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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 어디 참한 색시 좀 찾아봐. 우리 OO이 장가들어야 하는데 사람이 읎써. 가끔 선두 보는데 인연이 그리도 더디네 그랴.”

 

시댁 외숙모님은 당신의 막내아들 나이가 마흔에 접어들자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아들 나이가 서른 일고여덟 때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언제부턴지 연상의 여성이라도 인연이 된다면 며느리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다고도 했다. 외숙모님은 나와 우리 동서들을 볼 때마다 ‘OO이 짝좀 찾아보라’고 성화셨다.

 

우리는 외숙모님을 뵐 때마다 ‘신경 써 볼게요’라고 말하며 며칠은 OO이에게 어울릴 신부 감이 누가 있을까, 머릿속으로 아는 사람들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그러다 시나브로 그 일은 일상에 묻혀 잊혀졌다.

 

 

 

 

그리고 얼마 후에 우리는 결혼 청첩장을 받았다. 외숙모님 아들 OO이가 결혼한다는 소식이었다. 그 전에 시어머니로부터 OO이가 신부를 데리러 베트남에 간다는 얘기를 듣긴 했다. 그래도 긴가 민가 했었는데, 생각보다 일이 빨리 진행되고 결혼식까지 올리게 된 것이다.

 

OO이가 베트남 신부감을 얻게 된 데는 작년 이맘때 예천에서 있었던 친척 결혼에 영향을 받은 것도 같다. 예천의 친척도 베트남 신부를 얻었고 지금은 예쁜 딸을 낳고 잘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 할머니, 고모, 이모만 말하던 신부가 이제는 아기를 키우며 우리나라 말도 많이 배웠고 한글을 가르쳐주는 곳에도 열심히 다닌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한국으로 시집 온 베트남 신부의 안타까운 소식들이 들려와서 마음 한구석이 묵직하기도 했었는데, 열심히 서로 노력하며 잘 살고 있는 부부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믿는다.

 

 

결혼식에 가기 전날, 나는 신부에게 줄 어린이 감각시리즈 책 다섯 권을 샀다. 신부가 우리나라 말을 배우는 것이 가장 급할 것 같아서였다. 책을 보면서 신랑이 가르쳐주거나 나중에 아기를 낳고도 엄마와 아이가 서로 같이 보면 좋을 유아용 책이었다.

 

베트남 며느리를 맞이하는 외숙모님 내외분은 칠순이 넘어도 신혼처럼 부부금슬이 참 좋으시다. 막내아들과 세 식구가 살고 있는 집은, 새 사람만 들어오면 될 정도로 살림들이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알뜰하게 살림을 가꾸시는 외숙모와 쌀농사를 틈틈이 짓는 부지런한 외삼촌 덕분에 나도 가끔 쌀을 얻어먹곤 했다. 외삼촌은 느긋한 성격에 유머감각까지 타고나 언제나 그분들 옆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즐거웠다. 그래도 먼 나라에서 온 신부가 느끼는 외로움이 있을 터, 신혼여행지를 베트남으로 정한 것은 신부를 배려한 가족들의 정이 모아졌기 때문이리라. 

 

예식장에 모여든 시골 친척들은 우리 시어머니를 둘러싸고 서로 반가워하느라 소란스러웠다. 식장으로 들어서자 텔레비전 화면에는 곧 예식을 올릴 신랑신부의 찍어놓은 사진들이 영화처럼 장면이 바뀌면서 나왔다. 마흔 신랑에 스물셋의 아리따운 신부는 마치 꽃망울을 터뜨리는 화사한 꽃처럼 내내 웃고 있었다.

 

결혼행진곡이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나도 힘껏 박수를 치며 오늘 탄생한 부부의 결혼을 한껏 축하했다.

 

“OO이 도련님, 행복하세요!!”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태그:#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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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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