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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갤러리현대 입구 줄리안 슈나벨 전 대형홍보물. 작품은 '마야 스탕달(Maya Stendhal)' 274×259cm 2005년 작
갤러리현대 입구 줄리안 슈나벨 전 대형홍보물. 작품은 '마야 스탕달(Maya Stendhal)' 274×259cm 2005년 작 ⓒ 김형순

줄리안 슈나벨(Julian Schnabel·57)의 아시아순회전이 갤러리현대에서 4월 20일까지 열린다. 이번 순회전은 작년 가을부터 베이징, 홍콩, 상하이를 거쳐 서울에 왔으며 슈나벨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망라하는 24점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슈나벨은 뉴욕시 브루클린 출신으로 1980년대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등 당대미술에 질려 있던 미국 화단에 뉴페인팅의 기수로 혜성처럼 나타났다. 그는 당대의 기존 질서를 뒤엎고 회화의 한계에 도전하는 '무서운 반항아(앙팡 테리블)'였다. '현대판 피카소'라 불리는 그는 우리 시대 가장 창조적인 목소리를 내는 작가다.

가우디의 영감으로 탄생한 접시회화
 
 '올라츠의 초상화' 나무판에 유화와 접시와 본도 213×140cm 1993. 그의 대표적 접시회화. 이런 작품은 그를 뉴페인팅의 기수라는 칭하게 했다.
'올라츠의 초상화' 나무판에 유화와 접시와 본도 213×140cm 1993. 그의 대표적 접시회화. 이런 작품은 그를 뉴페인팅의 기수라는 칭하게 했다. ⓒ 김형순

슈나벨은 그 유명세에 비해 한국에서는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바스키아>와 <잠수종과 나비> 같은 작품을 선보인 영화감독으로 더 유명하다. 그가 미국에서 이름을 날리게 된 건 1978년 바르셀로나에 갔다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타일 모자이크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아 깨진 접시를 사용해 그리기 시작한 '접시회화(plate painting)' 때문이다.

이번 아시아순회전의 기획자인 메리 디나버그와 하워드 러커우스키는 전시회 서문 첫 단락에서 그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30년 전 슈나벨이 미술계에 등장했을 때 그것은 폭발할 것 같은 사건이었다. 그는 70년대 빈사상태의 회화를 혼자 구해내야 했다. 추상표현주의의 영웅주의, 팝아트의 냉소주의, 미니멀리즘의 초연함도 시들고 많은 평론가들은 '미술이 죽은 것이 아닌가?'라며 회의를 품었다. 바로 그 때 그는 강력한 제스처를 부활시키며 거기에다 동시대성을 부여했다."

영화감독 등 다양하게 활동하는 화가

 <잠수종과 나비>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줄리안 슈나벨(오른쪽).
<잠수종과 나비>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줄리안 슈나벨(오른쪽). ⓒ Pathe Renn Productions

1996년 그는 동료이기도 했던 화가 바스키아의 생애를 다룬 영화 <바스키아>를 연출, 이 방면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 또 영화 <잠수종과 나비>로 2007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사실 기자는 <잠수종과 나비>를 아직 보지 못했고 예고편에서 몇 장면 봤을 뿐이다. 우연히 같이 취재하게 된 <코리아 헤럴드>의 오지은 기자는 이미 그 영화를 봤다며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다만 영화를 먼저 보니 그림 감상이 너무 싱거워져 고민이란다.

화가가 만든 영화라…. 앞으로는 화가가 이런 전천후 작가 역할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슈나벨은 화가, 영화감독, 조각가, 사진작가, 건축과 실내 디자이너도 겸하고 있으니 이런 면에서는 선봉인 셈이다. 그렇지만 "조각이나 영화를 해도 나는 화가다"라는 말처럼 그는 모든 걸 회화로 귀속시킨다.

도발적 작품으로 미술의 한계에 도전

 '무제 일명 블랙페인팅(Black Painting)' 캔버스에 유화 244×305cm 1994
'무제 일명 블랙페인팅(Black Painting)' 캔버스에 유화 244×305cm 1994 ⓒ 김형순

슈나벨의 그림을 보면 거침없는 붓질로 정말 자기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렸다는 인상을 받는다. 화폭을 가득 뒤덮은 듯한 도발성은 풍부하나 가식성은 없다. 그림 하단에는 작가의 발자국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이런 점이 관객에게 오히려 더 순수한 기쁨과 친근감을 준다. 고야의 블랙 페인팅(Black Painting) 풍에서 보여준 인간 내면의 불안, 경악, 공포, 절망, 분노와 같은 심리 상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림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그는 아주 지적이고 고대 신화와 역사에 조예가 깊고 감성도 예민한 사람이다. 하지만 운동화에 청바지, 파자마 패션, 빗지 않은 머리 모양에서 보듯 때론 무지하고 무례하고 무감해 보일 수도 있다. 이런 분위기는 그의 그림의 특징이기도 한 상반된 미학과 많이 닮아 있다.

문자는 사회적, 역사적 힘을 띤 회화적 요소

 '내부의 힘(Dentro Dite)' 돛베에 유화와 합성수지 244×274cm 1993
'내부의 힘(Dentro Dite)' 돛베에 유화와 합성수지 244×274cm 1993 ⓒ 김형순

그는 그림 속 문자를 즐겨 넣는 편이다. 그가 겪은 격한 감정과 각별한 경험들을 그림 속에 구현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문자는 사실적인 것으로 내게 잠정적인 의미와 함께 사회적, 역사적 함의를 갖는 회화적 요소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림 속에는 그 뜻을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문자가 많다. 예컨대 위 그림에서 보듯 '내부의 힘(Dentro Dite)'이라든가 '자애로운 사랑(Amor Misericordioso)' '너무 훌륭한 알리(Ali Boris 알리는 흔한 그리스 남자 이름)' '성직자는 피곤하다' 등이 그것이다.

