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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철로 팔려갈 일만 남은 폐차
▲ 오장육부를 들어낸 차 이제 고철로 팔려갈 일만 남은 폐차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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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짝이 떼어집니다. 바퀴도 빠져나갑니다. 범퍼가 떼어지고 보닛이 덜어내집니다. 엔진과 그에 따른 부속품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갑니다. 엔진을 들어내는 것은 여성의 자궁을 들어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운전석의 오디오가 분해되고 마지막으로 어둠을 밝혔을 라이트가 떨어져 나옵니다. 이제 차는 몸체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차가 생을 다하는 순간입니다. 고단했던 차들의 일생이 그렇게 마감합니다.

엔진을 들어내는 것은 자궁을 들어내는 일과 같습니다

차들이 일생을 마감하는 이 곳은 폐차장입니다. 그러나 폐차장에 있는 차들은 한 때나마 '애마'라고 귀한 대접받던 시절의 고운 모습이 아닙니다. 구겨진 차도 있고, 납작하게 짖눌려진 차도 있습니다.

사업가가 타던 '비까번쩍'한 고급차도 있고, 중국집 상호와 전화번호가 그대로 남아있는 배달 차량도 있습니다. 자신의 몸 몇 배에 달하는 물건을 실어 날랐을 트럭도 있고, 첫 새벽을 나섰던 시내버스도 있습니다.

영업사원이 타던 차는 바퀴가 심하게 닳아 있습니다. 멋 부리기를 좋아했던 여인의 차량에서는 아직도 향수 냄새가 진동합니다. 노동자가 타던 트럭에는 쓰다 남긴 목장갑과 공구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습니다.

어떤 차는 심하게 파손되어 있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게 틀림없습니다. 핏자국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차에 타고 있던 이들의 생명까지 앗아갔을 큰 사고처럼 보입니다. 더 이상 굴러갈 수도 없을 정도로 파손된 차는 견인차에 의해 폐차장으로 끌려왔습니다. 허무한 일생입니다.

비교적 깨끗해 보이는 차들은 수명이 다했거나 주인이 다른 차를 구입하면서 버린 차들입니다. 그런 차들의 의자와 드렁크 안에는 주인이 쓰던 물건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치솔도 있고 피우다 만 담배갑도 보입니다. 아이의 슬리퍼도 있고 목욕탕에 갈 때 들고 다니던 여성용 목욕 바구니도 있습니다.

버려진 것들은 다 쓸쓸해 보입니다. 사고난 차량의 운전석 앞에 걸려 있는 묵주와 염주, 그리고 십자가는 운전자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두 손 모아 빌고 또 빌어도, 염주를 쉼없이 굴려도 부처나 예수, 성모 마리아는 곧 닥쳐오게 될 사고를 예언하지 못했습니다.

운전석만 남은 트럭이 분해되고 있습니다
▲ 설치 미술이 아닙니다 운전석만 남은 트럭이 분해되고 있습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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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을 덜어내는 것은 자궁을 덜어내는 것과 같다지요.
▲ 분해를 기다리는 폐차 엔진을 덜어내는 것은 자궁을 덜어내는 것과 같다지요.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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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나 예수·성모 마리아는 사고를 예언하지 못했습니다

공동묘지에 가면 사연없는 무덤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폐차장에 있는 차들도 사연 없는 차들이 없습니다. 차들은 사연을 하나씩 간직한 채 분해되고 짓눌립니다. 주인은 자신의 차가 그렇게 죽어가는데도 슬퍼하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주인이 차를 사랑하고 아꼈다는 말은 다 거짓말 같습니다. 버려진 차들에는 사랑했던 관계를 짐작할 수 없는 것들만 남아 있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움직이나 봅니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남자 주인공이 그랬지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사랑은 늘 그렇게 변하고 움직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입니다. 차 주인은 새 차를 뽑고 나면 몇 달도 지나지 않아 다른 차를 흘깃거립니다. 새로 나온 차를 부러워하면서 언제고 기회만 되면 새 차를 구입할 계획에 들떠 있습니다. 주인과 차의 밀월 관계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끝나게 되는 거지요.

사고가 나거나 고장이 나면 어떤 주인은 이런 말도 합니다.

"어차피 새 차 뽑으려고 했는데 잘 됐어!"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차는 참으로 섭섭해집니다. 주인이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렸던 지난 일이 후회스럽기까지 합니다. 극심한 상처를 입고 죽어가는 차를 위해 조금이라도 슬퍼해주면 안 되는 일인가요.

