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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둠고래고기
 모둠고래고기
ⓒ 맛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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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호프집과 달랐다. 실내장식이야 평범 그 자체지만 그곳의 안주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체불명의 퓨전은 아니다. 뭐랄까 식자재의 진귀함이랄까? 어쩌면 마음만 있다면 다른 집도 충분히 내 놓을 수 있는 음식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음식에 대한 관심과 애정, 시간투자가 없다면 절대 차릴 수 없는 음식들. 대체 어떤 안주길래 그러냐고? 지금부터 그 집으로 함께 가보기로 하자.

7호선 면목동 전철역 3번 출구로 나와 뒤돌면 사가정역 이정표가 보인다. 그 방향으로 쭈욱 100여 미터 직진하면 조그마한 호프집이 나온다. 이 집의 안주 구성부터 살펴보자. 약속했던 일행이 도착하지 않아 우선 간단한 걸로 주문. 반건조노가리다. 이건 여느 호프집이나 다 있는 거 아냐? 하시겠지. 하지만 실제 보면 다르다.

노가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크다. 명태의 형체를 온전히 지니고 있을 정도. 아니 이건 명태다 명태. 살짝 구워 정성스레 만든 초장에 찍든가 와사비 푼 간장에 찍든가 그건 식성의 차이일 뿐 정답은 없다. 다만 초장에 찍는다면 맛이 돋고 간장에 찍는다면 명태의 담백함을 느낄 수 있다. 간장 하나도 손수 만들었다 하니 맛을 내는데 허투루 하는 법은 없는 듯하다. 노가리와 곁들이는 생맥주(맥스)는 맛이 깊다.

누룩치장아찌
 누룩치장아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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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더 늦는다는 전화. 기다림의 무료함을 달래주려는지 주인장이 내놓는 건 누룩치장아찌. 일반적으로는 ‘누리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누리대는 깊은 고산에서만 자라 일반인의 눈에는 쉽게 띄지 않는 귀한 산채이다.

향이 진하고 독특한 데다 그 맛 또한 걸작이라 고급 산채에 속한다. 때문에 누리대장아찌는 시중에서 구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내 놓는 집 또한 본적이 없다. 그처럼 귀한 걸 뜻하지 않는 데서 맛보는 기쁨이란. 입 안에 넣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씹으니 누리대의 독특한 풍미가 걸작으로 다가온다. 덕분에 기다림의 시간도 쏜살처럼 지나가고 드디어 나타난 지인.

돌고래 모둠수육 한접시에 2만원이다
 돌고래 모둠수육 한접시에 2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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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온 게 미안했던지 일본소주 한 병을 들고 왔다. 고구마 증류주다. 이 술과 마시기 위해 주문한 안주는 고래고기. 비록 밍크고래가 아닌 돌고래지만 접시에 단긴 고래고기 구성이 장난 아니다. 고래고기 맛 좀 안다는 사람들이 즐기는 내장을 비롯해 지느러미, 몸통살 등 지대로 된 모둠 한 판이다. 가격이 얼마냐고? 믿지 않을지도. 고작 2만원밖에 안 한다.

실감이 안 난다고? 부산에 가서 고래고기 주문해 보시라. 아마 이 집의 고래고기를 감사한 마음으로 먹게 될 것이다. 주인장은 고래고기를 좋아해 일부러 부산까지 내려가 먹고 오기도 했다한다. 그 자신 이토록 즐기는 음식이다 보니 양심보다 더 양심껏 내놓지 않았나 싶다.

지느러미살에서는 버터향이 난다
 지느러미살에서는 버터향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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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기는 부위별 맛과 향이 다르지만 이날 특히 인기 있었던 부위는 지느러미. 함께 자리한 지인의 얘기를 빌리자면 피자치즈 씹는 식감이란다. 식감도 즐겁지만 버터향을 닮은 독특한 풍미는 여운이 길다. 과연 별미는 별미로다.

고래수육을 젓국물에 찍고 있다
 고래수육을 젓국물에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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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기 좋아하기로는 일본이 으뜸이다. ‘고래고기 맛을 모르면 미식가라 할 수 없다’ 라는 말도 있다하니 고래고기 맛의 세계는 섬세하고 오묘하기만 하다.

돼지 껍데기묵
 돼지 껍데기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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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또 한 명의 일행이 도착했다. 때 맞춰 안주 한 가지가 서비스된다. 새롭게 나온 안주는 듣도 보도 못한 돼지껍데기묵. 신기해서 만드는 법을 살짝 물었다. 푹 삶은 껍데기를 수저로 비게를 다 긁어내고 또 다시 푹 고와 껍데기를 잘게 다진 뒤 응고시킨다고 한다. 말은 쉽지 제법 시간 잡아먹는 요리가 아닌가 싶다.

산초, 양하장아찌
 산초, 양하장아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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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묵과 함께 나온 건 산초와 양하로 만든 간장장아찌다. 산초야 그렇다 쳐도 양하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식재료. 한때 시골 울타리 밑이나 장독대 주변에 흔했으나 지금은 많이 사라진 나물이다. 향이 독특하고 고급이어서 향이 별로 없는 나물에 넣거나 쇠고기와 함께 조리하기도 한다. 아무튼 반가운 음식이다.

껍데기묵을 산초양하간장에 찍어서 입에 넣었다. 예상 외로 쫄깃하다. 나름의 비법이 들어간 덕분인지 돼지 잡내는 찾을 길 없다. 이밖에 이북식 해주보쌈도 소주안주로는 그만일 듯하다. 특히 살코기 위주가 아닌 비게까지 포함된 돼지고기는 고기 맛 안다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을 듯하다.

돼지족탕은 맛과 양에 비해 무척 저렴한 가격이다. 1만원
 돼지족탕은 맛과 양에 비해 무척 저렴한 가격이다.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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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국물요리를 주문했다. 주인장이 구례 동아식당에서 처음 맛본 뒤 맛이 좋아 메뉴에 넣었다는 돼지족탕.

어린 시절 집에서 가끔 먹었던 기억. 성인이 된 후로는 처음 대한다. 뽀얗게 우러난 국물은 담백하고 구수하다. 보들야들한 족을 간장에 찍어 먹는 맛도 신선하다고 할까. 술맛을 돋게 해 과음의 우려가 있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업소정보는 http://blog.daum.net/cartoonist/12605229 에 있습니다.



태그:#맛객, #누룩치, #고래고기, #돼지껍데기묵, #돼지족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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