그는 그림 위에 천박해 보일 정도로 코팅 피막을 마구 부었다. 생경한 느낌을 주지만 그림의 생생함은 그대로 살아있다. 이런 걸 '저급과 고급의 공존' 혹은 '부조화의 조화'라고 할까. 이번 전시의 홍보를 맡고 있는 큐레이터 고희경씨는 슈나벨 그림 전반에서 그런 특징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야릇하도록 아름다운 그의 인물화

 '올라츠의 초상화' 캔버스와 유화와 왁스와 합성수지 272×256cm 2004
'올라츠의 초상화' 캔버스와 유화와 왁스와 합성수지 272×256cm 2004 ⓒ 김형순

그는 인물화도 심심찮게 그렸다. 그의 두 번째 부인 올라츠는 단골 메뉴이고 뉴욕 첼시 갤러리에서 일하는 마야 스탕달과 밀라노에 있는 페라리 갤러리의 클라우디아 잔 페라리 디렉터 등 주변 미술관계자들이 많은 편이다.

여자의 40대는 완숙한 전성기다. 20대는 너무 몰라서, 30대는 너무 바빠서 아름다움을 챙기지 못한다. 이에 비해 40대는 인생을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나이이다.

그는 이런 나이의 여성미를 온전하게 그려냈다. 그냥 예쁜 얼굴과는 다르다. 오히려 40대 여인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걱정, 근심, 불안에 휩싸인 표정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그런데도 야릇하게 아름답다. 이것도 슈나벨의 독특한 미학 중 하나일 것이다.

명상을 통해 피어난 그림에 담긴 작가의 자부심

 '난 내가 늘 최고라고 생각해(I always thought of myself as taller)' 폴리에스테르에 유화와 합성수지 229×213cm 2002
'난 내가 늘 최고라고 생각해(I always thought of myself as taller)' 폴리에스테르에 유화와 합성수지 229×213cm 2002 ⓒ 김형순

사실 그의 그림을 보면 낙서라 하기도 뭣하고 하여튼 그림 같지 않다. 물감과 글씨도 뒤범벅인 데다 형체를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고 그냥 뭔가를 흘리거나 뿌려놓은 것 같다. 그렇지만 뭐 하나 막힌 구석이 없다. 그때 그때의 느낌과 감정을 거침없이 표출시켰다.

미국적 풍토가 그에게 이런 파격과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했는지 모른다. 관객을 의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냥 그런 것이 아니라 실존적 고뇌와 깊은 명상을 통해 피어난 산물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위 그림에는 "난 내가 늘 최고라고 생각해(I always thought of myself as taller)"라는 긴 글귀가 적혀 있다. 이를 보면 그가 창조하는 자로서 얼마나 자신감에 넘쳐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자신의 정체성이 이렇게 확고하기에 모든 일에서 왕성한 의욕을 보인다.

뉴페인팅으로 현대미술의 돌파구 뚫기

 '무제 일명 알리 보리스(Ali Boris, 너무 훌륭한 알리)' 타르에 유화와 왁스 244×274cm 2000
'무제 일명 알리 보리스(Ali Boris, 너무 훌륭한 알리)' 타르에 유화와 왁스 244×274cm 2000 ⓒ 김형순

'알리 보리스' 같은 작품은 그리다 만 것 같아 더 재미있다. 원시시대에는 벽이나 바위가 오늘날의 캔버스를 대신했다. 현대미술은 물성을 어떻게 연출하며 캔버스의 범위를 어디까지 규정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슈나벨은 뉴페인팅의 기수답게 캔버스, 타르, 폴리에스테르, 돛베, 가죽, 나무판 위에 벨벳, 사진, 왁스, 접시, 사슴뿔, 철골 구조물 등 비전통적 재료를 사용하여 그림에 활력을 주었고 원생적 질감을 높였다.

그는 종말로 치닫는 현대미술의 막다른 골목에서 비상구를 열고 형식화된 그림 이전의 그림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본질적 미술세계를 추구하며 마치 선사시대 벽화를 연상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줄리안 슈나벨(Julian Schnabel, 1951~)이 남긴 말들


- 미술은 비언어적인 것으로 뭔가 소통하고 나누는 것이다. 또한 평화를 이루고 자유를 누리는 일이다.
- 나도 도시거주자이며 소도시의 비행청소년이었다. 나의 사물에 대한 이해는 유럽공동체의 단절, 뉴욕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유태인으로서의 문화적 조건, 그리고 소도시에 비극적 기록에 대한 목격자이자 참여자로서의 역할에 의해 특징져진다.
- 접시회화를 그릴 때 나는 회화의 표면을 파괴하고자 하였으며 접시의 밝은 면과 그림의 여타 부분들이 빚어내는 부조화를 선호했다.
- 회화의 물질주의, 회화 내의 모든 것은 나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바라보도록 한다. 그것은 회화의 외부에 존재한다. 나는 이것이 영혼, 신, 혹은 단순한 혼란인지 알 수 없다.
- 만일 회화가 죽었다면 이제는 회화를 새롭게 시작할 시점이라 생각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회화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 했으나 오히려 그들은 고인이 되었다.

덧붙이는 글 | 갤러리현대 www.galleryhyundai.com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80번지 02)734-6111-3 입장무료



#줄리언 슈나벨#접시회화#올라츠#블랙페인팅#바스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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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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