주인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 구겨진 채 생을 마감한 승용차 주인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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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재함이 떨어져나간 트럭의 운전석의 풍경입니다. 한 생애가 이렇게 사라집니다.
▲ 승용차가 아닙니다 적재함이 떨어져나간 트럭의 운전석의 풍경입니다. 한 생애가 이렇게 사라집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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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폐차장에 와서 비로소 자유를 찾습니다

이곳에 있는 바퀴들은 이미 속도를 잃었다
나는 이곳에서 비로소 자유롭다
나를 속박하던 이름도 광택도
이곳에는 없다
졸리워도 눈감을 수 없었던 내 눈꺼풀
지금 내 눈꺼풀은
꿈꾸기 위해 있다
나는 비로소 지상의 화려한 불을 끄고
내 옆의 해바라기는
꿈 같은 지하의 불을 길어 올린다
비로소 자유로운 내 오장육부
내 육체 위에 풀들이 자란다
내 육체가 키우는 풀들은
내가 꿈꾸는 공기의 질량만큼 무성하다
풀들은 말이 없다
말 없음의 풀들 위에서
풀벌레들이 운다
풀벌레들은 울면서
내가 떠나온 도시의 소음과 무작정의 질주를
하나씩 지운다
이제 내 속의 공기는 자유롭다
그 공기 속의 내 꿈도 자유롭다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저 흙들처럼
죽음은 결국
또 다른 삶을 기약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에서 모처럼 맑은 햇살에게 인사한다
햇살은 나에게
세상의 어떤 무게도 짐 지우지 않고
바람은 내 속에
절망하지 않는 새로운 씨앗을 묻는다

- 박남희 시 <폐차장 근처> 전문

폐차장 한 켠에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있습니다. 새 차로 보일 정도로 깨끗해 보입니다. 몇 해나 굴렀을까요. 짐작해 보기 위해 운전석 계기판을 보니 8만㎞ 정도를 달렸습니다. 그 정도면 3년, 길어야 4년의 삶을 살았을 차입니다.

웃기는 것은 고급 승용차는 폐차장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는 사실입니다. 정비공들도 고급 승용차를 분해할 때는 온갓 정성을 다 합니다. 살아서 그런 대접을 받더니 삶을 다한 후에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일생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어 풀썩 웃었습니다.

볼품 없는 승용차들이나 트럭은 몸체만 남은 모습으로 이중 삼중으로 겹쳐져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구겨진 채 또 고단한 죽음을 맞습니다.

하나 둘 떨어져 나오면 차는 빈 껍질만 남는다
▲ 떨어져 나온 문짝들 하나 둘 떨어져 나오면 차는 빈 껍질만 남는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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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승용차는 폐차장에서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차들은 폐차장에 오기 전부터 이미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하니 폐차장은 장례식장과도 같습니다. 그럼에도 폐차장에서는 슬퍼하는 이가 없습니다.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죽어도 슬픔에 잠기는 것이 인간인 점을 생각하면 차에 대한 인간의 심성은 모질기만 합니다.

차를 분해하는 정비공들의 무심한 표정만이 폐차장을 떠다닙니다. 국화 한 송이 발견할 수 없는 폐차장에서 '쓸쓸하고 외로운 죽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짐작해봅니다. 그래도 재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남기고 고철로 사라지는 그 이름 '폐차'. 인간의 삶보다는 훌륭해 보입니다.

장기를 기증한 채 생을 마감하는 이들의 삶과 다를 바 없어 절로 고개도 숙여집니다. 자동차의 평균 수명이 7년이라는 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짧은 생애 동안 주인의 발이 되어 달렸을 차들이 그렇게 덧없이 죽어갑니다. 

폐차장의 하루는 분주합니다. 견인차에 끌려오는 차량이 있는가 하면 고철로 팔려나가는 것들도 있습니다. 단종된 차량의 부속품을 찾는 알뜰한 주인도 있고, 차량을 돌며 버려진 물건들을 수거하는 이도 있습니다.

긴장이 풀린 차들은 편안해 보입니다. 인간이 원하는 경쟁의 속도에 맞춰 달려야 할 일도 없습니다. 앞서가는 차를 추월해야 하는 모험을 할 이유도 없습니다. 눈길에 맥없이 미끄러질 일도 없고 억수 같이 퍼붓는 빗길을 달리지 않아도 됩니다. 죽음으로 비로소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차량들이 서로의 사연을 털어놓는 밤시간이 되면 폐차장은 공동묘지처럼 울음바다가 됩니다. 주인에게 욕설을 퍼붓는 차도 있고, 주인을 그리워 하는 차도 있습니다.

어느 순간 서럽다 싶어 어디론가 달려가고 싶지만 엔진이 없으니 시동을 걸 수도 없고, 바퀴가 없으니 구를 수도 없습니다. 어둔 밤거리를 밝혀줄 라이트도 없습니다. 폐차는 다시 슬픔에 빠집니다. 폐차장의 하루가 그렇게 깊어갑니다.

가난한 이들에겐 희망이었던 트럭도 한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 연탄을 실어 나르던 트럭 가난한 이들에겐 희망이었던 트럭도 한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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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폐차,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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