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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7일 SBS ‘8시뉴스’가 정부의 대운하 관련 ‘이중플레이’를 폭로했다. 그동안 정부는 대운하 건설에 대해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없다’며 ‘민간에서 제안이 들어오면 검토할 것’이란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이날 SBS의 보도(<구체계획 없다더니‥>)에 따르면 국토해양부는 내년 4월 공사에 착수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추진일정 도표까지 마련해놓고 있었다.

 

특히 국토해양부 문건은 ‘이명박 대통령 임기내 완공’을 목표로 ‘경부운하 5백40km 구간에서 문화재 조사와 발굴을 1년 안에 마친다’거나, ‘사업제안서가 나오기 전부터 사전 환경성 검토를 시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 2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되는 환경영향평가 기간을 줄이기 위해 “사업구간을 나눠서 협의를 추진”할 계획까지 세워두었다.

 

이밖에 국토부는 ‘내년 4월 착공 일정을 맞추기 위해’ 관련 법령 재개정 방향도 잡아놓고, 운하 사업자의 수익성 보장을 위해 관광단지 개발 등 부대사업 지원 계획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28일에는, 경찰이 ‘한반도대운하를 반대하는 전국교수모임’(이하 ‘대운하반대교수모임’)에 참가한 교수들의 정치성향을 조사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등 ‘정치사찰’을 벌인 사실이 밝혀졌다. 독재정권 시절에나 일어날만한 공안당국의 ‘학원사찰’이 ‘선진화 원년’을 내건 이명박 정부 아래 부활한 것이다. 더욱이 이 ‘사찰’은 전국 여러 대학에서 동시에 벌어진 것으로 드러나 공안당국이 조직적으로 움직였으리라는 의혹을 낳았다.

 

그러나 정부 여당의 ‘대운하 이중플레이’와 ‘학원사찰’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제대로 낸 신문은 역시 소수에 그쳤다.

 

SBS의 ‘국토해양부 내부문건’ 보도 다음날인 28일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이 문제를 1면에서 다뤘을 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2면에서 간단하게 보도했고, 동아일보는 아예 보도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민간 건설사의 사업 제안을 받은 이후 한반도 대운하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던 정부가 내년 4월 착공을 목표로 이미 사업 준비가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하는 데 그쳤다.

 

중앙일보는 “국토해양부 건설 초안 나와”를 소제목으로 뽑고 “국토해양부는 27일 대통령 임기 내 대운하를 완공하기 위해 내년 4월 공사를 시작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해 국토부의 보고서가 마치 정당한 절차를 밟고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민간의 제안이 들어오면 검토하겠다’던 정부의 거짓말이 드러났지만 이에 대한 지적은 없었다.

 

한편 동아일보는 엉뚱하게 <정부, 경인운하 위약금 360억 물어>라는 기사에서 경인운하 사업이 중단된 것이 ‘정치논리와 여론에 휩쓸린 탓’이라고 몰면서 “일각에선 일부 환경단체의 무분별한 국책사업 반대 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고 보도했다. ‘대운하 반대론’을 흠집내고 대운하 반대가 환경단체들만의 주장인양 축소하려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 기사였다.

 

반면 경향신문은 <정부, 내년 4월 대운하 착공 목표>에서 “정부의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나 논란이 커질 전망”이라며 국토부 보고서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한겨레는 <정부, 내년 4월 착공 방침 세워>에서 “이명박 정부가 한반도 대운하를 추진할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고 밝힌 것과는 달리, 내년 4월에 경부운하를 착공하기로 내부 방침을 세워 놓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파장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29일에는 5개 신문이 모두 대운하 관련 사설을 싣고 정부와 한나라당을 비판하긴 했지만 그 강도는 매우 달랐다.

 

동아일보는 사설 <대운하의 모순>에서 “정부 여당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대운하 논란이 총선 득표에 불리하므로 일단은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는 생각인 듯하다”며 정부와 한나라당의 오락가락 행보를 지적하긴 했다. 하지만 전날 밝혀진 운하반대 교수들에 대한 ‘정치사찰’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았고, “대운하를 총선 공약집에서 뺀 것은 정정당당하지 않다”, “백지 상태에서 할지, 안 할지를 결정할 합리적 절차를 분명히 제시하고 차분히 이를 진행하기 바란다”고 ‘조언’하는 수준에 그쳤다. 또 6면 <“표 안나게 밀어붙이나” “표 얻으려 몰아붙이나”>에서는 대운하 문제를 정치권의 총선 전략으로 분석하며 각당의 입장을 나열할 뿐이었다. 14면에서 운하반대 교수에 대한 정치사찰을 다루긴 했지만 “논란이 일고 있다”며 간단하게 언급하는 데 머물렀다.

