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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이 참 변덕스럽다. 날씨가 따뜻해지는가 싶으면 금방 쌀쌀해진다. 하루가 다르게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 요즘 같으면 감기 걸리기에 딱 안성맞춤이지 싶다. 그 때문에 옷도 어느 장단에 맞춰 입어야 할지 난감하다. 쌀쌀한 아침 기운에 맞춰 옷을 입고 나가지만 점심 때가 되면 후텁지근해지기 때문이다. 

 

엊그제(1일)는 제법 날씨가 따뜻했다. 그야말로 사람 기분을 밝게 만드는 봄볕 기운이 온 누리에 가득했다. 그에 장단이라도 맞추듯 아내는 교회 앞 담벼락 틈에 솟아 오른 쑥들을 뜯고 있었다. 듬성듬성 자라난 쑥들을 뜯어다가 저녁 밥상에 올릴 참이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노라니 아내는 흡사 봄나물 캐는 아낙네였다.

 

"많이 있어요, 여보?"

"많이 없어요. 그냥 한 끼 국거리 정도예요."

"그 양푼이면 많이 되겠네요."

"그렇겠죠. 우리 애들하고 먹을 수는 있겠어요."

"그나저나 애들이 쑥국을 좋아하려나?"

"그래도 봄에 쑥국만한 게 어디 있겠어요."

 

그날 저녁 밥 상 위에 아내가 끓인 봄 쑥국이 올라왔다. 그것은 따사로운 오후 무렵에 봤던 파릇파릇한 쑥들이 아니었다. 한 번 삶고 데친 탓인지 풀이 잔뜩 죽어 있었다. 그렇더라도 봄철 사람 입맛에 짝 달라붙는, 그보다 더 좋은 국이 어디에 있을까 싶었다.

 

"엄마, 이게 뭐야? 두부야?"

"쑥국이야, 민주야."

"쑥국이 뭔데."

"국이야, 국."

"국이야, 엄마?"

"응 민웅아."

"어마, 쑤욱?"

"민혁아, 쑤욱이 아니라, 쑥국이야."

"엄마, 쑤욱이 아니지, 쑥국이지."

"그래 민웅아. 쑥국이야."

 

여섯 살 된 큰 딸 민주를 시작으로 해서 네 살 민웅이와 세 살 민혁이까지 쑥국을 익히려 들었다. 맛도 맛이지만 쑥국을 처음 보는 것이라 녀석들이 마냥 신기하게 여겼던 것이다. 멸치와 두부가 들어가 있어서 처음엔 세 녀석 모두가 두부국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자세하게 알려주는 아내 덕에 막내 민혁이까지도 그것이 쑥국인 줄 차츰 알게 되었다.

 

아내가 정성들여 끓인 쑥국을 막내 녀석이 자꾸 '쑤욱'이라고 발음하자, 그것을 교정해 줄 생각으로 둘째 녀석이 '쑥국'이라고 고집하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론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론 든든하기도 했다. 훗날 동생이 잘못하면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형이 바로 세워주겠거니 생각을 하자니, 그지없이 든든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쑤욱'이든 '쑥국'이든 그렇게 한 가지 일을 두고 온 가족이 서로들 관심을 갖고 알아가려 하고, 이해하려 들고, 든든한 믿음으로 살아가려 한다면 뭐든 어려울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점점 커가고 있는 세 녀석들을 가끔 바라다 보면 어떻게 먹여 살려야 할지 염려되는 게 사실이지만, 그날 저녁 쑥국을 먹으면서 나눈 아이들과의 정겨운 대화를 통해 그래도 적잖은 위안과 희망을 얻을 수 있어서 기뻤다.


#'쑤욱'#'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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