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가장 먼저 노랗고, 가을 지나 흰 눈이 내리는 겨울까지도 눈물방울처럼 생긴 붉은 열매를 매달고 있는 나무는? 바로 산수유나무다. 담담한 노랑 산수유는 개나리처럼 형광색도 아니고 조금은 물이 빠진 듯 소탈해 보여서 더욱 정감이 가는 꽃이다. 고절한 선비의 기상이라는 매화나 붉은 빛이 요염하기까지 한 동백과 경쟁하기 위해 홀로가 아니라 온 동네 나무가 일제히 노란 빛을 토해내는지, 이른 봄에는 온 나라가 다 산수유마을이다. 기억들 나시는지 모르겠다. 우리 중학교 교과서에 ‘성탄제’라는 시가 있었다. 바로 이 시 때문에 산수유 하면 모두들 노란 색보다는 붉은 색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 것은 아닐까? 검색해 보니 김종길 시인의 1955년 작이란다.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 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새 나도 그 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성탄제 / 김종길 ‘잦아드는 어린 목숨’이라는 시어로 보아 아이의 병은 상당히 위중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산수유 열매를 다려먹었는지 삶아 먹었는지는 몰라도 다행히 그걸 먹고는 병이 다 나아서 이제 그 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고 한다. 이렇듯 산수유는 귀여운 노랑꽃을 보여주는 것 말고도 더욱 성스러운 효용을 가진 나무이다. 어려서 이 시를 읽었을 때는 무슨 말인지 모르고 시험에 나올까봐 그저 외웠는데 어느덧 내 자식도 낳고 한밤중에 아이가 열이 나서 안절부절 해보기도 했더니 이제 시가 다르게 읽힌다. 나야 미리 상비하고 있는 해열제를 먹였지만 시 속에 나오는 젊은 아버지의 심정도 이해할 만한 나이가 되고 보니 이제야 시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꽃이 피었다 진 자리에 수많은 상처들 산수유 산벚꽃 노란 생강나무 꽃이 피었다 진 자리에 물기 젖은 저 상처들 하얀 밥풀 같은 싸리꽃 바람에 지고 조금 세월이 흐른 뒤 저문 강물살에 슬픔처럼 별빛이 뜨네 꽃이 진 자리 저물어 그리운 것들 머위 잎새 가슴을 저미고 봄꽃들 피어나네 상처 / 나종영
산수유 꽃과 생강나무 꽃은 모양새가 유사해서 꽃만 봐서는 좀처럼 구별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럴 땐 나무를 보면 간단하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나무의 껍질이 지저분하게 너덜거리면 그건 산수유나무다. 생강나무란 이름만 봐서는 양념으로 쓰는 생강이 이 나무에서 나는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가지를 꺾으면 생강냄새가 난다고 해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강원도에서는 이 생강나무를 ‘동백’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도 빨간 동백이 아니라 이 생강나무를 의미하는 거란다. <동백꽃>의 마지막 장면에서 점순이가 나를 끌어안고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고 하지 않았던가. 주로 남쪽 해안에서 자라는 붉은 동백일 수가 없는 것이다. 꽃이 피어서 산에 갔지요 구름 밖에 길은 삼십 리 그리워서 눈 감으면 산수유꽃 섧게 피는 꽃길 칠십 리 산수유 필 무렵 / 곽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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