 

 동아일보 3월 29일 보도
동아일보 3월 29일 보도 ⓒ 민주언론시민연합

 

중앙일보는 사설 <‘한반도 대운하’ 총선에서 판단받아야>에서 정부와 한나라당이 대운하를 두고 엇갈린 행보를 보이는 것에 대해 “잘 봐주면 당과 정부 간 조율이 안됐다고 할 수 있다. 악의적으로 본다면 이미 하기로 다 결정해놓고 총선에선 표 얻는 데 불리할까봐 아니라고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한나라당이 공약에서 대운하를 뺀 데 대해 ‘악의적으로 본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여 비판한 것이다.

 

또 “애초부터 한반도 대운하는 총선의 중요한 공약으로 제시됐어야 했다”며 “한나라당은 지금이라도 대운하를 공약으로 내걸어 유권자의 판단을 받아라”라고 요구하면서, 이미 대운하를 총선 의제로 삼은 야당들을 향해 “야당도 대운하 문제를 정식으로 거론하여 국민의 판단을 들어보라”고 덧붙여 억지스런 양비론을 폈다.

 

5면 <민주당 북한발 변수 확산 막아라 - 한나라 대운하 쟁점 꼭꼭 숨겨라>에서는 대운하를 다루긴 했지만, 국토부의 보고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민주당이 대운하 쟁점화를 위해 별도팀까지 구성했지만 한나라당이 안 할 수도 있다고 해 “김이 빠져도 한참 빠졌다”며 선거 변수 정도로 간략하게 다뤘다. 경찰의 ‘정치사찰’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았다.

 

 중앙일보 3월 29일 보도
중앙일보 3월 29일 보도 ⓒ 민주언론시민연합

 

한편 조선일보 사설 <대운하, 총선 공약에선 빼고 뒤로 몰래 추진하나>는 동아·중앙일보 보다는 비판의 강도가 셌다. 조선일보는 “정부와 여당이 선거 쟁점이 되는 것을 피하려고 대운하를 안 할 수도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중대한 문제”라며 “유권자들을 상대로 한 사기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대운하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즉각 밝혀야 한다”며 “그것이 대운하가 지나갈 지역의 유권자들에 대한 기본 의무이고, 이 문제를 지켜보는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날 조선일보는 사설 외에 한반도 대운하 문제와 관련해 다른 보도를 하지 않았다. 경찰의 ‘정치사찰’도 당연히 다루지 않았다.

 

반면 한겨레는 사설 뿐만 아니라 지면에서도 정부의 ‘이중플레이’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한겨레는 사설 <겉 다르고 속 다른 이 대통령의 대운하 계획>에서 “겉으로는 ‘여론 수렴을 통해’ 공약을 재검토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을 흘리면서, 내부적으론 4월 총선 이후 밀어붙이려는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다는 의혹이 짙다”며 “모호한 언사로 총선을 넘긴 다음 국민을 설득하는 게 가능하리라 여긴다면 큰 오산”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에게는 “지금이라도 깨끗하게 대운하 공약을 포기하겠다고 밝히는 게 옳다”고 요구했다.

 

한겨레는 특히 1면 <국토부 ‘대운하 추진기획단’ 비밀 가동>에서 “국토부는 이미 추진 전담조직을 비밀리에 가동하면서 대운하 사업 참여 제안서를 낼 민간 건설업체들과 수익성 확보 방안을 협의 중”이라며 국토부가 운영하고 있는 ‘대운하 추진기획단’에 대해 보도했다.

