박! 28일 찾은 사하구는 여느 시가지와 다들 바 없는 번잡스러운 풍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 번잡함 속에서도 두 후보의 선거 사무실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괴정사거리를 내려다보는 현 후보 사무실에도, 지하철 당리역을 나오면 볼 수 있는 엄 후보 사무실에도 모두 초대형 걸개 그림이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나란히 박근혜 전 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으로 말이다. 엄 후보는 지난 대선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캠프의 부산선대위원장을 맡는 등 대표적 '박근혜 사람'. 엄 후보와 한솥밥을 먹으며 박근혜 캠프에서 대외협력부단장과 수행단장을 맡았던 현 후보 역시 박근혜 전 대표와는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이는 두 캠프의 대표 슬로건에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현 후보는 '한나라당과 박근혜의 선택'을 내세웠고, 엄 후보는 '박근혜를 도운 게 죄입니까?'를 내걸었다. [현기환 한나라당 후보] "10대 1의 공천 뚫은 건 박 대표 지지의 힘"
이렇게 서로가 '친박'임을 주장하는 후보들에게 가장 궁금한 것 역시, 최근 소위 '원조' 논쟁으로까지 비화되는 친박 계승자 논란에 대한 물음이었다. 낙동 초등학교 근처에서 만난 현 후보는 "주장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명백한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고 운을 땠다. 현 후보는 "가장 치열했던 10대 1의 공천을 뚫었던 것 역시 박 대표의 지지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며 "엄 후보만이 친박이면 한나라당내 43명의 친박계 의원들은 뭐냐"고 반문했다. 나아가 현 후보는 "정말 박 대표가 훌륭한 정치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면 남아서 박 대표를 도와야 하지 않겠냐"며 "(엄 후보는) 박 대표 치맛자락 붙잡고 늘어져 국회의원 한 번 더 하겠다는 것 말고 뭐가 있느냐"며 다소 원색적인 표현으로 엄 후보 측을 비난했다. 그러나 현기환 후보는 인명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이 공천 부적격자로 지목한 '철새' 공천자 중 한명으로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을 위한 대통령직인수위 전문위원으로 일한 경력이 약점으로 꼽히고 있다. 현 후보는 ▲괴정·당리 일대 뉴타운 개발로 품위있는 주택지가 있는 사하 ▲지하철 연장, 우회도로 건설, 버스 중앙차로제 도입으로 쾌적한 교통환경 ▲ 자사고와 특목고 유치로 교육도시 사하를 만들겠다는 대표 공약을 내걸었다. [엄호성 친박연대 후보] "박 대표와 켜켜이 쌓은 인연의 접점 많아"
엄 후보는 이러한 원조 친박 논쟁에 "기가 막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먼저 16대 국회에서부터 이어져온 박 대표와의 인연을 설명했다. 엄 후보는 2002년 불법대선자금 의혹으로 법정까지 갔던 자신을 끝까지 두둔해준 박 대표에 대한 소회를 밝히며 "이런 식으로 켜켜이 쌓여진 인연의 접점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이어 엄 후보는 "그런데 여기에 원조 논쟁을 벌인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또 엄 후보는 "7월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반드시 박 대표가 다시 대표직에 오를 것이 확실하다"며 3선의 자신을 통해 사하구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점을 내세웠다. 엄 후보는 자신의 대표 공약으로 ▲괴정지구의 도시재개발정비촉진지구 지정 ▲서부지원과 서부지청 유치 ▲사하-사상 간 지하철 순환선 건설을 내걸었다. 또 엄 후보는 이같은 공약들의 연속성있는 추진을 위해서라도 다시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한반도대운하에 대해서 원칙적인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엄 후보는 "설사 만들어지더라도 터미널을 사하구로 유치해 서부산권 물류단지와 연계 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종필 통합민주당 후보] "철새는 가고, 사하 사람 뽑아주세요"
상대적으로 열세인 김종필 후보의 잰걸음은 그래서 더더욱 바쁘다. '1대1' 가가호호 방문형식으로 골목을 누비는 김 후보는 사하구에 애정을 가진 자신만이 적임자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김 후보는 "사하구를 사랑하지 않고 단순히 국회의원이 되기위해 사하를 택한 철새를 구별해야 한다"며 "지역구 의원이 지역구민을 자기 품같이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다 철새"라고 일갈했다. 두 친박계 의원에 대해서는 "한 달 전까지도 전부 이명박 대통령 사진이 걸려있던 건물들이 지금은 전부 박근혜 사진이 붙었다"며 "누굴 등에 업고 소신 없이 당 이름만 가지고 국회의원을 하겠다는 사람들을 뽑을 필요는 없다"고 비판했다. 부산녹색연합 운영위원을 거치는 등 환경분야에 관심이 많은 김 후보는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서도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잘라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차라리 대륙 철도를 개발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군소정당의 척박한 환경에서도 입후보한 박재영 평화통일가정당 후보는 "경제보다 소중한 가정의 가치를 먼저 회복시켜야 한다"는 점을 내세워 유권자에들에게 호소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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