3면 <환경평가·타당성 검토 ‘졸속’…대운하 ‘밀실’서 밀어붙이기>에서도 국토부 보고서에 대해 “사업 추진에 필요한 여러 평가·조사·검토 절차를 졸속으로 끝낼 일정표까지 마련해 뒀다”며 “‘불도저’식 사업 추진 방식에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 계획대로라면 ‘특별법이 졸속으로 만들어질 우려’가 있고, ‘환경영향평가 또한 간소화’될 뿐 아니라, ‘대운하 사업자에 대한 특혜 시비도 예상’된다고 세세하게 지적했다. 같은 면 <정부 운하평가, 열달만에 180도 돌변>에서는 지난 정부 시절 대운하에 대해 ‘타당성이 부족’하고 ‘환경적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자료를 만들었던 건설교통부가 국토해양부로 바뀐 다음 만든 이번 보고서에서는 환경논란에 눈을 감는 등 시각이 180도로 달라졌다고 꼬집기도 했다.

 

경향신문도 사설 <불도저 본색 드러낸 국토부 대운하 전략>에서 “이 정부의 ‘불도저 본색’이 한치도 손상되지 않았음을 국토해양부가 문서로 보여주고 있다”며 “착공 일정에 맞춰 민간을 어떤 식으로든 끌어들여 불도저의 운전석에 앉혀놓고, 정부가 전폭적으로 뒤를 봐주는 방식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속내만 또렷이 드러났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새 정부는 대선 때 축적했던 정치적 자본을 너무 빨리 잃고 있다”며 “국민 대다수가 원치 않는 대운하에 대한 집착이 더 큰 병증”이라고 강한 어조의 비판도 덧붙였다.

 

경향신문은 4면에서 ‘전문가 현장진단’이라는 기획연속 보도의 첫 번째로 ‘대운하’를 다루며 대운하가 지나가기로 예정된 지역에서 대운하가 어떻게 논란이 되고 있는지 크게 다루기도 했다.

 

경찰의 ‘정치사찰’에 대해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각각 <경찰, 대운하반대 교수 사찰 파문>과 <경찰·국정원, 대운하 반대 교수 ‘사찰’ 의혹>에서 자세히 다뤘다.

 

한편, 지난 주말 동안 통합민주당이 국회에서 ‘한반도 대운하 밀실 추진, 정치사찰 규탄대회’를 열고,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와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가 ‘운하반대정당 대표 회담’을 제안하는 등 정치권에서 대운하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자 31일 각 신문들은 모두 이를 비중 있게 다뤘다.

 

하지만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신문들은 모두 이를 ‘각 정당의 총선전략’ 쯤으로 다룰 뿐 정부와 한나라당의 ‘이중플레이’나, 국토해양부 보고서 등에서 밝혀진 정부의 밀어붙이기에 대해 더 이상 지적하지 않았다. 다만 중앙일보는 이근식 경실련 공동대표의 외부칼럼 <말로만 머슴>을 실었다.

 

반면 한겨레는 사설 <공안정국으로 되돌아가려는 것인가>에서 경찰의 ‘정치사찰’ 등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과거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밀실 대운하’ 쟁점화…“총선서 찬반 묻자”>, <총선 끝난 다음주부터 ‘운하 드라이브’>에서 ‘국토부 비밀사업단’ 등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문제를 짚었다.

 

경향신문은 <계획 없다더니… 정부 물밑서 물류체계 대수술>에서 “국토해양부가 대운하 건설을 위해 우리나라 교통․물류체계의 대폭적인 손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국토해양부의 ‘한반도 대운하 연계 통합교통 물류시스템 구축방안’에 대해 보도했다.

 

겉으로는 국민의 뜻을 수렴할 것처럼 그럴듯한 말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뒤로는 이미 구체적인 추진일정까지 세워둔 정부의 ‘대운하 이중플레이’는 민주적 절차와 투명성을 포기한 반민주적 행위다.

 

게다가 경찰과 공안기구까지 동원해 반대세력을 ‘사찰’하겠다고 나선 것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성과를 무력화시키고 권위주의로 되돌아가겠다는 시도나 다름없다.

 

보수신문들이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바라지 않는다면 정부 여당의 이런 행태를 강도높게 꾸짖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명박 정부의 ‘불도저식 밀어붙이기’는 거대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보수신문들은 참여정부 시절 입만 열면 스스로를 ‘비판언론’이라 칭했다. 지금이야말로 권력에 대해 ‘비판정신’을 발휘할 때다. 국민여론을 살피며 마지못해 내놓는 ‘체면치레 비판’, 문제의 핵심을 비껴선 ‘목소리만 높이는 비판’은 이명박 정부를 국민적 저항 앞에 내모는 길이다.


#대운하#민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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